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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21화 (22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21화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액션 훈련에 합류한 지 사흘이 지났다.

그사이 에반 블록과 리첼 힐, 서준이 함께 합을 맞추는 시간이 늘었다.

연습 순서는 대부분 비슷했다.

처음엔 느린 속도로 서로의 타이밍을 확인하고 점점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다 1배속의 속도로 몇 번 연습한 후 캐릭터를 연기하며 연습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중급이 발동합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중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하급)이 발동합니다.]

오늘도 눈을 뗄 수 없는 서준의 연기와 그에 맞서는 에반 블록의 연기를 보던 사람들이 감탄했다.

김재연도 감탄했다. 그리고 서준을 자세히 살폈다. 그날부터 고민해 봤는데 서준의 연기를 보고 손끝부터 발끝까지 따라 하는 게 최선인 것 같았다.

‘저게 따라 한다고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지만 계속 관찰하고 있으니 보이지 않았던 점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에반 블록을 공격하는 서준의 움직임은 마치 갑옷을 두르고 있는 것처럼 딱딱해 보였다. 움직임 하나하나가 틀에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서준만이 아니라 에반 블록도 리첼 힐도 연기와 액션을 함께할 때는 뭔가 변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액션이 달라진 건 아닌데……?’

서준이 연기하는 모습의 디테일을 잔뜩 적어놓은 콘티에 의문점을 적은 김재연이 다시 서준의 연기를 분석하듯 바라보았다.

* * *

연습 후 잠시 쉬는 시간.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물을 마시던 서준이 김재연의 물음에 되물었다.

“움직임 왜 딱딱하냐구요?”

“응. 그냥 연습할 때는 꽤 부드러운 편이잖아.”

오.

김재연의 말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래도 스턴트맨은 연기보단 액션을 중점을 두고는 했다. 그만큼 캐릭터의 연기까지는 신경 쓰기 어려웠다.

‘얼굴도 나오지 않는데 캐릭터 분석까지 해가면서 세세한 연기까지는 할 필요는 없겠지.’

그랬던 스턴트맨이 캐릭터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서준은 제 나름대로 노력하는 김재연이 더 마음에 들었다.

마침 어젯밤 도서관에서 찾은 적당한 능력도 있으니 좀 있다가 써야겠다고 생각한 서준이었다.

“전체적인 움직임은 비슷한데 움직임이 좀 딱딱한 것 같더라고. 군인처럼 말이야.”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군인이 아니라 기사요.”

“기사?”

서준의 말에 김재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웬 기사?

서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진 나트라의 아버지가 왕이잖아요.”

“그렇지.”

“그럼 왕의 아들인 진 나트라는 뭐겠어요?”

“어…… 왕자?”

김재연이 뜻밖의 사실에 눈을 깜빡였다. 진 나트라가 왕자라고 하니 어울리면서도 안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근데 그거랑 움직임이랑 무슨 상관이야?”

“왕자가 누구에게 무술을 배웠겠어요?”

“그야…….”

단박에 떠올린 답에 김재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왕자를 누가 가르치겠나.

왕궁을 드나들 수 있으면서 왕의 핏줄의 가장 가까이에 있고 경호를 맡길 정도로 믿을 수 있는 사람.

왕궁을 지키고 왕의 핏줄의 곁에서 호위하고 명을 수행하는, 기사.

“그래서 기사구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렸을 때부터 왕궁의 기사한테 배웠으니까 진 나트라의 움직임은 딱딱할 수밖에 없어요. 딱딱하다기보다 그게 ‘기사의 정석’이죠.”

대대로 내려온 격식 있는 ‘기사’의 가르침을 받은 진 나트라.

문득 김재연의 머릿속으로 무술감독과 에이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예의 있고 품격 있게.

그땐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서준의 설명을 들으니 이해가 갔다.

김재연은 문득 의문이 생겼다.

“벨 나트라는? 기사에게 배웠다기엔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

옆에서 듣고 있던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준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재연이 형. 진짜 자세히 봤구나.’

“진 나트라는 아직 경험이 적어서 ‘정석’에 따르고 있지만 벨 나트라는 전투 경험이 많으니까 여유가 있는 거예요.”

“쉐도우맨은?”

“쉐도우맨이야 따로 배울 곳도 없었으니 완전히 ‘실전형’이죠.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해도 될 걸요.”

오오.

어느새 스턴트맨들과 트레이너들까지 서준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자유로운 용병과 격식 있는 기사의 대결 같은 건가?”

“소설 같네. 진짜 왕자였던 용병과 가짜 왕자였던 기사의 이야기.”

진 나트라와 쉐도우맨에 대해 떠드는 스턴트맨들을 바라보던 리첼 힐이 입을 열었다.

“근데 킴은 잘도 알아봤네.”

“그러게. 준의 연기야 눈에 띄니까 알아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연기까지 알아보다니…….”

에반 블록도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자신이 더 흐뭇해지는 것 같아 활짝 웃던 서준이 콘티에 서준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던 김재연을 불렀다.

“재연이 형.”

“응?”

“머리카락에 뭐가 묻은 것 같아요.”

“그래?”

서준이 손을 뻗어 김재연의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무언가를 떼는 척, 씨앗을 심었다.

[(선)봄느티나무의 흉내 내기-중급]

따라 하고 싶은 목표의 분위기를 흉내 냅니다.

목표에 대한 충분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흉내 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나무형 몬스터, 봄 느티나무는 가까이에 있는 나무들의 흉내를 낸다.

새싹부터 굵은 줄기가 되고 가지가 갈라지고 나뭇잎이 나올 때까지 주위에 있는 나무들과 똑같은 모습, 똑같은 향, 똑같은 나뭇잎, 그리고 분위기(성향)까지.

그렇게 나무들 사이에 숨어 있다가 사람들의 먹이로 삼는 경우도 있고, 희귀한 식물의 복제품이 되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물론 복제품의 효과는 떨어졌다.

[(선)봄느티나무의 흉내 내기-중급이 발동됩니다.]

[목표: 진 나트라 / 동화율: 15/100]

김재연이 미리 모아둔 정보 덕분에 벌써 머리 위에 새싹이 자라났다.

이 새싹이 자라 완전한 봄 느티나무가 되면 진 나트라의 분위기를 흉내 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물과 햇빛을 충분히 줘야 했다. 봄 느티나무의 물과 햇빛은 흉내 내고 싶은 대상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따라 하는 것.

정보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시들어버릴 터였다.

“서준아. 뗐어?”

“네!”

김재연의 머리 위에서 손을 내린 서준이 활짝 웃었다.

이제부터는 온전히 재연이 형의 노력에 달렸다.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촬영 준비 때문에 바빴던 라이언 윌 감독이 중간점검 겸 액션 트레이닝 센터에 나타났다.

“그럼 얼마나 연습했는지 볼까?”

“네.”

에반 블록과 서준이 훈련장 한가운데 섰다. 문이 굳게 닫혀 있어 저번과 같이 사람들이 몰려들 일은 없었다.

서로 마주보며 웃던 서준과 에반 블록이 순식간에 얼굴을 굳혔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중급이 발동합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중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하급)이 발동합니다.]

탕!

두 개의 창이 부딪쳤다.

라이언 감독은 서준과 에반 블록의 공방을 바라보았다. 에반 블록이 느꼈던 ‘진 나트라의 성장’을 라이언 감독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타탁!

강해진 진 나트라와 쉐도우맨이 또 한 번 부딪쳤다.

대본대로 서준의 진 나트라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기품이 있었고, 에반 블록의 쉐도우맨은 날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탕!

큰 소리를 내며 부딪친 기사와 용병이 뒤로 물러섰다. 그 걸음걸이에서도 확연한 차이가 보여 라이언 감독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연기를 끝낸 서준과 에반 블록에게 짧게 코멘트를 해준 라이언 감독에게 김재연이 다가갔다.

“저…… 감독님. 저도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

이런 말을 해도 되나, 걱정이 가득했지만, 라이언 감독에게 꼭 평가를 받고 싶었던 김재연이 힘겹게 말을 꺼냈다.

라이언 감독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과 두 배우에게서 김재연의 칭찬을 자주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상대역 해줄까요? 킴?”

“감사합니다!”

에반 블록의 말에 김재연은 저도 모르게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한국식 인사에 익숙한 에반 블록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김재연의 머리 위에 자라난 나무를 본 서준은 라이언 감독의 옆으로 향했다.

아직 겨우 두세 개의 가지에 새싹이 돋는 정도지만 촬영이 진행되면 점점 울창하게 자랄 터였다.

[목표: 진 나트라 / 동화율 : 53 /100]

‘50이 넘었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글자에 서준이 웃었다. 재연이 형이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겨우 일주일이 지난 것 같은데 벌써 중간 단계인 50%를 넘고 있었다.

‘그동안은 티가 별로 안 났겠지만…….’

50%를 넘으면 확실히 차이를 보일 터였다.

서준의 눈이 기대로 반짝였다.

에반 블록과 김재연이 마주 보고 섰다. 창을 잡은 김재연이 침을 꼴깍 삼키고 서준의 진 나트라를 떠올렸다.

[(선)봄 느티나무의 흉내 내기가 발동됩니다.]

신체에는 영향이 없는, 가짜지만 진짜 같은 희미한 마기가 김재연에게서 흘러나왔다.

정확히는 김재연의 머리 위에 있는 봄 느티나무였다. 물론 복제품이라 효과가 떨어지긴 했지만, 미약한 검은 마기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뚜렷한 흔적이 되었다.

순식간에 바뀐 김재연의 분위기에 에반 블록의 눈이 커졌다. 이 스턴트맨은 놀라울 정도로 서준, 아니, 진 나트라를 따라 하고 있었다.

‘뭐. 진짜만은 못하지만.’

에반 블록이 삐죽 웃었다. 이 정도의 진 나트라로는 쉐도우맨을 막을 수 없었다.

탕!

김재연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 듯 제가 공부했던 진 나트라의 움직임을 되새기며 움직이고 있었다.

오직 목표의 분위기만을 흉내 내는 봄 느티나무도 영향을 끼칠 수 없는 기사 같은 자세, 그리고 정석적인 움직임은 온전히 김재연의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타앙!

두 개의 창이 부딪치는 소리가 훈련장을 울렸다.

“좋군.”

김재연과 에반 블록의 공방을 자세히 주시하고 있던 라이언 감독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오디션 당시 5점 만점에 3점을 주었던 스턴트맨이었는데 지금은 5점을 주어도 아깝지 않았다. 액션만으로도 충분한데 캐릭터를 이해하고 배우의 연기까지 따라 하고 있었다.

라이언 감독의 눈이 빛났다.

“배우로선 부족한 점은 많지만 스턴트맨으로선 최고야.”

“재연이 형이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서준에게 캐릭터 해석을 묻고 안다호에게 부탁해 촬영한 촬영본도 매일같이 돌려보았다. 그 정도로 할 필요가 있나 싶은 스턴트맨들의 말도 있었지만, 김재연은 그만두지 않았다.

“촬영 때가 되면 더 잘할 거예요.”

서준은 김재연의 머리 위를 바라보았다. 푸르르고 울창하게 자랄 봄 느티나무의 모습이 기대되었다.

* * *

그날 저녁.

라이언 감독과 쉐도우맨팀은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다.

“이걸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주문을 받은 직원이 한껏 상기된 얼굴로 개인실을 떠났다.

“감독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셨어요?”

리첼 힐의 물음에 서준과 에반 블록의 시선이 라이언 감독에게로 향했다. 라이언 감독이 제가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킴이 대신 연기하는 장면 사이사이에 준의 얼굴을 비치려고 했지. 바스트 샷이든 클로즈업 샷이든. 준의 연기는 대단히 인상 깊어서 그 이후에 얼마간 유지가 되니까.”

서준과 김재연의 촬영분을 섞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대본도 콘티도 그것까지 계산해서 만든 라이언 윌 감독이었다.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타박처럼 들렸지만, 라이언 윌 감독은 웃고 있었다.

생각해 놓았던 장면들을 싹 바꿔야 할지도 몰랐지만 만족스러웠다. 배우와 스턴트맨의 실력이 늘었고 그건 작품에 좋은 영향을 줄 테니까 말이다.

‘더 좋은 장면이 나올지도 모르겠지만…….’

그동안 오랜 시간을 준비해온 만큼 쉐도우맨3만큼은 수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생각대로는 안 되는 모양이었다.

“근데 준.”

리첼 힐이 서준을 불렀다.

“네?”

“한 달 사이에 또 컸지?”

“네.”

한창 성장기인 서준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역시 성장할 키까지 생각해서 스턴트맨을 뽑길 잘했군.”

라이언 감독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몇 달 전에 있었던 스턴트맨 오디션.

서준의 성장 속도를 계산해 당시의 서준과 실루엣이 비슷하면서도 몇 센티 정도 더 큰 김재연을 뽑았다.

“그때 준의 키에 딱 맞게 뽑았다면 스턴트맨이 배우보다 작을 뻔했어.”

그나저나 이 속도로 자란다면 촬영 때 쓸 의상을 몇 벌 더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는 라이언 감독의 모습에 서준이 웃었다.

“그래도 이젠 좀 천천히 자랄 것 같긴 해요.”

“그게 마음대로 돼?”

“예감이 그래요.”

생의 도서관에 얌전히 놓여 있을 [(선)슬라임의 소화 능력]을 떠올린 서준이 하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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