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29화
목요일 오전 6시.
쉐도우맨3의 스태프들을 태운 차량이 경복궁 주차장에 도착했다. 두꺼운 패딩을 입은 스태프들과 한국에서의 촬영을 돕는 한국인 스태프들이 여러 대의 차량에서 우르르 내렸다.
“빨리 움직여!”
“드론은?”
“조명 이쪽으로! 밑에 매트 깔고 고정시켜!”
찍을 시간이 오전밖에 없으니 일찌감치 와서 세트를 준비해야 하는 데다가, 촬영 장소가 문화재라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스태프들은 바닥에 흠 하나 나지 않게 주의를 기울였다.
물론 격렬한 전투 장면은 LA에 만들어진 ‘경복궁 세트장’에서 따로 찍을 예정이었다.
부우웅.
하늘 높이 나는 드론들이 관광객도 직원도 없는 고즈넉한 궁들을 촬영했다.
경복궁 관리 겸 촬영을 돕기 위해 새벽같이 나온 문화재청 직원들이 일제히 떠오르는 드론들을 보며 감탄했다.
스태프들과 함께 온 라이언 감독은 드론촬영감독과 함께 카메라가 달린 드론으로 경복궁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있었다.
해가 뜨면 어떻게 궁궐을 찍을지, 드론의 움직임까지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나단 조감독은 라이언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수첩에 메모했다.
“여기에 우주선 떨어뜨릴 거죠?”
뭔가 도울 일이 없나, 라이언 감독의 근처에서 얼쩡거리던 문화재청 직원은 그 말에 고개를 빼꼼 내밀어 조나단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익숙한 건물이 보였다.
‘헉. 소주방!’
근정전의 오른쪽 뒤편에 있는 소주방은 궁녀들이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여기 나트라의 우주선이 떨어진다고? 문화재청 직원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던 라이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에 제일 먼저 떨어지고 그다음은 연못에 떨어뜨릴 거다. 여긴 좀 부수고.”
“넵!”
라이언 감독이 말하는 연못은 근정전 왼쪽 뒤편에 있는 경회루 연못이었고 부수자고 말한 곳은 근정전 바로 옆에 있는 수정전이었다.
라이언 감독의 말 속에서 무너지고 있는 경복궁의 모습에 문화재청 직원은 그제야 경복궁이 진짜 블록버스터 영화에 나온다는 게 실감이 됐다.
“또 부술 데가 없나…….”
물론 진짜 부순다는 이야기는 아니겠지만 조나단과 라이언 감독 뒤에서 듣고 있던 문화재청 직원은 살벌한 이야기에 몸을 떨었다.
쉐도우맨3 속 경복궁이 어떻게 나올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 * *
“레디, 액션!”
벨 나트라의 우주선이 땅에 처박히듯 착륙했다. 광화문 내에 있던 매표소가 우주선에 깔렸다. 다행히 광화문 광장의 소란으로 직원들과 관광객들은 대피한 상황이었다.
“이런……!”
근정전 위로 파란빛이 솟아올랐다. 작동을 시작한 웜홀 생성기에 벨 나트라와 쉐도우맨이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우주선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에는 나트라의 기사들과 병사들로 가득했다.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는 달려드는 기사들과 병사들 거침없이 쓰러뜨리고 흥례문을 통과해 영제교를 건너 근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근정전.
계단 위에 진 나트라와 웜홀 생성기가 있었다.
“진!”
진 나트라를 발견한 벨 나트라가 소리치려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이제는 확연히 보일 정도로 검은 나뭇가지 같은 문양이 진 나트라의 볼의 반을 넘어 왼쪽 볼의 전체를 뒤덮고, 왼쪽 눈가와 이마까지 뻗어 나가고 있었다.
“진, 어, 얼굴이……!”
벨 나트라가 경악했다. 저건 뭐야?!
벨 나트라가 진 나트라의 얼굴을 보고 당황하는 사이 쉐도우맨이 앞으로 나섰다.
세 사람의 머리 위에선 나트라의 우주선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떨어진 우주선 하나가 경회루 연못에 처박혀 물보라가 일어났다.
“정말로,”
쉐도우맨이 힘겹게 말을 이었다.
“정말로 지구와 나트라를 함께 파괴할 생각인 거야?”
진 나트라가 웃었다.
“그래.”
그사이에도 진 나트라는 웜홀 생성기에 에너지를 주입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진 나트라의 얼굴을 4분의 1을 뒤덮은 검은 핏줄이 천천히 늘어났다. 웜홀 생성기에 손을 올리고 있던 진 나트라의 뒤로 검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진 나트라!!!”
쉐도우맨의 목소리가 근정전을 울렸다.
구하고 싶었다.
정말로 구하고 싶었다.
이를 악문 쉐도우맨이 그림자 안에서 창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너를 막는 것이 결국 너를 구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쉐도우맨은 진 나트라에게로 달려갔다. 그 앞을 나트라의 기사들이 막아섰다.
쉐도우맨의 공격에 기사들이 쓰러지는 사이에도 진 나트라는 웜홀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다. 웜홀 생성기에서 쏘아진 파란색 불꽃이 활활 타오르다 조금씩 틈새를 벌렸다.
나트라의 얼음사막이었다.
조금 열렸던 틈새는 순식간에 크기를 불려갔다. 어느새 파리에 있는 웜홀만큼 커진 두 번 째 웜홀을 바라보는 진 나트라의 눈이 번들거렸다.
“당장 멈춰!!”
자신들을 막으려는 기사들을 쳐낸 쉐도우맨이 진 나트라에게로 달려들었다.
기사들이 시간을 버는 사이 성공적으로 웜홀을 만들어낸 진 나트라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림자에서 창을 만들어내 웜홀 생성기를 뛰어넘었다.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진 나트라는 근정전 계단 아래에 있는 쉐도우맨을 노렸다.
진 나트라는 날카로운 창과 함께 쉐도우맨을 향해 내리꽂혔다.
쉐도우맨은 창을 들어 진 나트라의 공격을 막았다.
쿵!
두 개의 창이 부딪힌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였다. 그 여파로 바람이 불었다. 근정전 돌바닥에 있던 모래가 순간 바람에 밀려났다.
그사이에도 나트라의 우주선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쏘아지는 레이저포에 적중한 우주선들이 궁궐과 담장 위로 떨어져 내렸다.
벨 나트라는 그사이 주절주절 진 나트라의 계획을 알려준 학자와 함께 웜홀 생성기로 달려갔다.
“빨리 타임스톤을 제거해!”
“네, 넵!”
쉐도우맨과 진 나트라가 싸우는 충격파가 여기까지 느껴졌다. 벨 나트라가 기사들을 막는 사이 학자는 벌벌 떨며 웜홀 생성기 앞에 섰다.
“여기, 여기에 타임스톤을 올려놓는데…….”
없었다.
새하얗게 빛나고 있을 타임스톤 조각이 여기에 있어야 하는데.
“……없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타임스톤이 없어요.”
학자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그럼…… 저건 도대체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동양의 궁궐 위에서 제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웜홀을 바라보는 벨 나트라의 목소리가 떨렸다.
“지금이라도 멈춰!”
“글쎄. 그건 나도 힘들어서 말이야.”
쉐도우맨과 진 나트라의 싸움은 격렬해졌다.
기다란 창으로 서로를 공격하던 것이 거리가 가까워지자 검으로 변했다. 날카로운 검이 서로를 노렸다.
하지만 진 나트라는 직접 목과 심장같은 급소를 노리지 않았다. 그 머뭇거림에서 쉐도우맨은 일말의 희망을 찾았다.
날카로운 칼 두 개가 맞닿았다. 진 나트라의 눈동자가 훤히 보일 정도로 가까워진 상태에서 쉐도우맨이 먹먹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쉐도우맨은 이 검은 눈동자가 반짝이던 때를 알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부모님께 가자.”
“…….”
콰앙!
아까보다 더 큰 힘으로 내려치는 진 나트라의 검을 피한 쉐도우맨이 말을 이었다. 진 나트라의 검이 돌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있던 돌이 산산이 조각났다.
“내가 설명해 줄게.”
쾅!
검과 검이 부딪혀 불꽃을 만들어냈다.
“부모님이 기다리실 거야.”
멀어진 거리에 두 사람의 손에 있던 검은 자연스럽게 창이 되었다. 기다란 창을 든 진 나트라가 후려치듯 쉐도우맨을 공격했다.
“그리고…… 튤 나트라가 널 많이 보고 싶어 해.”
듣고 있긴 한 건지.
쉐도우맨의 말에도 진 나트라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점점 더 격렬해지는 쉐도우맨과 진 나트라의 싸움에 근정전에 세워져 있던 품계석들이 휩쓸려 나갔다.
벨 나트라와 학자는 그사이 어떻게든 기계를 부수거나 에너지 주입을 멈추려고 노력했다.
쾅! 콰아앙!
벨 나트라의 검이 웜홀 생성기를 후려쳤다.
“뭘, 이렇게, 튼튼하게, 만들었……어!”
“……진 님이 부수셨거든요. 부서지지 않을 때까지요.”
학자는 동료들과 눈물을 흘리며 아주 튼튼한 웜홀 생성기를 만들려고 노력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빨리 에너지원이나 찾아!”
“넵!”
격렬한 공방을 이어가던 중, 순간 진 나트라가 비틀거렸다.
그때를 노린 듯 잠잠하던 쉐도우맨의 사고뭉치가 일을 냈다.
콰아아앙!
자아가 있는 쉐도우맨의 그림자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 진 나트라가 튕겨 나갔다. 쉐도우맨이 결코 자신을 강하게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 방심했던 게 원인이었다.
쉐도우맨의 그림자는 자아가 있어 쉐도우맨의 생각과 다르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진 나트라는 꿈에도 몰랐다.
그 때문에 제대로 공격받은 진 나트라는 그대로 담장에 처박혔다. 담장의 돌과 기와들이 깨져나갈 정도로 힘이 실린 공격이었다. 끝내 담장이 무너졌다.
진 나트라의 몸도 같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진!”
“윌리엄!”
웜홀 생성기를 파괴하는 것을 멈추고, 학자와 함께 타임스톤을 찾고 있던 벨 나트라가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놀란 쉐도우맨도 얼른 진 나트라에게 달려갔다.
그때였다.
의식을 잃은 진 나트라의 몸과 그 아래에서 새까만 그림자가 파도처럼 퍼져 나왔다.
파도처럼 일렁이던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그 크기를 늘려갔다. 싸움으로 엉망이 된 근정전 바닥과 하늘을 대부분 뒤덮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그림자였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칠 정도로 어마어마한 압박감이었다.
“이, 이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마어마한 그림자의 모습에 벨 나트라와 나트라인들이 경악했다. 이건 전성기의 튤 나트라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다른 나트라인의 그림자를 본 적이 거의 없는 쉐도우맨은 그저 진 나트라의 그림자가 많이 강하구나, 생각하고는 쓰러진 진 나트라의 상태를 걱정했다. 사고를 친 쉐도우맨의 그림자는 화들짝 놀라 땅에 달라붙어 있었다.
사색이 된 얼굴로 근정전 하늘을 뒤덮은 검은 그림자를 보던 벨 나트라가 외쳤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진!”
“이건, 이건……!”
멍한 눈으로 하늘을 뒤덮은 진 나트라의 그림자를 보고 있던 학자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 여전히 작동 중인 웜홀 생성기 쪽이었다.
“설마……!”
“진! 괜찮아?!”
학자가 무언가를 깨달았을 때, 벨 나트라와 쉐도우맨은 몸 위의 돌을 치우며 비틀비틀 일어나는 진 나트라를 발견했다.
진 나트라 의식을 차리자 근정전 하늘과 바닥을 뒤덮고 있던 검은 그림자가 진 나트라에게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그림자를 들이마시듯 숨을 깊게 들이마신 진 나트라가 입을 열었다.
“……돌아간다.”
“예!”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가 붙잡을 틈도 없이 진 나트라는 우주선에 올랐다.
우우웅.
근정전 위.
나트라와 이어진 웜홀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벨 님.”
학자는 떠나는 진 나트라의 우주선을 바라보고 있는 벨 나트라와 쉐도우맨을 불렀다.
“……웜홀을 멈출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좋은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는 어두운 학자의 얼굴에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컷, OK!”
* * *
같은 날 오후.
쉐도우맨3 촬영으로 경복궁 매표소 직원들은 느지막이 출근했다.
“그게 진짜 에반 블록이었다니!”
“전 대화까지 했는데 상상도 못 했어요.”
어셈블2의 홍보로 내한했던 할리우드 배우들과 이서준이 한복을 입고 경복궁에 올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그때 안내를 해줬던 직원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게다가 그땐 한국어를 그렇게 잘한다는 사실도 몰랐잖아요.”
“그거야 그렇지.”
“그래도 한국어로 대화해 본 건 이서준 빼고 한국인 중엔 네가 처음 아니야?”
“그건 그래요.”
매표소에 들어가 각자 자리에 앉은 직원들이 일할 준비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오늘 사람들 질문 예상돼.”
“나도. 쉐도우맨 봤어요? 어디서 촬영했어요?”
“이서준도 봤어요? 얼마나 있다가 갔어요?”
어셈블2 때, 할리우드 스타들이 경복궁에 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도 그랬다.
어떤 사람은 인터넷에 올라온 다른 사람들의 인증 사진들과 너튜브에 올라온 배우들의 영상을 보고 ‘어셈블2 코스’를 만들기도 했다.
“대단해. 우리나라 사람들.”
“그러게요.”
잠시 후.
매표소에 온 첫 손님이 말했다.
“저기, 쉐도우맨 봤어요?”
* * *
[쉐도우맨3, 한국 촬영으로 얻는 경제 효과는?]
[서울시, “한국 촬영으로 900억 원의 경제효과, 2조 원의 국가 브랜드 가치 상승효과가 예상”]
[쉐도우맨3 韓 촬영. 홍보 효과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쉐도우맨3 촬영에 들썩]
-ㅎㅎ이 이야기 나올 줄 알았음ㅎ 뭐만 하면 경제적 효과래.
-겨우 영화 촬영인데 저 정도로 경제 효과가 나올까?
=쉐도우맨3 전 세계 개봉임. 그 사람 중 0.01%만 여행 와도 대박!
=222 관광객 많이 올걸.
-이서준 영화 찍은 장소 난리 나는 거 보면 모르겠냐? 우리나라 사람들만 가도 북적거림.
-나도 쉐도우맨3 개봉하면 경복궁 가야지. 겸사겸사 내의원/역 투어도 하고ㅎ
=오오. 그러네.
[쉐도우맨3 촬영 후, 경복궁의 풍경!]
[쉐도우맨3 어디서 찍었을까? 경회루? 근정전? 강녕전?]
[오늘 오후 풍경. 경복궁으로 몰려온 사람들!]
-오늘 경복궁 갔는데 촬영 어디서 했는지 모르겠더라.
=22 카메라나 조명 같은 장비 설치하니까 흔적이라도 남을 줄 알았는데ㅎㅎ
=333 티 날 줄 알았는데. 진짜 열심히 찾아다녔는데 없었음.
=흔적 남았어도 사람들 발에 다 지워졌을 듯. 오늘 장난 아니게 몰렸잖아.
=사람 진짜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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