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223화 (22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23화

11월 2일.

쉐도우맨3의 크랭크인 날이 되었다.

첫 촬영을 위해 숙소를 나선 서준은 서은혜와 함께 차에 올랐다.

“좋은 아침입니다.”

운전석에 앉은 보디가드가 웃으며 인사했다. 익숙한 얼굴에 서준과 서은혜도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오늘 잘 부탁드려요.”

“걱정 마십시오. 경호팀 중 제가 제일 운전을 잘합니다.”

누가 준의 차를 운전하나, 한바탕 대결이 있었다는 건 묻어둔 보디가드였다. 마음속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보디가드는 시동을 걸었다.

자리에 앉아 안전띠를 맨 서준이 운전석을 바라보았다. 평소와는 달리 운전석에 안다호가 없으니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다호 형이 없으니까 이상하네.”

특히 촬영 때는 항상 함께 다니는 안다호라서 더 그랬다.

“킹즈 에이전시 직원들이랑 고사 준비한다고 바쁘니까 어쩔 수 없지.”

“다호 형이 고사를 준비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에이전시 직원분들이랑 같이 해? 직원분들이 고사를 알고 있어?”

서준의 말에 서은혜가 웃으며 대답했다.

“나라 말로는 킹즈마켓 지점을 열 때마다 고사를 지냈었대. 할아버지 대부터 고집해온 일이라더라고. 원래는 킹즈 마켓에서 일하던 직원들이니까 몇 번 본 적이 있대.”

“그렇구나.”

하긴 킹즈 에이전시에도 한국인 직원들이 있으니, 준비하긴 편할 터였다.

“고사라. 많이 올까?”

오늘 촬영은 오후부터 있었다. 오전에는 촬영장에서 간단하게 고사를 지낼 예정이었다.

“글쎄. 관심 있는 사람들은 오라고 했으니까. 엄마 생각엔 그렇게 많이 오진 않을 것 같은데.”

“그렇지?”

리첼과 에반이야 한국어를 배우면서 이것저것 한국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아졌을 테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다지 관심이 없을 수도 있었다.

얼마 후.

촬영장에 도착한 서준과 서은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많은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촬영장에 모여 있었다.

* * *

보디가드에게 연락받은 안다호가 서준과 서은혜와 함께 촬영장 안으로 들어갔다.

촬영장 한쪽에 미국에서 볼 줄 몰랐던 병풍과 고사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시루떡에 과일들이 가지런히 상 위에 놓여 있었다.

준비는 다 끝났는지 스태프들이 연신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다호 형. 준비 다 끝났어요?”

“그래.”

여러 감독에게 꼼꼼히 묻고 왔지만 역시 어색하기만 한 안다호가 적어온 고사 절차를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축문은 서준이가 읽어주면 돼.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바로 통역해 줄 거니까 문장 사이사이에 잠시 쉬고.”

“네.”

“사회는 내가 볼 거고 축문 태우는 것도 내가 할 거야.”

숙소 주차장에서 열심히 연습도 했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은혜가 말했다.

“아마 다들 절하는 법도 잘 모를 테니까 절은 서준이랑 다호씨가 먼저 해야 할 거에요.”

서준과 안다호도 동의했다.

“근데 돼지머리는 없어요?”

그게 제일 중요하지 않나?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안다호가 웃었다.

“리첼 씨가 들고 오신데.”

“……돼지머리를요?”

“인형이야!”

불쑥 서준의 눈앞에 분홍색 돼지코가 들이밀어졌다. 폭신폭신하고 말랑말랑할 것 같은 돼지코에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눈을 데굴 굴리니 돼지 인형의 눈과 귀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 돼지 인형을 들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리첼 힐이 활짝 웃고 있었다.

“리첼! 왔어요?”

“에반이랑 스왈린 선생님이랑 같이 왔어.”

리첼 힐의 뒤에 에반 블록과 스왈린 애넘이 서 있었다. 서준이 활짝 웃었다.

서준이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리첼 힐은 너튜브 영상에서 본대로 고사상 중앙에 돼지 인형을 놓아두었다.

사진을 찍고 있던 스태프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테이블 위에 돼지 인형은 뭐야?”

“그러게. 장식인가?”

지나가던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웃으며 물음에 답해주었다.

“원래는 돼지 머리를 갖다 놓습니다.”

“……돼지머리요?”

상상이 안 되는 모습에 스태프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몇몇은 검색해 보기도 했다. 검색 결과로 뜬 이미지들이 고사상을 보여주었다.

진짜 돼지머리였다.

얼이 빠진 스태프들의 모습에 작게 웃은 킹즈 에이전시 직원이 말을 이었다.

“원래 웃는 돼지머리가 올라가는데 그건 너무 ‘한국식’이라 다른 스태프들이 거부감을 느낄 것 같아서 인형으로 바꿨습니다.”

“……잘했네요.”

진짜로 봤으면…… 스태프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진 속 돼지가 빙그레 웃고 있었다.

* * *

잠시 후.

안다호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고사 시작하겠습니다. 몇몇 부분은 한국어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양해 부탁합니다.”

고사에 참여할 사람들이 앞쪽으로 모였다.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들뜬 표정으로 앞으로 나왔다. 라이언 윌 감독과 조나단 윌 조감독도 반쯤 신기한 표정으로 앞에 섰다. 마린사에서 온 페일런 박이 앞으로 향했다. 그 이외에도 절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스태프들이 모였다.

“이걸 여기서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스턴트맨 김재연도 볼을 긁적이며 앞에 섰다.

김재연에게 설명을 들었던, 그리고 안전에 대해선 누구보다 신경 쓰며 징크스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는 스턴트맨들과 무술 감독도 앞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절을 올리고 축문을 읽을 서준이 앞에 서자 조금 들뜬 분위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선)오크 제사장의 기도-중급이 발동됩니다.]

[제사가 시작됩니다.]

[(선)오크 제사장의 기도-중급]

적과의 전투에 앞서 신께 올렸던 기도입니다.

(향 피우기>기도>불 피우기)의 제사 절차를 따라야 합니다.

기도자의 수에 따라 전투 중 집중력, 정신력, 치유력이 상승합니다.

기도자 : 0

기한 : 4개월

가장 위대했던 조상의 머리뼈를 제단에 올리고 제사를 올렸던 오크들의 기도.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집중력, 어느 때고 흥분하지 않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정신력, 설령 다치더라도 금세 나을 수 있는 치유력이 상승하는 능력이었다.

촬영 중에도 활용도가 높을 터였다.

딱 알맞은 능력을 찾아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 있던 서준이 잠시 눈을 데굴데굴 굴려 고사상 위에 올라간 ‘조상의 머리뼈’를 바라보았다.

‘……돼지 인형도 괜찮겠지?’

능력 조건에 없고 제대로 발동되는 걸 보니 상관은 없겠지만. 빨간 뺨의 웃고 있는 돼지 인형을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찜찜한 이 기분.

‘희상이 삼촌한테 부탁할 걸 그랬나.’

아니. 그러면 진짜 오크 머리가 왔을 터였다.

서준이 귀여운 돼지 인형을 보며 심란함을 느끼고 있을 때, 안다호가 고사상에 있는 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앞에 있던 향에 불을 붙였다. 향 끝에서 뿌연 연기가 올라왔다.

오오.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던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향을 올린 안다호가 곧바로 세 번 절을 한 것이었다.

‘이번 촬영 동안 서준이가 무사히 촬영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미신이라도 좋았다. 안다호는 진심으로 기도했다.

자신의 배우를 걱정하는 매니저의 온 마음이 담긴 절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반쯤 특별한 이벤트처럼 느끼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기도자 : 1]

[(선)오크 제사장의 기도-중급]과 향의 연기, 그리고 안다호의 절이 어우러졌다. 촬영장 내에 묵직한 기운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절을 한 안다호가 내려오고 서준이 고사상 앞에 섰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촬영 끝나게 해주세요.’

[기도자 : 2]

세 번 절을 한 서준에게 안다호가 축문을 건네주었다. 타기 쉬운 새하얀 종이에 검은 붓펜으로 한글이 쓰여 있었다.

“11월 2일.”

서준이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경건한 분위기에 침만 꼴깍꼴깍 삼키던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영화 쉐도우맨3 감독 라이언 윌 외 참례자 일동은 영화 쉐도우맨3의 촬영을 천지신명께 삼가 고하나이다.”

서준의 차분한 목소리가 울리고 다음으로 킹즈 에이전시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비슷한 단어로 대체된 축문에 모두 숨을 죽였다.

“천지신명이시여.”

제사장의 몸에서 기이한 아우라가 번졌다.

“저희 영화 쉐도우맨3를 굽어보시어 제작 기간 중 모든 잡귀, 잡신은 현장에 얼씬도 못 하게 지켜주시고 아무런 사고도 없이 촬영이 끝나게 하시옵소서.”

전투를 앞둔 병사들을 위하는 묵직하고 단단한 목소리였다.

“혼신의 힘을 다하여 만들 영화 쉐도우맨3가 개봉 첫날부터 경이적인 흥행을 기록하게 하시고 역사에 길이 남는 명작품이 되게 하시옵소서.”

전투가 끝나고 다가올 영광을 되새기는 목소리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진짜 이루어질 것만 같은 영광에 사람들의 마음이 들썩였다.

“아무쪼록 여기 마련한 음식 부족타 마시고 흠향하시어 저희의 작은 정성에 감응해 주시길 간절히 바라옵나이다.”

어쩐지 악령의 꼬마 무당이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11월 2일. 영화 쉐도우맨3 감독 라이언 윌 외 참례자 일동.”

서준이 읽었던 축문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절하실 분 올라와 주세요.”

안다호의 말에 리첼 힐과 에반 블록,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 조감독이 어색하지만 진지한 얼굴로 돗자리 위에 섰다.

“연습했는데 떨리네.”

“세 번 하면 되지?”

“네. 편하게 해요.”

서준의 말에 네 사람이 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듯한 표정을 알아본 서은혜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같이 할까요?”

“네!”

반색하는 네 사람의 모습에 서은혜가 작게 웃었다. 조나단 윌 옆에선 서은혜가 절을 올리자 타이밍에 맞춰 네 사람도 절을 올렸다.

‘부디 잘 마무리하기를.’

아주 오랫동안 꿈꿔왔던 시리즈의 마지막 촬영을 앞둔 라이언 윌 감독이 진심으로 빌었다.

어쩐지 이렇게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걱정과 기대로 복잡하던 마음이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기도자 : 3]

‘한 명도 안 다치고 무사히 끝나기를.’

자신들의 스턴트맨들을 생각하며 스왈린 애넘과 에반 블록, 리첼 힐과 아들과 지인들의 안전을 바라는 서은혜가 절을 올렸다.

[기도자 : 7]

‘좋은 영화가 나오게 해주세요.’

부디 삼촌의 꿈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기도자 : 8]

다섯 명이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던 서준이 저도 모르게 터질 것 같은 웃음을 힘들게 참았다.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네 사람 모두 두 번째 절을 위해 일어날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꼼지락거리며 눈치를 보는 게 꼭 설날 때 본 은수의 모습과 똑 닮아 있었다.

세 번 절을 한 다섯 명이 자리를 비키고 이번엔 페일런 박을 중심으로 마린사 직원들이 절을 올렸다.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고 페일런 박을 바라보았다.

[기도자 : 16]

그다음은 스턴트맨들 차례였다. 김재연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에 어색하게 절을 올렸다. 마지막으로 스태프들과 킹즈 에이전시 직원들도 절을 올렸다.

[기도자 : 43]

43명.

절을 올린 사람들 말고도 주위에 서서 구경하면서 함께 기도한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서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마지막 순서로 축문을 불 태워야 했다. 불이 나지 않게 주위 물건들을 치운 안다호가 축문과 라이터를 손에 들었다.

“그럼 축문을 태우겠습니다.”

서준은 축문 끝에 불이 붙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빨간 불길이 타오르자 알림이 떴다.

[제사가 끝났습니다.]

[(선)오크 제사장의 기도-중급이 발동됩니다.]

축문에 붙은 불이 순식간에 종이를 따라 번져갔다. 모두 타들어 가는 축문을 보며 신기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때 서준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서준의 눈에만 보이는, 축문에서 흘러나온 불길을 닮은 아우라가 폭발하듯 기도자들을 감싸 안았다.

촬영 중 가장 위험할 스턴트맨들에게 향하는 아우라에 서준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쉐도우맨3, 크랭크인!]

[쉐도우맨3, 고사 지내다! “무사, 무탈, 흥행!”]

[쉐도우맨3, 돼지머리 대신 돼지 인형으로!]

[마린사, 너튜브에 쉐도우맨3 고사 현장 업로드!]

[이게 뭐예요? 외국인들의 ??? 댓글 행렬!]

-……???

=한국인도 ‘???’다. 왜 너희가 고사를 지내?

-그러게. 쉐도우맨3엔 한국인도 별로 없을 텐데? 어떻게 알고?

-서준인가?

=ㄴㄴ 리첼 힐임. 리첼 힐 SNS에 떴음. 돼지머리 대신 돼지 인형 들고 갔대.

=리첼 힐은 또 어떻게 알았대…….

=한국어 배운 것도 신기했는데. 고사라니ㅎㅎ

=ㅋㅋㅋ 돼지 인형.

-근데 다들 되게 진지하게 한다.

=그러게. 고사 시작하긴 전엔 작은 이벤트 같은 느낌인데 시작한 후엔 경건함ㅎㅎ

=보고 있던 나까지 엄숙해진다.

=나도 기도함. 쉐도우맨3 대박 나게 해주세요!

-이서준 목소리 좋네.

=22 악령 때 느낌이 좀 난다.

=그때 그 신이면 서준이 부탁은 다 들어줄 듯.

=이거 달라고? 줄게! 이것도? 당연히 줘야지! 잠깐! 이것도 필요할 것 같은데……(주섬주섬) 이것도 좋은 건데 마음에 안 들어? 이거 말고 저거? 에잇! 우리 서준이 다 가져!(온갖 좋은 것들 와르르르)

=ㅋㅋㅋㅋㅋ

-우리 가게 고삿날 와서 축문 읽어줬으면 좋겠다ㅎㅎ

=그럼 진짜 대박 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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