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237화 (23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37화

이야기를 들은 튤 나트라가 사색이 된 얼굴로 한숨처럼 말을 뱉었다.

“……없단다.”

“네?”

“이미 금이 간 육체를 되돌릴 방법은…… 없어.”

처참한 튤 나트라의 목소리에 벨 나트라가 얼른 물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였다.

“레드, 레드 타임스톤을 쓰면 어때요?”

“진이 흡수한 타임스톤의 힘이 더 상위의 힘이라 레드 타임스톤이라도 불가능하단다. 벨. 너도 알잖니. 레드 타임스톤과 블루 타임스톤은 ‘타임스톤’의 부스러기라는 걸 말이다.”

튤 나트라의 말에 벨 나트라는 결국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쉐도우맨도 떨리는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꽉 쥔 주먹에 힘이 들어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 경고음이 울렸다.

데굴데굴 눈만 굴리고 있던 학자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말했다.

“어…… 마지막 생성기는 이 근처인 것 같습니다.”

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튤 나트라가 고개를 들었다.

“나도 같이 가마.”

웜홀 생성기는 센트럴 파크에 설치됐다. 튤 나트라의 등장에 나트라인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었다.

세 사람의 등장에 진 나트라가 웃었다 진 나트라의 얼굴의 반이 검은 나뭇가지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턱 쪽 나뭇가지가 갈라지고 새하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말했잖습니까.”

“당신의 소중한 것을 ‘모두’ 빼앗겠다고.”

튤 나트라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거기에 ‘진 나트라’를 빼놓을 순 없죠.”

설마, 설마 하던 이미연과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누가 감히 복수에 자신의 목숨까지 걸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선택하세요.”

진 나트라가 활짝 웃었다.

“접니까. 지구와 나트라입니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잔인한 선택이었다.

벨 나트라의 한 마디 한 마디에서 관객들은 그제야 그 모든 것이 진 나트라의 계획인 걸 알아챘다.

이젠 놀라기도 힘들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계산한 거야?

그 어렸던 때의, 아무것도 몰랐던 순진한 진 나트라처럼 밝고 순수하게 웃었다.

“아버지. 이번에도 나를 불행하게 만들 겁니까?”

“쉐도우맨. 이번에도 나를 구해주지 않을 건가요?”

“벨. 이번에도 나를 버릴 거예요?”

진 나트라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세 사람의 폐부를 찔러왔다. 무거운 죄책감이 세 사람을 덮쳤다.

“자. 선택하세요.”

우우웅!

환하게 웃던 진 나트라가 웜홀 생성기에 두 손을 올렸다.

마지막 웜홀까지 만들어지자 진 나트라의 그림자가 몸집을 불렸다. 실체를 가진 파도 같은 그림자가 센트럴 파크를 뒤엎었다. 쓰나미처럼 나무와 땅을 뒤엎으며 몰려오는 그림자에 세 사람은 몸을 피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바닥을 검게 물들이던 진 나트라의 그림자가 송곳처럼 솟아올라 우주선들을 꿰뚫었다.

공중을 날던 우주선들이 그 상태 그대로 고정되어버렸다. 쾅! 콰아앙! 우주선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 튤 나트라는 우주선들과 뒤집힌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진 나트라를 막으려고 애썼지만, 힘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쿠웅!

커다란 진동이 울리고 우주선에 남아있던 학자가 외쳤다.

-충돌의 전조입니다!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 주저하는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를 보던 튤 나트라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입술을 깨문 튤 나트라의 공격이 처음으로, 흡수한 타임스톤의 힘을 제어하지 못해 금이 가고 있는 진 나트라의 몸에 적중했다.

튤 나트라를 시작으로 벨 나트라도 진 나트라를 공격했다. 몇 번을 공격당한 진 나트라가 타임스톤의 힘을 드러냈다. 진 나트라의 얼굴에 가 있던 검은색 금이 번졌다. 검은 틈 사이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새하얀 빛과 그림자가 만나 커다란 그림자로 변했다. 거대한 그림자의 파도가 세 사람을 덮쳤다.

재빨리 우주선 위로 물러난 세 사람은 다시 한번 진 나트라에게로 달려들었다. 이번엔 쉐도우맨의 공격이 적중했다.

콰아앙!!

타임스톤의 힘을 지닌 진 나트라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웜홀의 진동은 더욱 커졌고 먹히지 않는 공격에 세 사람은 초조해졌다.

여기서 또 한 번.

쉐도우맨의 그림자가 활약했다. 세 사람이 진 나트라의 시선을 끄는 동안 진 나트라의 발목을 낚아챈 쉐도우맨의 그림자가 진 나트라를 날려버렸다.

콰아앙!!

센트럴 파크를 너머 건물에 파묻힌 진 나트라에게서 그림자가 뿜어져 나왔다. 경복궁에서 드러났던 그림자보다 무시무시한 기세였다.

정신을 차린 진 나트라가 천천히 일어나는데도 일렁이는 그림자는 흡수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튤 나트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진 나트라의 몸이 타임스톤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당장에라도 진 나트라의 몸을 찢고 퍼져 나오려는 타임스톤의 에너지를 진 나트라의 그림자가 붙잡고 있었다. 마치 온몸을 감싼 붕대처럼 진 나트라의 그림자가 진 나트라의 몸을 칭칭 감싸고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일어난 진 나트라가 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힘은 세 사람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세 사람의 공격이 조금씩 먹히고 있었다.

이미 진 나트라는 제 몸속에서 날뛰고 있는 타임스톤의 힘을 제어하기도 힘들었다. 온몸이 조각조각 나는 고통 속에 움직이고 있었다.

“으아아아!!!”

고통 섞인 진 나트라의 울부짖음에 누나 벨 나트라가, 아버지 튤 나트라가, 히어로 쉐도우맨이 움직였다.

벨 나트라의 창이 진 나트라의 오른쪽 어깨를-

쉐도우맨의 그림자가 진 나트라의 오른쪽 허벅지를-

그리고, 튤 나트라의 검이 진 나트라의 왼쪽 가슴을-

관통했다.

창을 잡고 있는 벨 나트라의 손이 벌벌 떨렸다. 벨 나트라는 차마 제 앞에 있는 진 나트라를 바라보지 못했다. 악 다물고 있는 턱이 덜덜 떨렸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튤 나트라의 공격을 돕기 위해 진 나트라를 잡고 있던 쉐도우맨이 떨리는 손으로 힘이 빠진 듯 쓰러지려는 진 나트라를 지탱했다. 자신보다 가벼운 진 나트라의 무게에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대의를 위해 아들의 품에 파고들어 심장을 노렸던 튤 나트라는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울고 있었다.

진 나트라의 숨소리가 잦아들자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웜홀이 크기를 줄여나갔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웜홀 생성기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에너지원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가득 채웠던 웜홀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진 나트라를 관통했던 세 사람의 무기는 다시 그림자로 변했다.

지탱해 주던 무기가 사라지자, 진 나트라의 몸은 쉐도우맨과 튤 나트라에게로 쓰러졌다.

“윌리엄!”

“치료캡슐을 가져와라!”

“진! 정신 차려! 정신 잃으면 안 돼!”

쓰러지는 진 나트라를 품에 안은 쉐도우맨은 바닥에 조심스럽게 진 나트라를 눕혔다. 튤 나트라가 나트라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이, 벨 나트라가 재빨리 응급처치했다.

멍한 시선으로 초조해 보이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진 나트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에 빠진 듯, 엄마의 품에 안긴 듯 편안한 얼굴이었다.

* * *

치료캡슐 안에서 가느다란 숨을 이어가는 진 나트라를 보며 치료사가 말했다.

“진 님에게 흡수된 타임스톤을 꺼내야 합니다.”

“어떻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액션 장면이 아니라 잔잔한 화면 속에서 겨우 진 나트라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관객들은 도자기 인형처럼 사방에 금이 생긴 진 나트라의 얼굴에 입을 틀어막았다.

“전하의 그림자가 필요합니다. 아마 지금까지 신체의 붕괴를 막아주었던 것도 진 님에게 전해준 전하의 그림자와 강제계승으로 넘어간 전하의 그림자 덕분일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지구인의 신체는 그림자를 무한정으로 흡수합니다. 나트라인의 신체는 일정 용량만 흡수할 수 있죠. 진 님의 몸이 흡수하려던 ‘타임스톤의 힘’을 전하의 그림자가 막아주고 있었습니다.”

치료실이 조용해졌다.

“……전하의 그림자를 진 님에게 좀 더 전해주신다면 진 님의 신체는 나트라인의 신체와 비슷하게 변할 테고 그럼 흡수하지 못하는 나머지 ‘힘’들은 밖으로 나올 겁니다.”

그걸 모아서 지하신전으로 가져가면 나트라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거다.

“그럼 윌리엄은 다시는 지구인으로 살 수 없는 건가?”

쉐도우맨의 물음에 치료사가 고개를 저었다.

“그다음 레드 타임스톤으로 시간을 돌리면 됩니다. 나트라인에게도 타임스톤은 통하니까요. 그런데 문제가 두 가지 있습니다.”

“문제?”

치료사가 황공한 표정으로 튤 나트라를 바라보지 못했다.

“첫 번째는…… 시간을 되돌리면 진 님에게 흡수당한 전하의 그림자는 사라지게 됩니다.”

“상관없다.”

대부분의 그림자를 잃는다는 치료사의 말에도 나트라의 왕, 튤 나트라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대답했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제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충격을 많이 받으셔서 온전히 정신을 차리실지…… 기억을 잃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그 말에 세 사람의 표정이 흐려졌다. 쉐도우맨이 치료캡슐에 누워 있는 진 나트라를 바라보았다. 기억을 잃을 수도 있다. 쉐도우맨은 환하게 웃던 진 나트라를 기억했다.

‘하지만 윌리엄에게는 좋은 기억이 아닐 테지.’

차라리 잊는 게 좋을 때도 있었다. 튤 나트라도, 벨 나트라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금이 딱 적당한 때인지도 몰랐다.

아무런 말도 없는 세 사람을 잠시 보던 치료사가 입을 열었다.

“그럼 얼른 1년짜리 레드 타임스톤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튤 나트라가 벨 나트라를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시선에서 고개를 끄덕인 벨 나트라가 물기가 가득한 눈으로, 그러나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10년. 이게 제가 구할 수 있었던 제일 큰 레드 타임스톤이에요.”

상자에 담긴 심장처럼 붉은 보석이 불빛에 반짝였다.

레드 타임스톤을 비추던 스크린이 천천히 어두워졌다.

관객들은 숨도 쉬지 않고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여기서 끝난다면 마린사에 처들어가고 말거다. 살벌하게 빛나는 관객들의 눈이 새까만 스크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길게만 느껴지던 잠시의 침묵 후 스피커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뚜벅뚜벅.

누군가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카메라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검은 배경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쉐도우맨, 맥의 등이었다.

음악이 들렸다.

부드럽고 잔잔한 피아노 소리였다.

뒷모습만 보이는 쉐도우맨은 무언가를 소중히 안고 걸어가고 있었다. 뚜벅뚜벅 걷는 걸음걸음에 짧은 다리와 운동화를 신은 조그마한 두 발이 달랑달랑 움직였다.

아아.

이미연과 박성아, 그리고 관객들은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쉐도우맨의 뒷모습만 찍고 있던 카메라가 천천히 옆으로 돌아갔다. 쉐도우맨의 품에 머리를 대고 잠들어 있는 아이가 보였다. 아이는 행복한 듯 붉게 물든 볼에 싱그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잠든 아이를 토닥이며 걸어가던 쉐도우맨은 한 집 앞에 섰다.

잃어버린 아이가 돌아오길 바라며 이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부부의 집이었다.

흑.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거기에 동화된 듯 이미연의 눈가도 붉어졌다. 하지만 결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물기로 흐린 시야에도 단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쉐도우맨은 현관문 옆에 조심스럽게 아이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이의 옆에 곰 인형을 놓아주었다. ‘윌리엄’은 진 나트라가 소중히 간직해 왔지만, 지구의 시간과 다른 시간이 지났다는 걸 확실히 보여줄 정도로 낡아 있었다.

튤 나트라는 아이가 밝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라 운동화를 선물했다.

벨 나트라는 아이가 따뜻하게 지내길 바라 스웨터를 선물했다.

쉐도우맨은 아이가 새로운 추억을 만들길 바라,

“이 친구와도 잘 지냈으면 좋겠네.”

새로운 곰 인형을 선물했다.

아이의 옆에 깨끗한 곰 인형을 놓아둔 쉐도우맨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온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늦어서 미안해.”

쉐도우맨은 초인종을 누르고 자리를 떴다.

띵동.

-네. 나가요.

카메라는 쉐도우맨의 뒤를 따랐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맥의 차 주위에 서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벨 나트라와 튤 나트라가 쉐도우맨을 뒤를 빤히 바라보았다.

슬픔, 기쁨, 그리움. 그리고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듬뿍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윌리엄! 아가!

쉐도우맨, 맥이 뒤를 돌아보았다.

카메라도 그곳을 비추었다.

오래전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가 따뜻한 엄마의 품에 파고들었다.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 * *

아이는 끔벅끔벅 눈을 떴다. 아직도 잠기운이 가득한 아이의 시야에 누군가 보였다. 세 사람이었는데 그 중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 진. 일어났어?”

“아닌데에…….”

잠기운이 가득한 어린 목소리였다. 흐린 시야 속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이가 순하게 웃으며 말했다.

“윌리엄은 윌리엄인데에…….”

“그래…… 윌리엄.”

믿음직한 남자의 목소리와 부드럽게 토닥이는 손짓에 윌리엄은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희미한 목소리가 윌리엄의 귀를 스쳤다. 우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번엔 꼭 엄마 아빠한테 데려다줄게."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