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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42화 (24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42화

바톡!

울리는 바나나톡 알림에 서준은 휴대폰을 꺼냈다.

>지호 : 어디임?

>주경 : 너 빼고 다 왔어.

>재한 : 카페 2층. 세미나룸 3이야.

>주희 : 음료 뭐 먹을래?

<지금 갈게.

최다예와 출판사 직원, 김형원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홀로 움직이는 서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낸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약속이 있어서요. 전화번호 알려주시면 나중에 연락드릴게요.”

“네, 네!”

“여기 있습니다!”

김형원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내미는 명함을 받아 든 서준이 다시 안경을 쓰고 모자를 눌러썼다. 가리고도 느껴지는 아우라에 최다예도 김형원도 감탄했다. 지금까지 어째서 못 알아봤는지 의아할 정도였다.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요.”

그렇게 말하며 꾸벅 인사한 배우 이서준이 가방을 메고 방을 빠져나갔다.

최다예와 김형원은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진 슈퍼스타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저기, 이제 비워주셔야 하는데요.”

얼마나 넋을 놓고 있었을까. 서점 직원이 들어와서야 최다예 작가와 김형원은 겨우 정신줄을 붙잡을 수 있었다.

“……설마 꿈은 아니겠죠?”

“……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흔적 하나 남지 않고 사라진 서준에 최다예와 김형원은 자신을 볼을 꼬집어봐야 했다.

* * *

“오렌지 스무디 하나 주세요.”

음료를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은 서준은 2층 세미나룸으로 향했다. 문이 닫힌 여러 세미나룸 중 재한이 보내준 세미나룸 3의 문을 두드렸다.

“왔네!”

“어서 와!”

세미나룸으로 온 서준을 3조 아이들이 반겼다. 조장 양주희, 김주경, 강재한, 한지호, 이서준까지. 제비뽑기로 뽑았는데도 잘도 이렇게 모였다 싶었다.

“아직 1시 반밖에 안 됐는데, 다들 너무 일찍 온 거 아니야?”

자리에 앉은 서준의 말에 아이들이 웃으며 말했다.

“늦는 것보단 낫지.”

“어쩌다 보니 일찍 오게 되더라.”

“그럼 서준이도 왔으니까 지금부터 토론할까?”

재한의 물음에 서준과 아이들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2시부터 하기로 했잖아.”

“2시부터 해야지.”

숙제는 최대한 늦게 하고 싶었던 아이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다 같은 반응에 본인들도 웃긴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뭐할 거야?”

“난 점심 먹게. 아직 안 먹었거든.”

서준의 대답에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뒤를 돌면 배고플 나이인 아이들에겐 점심을 안 먹었다는 말은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헐. 뭐 하느라 밥도 안 먹었어?”

“서점에 들렀다가 북콘서트 보느라.”

“북콘서트?”

“일단 서준이 너 점심부터 사 와. 여기 샌드위치 맛있대.”

“그래.”

마침 진동벨도 울렸다.

1층으로 내려가 오렌지 스무디를 받은 서준은 샌드위치 두 개와 작은 케이크 4개를 주문했다. 시간이 꽤 걸렸던 음료와는 달리 음식은 금방 준비가 되었다.

다시 세미나룸으로 돌아온 서준은 음료와 음식이 담긴 쟁반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나 혼자 먹으면 좀 그러니까 다 같이 먹자.”

“오! 잘 먹을게!”

“잘 먹을게. 서준아.”

아이들은 각자 먹고 싶은 케이크를 고르고 포크를 들었다. 서준도 햄치즈 샌드위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주희의 말대로 샌드위치는 맛있었다.

“너 어릴 때 엄청 귀엽더라.”

“나도 봤어. 볼살도 통통하고.”

우물우물.

서준은 말없이 샌드위치만 먹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7살 이서준은 귀여웠지만 자기 입으로 말하긴 좀 그랬다.

“그럼 서준이는 결말 알고 있었겠네.”

“응. 그렇지.”

“어떻게 9년이나 숨길 수 있었어? 나였으면 친구들한테 자랑했을 텐데 말이야.”

오렌지 스무디를 마시던 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말하는 것보다 지금 밝혀지는 게 더 감동적이니까. 그때 말했으면 지금처럼 감동 못 했을걸.”

“그건 그렇지.”

“내용 유출로 결말이 바뀔 수도 있었고.”

“그 결말이 새드엔딩이 됐을 수도 있겠네.”

새드엔딩.

달달한 케이크를 먹던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쉐도우맨 시리즈의 새드엔딩이라니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이미 멋진 결말을 봐서 그럴지도 몰랐다.

“어떤 내용이 됐을까?”

“글쎄. 다른 건 몰라도 진 나트라는 죽지 않았을까?”

“역시 그럴 것 같지?”

새드엔딩에 대해 이야기하던 아이들의 화제는 금방 바뀌었다.

“고등학교는 어딜 갈 거야?”

햄치즈 샌드위치를 깔끔하게 해치운 서준은 치킨 샌드위치의 포장을 뜯어 한입 베어 물었다.

“뭐, 미리내 예고가 가장 좋긴 하지.”

지호의 말에 서준도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여울 예중과 같은 ATR재단의 학교인 미리내 예술 고등학교.

제일 가고 싶은 고등학교의 등장에 아이들은 신나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이야기했다.

“우리 학교랑 커리큘럼이 비슷하긴 한데 더 좋지.”

“맞아. 학생들끼리 모여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건 똑같은데 작품이 좋으면 정식 공연이 가능하잖아.”

“영화라면 제휴한 영화관에서 상영도 해주고.”

“그것도 유료로!”

“강당보다 넓고 시설도 좋은 은하수센터도 쓸 수 있지.”

“진짜 가고 싶다!”

학생들이 만든 작품이 무대에 오르고 영화관에서 상영된다니 꿈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적지만 이익도 얻을 수 있었다.

“그만큼 평가가 냉정하긴 하지만.”

서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돈을 내는 만큼 수준 낮은 작품을 올릴 수는 없었다. 고등학생 그 이상의, 수준 높은 작품을 원할 터였다.

“그래도 이렇게 지원을 많이 해주는 예고는 없을 거야.”

“여울 예중 입시도 치열했는데 미리내 예고 입시도 엄청 치열하겠네.”

“2학기는 바쁘겠다. 졸업 공연에 고등학교 입시에…… 이번엔 무슨 연기를 해야 하지?”

“그러게. 자유 연기 고르는 것도 어렵다니까.”

“서준이는 또 영화 하나 하는 거 아니야?”

“아하하하.”

친구들의 말에 서준은 웃기만 했다.

‘설마 또 그런 일이 생기겠어?’

* * *

배도 든든히 채웠겠다 2시도 됐겠다 아이들은 여름 방학 숙제를 시작했다.

서준과 아이들은 각자의 가방에서 토론할 책과 토론한 내용을 적을 공책 그리고 필기구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전부 못 받아적을지도 모르니까 지금부터 녹음할게.”

“그래.”

주희가 휴대폰을 꺼내 녹음을 시작했다.

“일단 토론할 주제를 정하자.”

“박경원이 받은 판결이 적당하다, 적당하지 않다를 주제로 정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가 배심원이 되자는 거지? 난 좋아.”

“좋을 것 같긴 한데…… 판결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주희의 말에 주경과 재한, 지호가 손을 들었다.

“서준이랑 나만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네. 잘 나뉜 것 같아.”

3 : 2

토론하기 알맞게 나뉜 의견에 주희가 활짝 웃었다.

“그럼 토론 시작하자. 먼저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쪽부터.”

세 사람 중 주경이 먼저 손을 들었다.

* * *

[배심원]

실수로 아버지를 죽인 ‘박경원’의 재판을 배심원인 주인공이 바라보는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였다.

배심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재판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알 수 있는 정보는 검사와 변호사가 말하는 내용과 검사와 변호사의 질문들에 대답하는 증인들과 ‘박경원’의 진술뿐이었다.

그렇게 검사와 변호사가 주장하는 내용에 따라 주인공인 배심원이 생각하는 ‘박경원’의 모습은 재판 내내 조금씩 변해갔다.

[잔혹한 계획 살인]

[사고일 뿐인 사건]

검사와 변호사의 대립이 심해질수록 배심원이 상상하는 박경원도 아예 다른 사람같이 보인다. 책에는 그 변화가 서술되어 있었다.

‘재미있었지.’

복잡해 보이는 이야기였지만 작가의 필력이 좋은 덕분인지 술술 이해가 됐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던 서준이 다시 친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 연기를 하는 아이들이라서 그런가, 캐릭터를 분석하는 것부터가 남달랐다. 소설 속 어떤 문장도 눈여겨보며 분석했다.

학대를 받았다는 과거로 감형을 받은 판결이 적당하다고 주장하는 주경이 말했다.

“검사의 추궁에 손을 떨잖아. 죄책감 때문이 아닐까? 박경원도 충분히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다는 거지.”

“내 생각은 좀 달라. 증인으로 출석한 의사가 진술하는 내용을 봐.”

미리 준비한 듯 주희는 포스터잇이 붙어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학대에 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피곤할 때 손이 떨린다고 했습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조언했죠.”>

“손은 그저 스트레스 때문에 떨리는 거야. 그리고 박경원은 그것까지 재판에 이용하는 미친놈이고. 어쩌면 손떨림까지 만들어낸 걸지도 모르지.”

판결이 적당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주희의 반박에 지호가 손을 들었다.

“내 생각엔 그렇게까지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아. 재판 내내 성실히 대답하잖아. 배심원인 주인공이 의아할 정도로 모든 질문에 순순히 말이야. 자기에게 불리한 검사의 질문도 검사의 의도대로 대답하는 걸 보면 자기 잘못을 알고 반성하는 태도가 아닐까?”

재한과 주경이 지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주희가 이마를 짚었다.

“으. 아니, 그게 다 박경원의 계획이라니까?”

‘신기하네.’

서준이 열심히 의견을 이야기하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같은 책을 읽어도 캐릭터 해석이 약간씩 달랐다. 그게 같은 의견이라도 말이다.

주경의 ‘박경원’이 다시 살아갈 용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재한의 ‘박경원’은 세상만사 다 포기한 듯 보이고 지호의 ‘박경원’은 좀 사나워 보였다.

‘주희가 생각하는 박경원은 학대받다 미쳐버린 것 같지.’

미친 것치곤 똑똑해서 제 학대받은 과거를 이용해 판결을 약하게 받은 것이 주희가 생각하는 ‘박경원’이었다.

다 다른 해석이 재미있어 작게 웃은 서준이 주희의 의견에 힘을 보탰다.

“내 생각에도 박경원이 이상한 게 맞는 것 같아.”

하지만 서준이 생각하는 ‘박경원’도 주희와 같지는 않았다.

서준은 제가 생각했던 ‘박경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설명도 있지만, 갸웃하게 만드는 설명도 있었다.

“그러니까 박경원은 진심으로 아버지에게 맞는 걸 그저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해. 재판 내내 박경원은 담담해 보이잖아. 아버지에게 맞는 것도, 밥을 굶는 것도, 아버지를 죽인 것도. 그 모든 일을 그저 ‘피곤한 일’이라고 하고. 게다가 마지막 문장도 그렇잖아.”

마지막 문장.

배심원의 시점으로 전개되던 이야기가 처음으로 박경원의 심정을 드러낼 때였다.

<재판장을 떠나면서 박경원은 생각했다. 어째서 저 사람들은 울고 있을까.>

“이게 왜? 난 박경원이 괴로울 때 도와주지 않았던 사람들이 우는 가식적인 모습을 보며 원망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저 사람들은 울고 있을까, 도와주지도 않았으면서.’하고.”

“난 조금 자조적인 느낌이 들었어. ‘어째서 저 사람들은 울고 있을까, 울고 싶은 건 난데.’”

대사를 읊는 주경과 재한의 모습에 서준과 지호, 주희가 박수를 보냈다.

“역시 연기과!”

재한은 쑥스러운 듯 웃으며 볼을 긁적였고 주경은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손뼉을 치던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난 이렇게 해석했어.”

웃는 얼굴이 순식간에 변했다.

희로애락.

그중 아무것도 없는 얼굴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서준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의 팔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어째서 저 사람들은 울고 있을까.’”

서준의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지만, 안에 든 느낌은 전혀 달랐다. 재한과 주경처럼 다른 대사를 덧붙이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몰이해(沒理解).

이해하지 못함.

박경원은 처음부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째서 울고 웃고, 아파하고 짜증 내고 화내고 때리고 원망하는 걸까.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니 모든 일이 그저 몸이 고되고 피곤한 일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몸까지 멀쩡한 건 아니었던 거야. 계속 충격을 받으면 어딘가가 고장이 날 테니까. 그래서 재판 중에도 손이 떨렸던 거지.”

서준의 설명에 주경과 재한, 지호가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 억울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뭐랄까. 말로만 들으면 반박할 거리가 있는데…….”

“서준이 연기를 보면 맞는 말 같아.”

“연기로 납득시키다니…… 무서운 놈.”

서준과 같은 편인 주희만 신나게 박수를 쳤다.

“역시 연기과 에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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