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241화 (24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41화

따가운 햇볕이 쏟아지는 7월.

여울 예중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가방 안에 책과 공책, 필기구를 챙긴 서준은 책상 한편에 놓아둔 종이를 바라보았다. 학교에서 나눠준 여름방학 숙제 목록이었다.

초등학교 때처럼 매일같이 써야 하는 일기는 없었지만, 조별 활동이 하나 있었다.

청소년 필독 소설 중 하나를 읽고 독서토론을 하는 것. 책에 대한 자신의 감상과 독서 토론 후 바뀐 생각, 조원들의 의견을 적어 제출해야 했다.

서준이 있는 3조는 일찌감치 방학 숙제를 끝내기 위해, 여름방학이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오늘 모이기로 했다.

아무래도 방학이 가장 오디션을 활발하게 보러 다닐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서준은 도수가 없는 뿔테 안경을 썼다. 이스케이프 촬영 때를 빼면 안경을 써본 적이 없어서 어색했다. 거울을 보며 안경을 몇 번 만지작거린 서준이 작게 웃으며 자주 쓰고 다니는 검은 모자까지 꾹 눌러썼다.

‘여기다 능력까지 쓰면 사람들이 알아챌 일은 거의 없겠지.’

손등 위에서 반짝이는 문양을 본 서준은 바닥에 내려놓았던 가방을 메고 방을 나섰다.

“수요일부터 말까지 쉴 수 있을 것 같아.”

“으음. 꽤 기네.”

거실에서 달력을 보며 이번 여름 휴가 때 어디를 갈지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서은혜와 이민준은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나갈 준비를 끝낸 서준의 모습에 미리 방학 숙제를 하러 간다고 들은 서은혜와 이민준이 웃었다.

“지금 가는 거야?”

“응.”

이민준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아직 11시밖에 안 됐는데. 친구들이랑 2시에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

“만나기로 한 카페 옆에 서점이 있거든. 구경 좀 하려고.”

“점심은?”

“근처에 음식점 많으니까 사 먹을 거야.”

“과자로 때우지 말고 든든하게 먹어.”

“응.”

다시 한번 모자를 고쳐 쓴 서준은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았다.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차 조심하고!”

* * *

오늘 친구들과 만나기로 한 카페 바로 옆에 서준이 들르려던 서점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지점이 있는 대형 서점이라 크기도 컸고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다.

모자를 다시 한번 꾹 눌러쓴 서준이 서점의 문을 열었다.

딸랑.

서점 안으로 들어가자 에어컨 바람에 더웠던 몸을 식혀주었다. 잠시 시원한 바람을 만끽한 서준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럼 찾아볼까?”

서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단편 소설들이 잔뜩 꽂혀 있는 책장 앞에 섰다.

1학기가 훌쩍 지나고 여름방학이 됐는데도 서준은 아직 졸업공연 때 무대에 올릴 대본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본이 공개된 유명한 연극들도 있었고 여울 예중 선배들이 먼저 올린 연극들도 있었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찾다 찾다 코코아엔터로 들어오는 대본이나 시놉시스 중 마음에 드는 걸 쓸까 고민도 해봤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도 공연을 해야 하는 만큼 졸업 공연의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 이야기를 축소하거나 클라이맥스 부분만 무대에 올려야 했다. 그건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 서준은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그래도 슬슬 찾아내야 할 텐데…….’

같이할 아이들도 모아야 했고 무대도 만들고 연습도 해야 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조금 초조해진 서준은 어젯밤 생의 도서관에서 능력을 하나 꺼냈다.

[(선)민들레 홀씨의 인연-최하급]

민들레 홀씨가 인연을 발견해 줍니다.

범위 : 200m

200m 안에 인연이 있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바람에 날리는 작고 새하얀 민들레 홀씨를 놓치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최하급이라서 그런지 거리가 200m밖에 되지 않았다.

‘여름방학 내내 열심히 돌아다녀야 하나.’

볼을 긁적이던 서준이 고개를 돌려 다시 소설들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팔랑팔랑 종이를 넘기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졌다.

“저기, 학생.”

“……네?”

“책 좋아하세요?”

남자의 물음에 서준은 슬쩍 발을 뒤로 뺐다.

‘길거리라면 몰라도 서점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존재감을 흐리게 만드는 능력까지 쓰고 있던 서준을 발견하다니. 어떻게든 말을 걸 사람을 찾고 말겠다는 남자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건 그거고.’

낯선 사람은 피해야지. 서준이 보던 책을 덮고 자리를 뜨려는 기색이 보이자 남자가 얼른 명함을 내밀었다.

“10분 후에 북콘서트를 하는데 인원수 좀 채워주지 않을래요?!”

“어…….”

“진짜 수상한 사람 아니에요. 출판사 직원입니다! 여기 서점 직원분에게 물어봐도 돼요. 저 바로 옆에서 하거든요. 책은 이거예요! 종교랑은 전혀 상관없는 책입니다!”

열심히 말을 늘어놓는 남자를 바라보던 서준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먼지 같이 작은 민들레 홀씨 하나가 흔들흔들 바람에 흔들리다가 남자가 보여주는 책 위로 내려앉았다. 그곳이 자신의 자리인 양 자리를 잡는 민들레 홀씨에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인연’은 무생물도 되는 거였나 보다.

‘생각보다 빨리 찾게 돼서 좋긴 한데…… 무슨 책이지?’

남자가 보여준 책을 찾아 계산하고 카페에 가도 되지만.

간절한 남자의 표정에 서준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살폈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출판사 직원이 반색하며 얼른 입을 열었다.

“중간에 나가셔도 됩니다!”

“그럼 그럴게요.”

“고마워요!”

서준이 책을 받아 들자 남자가 말을 이었다.

“자리는 선착순이라 어디든 앉아도 되고 이 책은 비매품이라서 가지셔도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미리 몇 페이지만 읽어주면…….”

이런저런 설명을 늘어놓던 출판사 직원은 다른 관객을 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남자의 모습을 보던 서준은 출판사 직원이 준 책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뿌리를 내리고 활짝 핀 노란색 민들레가 책 표지 위에서 살랑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거울]

서준이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가 그려진 책표지를 넘겼다.

‘음.’

빠른 속도로 단어와 문장,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던 서준이 작게 웃었다.

든든하게 먹으라던 엄마 아빠한텐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점심은 카페에서 먹어야 할 것 같았다.

* * *

“……죽을 것 같아.”

[거울]의 작가, 최다예는 다리를 덜덜 떨어댔다.

파도에 넘실거리는 배를 타도, 차를 타도 멀미가 없는 건강한 최다예인데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새하얀 안색에 서점 직원이 괜찮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그런 주제에 무슨 배짱으로 북콘서트에 열었냐고 묻는다면, 이게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몇 년 동안 매달린 소설이 겨우 책으로 출판됐다고 기뻐했더니 알려지지도 못하고 묻혀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예 무덤을 파고 있던 자신의 책을 홍보하기 위해 출판사와 편집자가 겨우겨우 잡아준 기회였다.

기사라도 한 줄 나면 관심을 두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대형 서점에 가장 작은 공간을 빌려 북콘서트라는 이름을 붙인 홍보의 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안 쓰겠지.’

텅 비어 있는 관객석만 머릿속에 떠올라 최다예는 속이 메슥거렸다. 이번 소설 정말 재미있다고 말하며 끝까지 노력해 준 출판사와 편집자에게 정말 미안했다.

“최 작가님. 이제 시작할 시간이에요.”

“아, 네!”

서점 직원의 부름에 최다예가 벌떡 일어났다. 후우, 후우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고 북콘서트가 열릴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북콘서트가 열리는 장소는 작았다. 앞에 의자 하나, 물병이 올려진 작은 테이블 하나가 있었고 마주 보는 자리에 20개의 의자가 놓여 있었다.

최다예는 손을 벌벌 떨며 관객석은 바라보지도 못하고 앞만 보고 걸어가 홀로 동떨어져 있는 자신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앞을 바라보았다.

!

관객석에는 10명 남짓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이도 성별도 달랐다. 그중 3명은 출판사가 부른 기자였다.

예상보다 많은 숫자에 최다예는 불안으로 떨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킬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 아무도 없는 관객석까지 상상했던 최다예였다.

만족하는 작가와는 달리 옆에서 작가와 관객들을 바라보던 출판사 직원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책을 여기저기 뿌렸는데도 적은 숫자였다.

“그럼 지금부터 [거울]의 최다예 작가님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작은 행사라서 사회는 출판사 직원이 맡았다.

“작가님. [거울]에 대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거울은 정신과 의사인 여주인공이 세 사람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세 편의 이야기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연결된 이야기이죠.”

출판사 직원이 질문하면 최다예가 대답을 했다.

거울을 쓰게 된 계기,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었는지, 모델로 삼은 사건이 있는지. 두 사람만이 주고받는 질문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루한 표정을 짓던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시계를 확인하던 한 사람이 자리를 떴다. 3명의 기자 중 두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자리를 떠났다.

10명이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반으로 줄었다. 최다예와 출판사 직원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니 앉아 있던 사람들의 마음도 흔들렸다.

“우리도 갈까?”

“지금 빠지긴 너무 미안한데…….”

억지로 모은 만큼 [거울]과 최다예 작가에게는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출판사 직원이 속으로 한숨을 쉬던 그때, 검은 모자를 쓰고 뿔테 안경을 낀 소년이 손을 들었다.

설마 먼저 질문을 할 줄은 몰랐던 출판사 직원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소년을 불렀다.

“네. 거기 학생분.”

“최다예 작가님께 질문 있습니다.”

“네, 네?”

갑작스럽게 불린 최다예는 화들짝 놀라 되물었다.

“지, 질문이요?”

“네. 작가님께선 여주인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당황하던 최다예가 침착하게 대답했다.

검은 모자를 쓴 학생의 질문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질문할 것을 미리 준비해 놓기라도 한듯 끊임없이 질문했다. 자신이 쓴 책에 대해 자세히, 깊이 있는 질문을 하는 독자의 모습에 최다예도 신이 나서 자신의 의도와 생각을 풀어놓았다.

마치 핑퐁처럼 오가는 질문과 대답에 남아 있던 기자도, 3명의 관객도 출판사 직원에게 받은 책을 촤르르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들으니까 재밌어 보인다.”

“그러게. 나중에 천천히 읽어봐야지.”

다섯 명밖에 남지 않은 북콘서트였지만 생각보다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됐다. 최다예는 기쁜 얼굴로 기자와 세 명의 독자가 내미는 책에 사인했다.

세 명의 관객도, 최다예가 사인하는 장면까지 촬영한 기자도 자리를 뜨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소년의 차례가 되었다.

“읽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최다예가 검은 모자의 소년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급하게 읽느라 제대로 못 읽은 것 같아서 죄송해요.”

“네?”

학생의 말에 최다예와 그 옆에 있던 출판사 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번 북콘서트를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준 학생이 웃었다.

“아까 저한테 책 주셨잖아요.”

“……아!”

그제야 바로 10분 전, 책을 건넸던 학생을 떠올린 출판사 직원이었다. 최다예가 고개를 갸웃했다. 출판사 직원이 얼른 눈짓을 보내자 소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책 재미있었어요. 사인해 주세요.”

“네? 네!”

“근데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요?”

마음 같아선 웬만한 건 다 들어주고 싶었다. 눈을 반짝이며 묻는 최다예의 모습에 소년이 작게 웃었다.

“이거 연극으로 만들어도 되나요?”

“연, 연극이요?”

생각지도 못한 일에 최다예가 당황하는 사이, 자연스럽게 2차 판권이나 계약 등에 대해 떠올리던 출판사 직원은 제 앞에 있는 사람이 학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서 하는 거죠?”

“학교 졸업 작품이에요.”

“아…….”

당황하던 최다예가 안심하는 것과는 달리 편집자는 아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금전적 이득이 없는 연극은 괜찮아요. 물론 우리가 대본까지 써주진 못할 테지만…….”

“각색은 괜찮은데 저희 학교 졸업 작품은 너튜브에 올라가서요.”

“아. 그럼 안 되는데…….”

아무래도 책 줄거리를 그대로 쓸 테니 연극이 너튜브에 뜬다면 내용이 유출될 확률이 높았다.

‘근데 팔리지도 않는 책인데…….’

최다예는 제 소설이 연극으로 재탄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출판사 직원도 이게 홍보가 되지 않을까, 잠시 생각했다. 그렇게 되려면 잘 만들어져야 했다.

“음. 학교가 어딘데요?”

“여울 예중이요.”

‘중학생이었구나.’

키가 커서 고등학생인 줄 알았다. 여울 예중. 최다예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여울 예중이면 이서준 학교 아니에요?”

“그러네요. 설마 이서준 배우도 같이한다거나?”

“그러면 정말 좋겠네요.”

출판사 직원과 최다예가 웃으며 농담을 나누었다.

이미 두 사람의 마음은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아, 우리끼리 정할 수는 없고 출판사에서도 회의를 해야 해요.”

“걱정 마세요. 제가 꼭 설득할 테니까.”

“저도 돕겠습니다.”

상냥한 작가와 직원의 말에 잠시 침묵하던 소년이 천천히 검은 모자를 벗었다. 천천히 드러나는 얼굴에 최다예와 출판사 직원의 눈이 천천히 커졌다. 뿔테 안경까지 벗은 소년이 웃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최다예와 출판사 직원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입을 쩌억 벌렸다. 바로 직전, 농담으로 꺼낸 이름의 주인이 바로 이 자리에 있었던 것이었다.

배우 이서준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걸로 연극을 만들려고…….”

“하세요!”

“하십쇼!”

서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이 나왔다.

출판사 회의? 내용 유출? 다 상관없었다.

“꼭 만들어주세요!”

불타오르는 최다예와 출판사 직원의 눈빛에 서준이 어색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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