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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24화 (22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24화

“와이어! 와이어!”

“크로마키 어디 놓으라고?!”

“스턴트맨들 다 왔어요?”

아침부터 쉐도우맨3 촬영장은 시끌벅적했다. 촬영을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바쁘게 세트장을 들락날락했다. 무전기를 든 스태프들이 연신 이곳저곳을 손짓했다. 그런 스태프들의 눈에 두 사람이 보였다.

“어, 준! 어서 와요!”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 잘해요!”

“네. 감사합니다.”

제법 얼굴이 익숙한 스태프들이 촬영장으로 향하는 서준에게 인사를 건넸다. 서준도 활짝 웃으며 즐거운 기분을 숨기지 않았다.

아직 촬영 전이라 활짝 열린 스튜디오의 문을 통과한 서준과 안다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발을 디딘 그곳은 고대 신전이었다.

곧게 뻗은 기둥들이 일렬로 늘어져 있고 천장과 바닥에는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스에 있는 신전의 새하얀 대리석과는 달리 모래 빛의 기둥이었지만 그게 더 잘 어울렸다. 그 길을 쭉 따라 걸으면 끝에 커다란 문이 있었다.

여기저기 보이는 전선과 불이 꺼진 조명, 크레인 등 현대 문물이 보이긴 했지만,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고대 신전의 모습만이 서준과 안다호의 시야를 꽈악 채웠다.

멍한 얼굴로 구경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지나가던 스태프들이 후후 웃었다. 완성된 모습을 처음 봤을 때는 스태프들도 넋을 놓고 구경했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세트장에 입을 쩌억 벌렸던 서준과 안다호가 겨우 감탄을 내뱉었다.

“와. 멋진데요?”

“그러게.”

할리우드 세트장은 볼 때마다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 같았다. 스태프들이 열심히 뛰어다니는 곳에서 떨어져 잠시 세트장을 구경하고 있으려니 언제나처럼 조나단이 두 사람을 반겼다.

“어서 와. 준. 빨리 왔네?”

“빨리 오고 싶어서요. 조나단. 세트장 정말 멋진데요.”

서준의 말에 조나단이 어깨를 으쓱였다.

컨셉 아트부터 제작까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모른다. 평소보다 더 깐깐하게 살피는 라이언 감독 때문에 중간중간 수정도 했다.

“그렇지? 이거 만든다고 고생했어.”

“그거 어디서 들어본 말인데요.”

서준의 말에 조나단이 피식 웃었다. 조나단도 쉐도우맨2를 찍을 때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있었다.

“뭐, 근데 기념관보다 멋지긴 해요.”

“그치?”

서준이 고개를 돌려 세트장을 바라보았다.

왠지 생의 도서관이 생각나는 구조물에 좀 더 구경할까 싶었는데, 스태프들이 멋진 세트장 위에 쨍한 초록빛의 천을 뒤덮고 있었다. 신비로운 고대 신전에 옥에 티처럼 크로마키가 설치되고 있었다.

안타까운 듯한 서준의 표정에 조나단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준이 오기 전에 크로마키까지 설치될 예정이었는데, 아직 크로마키 설치가 덜 됐어. 와이어 동선이랑 잠시 엉켰거든.”

어쩐지 바빠 보인다고 했다.

“저한텐 다행이네요. 멋진 세트장을 못 볼 뻔했어요.”

“하하. 그럼 다행이고. 크로마키팀이랑 와이어팀에게 전해줘야겠네.”

서준이 고개를 꺄웃하자, 조나단이 말을 이었다.

“크로마키팀이랑 와이어팀이 엄청 미안해하고 있거든. 다들 열심히 준비했는데 자신들 때문에 일이 늦어져서 말이야. 뭐,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해도 꼭 하나둘 사고가 터지는 게 이 일이니까,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지. 그 덕분에 준이 멋진 세트장을 볼 수 있었다고 하면 조금이지만 괜찮아질 거야.”

그사이에도 조나단은 크로마키팀과 와이어팀을 살펴보고 있었다. 재빠르게 움직이는 조나단의 눈에 서준은 눈을 깜빡였다.

예전에 조나단과 함께 촬영했을 때는 아직 잡심부름을 하거나 이리저리 스태프들을 도와주는 것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달랐다. 실수한 스태프들의 마음까지 생각하는 모습이 진짜 감독 같았다. 훌쩍훌쩍 자라고 있는 게 잭 스미스뿐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조감독님.

무전기에서 조나단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네. 잠시만요. 그래도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준이 준비하고 나올 때까지는 끝낼 수 있어. 저쪽에서 준비하면 돼. 그럼 난 가 볼게.”

“네.”

손을 흔들고 사라지는 조나단은 평소보다 어른스러워 보였다. 왠지 그런 조나단이 낯설면서도 뿌듯한 기분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우리도 준비하자.”

“네. 다호 형.”

* * *

진 나트라의 옷으로 갈아입고 분장까지 끝낸 서준이 밖으로 나오자, 조나단 조감독의 장담대로 크로마키 설치가 모두 끝나있었다.

초록빛으로 뒤덮인 고대 신전의 모습은 아까와는 전혀 달라, 별 생각 없던 서준과 안다호가 순간 멈칫할 정도였다.

“아까 보길 잘한 것 같지, 서준아?”

“그러게요. 이렇게 확 바뀔 줄은 몰랐어요.”

조금 전과는 분위기가 전혀 달라서, 실수한 크로마키 팀과 와이어 팀에 고마운 마음까지 든 서준과 안다호였다.

촬영 준비가 완벽하게 끝난 세트장 위에서는 와이어 조끼를 입은 스턴트맨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원, 투, 쓰리!”

신호와 함께 와이어에 매달린 스턴트맨이 쭈욱 뒤로 당겨져 초록색 크로마키에 파묻혔다. 뒤에 벽이 딱딱하지 않나? 하고 살펴보니 폭식폭신한 매트와 함께 설치되어 있었다.

“기사2!”

“넵!”

이름이 불린 스턴트맨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 뒤로 몇몇은 와이어에 끌려 벽과 문에 설치된 크로마키에 처박히고 몇몇은 바닥을 뒹굴었다.

순서와 방향, 스턴트맨들의 모습을 체크한 무술 감독과 라이언 감독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사이 스턴트맨들을 관리하는 스턴트맨팀 팀장이 한 명 한 명 돌아가며 조언을 해주었다.

“모두 스트레칭 확실하게 해!”

다음 리허설을 위해 잠시 점검 시간을 가졌다.

뻐근한 눈가를 매만지며 세트장을 둘러보던 라이언 감독의 눈에 준비를 끝낸 서준의 모습이 들어왔다.

라이언 감독과 눈이 마주친 서준이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준. 잘 어울리는군.”

“그렇죠? 불편한 곳도 없어서 편해요.”

딱 알맞은 진 나트라의 옷을 입고 이렇게 저렇게 스트레칭을 하는 서준의 모습에 라이언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리허설입니다!”

이번에는 서준과 함께 리허설을 진행했다. 서준의 대사와 손짓, 그리고 무술 감독의 신호에 맞춰 스턴트맨들이 이쪽저쪽으로 날아갔다.

“좋군.”

리허설을 바라보던 라이언 감독이 말했다.

“촬영 시작합시다.”

조나단 윌 조감독이 크게 외쳤다.

“촬영 시작합니다!”

* * *

“레디, 액션!”

나트라 행성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었다.

나트라 행성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나트라인들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의 근원인 타임스톤. 이 새하얀 타임스톤이 보관된 곳은 나트라 왕궁의 지하신전이었다.

나트라 행성의 왕인 튤 나트라도 정해진 날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 이 지하 신전에 누군가 발을 디뎠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중급이 발동합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중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하급)이 발동합니다.]

누가 이 신성한 지하 신전에 침입할까, 오랜 역사 속에서도 그런 적이 없던 탓에 느긋하게 경비를 서고 있던 신전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왕성으로 이어지는 계단 쪽에서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기사들은 이상함을 느끼고 자세를 바로 했다.

기사복을 입고 있던 스턴트맨들의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조금 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세트장 밖에 서 있던 스태프들도 마찬가지였다. 겨우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는 배우의 모습에 라이언 감독의 눈이 번들거렸다.

침입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신전 기사들은 익숙한 얼굴에 안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바짝 선 자신의 신경에 찜찜함을 감추지 못했다. 안 좋은 느낌이 들었다.

공식 석상에서만 입는 검은색 정복을 차려입은 진 나트라가 기둥이 늘어선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색 망토가 진 나트라의 걸음에 맞춰 살짝살짝 흔들렸다.

커다란 카메라 렌즈가 벽에 걸린 불빛에 흔들리는 진 나트라의 그림자와 진 나트라를 비추었다. 진 나트라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기분이 들어 스태프들은 침을 삼켰다.

“진 님.”

왕성 입구를 지키는 녀석들은 뭘 하고 있는지. 속으로 혀를 찬 기사 하나가 진 나트라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긴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나트라의 왕이라고 해도 정해진 날이 아니면 갈 수 없는 곳이었다. 아직 후계자도 아닌, 후계자 후보에 불과한 진 나트라는 신전에 들어올 수도 없었다.

무기를 들이밀진 않았지만, 기사들의 눈빛은 대동소이했다.

‘나트라인도 아닌 후계자 후보라니…….’

진 나트라의 앞을 막아선 기사가 티가 날 정도로 삐딱한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쿵!

벽으로 처박혔다.

“!”

기사가 반응할 틈도 없었다. 진 나트라의 그림자가 사냥감을 낚아채듯 기사의 발목을 잡아 휘두른 것이었다. 벽에 처박힌 기사는 정신을 잃었는지 움직이지 않았다.

와이어팀 스태프가 손을 벌벌 떨었다. 그렇게 실수하지 말자고 했는데 서준의 연기를 보고 있다가 타이밍을 놓칠 뻔했다.

‘근데…….’

와이어팀 스태프는 서준의 발아래를 보았다. 자신의 정신을 차리게 하였던 그것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방금 그림자가 움직이지 않았나?’

명백한 공격 의사에 기사들이 일제히 그림자로 창과 검을 만들어냈다. 날카로운 새까만 날들이 진 나트라를 향했다. 목 앞에 들이밀어진 날들에도 진 나트라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고대 신전에 묵직한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비켜라.”

진 나트라의 그림자가 파도처럼 기사들을 덮쳤다.

세트장 밖에 있던 스태프들이 숨을 죽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계획된 액션을 보여주는 스턴트맨들은 정말로 공격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저 등 뒤에 달린 와이어에 끌려 크로마키가 설치된 문과 벽, 바닥에 처박히는 것뿐이라는 걸 아는데도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초록색 크로마키 매트에 푹! 하고 처박히는 스턴트맨의 모습이 보였다. 폭신폭신한 초록색 크로마키가 안정적으로 스턴트맨을 받아줬지만, 왠지 스태프들의 귀에는 쿵! 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많은 스태프 중 몇몇이 눈을 비볐다.

“……왜 그림자가 보이는 것 같지?”

서준 리, 아니, 진 나트라의 그림자가 크기를 부풀려 기사들을 공격하는 것 같았다.

원수의 그림자를 이용해 신전 기사들을 모두 쓰러뜨린 진 나트라는 눈앞에 있는 커다란 문을 열었다.

“컷, OK!”

라이언 감독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OK 소리와 함께 따뜻한 바람이 불었다.

진 나트라에게 당한 뒤 어색하게 바닥에서 뒹굴고 있던 스턴트맨들이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이어에 당겨져 벽에 처박혀 있던 스턴트맨들도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바닥에 발을 디딘 스턴트맨들은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와이어로 당겨진 여파가 남아 있어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제일 먼저 폭신한 초록색 크로마키 벽에 처박힌 스턴트맨이 발목을 두어 번 돌렸다.

“왜 그래? 다쳤어?”

“아, 아ㄴ…….”

“뭐?! 다쳤다고?”

다음 촬영을 위해 이것저것 체크하던 스턴트맨팀 팀장이 그 소리를 듣고 반응했다. 귀도 밝은 팀장의 모습에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스턴트맨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안 다쳤어요. 멀쩡해요!”

“조심해. 절대 다치면 안 돼.”

“넵!”

팀장이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두 눈을 한 번 가리키고 스턴트맨을 가리켰다. 지켜보고 있다. 라는 손짓에 스턴트맨들이 어색하게 웃었다.

“근데 왜?”

“아니, 누가 발목을 진짜 잡은 줄 알았어. 근데 아닌가 봐.”

뭔가 가볍게 발목을 감싸 쥐는 느낌이 들었는데, 기분 탓인 모양이었다. 스턴트맨들의 이야기를 듣던 서준은 볼을 긁적였다.

[(악)마셰드의 그림자술-중하급]

기생마족 마셰드의 그림자술입니다.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주의] 오래 사용하면 마기에 물듭니다.

[[(악)마셰드의 그림자술-중하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악)마셰드의 그림자술-하급]

기생마족 마셰드의 그림자술입니다.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생물체의 그림자에 기생하는 마족, 마셰드.

그림자에 머무는 시간이 길수록 발끝부터 천천히 생물체를 잠식해 나간다. 끝내 머리끝까지 잡아먹는다.

‘음. 아무래도 본 사람이 좀 있는 것 같지?’

서준이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라이언 감독을 바라보았다. [(선)오크 제사장의 기도]로 집중력이 높아진 라이언 감독이 그림자를 봤다면 아마 ‘악령’보다 더 멋진 CG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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