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26화
“레디, 액션!”
진 나트라의 말대로 불안정한 타임스톤은 나트라 행성에 변화를 가져왔다.
밝은 햇살이 들어와 눈을 뜨면 어느새 노을이 져 있었고 새까만 밤이 되어 잠이 들려고 하면 따가운 해가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나트라인들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키우는 가축과 식물들도 변덕스러운 시간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이 괴현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두 걱정스러운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원인을 알고 있는 자들은 그저 입을 꾹 다물고 목숨줄을 쥐고 있는 진 나트라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천재지변을 해결할 수 있는 건 진 나트라가 들고 있는 타임스톤의 조각들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는 자들, 그리고 지금의 권력자에게 잘 보이려는 자들이 섞여 있는 나트라 왕궁은 살얼음판처럼 위태로웠다.
곧바로 무슨 일이든 벌일 것 같았던 진 나트라는 의외로 조용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동안 받은 후계자 수업 덕분인지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타임스톤마저 조각내 버린 미친놈이 잠잠하다니…… 진 나트라의 곁에 있는 기사들과 대신들은 그게 더 불안했다.
마치 폭풍전야 같았다.
왕의 집무실을 차지한 진 나트라는 오늘도 평소와 같이 불안정한 시간 주기에 일어난 사건·사고를 처리하고 있었다.
“전하. 벨…… 나트라의 우주선이 오고 있습니다.”
왕이 결정된 이상, 후계자 후보에 불과한 벨 나트라는 더이상 ‘벨 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지 않았다. 입에 익지 않은 호칭에 기사가 조금 말을 더듬었다.
서류를 보고 있던 진 나트라가 고개를 들었다. 살아 있나 의문이 들 정도로 죽어 있던 검은 눈동자에 빛이 맴돌았다.
그 눈빛에 기사들과 대신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미친놈이 움직일 건가 보다.
“잡아 올까요?”
다른 후계자 후보들은 모두 강제로 그림자를 빼앗겼고 그 그림자들은 타임스톤의 에너지가 되었다. 왕의 침실에 감금당하고 있는 선왕처럼 가느다란 숨만 이어가고 있는 후보자들이었다.
“아니.”
진 나트라는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왕궁 내 모든 경비를 물려라.”
“아, 아니. 그럼……”
“물려라.”
“……예.”
단호한 진 나트라의 말에 기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얼마 후, 기사가 달려왔다.
“전하! 튤 나트라가 사라졌습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진 나트라의 충직한 기사 중 하나가 진 나트라의 앞에 무릎을 꿇고 보고했다.
가느다란 목숨줄을 겨우 붙잡고, 왕의 침실에 감금당하고 있던 튤 나트라가 사라졌다는 보고에도 진 나트라는 놀란 기색도 없었다. 진 나트라는 편안한 얼굴로 깃펜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나 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커다란 창 너머,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우주선 하나가 보였다. 자신의 우주선 다음으로 익숙한 우주선이었다. 진 나트라의 뒤에 있던 기사들도 알고 있는 우주선이었다.
‘이래서 경비를 물리라는 명령에 반대한 건데……!’
제대로 경비하지 못한 죄를 물으려나. 어마어마했던 진 나트라의 힘을 떠올린 기사들이 사색이 되었다. 식은땀이 흐르는 손을 꽉 쥔 채로 진 나트라의 명령을 기다렸다.
해가 높이 떠 있는 푸른 하늘 위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벨 나트라의 우주선을 바라보던 진 나트라는 여전히 창밖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2시간 안에 잡지 못하면 돌아와라.”
“예!”
경호를 맡을 기사들만 남고 모두 밖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노을이 지는 하늘에 수십 대의 우주선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수십 대의 우주선이 멀어지는 벨 나트라의 우주선을 공격했다. 벨 나트라의 우주선이 춤추듯 공격을 피했다.
진 나트라는 공격당하는 벨 나트라의 우주선과 선왕의 딸을 공격하는 우주선들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컷! OK!”
* * *
이른 아침.
잠에서 깬 서준이 눈을 떴다. 아직 몽롱한 눈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6시 40분. 알람이 울리는 7시보다 20분이나 일찍 일어났다.
‘좀 이따 일어날까?’
아직 일어날 시간은 아니니까.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린 서준이 따뜻한 이불 속에 푹 파묻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쉐도우맨3는 빌런 진 나트라의 비중보다 히어로 쉐도우맨의 비중이 컸다. 그래서 3달 조금 넘는 촬영 기간 동안 서준의 일정은 널널했다.
‘그렇다고 한국에 왔다 갔다 할 정도는 아니고.’
오늘 촬영이 없는 서준은 침대 위에서 뒹굴었다.
‘오늘은 촬영이 없으니까 좀 쉬다 학교 숙제를 하고…… 시간 남으면 촬영장에 놀러 갈까? 아니면 잭 학교에 가 볼까? 가까운 공원에 산책하러 가도 좋을 것 같고 새로 나온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은데…….’
그렇게 비몽사몽 20분을 흘려보내니 금세 7시가 되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알람을 끈 서준은 크게 하품을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씻고 1층으로 내려가니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던 서은혜가 활짝 웃으며 서준을 반겼다. 얼른 물이 묻은 손을 닦고 휴대폰을 서준에게 들이밀었다.
“서준아. 이것 좀 봐봐.”
“응? 뭔데?”
서은혜가 건넨 휴대폰에는 기사가 하나 떠 있었다.
“와.”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 기사뿐만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많았다. 기쁜 소식에 활짝 웃는 서준의 모습을 보던 서은혜도 따라 함박웃음을 지었다.
“은찬이가 소감 좀 촬영해서 보내 달래.”
자신보다 더 기뻐 보이는 엄마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지금 보낼게.”
“머리 좀 정리하고!”
“응.”
휴대폰을 내려놓은 서준은 대충 말려놓은 머리를 수습하기 위해 거울로 향했다. 테이블에 올려놓은 휴대폰 화면이 반짝 빛났다.
[이스케이프 이서준,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 * *
“저 상 받았어요!”
기사를 보자마자 오늘 일정을 정한 서준은 지금 쉐도우맨3 촬영장에 있었다. 오늘 찍을 장면은 쉐도우맨 맥과 지구로 도망친 벨 나트라와 튤 나트라가 나오는 장면이라 세 배우가 모두 있었다.
“축하한다. 준.”
“감사합니다.”
“준, 축하해.”
“축하 파티 하자!”
스왈린 애넘에게 칭찬을 받은 서준이 히히 웃었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도 웃으며 축하해 주었다. 두 사람의 축하에 서준이 얼른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에반이랑 리첼 것도 있어요.”
“응?”
“이것 봐요.”
[청룡영화제, 특별카메오상! 에반 블록과 리첼 힐 수상!]
휴대폰 화면을 보고 놀란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모습에 스왈린 애넘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국어를 모르는 스왈린 애넘에게 통역해 준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트로피도 있대요. 두 사람 주소는 알고 있으니까 코코아엔터에 트로피가 오면 보내드릴게요.”
“음. 그럴 필요는 없지 않아?”
“그러게.”
리첼 힐이 말을 이으려고 할 때, 조나단 조감독이 외쳤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스왈린 애넘, 에반 블록, 리첼 힐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서준이 손을 흔들었다.
“촬영 잘하고 오세요!”
* * *
“레디, 액션!”
튤 나트라와 벨 나트라는 쫓아오는 나트라군을 피해 지구로 숨어들었다. 부녀가 의지할 곳은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쉐도우맨, 맥뿐이었다.
강제계승당한 튤 나트라가 제법 몸을 가눌 때, 벨 나트라는 어색한 분위기의 두 사람을 밖으로 내보냈다.
“아버지랑 하고 싶은 거 없었어? 지금 해봐!”
튤 나트라가 앉은 휠체어를 밀며 맥은 가까운 공원으로 향했다.
벨 나트라와 튤 나트라가 이곳에 온 이유도 모르는 맥은 자신의 친아버지라는 튤 나트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튤 나트라도 제 아들이라는 맥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어색한 분위기 속 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아버지라는 단어가 영 나오지 않았다. 집을 나올 때부터 튤 나트라는 온 신경을 뒤로 쏟고 있었다. 맥은 한마디를 겨우 뱉고 다시 입을 다물었다.
공원은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조용히 휠체어를 밀던 맥은 입을 벙긋거리다 힘겹게 말을 이었다.
“……캐치볼 하실래요?”
미국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면 가족과 꼭 한번 해보는 캐치볼.
아빠와 캐치볼 하기 싫다던 학교 친구의 말에 그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고아, 맥의 소원이었다.
“……캐치볼?”
튤 나트라의 의아한 목소리에 맥이 몸을 떨었다. 휠체어를 잡은 맥의 손에 땀이 찼다.
‘아니, 캐, 캐치볼은 별론가? 하긴 이 나이에 캐치볼은 별로긴 하지…….’
튤 나트라에게서 답이 나오지 않자 맥이 허둥지둥 말했다.
“캐치볼이 싫으시면 안 하셔도 돼요!”
조금 주저하던 튤 나트라가 입을 열었다.
“……캐치볼이 뭐니?”
캐치볼이 뭔지 모르는 튤 나트라에게 온몸으로 설명한 맥이 얼른 가서 공을 사 왔다. 아직 몸이 약한 튤 나트라가 강하게 던질 수도 없으니 글로브는 필요 없었다.
잔뜩 신이나, 환하게 웃는 맥의 얼굴에 캐치볼이란 행동에 담긴 의미도 모르던 튤 나트라마저 가슴이 저렸다. 반짝이는 햇살 아래서 제대로 본 맥의 얼굴은 무어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스러웠다.
알록달록한 공은 둥그런 반원을 그리며 맥에게서 튤 나트라에게로, 튤 나트라에게서 맥에게로 날아다녔다. 다정한 부자의 모습에 공원을 산책하던 사람들이 미소를 지었다.
“맥!”
맥을 아는 듯한 남자의 등장에 튤 나트라는 공을 던지려던 손을 멈추었다.
“누구야? 봉사활동 중?”
맥이 요양원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걸 아는 남자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
그러나 튤 나트라의 청각은 여전히 예민했다. 맥이 어떻게 소개를 하건 받아들이려는 튤 나트라는 맥에게 부담스럽지 않게 시선을 돌렸다.
우연인지 그곳에는 조금 전 튤 나트라와 맥처럼 캐치볼을 하는 가족이 있었다. 튤 나트라의 시선을 따라 그곳을 바라보던 맥이 입술을 달싹였다.
“아니.”
“응?”
“내 아버지야.”
맥, 아니, 뮐 나트라가 말했다.
100년이 넘어서야 겨우 찾은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주름진 손바닥에 얼굴을 묻을 수밖에 없었다.
“컷, OK!”
* * *
“너무 뻔하긴 한데, 그래도 캐치볼이지.”
리첼 힐에게 공을 던지면서 말하는 에반 블록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일상생활 속 가족의 사랑을 보여주는 데에 캐치볼만 한 클리셰도 없었다. 뻔하지만 아주 효과적인 클리셰였다.
“맞아.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나오고.”
에반 블록에게서 공을 받은 리첼 힐이 스왈린 애넘에게 공을 던지며 말했다.
“촬영은 어땠니, 준?”
공을 받은 스왈린 애넘이 서준에게 공을 던졌다. 손에 잡힌 공의 감촉에 서준이 웃었다.
“재미있었어요. 크로마키가 좀 낯설긴 했지만요.”
서준이 에반 블록에게 공을 던졌다.
“나도 쉐도우맨1 찍을 땐 그랬어.”
“난 지금도 좀 어색하긴 해.”
그 공을 받은 에반 블록이 리첼 힐에게, 리첼 힐이 스왈린 애넘에게, 스왈린 애넘이 서준에게 던졌다.
“그래도 CG 덕분에 영화로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 많아졌지. 좋은 일이야.”
“배우들이 몰입하기엔 좀 힘들어졌지만요.”
“잘하면서 엄살은.”
에반 블록의 엄살과 스왈린 애넘의 말에 배우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사각형 캐치볼의 제안자는 스왈린 애넘이었다.
“계속 앉아 있고 누워 있으려니 좀이 쑤셔서 말이지.”
장난스럽게 끙끙 허리를 짚고 말하는 스왈린 애넘의 말에 라이언 감독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캐치볼을 하고 있으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슬슬 촬영 준비 끝나는 것 같아요.”
“그럼 여기까지 할까?”
서준의 말에 스왈린 애넘이 공을 던지려던 손을 멈추었다.
소품인 공을 스태프에게 건네준 세 배우는 분장을 고치러 걸음을 옮겼다. 출연하지 않는 서준도 세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고 보니 기사 언제 나려나?”
“이것저것 확정되면 낸다던데.”
리첼 힐의 물음에 에반 블록이 대답했다.
“떠들썩하겠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스왈린 애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서준은 얼마 후 벌어질 일을 떠올리며 악당처럼 후후후 웃었다.
* * *
[이서준,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
[배우 이서준, 2년 연속 남우주연상 수상!]
[이스케이프, 청룡영화제 8개 부문 수상!]
[이번에도 싹쓸이? 이스케이프로 가득한 청룡영화제!]
[청룡영화제, 특별카메오상! 에반 블록과 리첼 힐 수상!]
-서준이는 없었지만 봤다.
=촬영 중인데 어쩔 수 없지. 쉐도우맨!
-서준아. 축하해!
-올 1월에 대종상 받고 5월에 백상 받고ㅎ
=그건 역이잖아.
=내년에도 받을걸. 이스케이프로ㅋㅋ
-2년 연속이 청룡영화제만이 아닐 것 같다.
=22 역이 그랬던 것처럼 다른 시상식도 싹쓸이할 듯.
=다들 올해는 포기했음. 상 욕심 있는 영화는 개봉 미뤄졌대.
=오.
-특별카메오상ㅋㅋ 온라인투표 떴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나도. 얼마나 화제였으면 상까지 만들었을까.
=그리고 홈페이지 폭파!
=접속 중이던 11,324인ㅎ
=투표한 147,913인ㅎ
-[새싹부터]에 서준이 수상소감 올라왔음!
=보러 간다!!
=222!!
사람들이 모두 서준의 남우주연상 수상에 기뻐하며 떠들고 있을 때, 할리우드 배우 이서준의 소속사 코코아엔터는 미국에서 막 도착한 따끈따끈한 연락에 뒤집혔다.
“……이래서 다음에도 잘 부탁한다고 했구나.”
이스케이프 카메오 촬영을 끝내고 한국을 떠날 때, 상냥하게 웃던 에반 블록의 얼굴을 떠올린 서은찬은 넋이 나간 듯 허허 웃기만 했다.
* * *
2주 후, 한국을 뒤집어놓을 기사가 떴다.
[(단독) 쉐도우맨3, 한국 서울에서 촬영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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