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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28화 (22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28화

진 나트라의 뒤쪽으로 파란색 에너지가 일렁이는 웜홀이 생겨났다. 그 건너편 나트라 행성의 한 도시가 그대로 보이는 것을 보니 완전히 작동한 것 같았다.

쉐도우맨은 그사이 훌쩍 자란 진 나트라의 모습에 심장이 조여왔다.

센트럴파크에서 만난 후, 지구에 살고 있는 쉐도우맨에게는 1년 6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나트라에 사는 진 나트라에게는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나갔다는 게 확실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진 나트라가 그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지도 예상이 갔다. 그 때문에 웜홀의 원인이 진 나트라라는 사실에는 배신감마저 들었다.

“어째서, 어째서 네가 웜홀을 만든 거야?”

웜홀을 가장 싫어해야 할 네가 아닌가.

쉐도우맨의 말에 진 나트라가 웃었다.

“복수야.”

“……뭐?”

“복수. 튤 나트라가 당신에게 가지 않았어?”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가 흠칫 몸을 떨었다. 진 나트라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웜홀이 완전히 열린 것을 확인한 진 나트라가 기계에서 손을 뗐다.

식은땀이 흘렀지만 태연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진 나트라의 볼을 반쯤 채운 검은 나뭇가지가 핏줄처럼 보였다.

“튤 나트라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그의 소중한 것을 모두 빼앗기로 했거든.”

“……소중한 것?”

“여러 가지 있지.”

진 나트라가 뚜벅뚜벅 걸어 내려오며 그림자로 손을 뻗었다. 한때 튤 나트라의 그림자였던 그림자가 일렁이며 창으로 변했다.

“튤 나트라의 그림자.”

순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던 쉐도우맨은 약해진 튤 나트라를 떠올리고는 화들짝 놀라 뒤에 서 있던 벨 나트라를 바라보았다.

강제계승!

강제계승 당해서 약해졌구나!

쉐도우맨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인 벨 나트라가 다시 고개를 돌려 진 나트라를 바라보았다. 슬픔과 죄책감이 섞인 그 표정 안에는 진 나트라가 그럴 리가 없다는 부정도 섞여 있었다. 아직도 벨 나트라가 진 나트라를 믿고 있었다.

탁!

창끝으로 바닥을 내려쳐 두 사람의 시선을 모은 진 나트라가 말했다.

“튤 나트라의 나라, 신하, 백성.”

진 나트라의 주위에 가득한 새까만 우주선들에 쉐도우맨과 벨 나트라가 압도당했다.

2년 전 그날을 떠올린 쉐도우맨은 또다시 찾아온 무력감에 얼굴을 찌푸렸고 한 번도 이런 상황에 빠져본 적 없는 벨 나트라가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튤 나트라의 자식. 벨 나트라 그리고…… 뮐 나트라.”

날카로운 창끝이 남매에게로 향했다. 진 나트라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뮐 나트라가 아끼는 지구까지. 모두.”

“진 나트라!”

‘지구’라는 말에 쉐도우맨은 저도 모르게 그림자를 뻗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는 것만으로 진 나트라가 쉐도우맨의 그림자를 피했다. 그리고 진 나트라가 쉐도우맨을 공격했다.

저도 모르게 윌리엄, 아니, 진 나트라, 아니…… 쉐도우맨은 자신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오는 진 나트라의 창을 막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모르겠어.’

이젠 도무지 모르겠다.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자신이 구해야 할 윌리엄인지, 물리쳐야 할 진 나트라인지.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모를 잃고 나트라에서 힘들었을 윌리엄이 떠올라 자꾸만 멈칫하게 되었다.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복수심에 불타는 진 나트라의 눈을 보면 자꾸만 공격하게 되었다.

두 마음이 부딪혔다.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쉐도우맨은 쏟아지는 공격에 방어만 했다.

탕!

두 개의 창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커다란 충격에 튕겨 나온 쉐도우맨과 그 자리에 굳게 서 있는 진 나트라. 두 사람은 거리를 두고 마주 보았다.

저울이 기울었다. 구하기로 결심한 히어로, 쉐도우맨이 입을 열었다.

“윌리엄.”

“말했을 텐데. 내 이름은 진 나트라라고.”

두 사람 사이에 바람이 불었다.

떨어져 있던 우주선이 지상 가까이 내려왔다. 우주선의 입구가 열리고 기사들이 내려와 쉐도우맨을 포위했다.

진 나트라가 손에 들고 있던 창을 그림자 안에 넣어두고 뒤를 돌았다.

“컷! OK!”

풀샷부터 바스트 샷까지 촬영을 끝낸 쉐도우맨팀은 시간을 확인하고 여기저기 설치해 두었던 세트와 짐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세 배우도 분장을 지우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동안 안다호는 통제선 너머에서 기웃거리고 있던 찰리를 데리고 왔다.

“제 친구 찰리예요.”

“안녕하세요! 찰리라고 합니다!”

“안녕! 리첼 힐이야.”

“반갑다. 에반 블록이야.”

“알고 있어요! 쉐도우맨 전부 봤거든요. 이스케이프도 봤어요.”

두 사람과 악수를 한 찰리가 한껏 들뜬 얼굴로 환하게 웃었다.

“우리 지금 밥 먹으러 갈 거거든. 저녁 먹긴 좀 이르긴 하지만, 바쁘지 않으면 저녁 같이 먹을래?”

리첼 힐의 권유에 찰리가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이 빙그레 웃자 찰리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호텔 레스토랑의 프라이빗룸.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들뜬 얼굴을 찰리가 물었다.

“준의 매니저는?”

“다호 형은 코코아엔터랑 연락하는 중이야. 며칠 뒤에 한국에 가니까 이런저런 할 일이 많나 봐.”

안다호는 코코아엔터와 연락하는 중이었고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 조감독은 오늘 촬영분을 살펴보고 내일 추가로 찍을 장면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모니터링을 하긴 했지만 놓친 부분이 있을지도 몰랐다.

‘조나단까지 데려갈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부려먹기 위해 조감독 삼은 거라면서 탄식하는 조나단 조감독이었다.

작게 웃은 서준이 찰리에게 물었다.

“아저씨한텐 연락했어?”

“어. 나중에 데리러 오신데. 아빠도 리첼 힐이랑 에반 블록 보고 싶대.”

“아하하하. 나는?”

“물론. 준도 보고 싶다고 하지.”

동네 사람들도 얼마나 서준을 보고 싶어 하는지 찰리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뭐야. 왜 둘이서만 재미있는 이야기해?”

“그러게. 무슨 이야기야?”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들어왔다. 서로 눈이 마주친 서준과 찰리가 웃음을 터뜨리자 리첼 힐과 에반 블록도 웃고 말았다.

주문한 음식이 세팅되고 프라이빗룸은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핼러윈 축제에서 만났구나.”

“아. 나도 봤어. 늑대인간의 변신.”

“영상보다 진짜로 보는 게 더 멋졌거든요. 우리 핼러윈 축제에 전설로 남았어요.”

“전설까지야.”

쑥스러웠던 서준이 손을 내젓자 찰리가 얼른 부정했다.

“아니, 진짜 전설이야. 따라 하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아무리 기계를 써도 연기는 희미하고 그림자 형태도 애매했거든. 되게 어설펐어. 그러다 보니까 다들 어떻게 저런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하더라.”

‘뭐, 기계 가지고는 안 되니까.’

자욱한 안개도, 그림자 형태도 능력 덕분이었으니까 말이다.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서준이 조용히 스테이크를 씹어먹고 있는 사이, 리첼 힐과 에반 블록, 찰리는 그게 날씨의 영향 때문인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화객?”

“그레이 바이니 월드투어 처음 방송한 너튜버예요. 한국인이죠.”

“그때 핼러윈에서 길 안내해 준 사람이 찰리예요.”

오.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눈을 반짝였다. 휴대폰을 꺼내 영화객의 영상에 찍힌(목소리뿐이지만) 찰리를 보기도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떠들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다.

“준.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찰리를 마중 나온 찰리 아빠는 서준과 포옹하고 에반 블록과 리첼 힐과 악수를 하였다. 정말 기뻐 보이는 아빠의 모습에 찰리도 미소를 지었다.

* * *

[나 프랑슨데 공항에서 이서준 봤음! 더 보고 싶었는데 출국하느라 못 봄. ㅠㅠ]

#이서준#프랑스#쉐도우맨3#한국촬영

“떴다!”

기자 하나가 소리를 지르자, 여기저기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들렸다.

[배우 이서준, 프랑스 출발!]

[쉐도우맨3, 프랑스 출발!]

[쉐도우맨3, 한국 촬영을 위해 프랑스 출발!]

미리 써놓은 기사가 순식간에 업로드되었다.

“지금 프랑스 출발한 비행기 한국 도착 시각 알아봐!”

“넵!”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이 새로운 글이 떴다.

[이서준이랑 같은 비행기가 아니라 아쉽. 먼저 한국 가서 기다려야지!]

#설마 내 뒤 비행기?#이서준#쉐도우맨3

바로 뒤를 이어 뜨는 게시글에 ‘떴다’라고 외친 기자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SNS에 올라온 출국은 이서준이 아니라 SNS 주인의 출국이었다.

“악! 아니, 아니야! 이서준 출국 아니야!”

“야! 이……!”

비명 같은 외침에 얼른 기사를 삭제하는 기자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막내 기자는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황당하긴 기사를 보던 네티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출국을 한 거야? 안 한 거야?

=아직 안 한 것 같은데?

-이 기레기들. 기사 되게 대충 쓰네.

-오늘 하루 종일 출국기사만 보는 듯ㅎ

-어쨌든 조심히 와. 서준아!

* * *

12시간의 비행 끝에 서준과 쉐도우맨팀이 한국에 도착했다.

와아아아!!

쉐도우맨의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공항이 떠나가라 함성이 들렸다.

세 배우의 팬들은 물론이고 기자들까지 있어서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너튜브 라이브로 방송되는 커다란 카메라 렌즈에 세 배우가 비쳤다.

-왔다!

-진짜 왔네!!

-한국 촬영!

세 배우가 손을 흔들자 함성이 더 커졌지만, 그 이상은 흥분하지 않았다.

[(선) 차분해지는 사과꽃 향기가 발동됩니다.]

달콤한 사과꽃 향기가 공항 안을 맴돌았다.

“역시 서준이 팬!”

서준이 탄 비행기가 도착하기 전부터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던 서은찬과 2팀 직원들은 연신 감탄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파에 회사에서 대기 중이던 경호원들까지 부를 정도로 걱정했지만 역시 서준이 팬은 서준이 팬이었다.

“서준아! 촬영 잘해!”

“진 나트라 화이팅!”

“쉐도우맨3 대박 나라!”

“에반, 리첼! 촬영 잘하세요!”

쉐도우맨팀의 입국 장면이 고스란히 너튜브 라이브로 방송되었다. 집이나 회사에서 쉐도우맨팀의 입국을 보던 사람들도 하나둘 댓글을 남겼다.

-근데 진 나트라가 화이팅하면 안되는 거 아니야?

=ㅋㅋ 그러게. 진 나트라 빌런이잖아.

-아니, 잠깐. 진 나트라가 이기면 쉐도우맨 안 끝나는 거 아닌가?

=오! 오오! 그러네!

=진 나트라 파이팅!

=힘내라! 진 나트라!!

=쉐도우맨10까지 해버려!

* * *

“으차!”

환호성을 받으며 공항을 빠져나온 세 배우가 서준의 차에 올랐다. 정리한 모양이지만 서준의 생활감이 남아 있었다. 넓고 큼직한 의자에 푹 파묻힌 리첼 힐이 웃으며 말했다.

“준의 차. 엄청 익숙한 느낌이야.”

“그러게.”

에반 블록도 익숙하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편안해 보이는 두 배우의 모습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다호 씨. 저희 이번엔 호텔에서 머물죠?”

“네. 동네방네 소문 다 났으니까요.”

에반 블록의 물음에 운전하던 안다호가 대답했다.

“몰래 내한했던 이스케이프 때와는 달리 지금은 아예 호텔에서 묵는 게 더 안전하니까요.”

“저도 호텔에서 잘 거예요.”

서준이 프랑스에서 촬영하는 동안 엄마는 미국에서 바로 한국으로 와서 아빠랑 지내고 있었다. 부부는 오늘 저녁에 호텔로 오기로 했다.

“호텔이라. 준은 가 본 적 있어?”

“치킨샐러드가 맛있어요. 연어 샐러드도요.”

쉐도우맨팀의 숙소로 정해진 호텔은 최대만 감독이 통조림 당했던 그 호텔이었다. 다른 것보다 음식이 유난히 기억에 남아 있었다.

서준의 대답에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웃음을 터뜨렸다.

* * *

>리첼 : 연어 샐러드 맛있어!

>에반 : 치킨 샐러드도 맛있는데?

>리첼 : 그래? 나중에 먹어봐야지!

쉐도우맨팀은 시차 적응 겸 하루를 푹 쉬었다. 서준도 호텔에서 늘어져 있었다. 화요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는 게 묘하게 즐거웠다.

리첼 힐과 에반 블록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서준이 친구들에게 바나나톡을 보냈다.

<ㅎㅎ너희 오늘 학교 가지?

<난 안 간다ㅋㅋ

>주경 : 으. 열 받아.

>재한 : 서준이 좋겠다…….

>지호 : 쌤한테 이거 보여주자.

>주희 : 그럴까?

<죄송합니다.

>지호 : ㅋㅋㅋㅋ

>주경 : 오늘 촬영 없어?

<오늘은 쉬고 내일은 인터뷰. 모레 촬영해.

>주희 : 기사엔 내일 광화문 광장에서 촬영한다는데?

<나 그 장면엔 안 나오거든.

>재한 :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도?

>재한 : 사람들 구경하러 간다고 하던데.

<응. 안 나와ㅠ

>재한 : ㅠㅠㅠ

>주경 : 다들 실망하겠네ㅠ

* * *

부우웅.

카메라가 달린 드론들이 일제히 하늘을 날았다.

날씨도 화창하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드론을 마음대로 조종하기에 딱 좋은 날씨였다. 날씨란 게 변덕스러워서 언제 바람이 세차게 불지 몰랐다.

카메라와 연결된 모니터를 뚫어지라 바라보던 라이언 감독이 입을 열었다.

“바로 촬영 시작하자.”

“네.”

조나단 조감독이 크게 외쳤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엑스트라들이 하늘을 보고 놀란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오늘 쉐도우맨3, 광화문 광장 촬영!]

[목요일, 금요일 오전 경복궁 통제!]

-광화문 광장 촬영 어땠음?

=배우들 없었음ㅠㅠ

=222 드론 촬영하고 엑스트라들 도망치고ㅠㅠ 보고 싶다! 서준아ㅠ

=크로마키가 군데군데 있는 걸 보면 CG 처리할 듯 ㅠㅠ 에반, 리첼 보고 싶었는데ㅠ

=대충 보면 공중전인 것 같던데.

-자세히 쓰면 스포일러 때문에 고소당할 수 있음.

=22 사진이랑 동영상 주의.

=……근데 그냥 도망치는 것뿐이라…… 스포일러할 내용도 없어ㅎ

-서준이 볼 줄 알았는데ㅠ

-경복궁 촬영은?

=이틀 동안 오전엔 못 들어감. 안내문 떴다.

=왠지 궁 밖에 사람 많을 듯.

=222 못 들어간다고 해도 사람들 몰릴 듯.

-으으. 스크린에 경복궁 나오면 되게 이상할 것 같다.

=광화문 광장도 맨날 버스 타고 지나가는데ㅋㅋ 영화에 나오면……ㅋ

-난 서울 안 살아서 다른 곳은 잘 모르겠는데, 경복궁이랑 광화문 광장 나오면 되게 신기할 것 같음.

=222 나도. 서울 놀러 갔을 때 가 봤으니까.

=333 TV로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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