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31화
새해가 되어도 쉐도우맨3의 촬영은 계속 이어졌다.
계속되는 촬영에 지칠 만도 했지만, 다행히 스태프도 배우들도 모두 촬영의 끝이 다가올수록 더 힘을 내고 있었다.
“희한하게 이번 촬영 동안은 다친 적이 한 번도 없었지?”
“사고가 난 적도 없고.”
“자잘한 실수야 좀 있긴 했지만 다른 촬영보다는 확실히 적었지.”
촬영을 준비하던 스태프들과 스턴트맨들이 신기하다는 듯 떠들었다. 순조로워도 굉장히 순조로웠다.
“그거 때문인가?”
“그거?”
“크랭크인 첫날 했던 고…… 고사?”
“그거 보러 갔었어?”
“응. 궁금하잖아.”
고사에 참석했던 스태프가 떠들어대자, 조금 떨어져 있던 스턴트맨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재연. 진짜 그거 때문이야?”
“음.”
에반 블록의 스턴트맨, 케빈의 물음에 오늘 액션 장면을 영상으로 돌려보던 김재연이 볼을 긁적였다.
“그냥 우연의 일치 아닐까? 한국에선 고사를 지내도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
“그래? 관련 있으면 다음 작품 촬영 전에도 하자고 건의하려고 했는데. 아, 준. 왔어?”
“안녕하세요!”
스태프들과 스턴트맨들에게 인사를 하던 서준은 김재연의 말에 작게 웃었다. [(선)오크 제사장의 기도]는 충분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재연이 형. 안녕하세요.”
“왔어, 서준아?”
“뭐 하세요?”
“오늘 할 장면, 돌려보고 있었어.”
서준이 김재연의 옆에 앉았다. 김재연이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휴대폰 화면 속, 김재연과 에반 블록이 연습하는 장면이 보였다.
“재연이 형. 긴장돼요?”
“……응. 경복궁 장면에서 NG를 여섯 번이나 내버렸으니까.”
한국 촬영을 끝내고 쉐도우맨팀은 마린사에서 만든 경복궁 세트장에서 마음껏 액션 장면을 촬영했다.
그때 김재연이 맡았던 장면은 와이어를 매달고 웜홀 생성기를 뛰어넘어 쉐도우맨의 위에서 창을 내리꽂는 장면과 쉐도우맨의 그림자에 공격당해 담장에 처박히는 장면이었다.
그곳에서 김재연은 여섯 번의 NG를 냈다. 와이어가 꼬였던 NG도 있었기 때문에 온전히 김재연의 탓이라고 하기엔 뭐했다. 큰 실수는 아니라 라이언 감독도 별말 없이 다시 촬영했다.
하지만 그 하나하나의 NG가 김재연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서준의 시선이 초조하게 다리를 떠는 김재연의 머리 위로 향했다. 김재연의 머리 위에 심어놓은 봄 느티나무는 그런 김재연의 마음과는 달리 잎이 아주 무성했다.
[목표 : 진 나트라 / 동화율: 89%]
‘꽤 올라갔네.’
어쩌면 오늘 촬영으로 90%를 넘을지도 몰랐다. 90%의 영역은 또 다른 것이라 서준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잘하실 거예요.”
“……고마워.”
빈말이라도 고마운 김재연이었다.
김재연과 조금 이야기를 나눈 서준이 막 나타난 스왈린 애넘을 발견했다. 서준이 아주 활짝 웃었다. 왠지 빛이 나는 것 같은 미소에 김재연과 스턴트맨들이 눈이 부신 듯 눈을 찌푸렸다.
‘역시 슈퍼스타.’
서준이 얼른 스왈린 애넘에게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안녕. 준. 오늘부터 같이 촬영하지?”
“네!”
스왈린 애넘의 말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오늘부터 서준이 열심히 기다리고 기다렸던 스왈린 애넘과의 촬영이 계속된다. 그게 그렇게 길지 않다는 게 슬펐지만.
“엄청 기대돼요! 진짜 열심히 할게요!”
반짝반짝한 서준의 모습에 스왈린 애넘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래. 열심히 하자꾸나.”
“네!”
* * *
“레디,”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중급이 발동합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중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하급)이 발동합니다.]
[(악)마셰드의 그림자술-중하급]이 발동합니다.]
[(악)마셰드의 그림자술-중하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악)마셰드의 그림자술(하급)이 발동합니다.]
초록색 크로마키 위에 서 있는 서준의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 이미 그곳에 서 있는 건 서준 리가 아니라 진 나트라였다.
생각보다 빠른 서준의 몰입에 그 앞에 서 있던 에반 블록과 리첼 힐, 스왈린 애넘이 저도 모르게 온몸을 경직시켰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에반 블록의 말에 스왈린 애넘이 대답했다.
“진짜 열심히 한다고 하더구나.”
“……무시무시하네요.”
스왈린 애넘과의 촬영을 얼마나 기대를 했던 건지. 서준 리의 ‘열심히’는 굉장했다.
저런 싸늘한 분위기라도 서준이 속으로는 얼마나 신이 나 있을지 예상이 가, 결국 웃고만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숨을 가다듬고 진 나트라를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지고 있을 수는 없지.”
서준의 몰입에 당황하던 세 배우가 몰입하는 모습이 보이자, 라이언 감독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크게 외쳤다.
“액션!”
“말했잖습니까.”
뉴욕, 센트럴 파크에 설치된 웜홀 생성기 위에 서 있던 진 나트라가 웃었다. 진 나트라의 얼굴의 반이 검은 나뭇가지들로 뒤덮여 있었다. 그리고 턱 쪽 나뭇가지가 갈라지고 새하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당신의 소중한 것을 ‘모두’ 빼앗겠다고.”
진 나트라의 말에 튤 나트라의 눈이 천천히 크게 떠졌다. 불안함에 심장이 아플 정도로 뛰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아아……!
왜 이제야 알았을까.
튤 나트라는 그제야 진 나트라가 말하는 ‘소중한 것’에 눈앞에 있는 소년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진 나트라를 바라보는 튤 나트라의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튤 나트라가 지금까지 소중히 키워온 아이가 입을 열었다.
“거기에 ‘진 나트라’를 빼놓을 순 없죠.”
누가,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에 대한 복수를 끝내고 잘 먹고 잘 살아갈 진 나트라를 떠올리며 마음 한편으로는 안심하고 있던 튤 나트라는 자신의 목숨까지 복수에 이용하는 소중한 아들의 말에 숨이 턱 막혔다.
설마…… 진 나트라가 자신까지 망치려고 할 줄은 몰랐다.
“아버지.”
오랜만에 듣는 아버지라는 부름에 튤 나트라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벨.”
사색이 된 벨 나트라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쉐도우맨.”
쉐도우맨이 떨리는 눈으로 진 나트라를 바라보았다.
“선택하세요.”
진 나트라가 활짝 웃었다.
“접니까. 지구와 나트라입니까.”
이게 진 나트라의 복수였다.
진 나트라를 죽이지 않으면, 지구와 나트라는 웜홀에 휘말려 충돌한다.
지구와 나트라를 구하기 위해 웜홀을 막으려면 에너지원인 진 나트라를 죽여야 했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잔인한 선택이었다.
“진 나트라!”
벨 나트라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강제계승 당한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것도.”
강제계승으로 죽었어야 할 튤 나트라가 지금 이렇게 전투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을 차릴 수 있게 된 것은 튤 나트라의 모든 힘을 뺏지 않은 진 나트라의 미련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버지를 구할 때 쫓다가 그만둔 것도.”
막 잡힐 것 같던 때, 병사들을 물렸던 것은 아버지를 죽일 만큼의 복수심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우리가 있는 뉴욕을 공격하지 않은 것도.”
가장 원망하고 있는 튤 나트라와 쉐도우맨이 있는 뉴욕을 공격하지 않은 것은 머뭇거리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곳까지 우리를 유인한 것도!”
아직 우리를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제야 진 나트라의 행동을 이해한 벨 나트라가 눈물을 터뜨렸다.
“이걸 위해서였어? 진?”
“……진.”
충격에 비틀거리던 튤 나트라는 쉐도우맨에게 몸을 기대고 겨우 한마디를 뱉었다.
진 나트라가 두 팔을 활짝 펼쳤다.
그 어렸던 때의, 아무것도 몰랐던 순진한 진 나트라처럼 밝고 순수하게 웃었다.
“아버지. 이번에도 나를 불행하게 만들 겁니까?”
“쉐도우맨. 이번에도 나를 구해주지 않을 건가요?”
“벨. 이번에도 나를 버릴 거예요?”
진 나트라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세 사람의 폐부를 찔러왔다. 무거운 죄책감이 세 사람을 덮쳤다.
“자. 선택하세요.”
우우웅!
환하게 웃던 진 나트라가 웜홀 생성기에 두 손을 올렸다. 진 나트라의 등 뒤에서 검은 그림자가 춤추듯 흔들렸다.
진 나트라의 에너지를 받은 웜홀 생성기에서 공중으로 파란 불꽃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마지막 웜홀이 열렸다.
소중한 추억과 지우고 싶은 상처들이 뒤섞여 있는 나트라 왕성이었다.
“컷, OK!”
* * *
다음 촬영은 폭주한 진 나트라와 세 사람이 싸우는 장면이었다.
진 나트라가 날뛰는 장면이 많은 만큼 스턴트맨인 김재연의 역할이 중요했다.
서준이 액션 장면 바로 직전까지 연기하면 그 모습 그대로 김재연이 액션을 이어나갔다.
김재연의 액션이 끝나면 서준이 바로 뒤를 이어 연기를 이어나갔다.
[목표 : 진 나트라 / 동화율: 90%]
동화율 90%를 달성한 김재연의 진 나트라에게서 짙은 가짜 마기가 흘러나왔다.
서준보다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서준의 진 나트라를 봐온 에반 블록과 리첼 힐, 라이언 감독이 감탄할 정도의 분위기였다.
다른 스태프들도 서준의 스턴트맨, 김재연을 눈여겨봤다. 액션이야 스턴트맨이니 기본적으로 잘하겠지만, 분위기까지 담아낼 줄은 몰랐다.
놀람이 가득한 사람들의 시선에 위축되어 있던 김재연의 몸과 마음도 천천히 풀리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리자 김재연의 액션은 한층 살아났다.
“컷, OK!”
만족스러운 듯한 라이언 감독의 OK 소리에 촬영을 바라보던 서준도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 * *
“레디, 액션!”
진 나트라의 그림자가 몸집을 불렸다. 그저 허상 같은 무형인 그림자는 나트라인의 손에서야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실체를 가진 파도 같은 그림자가 센트럴 파크를 뒤엎었다. 쓰나미처럼 나무와 땅을 뒤엎으며 몰려오는 그림자에 세 사람은 몸을 피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튤 나트라까지 모습을 드러내자 진 나트라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대신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미 우주선의 삼 분의 일이 한국에서 파괴되고 그중 절반이 벨 나트라에게로 넘어갔다. 튤 나트라의 등장으로 또 얼마의 우주선이 넘어갔다. 진 나트라에게 남은 우주선은 몇 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확연히 차이가 나는 전력이었지만 진 나트라의 그림자는 그보다 뛰어났다.
바닥을 검게 물들이던 그림자가 송곳처럼 솟아올라 우주선들을 꿰뚫었다. 공중을 날던 우주선들이 그 상태 그대로 고정되어 버렸다. 그중 몇몇 대의 우주선은 엔진이 관통했는지 폭발해 버렸다.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 튤 나트라는 우주선들과 뒤집힌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진 나트라를 막으려고 애썼지만 힘의 차이는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쿠웅!
커다란 진동이 울렸다.
우주선에 남아 있던 학자가 외쳤다.
-충돌의 전조입니다!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
아직 주저하는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를 보던 튤 나트라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지금까지 설득해 보려고 했지만 안 된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죄 많은 손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벨도 뮐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입술을 깨문 튤 나트라의 공격이 처음으로, 흡수한 타임스톤의 힘을 제어하지 못해 금이 가고 있는 진 나트라의 몸에 적중했다.
* * *
벨 나트라의 창이 진 나트라의 오른쪽 어깨를-
쉐도우맨의 그림자가 진 나트라의 오른쪽 허벅지를-
그리고, 튤 나트라의 검이 진 나트라의 왼쪽 가슴을-
관통했다.
창을 잡고 있는 벨 나트라의 손이 벌벌 떨렸다. 벨 나트라는 차마 제 앞에 있는 진 나트라를 바라보지 못했다. 악 다물고 있는 턱이 덜덜 떨렸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튤 나트라의 공격을 돕기 위해 진 나트라를 잡고 있던 쉐도우맨이 떨리는 손으로 힘이 빠진 듯 쓰러지려는 진 나트라를 지탱했다. 자신보다 가벼운 진 나트라의 무게에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대의를 위해 아들의 품에 파고들어 심장을 노렸던 튤 나트라는 이미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로 울고 있었다.
커다란 소리로.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오래전 얼음사막에서 윌리엄이 엄마를 그리워하며 울었던 것처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는 나트라인들이 무서웠던 아이가 울었던 것처럼 큰 소리로.
속에 있는 것을 모두 토해내듯 울었다.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던 웜홀이 크기를 줄여나갔다. 시끄러운 소리를 내던 웜홀 생성기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에너지원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웜홀이 모두 사라지고 나서야 진 나트라를 관통했던 세 사람의 무기는 다시 그림자로 변했다.
지탱해 주던 무기가 사라지자, 진 나트라의 몸은 쉐도우맨과 튤 나트라에게로 쓰러졌다.
“윌리엄!”
“치료 캡슐을 가져와라!”
“진! 정신 차려! 정신 잃으면 안 돼!”
쓰러지는 진 나트라를 품에 안은 쉐도우맨은 바닥에 조심스럽게 진 나트라를 눕혔다. 튤 나트라가 나트라인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사이, 벨 나트라가 재빨리 응급처치했다.
멍한 시선으로 초조해 보이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진 나트라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잠에 빠진 듯, 엄마의 품에 안긴 듯 편안한 얼굴이었다.
* * *
2월 초.
쉐도우맨 시리즈의 마지막 편, 쉐도우맨3의 촬영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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