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34화
가장 행복했던 생일이 지나고 다시 평소와 같은 날이 흘러갔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들어온 서준은 한 손에 펜을 들고 학교에서 받아온 신청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졸업 공연 신청서]
빙글빙글 오른손에 쥔 펜이 돌아갔다.
“으음.”
바로 이름을 쓰기엔 무대에 올릴 마음에 드는 대본이 없었다. 근데 연극은 하고 싶단 말이지. 아주 잠시 고민하던 서준이 펜을 들어 신청서에 이름을 적었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뭐!”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여름방학 때까지 열심히 대본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한 서준은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며 신청서를 써 내려갔다.
“아, 그러고 보니 종호 삼촌이랑 다진이 누나가 공연할 거면 알려달라고 했지.”
김종호와 이다진의 말이 떠오른 서준이 휴대폰을 들었다.
<저 졸업 공연 할 건데 진짜 올 수 있어요?
>이다진 : 하는구나!
>이다진 : 걱정 마! 좋은 방법이 있거든!
>김종호 : 그래. 꼭 보러 갈게.
‘어떻게 학교 관계자밖에 못 보는 연말 공연을 보러온다는 거지?’
신청서를 다 쓰고, 공연한다면 알려달라던 김종호와 이다진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잠시 생각하던 서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방법이 있으니까 꼭 보러온다는 거겠지.’
* * *
“이번 초청강사는 누굴까?”
여울 예중의 연습실 중 가장 큰 제1 연습실로 향하던 강재한의 말에 서준과 아이들은 1, 2학년 때 왔던 초청강사들을 떠올렸다.
“김정민 배우도 왔었고.”
“박주은 감독님도 왔었지.”
“작가님들도 오셨어.”
2주에 한 번씩 진행되는 여울 예중의 초청강사 수업.
배우들과 감독, 작가나 특이한 촬영에 참가했던 촬영진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수업이었다. 서준이 여울 예중에 진학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촬영하느라 2학기 수업은 못 들었지만.’
쉐도우맨3 촬영은 재미있었지만, 초청강의만큼은 아쉬웠던 서준이었다.
제1 연습실 안에 들어가니 연기과 3학년 1반 아이들이 먼저 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속닥거렸다.
“작년엔 이스케이프 무술감독님도 오셨어.”
“그래?”
익숙한 이름에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영화 촬영에서 무술을 빼놓으면 안 되니까 말이야.”
“다 같이 서준이가 했던 액션도 연습했어. 촬영 때 썼던 마네킹도 들고 오셨다?”
아이들은 서준에게 2학년 2학기 때 왔던 초청강사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감독, 작가, 배우, 스태프, 스턴트맨까지.
유명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작품의 제목을 말해야 ‘아, 그 드라마 감독님?’이라고 대답할 정도의 사람들.
하지만 그래서 아이들이 배역을 맡았을 때 함께 일할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었다. 처음부터 스타 감독, 스타 작가들과 일할 수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양주희가 말했다.
“그래도 서준이가 학교에 들어오고 나선 꽤 유명한 사람들도 오는 것 같대. 엄청 유명한 배우들은 안 오지만 말이야.”
“다들 바쁠 테니까. 지호야. 넌 누가 왔으면 좋겠어?”
서로 누가 강사로 왔으면 좋을지 이야기하던 서준과 아이들이 열리는 문에 입을 다물었다. 언제 수업 종이 울렸는지 3학년 연기수업을 맡은 선생님이 연습실로 들어왔다.
“그럼 특별 수업의 강사분을 소개할게. 들어오세요.”
선생님이 웃으며 말하자 활짝 열린 문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어?
익숙한 얼굴에 서준이 눈을 깜빡이다 활짝 웃었다. 반가운 기색이 가득한 서준과 달리, 연기과 3학년 아이들은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배우의 등장에 입만 쩌억 벌리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배우 김종호입니다.”
여울 예중의 특별 초청강사로 연기파 배우 김종호가 나타났다.
너무 놀란 아이들이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서준과 눈이 마주친 김종호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서준도 반가운 마음에 작게 손을 흔들었다.
아이들과 인사를 주고받은 김종호가 강의를 시작했다.
연기에 가장 기본적인 부분들을 아이들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실제로 촬영 때 중요한 것들에 관해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다들 오디션도 많이 보지?”
“네!”
“이건 내가 오디션 심사를 맡았을 때 일인데…….”
서준도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김종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흥미진진하고 생생한 현장의 이야기에 연기과 아이들은 숨도 쉬지 않고 귀를 쫑긋 세웠다. 방송 활동을 오랫동안 해온 배우의 이야기는 아이들의 관점과 많이 달랐다.
역시 종호 삼촌은 연기도 잘하지만 가르치는 것도 참 잘했다.
김종호는 강의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의 연기를 봐주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연기였지만 항상 오디션을 준비하는 연기과 아이들이니만큼 자유연기 하나쯤은 연습하고 있었다. 떨리는 마음에 제대로 못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김종호의 가르침에 만족한 얼굴이었다.
특별 초청강의가 끝나고 연기과 아이들이 행복한 얼굴로 제1 연습실을 나섰다.
“우리 먼저 갈게!”
“그래.”
친구들을 보내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서준과 김종호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종호 삼촌. 여긴 어떻게 왔어요? 이야기도 안 해줘서 깜짝 놀랐어요.”
자신을 보고 정말 놀란듯한 서준의 얼굴을 떠올린 김종호가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웃었다.
“말했잖아. 연말 공연 꼭 보러온다고. 초청강사로 오면 연말 공연 볼 수 있거든. 1, 2, 3학년 다 가르쳐야 해서 시간을 내기 까다롭긴 하지만.”
“그렇구나. 다진이 누나도 와요?”
“다진이는 아마 다다음주에 올 거야.”
좋은 방법이 이거였나 보다.
‘나쁘진 않지.’
아니, 엄청 좋은 방법이었다.
아이들은 좋은 수업을 들어서 좋고, 종호 삼촌은 졸업 공연을 볼 수 있어서 좋고.
다다음주에 올 이다진을 보고 깜짝 놀랄 친구들을 떠올린 서준은 다음 수업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리고 2주 후, 특별 초청수업.
활짝 열린 문으로 배우 이다진이 들어왔다.
“와아아아!”
“언니! 팬이에요!”
이스케이프로 광고까지 싹쓸이하고 있는 이다진의 등장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잔뜩 얼어 있던 김종호 때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라 서준은 빵 터지고 말았다.
김종호보다는 가까운 나이대에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이것저것 편하게 질문했다. 이다진도 또래 동료에게 촬영장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처럼 편하게 이야기했다. 이다진의 강의에는 공감이 있었고 좀 더 와닿는 조언이 가득했다.
“아역 배우라고 기죽지 말고!”
“넵!”
2번째 특별 초청강의도 아이들의 마음에 쏙 들었다.
>박도훈 : 다진이한테 들었어.
>박도훈 : 나도 서준이 연극 보러 가고 싶어!
>이지석 : 나도 들었다.
>이지석 : 종호 형……!
>김종호 : ㅋㅋㅋㅋ
지석이 형의 반응을 보니 또 김종호와 투닥투닥거릴 것 같았다. 항상 있는 패턴이라 서준도 박도훈과 이다진도 익숙하게 넘겼다.
>이다진 : 그럼 둘 다 초청강의 하러 가는 거예요?
>박도훈 : ㅇㅇ 다행히 아직 강사가 정해지지 않았대.
<그럼 다다음주에 와요?
>박도훈 : ㅇㅇ내가 먼저 할 것 같아.
2주 후, 여울 예중에 박도훈이 나타났다.
박도훈은 자신이 아역배우였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밖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내의원 때의 슬럼프. 그 이야기에 아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연기를 잘했는데 슬럼프였다고?
박도훈은 언젠가 이 아이들이 겪게 될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역배우가 성인 배우로 이미지를 바꾸는 건 힘든 일이야. 다른 사람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자기 자신이 가장 마음에 안 들거든. 그래서 더 완벽하게 변신하기 위해서 무리를 하는 거고.”
“그럼 어떻게 하면 돼요?”
“자기 자신의 연기가 어떤지 객관적으로 아는 게 가장 중요해. 지금은 이게 최선이라고 인정하고 그에 맞는 배역을 맡아야지. 그렇게 조금씩 바꿔가는 거야.”
박도훈의 강의는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아이들은 각자 고민에 빠진 듯 제법 진중한 얼굴로 제1 연습실을 나섰다.
박도훈이 서준을 보며 웃었다.
“서준이 교복 입은 모습 보니까 되게 신기하다.”
“그래요?”
“촬영장에서는 프로 배우 같은 모습인데 친구들이랑 웃고 떠드는 모습도 색다르고. 서준이는 학교에서 이렇게 지내는구나.”
왠지 학부모 같은 반응을 보이는 박도훈과 이야기를 나누고 제1 연습실을 나온 서준에게 양주희가 물었다.
“서준아.”
“응?”
“다다음주는 혹시 이지석 배우가 와?”
“……어떻게 알았어?”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려던 서준이 김빠진 얼굴로 되물었다.
“이렇게 오는데 모를 수가 없지.”
“그런가?”
양주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한 김주경이 서준에게 물었다.
“혹시 또 올 사람 있어?”
“음.”
서준의 졸업 공연 소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내의원의 최민성 감독, 소은진 작가, 역의 우정한 감독, 이스케이프의 최대만 감독 등이 특별 초청강사로 오기로 한 모양이었다.
감독과 작가의 강의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니 여울 예중도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스타 감독, 스타 작가의 강의 요청에 두 팔을 벌리고 환영했다.
김종호, 이다진, 박도훈, 이지석 그리고 감독들과 작가들.
서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특별 초청강사의 이름들이 그 어느 때보다 화려했다. 작품의 제목을 말해야 ‘아아, 그 드라마 작가님?’이라고 대답했던 작년까지의 초청강사와는 달리, 이름만으로도 성공한 작품들을 떠올릴 수 있는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졸업 공연 준비 열심히 해야겠다.”
특별 초청강사 중 대부분이 졸업 공연을 보러 올지도 모른다는 서준의 이야기에 아이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2주 후. 배우 이지석의 특별 초청강의 날.
쉐도우맨3의 개봉일이 공개되었다.
[쉐도우맨3, 6월 대개봉!]
-으아아아!! 기다렸다!
-진짜 나오는구나. 하루를 1년같이 기다렸어.
-너무 보고 싶은데 안 보고 싶음ㅠㅠ
-쉐도우맨, 벨 나트라, 진 나트라를 보는 거도 마지막이구나ㅠ
-첫날 보러 가야지! 사전예매!
쉐도우맨3의 개봉일이 알려지고 뒤를 이어 새로운 기사들이 업로드되었다.
[쉐도우맨 시리즈, 재개봉 예정!]
[어셈블 1, 2 재개봉 예정!]
[영화관에서 만나는 쉐도우맨!]
[복습하자! 쉐도우맨 시리즈!]
[쉐도우맨 시리즈의 세계관에 대해 알아보자!-너튜버 영화객과의 인터뷰]
-? TV도 아니고 영화관? 나야 큰 화면으로 볼 수 있어서 좋긴 한데 신기하네.
-하긴 쉐도우맨1을 극장에서 본 것도 되게 오래전인 듯.
-거의 10년 전. 파릇파릇했었다ㅎ
-너무 어려서 쉐도우맨 기억 못 하는 애들도 있을 듯. 지금 20살이면 쉐도우맨1 했을 때가 10살임.
=10살이라…… 기억이나 하려나 모르겠네ㅋㅋ
-서준이 때문에 재방송 계속해 줘서 보긴 봤겠지만, 영화관은 또 다르지.
=충격적인 윌리엄의 등장!
=그 배우가 이렇게 잘 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크. 또 울음챌린지나 해볼까?
본격적으로 시작된 쉐도우맨3의 홍보는 뜻밖이었다.
“……이게 뭐야?”
재개봉 소식에 하루를 통째로 쉐도우맨 시리즈와 어셈블 시리즈를 보는 데 바치려고 했던 박성원은 인터넷 기사에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네 편의 영화가 같은 날 재개봉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쉐도우맨! 5월 15일 대개봉!]
[쉐도우맨 VS 그린윙! 당신의 선택은?]
[티켓으로 투표를! 히어로 피규어와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 이게 뭐야???
-쉐도우맨1에서 ‘1’이 없어!
=이거 그거잖아. 아직 시리즈화 계획 없었을 때의 제목!
-투표도 하네???
=와! 피규어랑 상품도 그때 거랑 똑같아!
-세상에! TV 광고도 하고 있어……!
=광고도 그때랑 똑같음;;;
-웬 투표?? 쉐도우맨1이랑 그린윙1이 투표를 했었어??
=22 쉐도우맨1이랑 그린윙1이 같은 날 개봉한 거임?
=333 이런 거 처음 보는데?
=……위에 셋. 몇 살이니?
-크흠. 라떼는 말이야. 같은 제작사에서 나온 두 영화가 동시 개봉도 하고 그랬어.
=시리즈화 계획도 없었던 레드본2 땜빵 영화였지……(아련)
=이렇게 클 줄은 아무도 몰랐을걸……(기특)
-……집에서 VOD로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까지 하면 영화관에 갈 수밖에 없잖아!
-투표! 이번에도 쉐도우맨이 이긴다!
-그린윙도 개봉함?
=상영관이 적긴 한데 개봉하는 듯.
-ㅋㅋ 추억여행 제대로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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