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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20화 (22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20화

“재연이 형이 없네?”

“그러게. 무슨 일 있나?”

텅 비어 있는 A3 훈련장이 어색해 서준은 괜히 볼을 긁적였다. 일주일 사이 먼저 도착해서 몸을 풀고 있던 김재연의 모습에 익숙해진 것이었다.

“금방 오겠지. 오늘 저녁 같이 먹기로 했으니까. 에이든이 올 때까지 스트레칭하고 있자.”

“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서준은 가볍게 몸을 풀고 스트레칭을 했다. 한쪽에 놓여 있는 봉, 검, 창에 눈이 가고 손이 근질근질했지만, 트레이너가 없을 때는 손대지 않기로 했다.

“근데 진도가 빠르네. 벌써 난이도 2 중간이라니.”

서준이 스트레칭을 할 때, 운동 삼아 같이 몸을 풀고 있던 안다호가 말했다. 몸이 굳어 뻣뻣해 간단한 스트레칭 하나에도 땀이 흘렀다. 거의 연체동물처럼 바닥에 딱 달라붙어 있는 서준은 안다호의 모습에 실실 웃었다.

“에이든도 2주 안에 끝날 것 같다고 했어요.”

“그럼 촬영 전까진 제법 여유롭겠네.”

일주일 내내 하는 것도 아니었다. 쉬는 날도 있는데 이 정도의 습득력. 감탄이 나올 정도의 실력 향상에 매일같이 계획을 수정하고 있는 트레이너 에이든이었다.

“벌써 와 있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서준과 안다호의 시선이 훈련장 입구로 향했다. 반가운 얼굴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에반! 리첼!”

“안녕. 준.”

“준! 일찍 왔네!”

운동복을 입고 있는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었다.

“스케줄 다 끝났어요?”

“응. 이제부터 촬영 끝날 때까진 별일 없을 거야.”

“나도! 깔끔하게 끝내고 왔지.”

“이제부턴 같이 연습할 수 있을 거야. 트레이닝은 어때?”

에반 블록의 말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재밌어요.”

“그럴 줄 알았어.”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서준이니만큼 액션 연습도 재미있게 할 거라고 생각한 에반 블록이었다. 그 말에 동의하듯 작게 웃은 리첼 힐이 물었다.

“어디까지 배웠어?”

“여기까지요.”

서준은 콘티를 가지고 왔다. 얼마나 봤는지 너덜너덜해져 있는 콘티였다.

서준이 가리킨 부분에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이도 2의 중반 부분, 쉐도우맨과 진 나트라의 두 번째 액션 장면이었다.

“빠른데? 엄청 빠른 거 아니야?”

“그러게.”

놀라는 두 배우의 모습에 서준이 어깨를 으쓱이다 눈을 반짝였다.

“에반. 이 장면 연습해 보지 않을래요?”

진 나트라, 서준의 말에 쉐도우맨, 에반 블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트레이너가 이 장면까지 가르쳤다는 건 앞부분은 통과라는 말일 테니까.’

“음. 그럴까? 트레이너들이 오면 물어보자.”

“네!”

잠시 스트레칭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트레이너들과 스턴트맨들이 훈련장에 나타났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물어보니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속도만 조금 느리게 하면 괜찮을 겁니다. 어차피 촬영 전까지 두 사람이 합을 맞춰야 하니까요. 준이 워낙 배우는 속도가 빨라서 이제부턴 간간이 배우들끼리 합을 맞춰도 될 겁니다.”

트레이너의 허락이 떨어지자 리첼 힐은 얼른 봉을 서준과 에반 블록에게 가져다주었다. 다른 트레이너들도, 스턴트맨들도 재미난 상황에 하나둘 모였다.

봉을 든 서준과 에반 블록이 조금 떨어져서 섰다.

“일단 천천히 해보자.”

“네.”

처음은 연습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서준과 에반 블록은 0.3배속을 한 듯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두 사람의 봉이 마주쳐도 워낙 느린 속도라 소리도 크지 않았다.

트레이너들과 스턴트맨들의 눈이 매섭게 두 배우를 평가했다.

“처음 합 맞추는 것치곤 잘 맞지 않아?”

“속도가 느려서일 수도 있긴 하지만 머뭇거림이 없다는 게 좋아.”

“에반이야 몇 달째 연습하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준은 정말 잘하는데.”

피하는 것도 공격하는 것도 함께 춤을 추는 것처럼 부드럽게 흘러갔다.

첫 공방이 끝나고 서준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에반. 조금만 더 빨리하는 건 어때요?”

볼이 빨갛게 상기된 서준의 물음에 에반 블록의 시선이 에이든에게로 향했다.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이자 서준이 활짝 웃었다.

그래 봤자 0.5배속.

에반 블록의 속도가 그 정도니 서준도 빠르게 움직일 수도 없었다.

탕!

타탁!

그래도 제법 소리가 났다. 제대로 부딪히는 소리와 반동으로 흔들리는 봉.

봉을 두 손으로 꽉 잡은 서준이 웃었다. 에반 블록도 잘하는 서준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두 배우는 점점 속도를 붙여가며 같은 장면을 반복했다.

리첼 힐과 다른 스턴트맨들이 자신의 훈련을 하러 자리를 뜨고 에이든은 여전히 두 배우를 주시하고 있을 때,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다.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던 서준이 입을 열었다.

“이번엔 제대로 해봐요. 에반.”

“제대로? 속도는 이제 원래 속도지 않아?”

“진 나트라랑 쉐도우맨으로서요.”

액션 그 자체로도 재미있긴 한데, 역시 연기하면서 하고 싶었다.

‘그러면 더 재미있겠지!’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서준의 제안에 에반 블록도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럴까?”

“대사는 빼고 해요.”

“그래.”

서준과 에반 블록이 마주 보고 섰다.

허리와 어깨를 펴고 에반 블록을 내려다보는 서준의 모습은 마치 딱딱한 갑옷을 두르고 있는 기사 같았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중급이 발동합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중급]

네크로맨서의 힘으로 부활한 제국의 기사입니다.

엄격한 기사의 위엄을 내보입니다.

검 사용 시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주의] 범위 안의 생명체가 공포로 인해 둔해집니다.

[주의] 범위 안의 생명체가 마기에 시선을 빼앗깁니다.

이대로 능력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서준은 지체하지 않고 마기를 조절했다. 서준의 몸을 갑옷처럼 감싸고 있던 검은색 마기가 점점 흐릿해졌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중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하급)이 발동합니다.]

[(악)데스 나이트의 기사도-하급]

네크로맨서의 힘으로 부활한 제국의 기사입니다.

엄격한 기사의 위엄을 내보입니다.

검 사용 시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희미한 마기가 흘러나옵니다.

그리고 두 배우는 빌런 진 나트라와 히어로 쉐도우맨이 되었다.

“응?”

바뀐 분위기를 제일 먼저 알아차린 건 리첼 힐이었다. 아무래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쉐도우맨과 진 나트라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합을 맞추던 리첼 힐이 멈추자 스턴트맨도 트레이너들도 리첼 힐이 바라보는 곳을 바라보았다.

서준과 에반 블록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까와 똑같은 자세였는데 뭔가 달랐다. 모두 눈을 깜빡이며 두 배우를 보았다.

수많은 병사를 무찌르고 진 나트라를 쫓아온 쉐도우맨과 막 떠나려던 진 나트라.

뒤에 이어질 행동이 다른 만큼 준비 자세도 달랐다.

대사는 하지 않고 에반 블록이 봉을 휘둘렀다. 서준과 떨어져 있어 닿지 않았지만, CG로 뻗어 나간 그림자가 진 나트라에게 향할 장면이었다.

‘피하고.’

오른발을 한 걸음 물러서는 것으로 쉐도우맨의 그림자를 피한 진 나트라가 움직인다.

진 나트라가 된 서준이 에반 블록의 옆구리 쪽으로 봉을 휘둘렀다. 탕! 하고 봉과 봉이 부딪혔다. 콘티대로, 계획대로 에반 블록이 막은 것이었다.

잠시 에반 블록과 서준의 눈이 마주쳤다.

여기선 클로즈업 샷이 들어갈 터였다.

서준이 다시 봉을 멋들어지게 돌려 반대쪽을 후려쳤다. 당연히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에반 블록이 공격을 막았다.

진 나트라의 공격 세례를 그저 막기만 하는 쉐도우맨.

서준은 봉을 짧게 쥐었다가 길게 쥐었다가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물론 에반 블록이 다치지 않게 정확한 합이 맞춰지도록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진 나트라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타탁!

탕! 탕!

수차례의 공방이 오갔다.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에반 블록이 웃었다.

서준은 이미 연기에 푹 빠진 듯했다. 아까의 눈을 반짝이던 서준은 자취를 감추고 냉정한 눈빛의 진 나트라가 눈앞에 있었다.

등골이 오싹했다.

서준이 휘두르는 봉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액션 장면은 그 어떤 것보다 서로 간의 믿음. 정해진 순서의 액션이 진행될 거라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리고 에반 블록은 연기에 푹 빠진 서준이라도 확실히 합을 맞출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것보다…….’

분위기였다. 서준의 분위기.

묵직한 어둠 같은 서준의 분위기가 에반 블록의 발밑까지 침범한 것 같았다.

이건 진 나트라였다.

‘아니, 강해졌나?’

봉을 휘둘러 진 나트라의 공격을 다시 한번 막은 에반 블록은 쉐도우맨2의 진 나트라를 떠올렸다. 그리고 어셈블2의 쿠키영상에서 강제계승한 진 나트라를 떠올렸다.

진 나트라가 강해지고 있었다.

대단했다.

성장한 강함까지 연기해 낼 줄은 몰랐다.

속으로 감탄하던 에반 블록의 눈이 진지해졌다. 지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탕!

쉐도우맨과 진 나트라가 부딪쳤다.

끝날 것 같았던 공방이 다시 처음부터 이어졌다.

“와아……”

서준과 에반 블록이 아니라, 진 나트라와 쉐도우맨이었다.

CG도 없었고 복장도 달랐지만, 눈빛과 표정만은 그랬다.

“대단한데?”

“역시 이래서 배운가?”

넋을 놓고 보던 스턴트맨들과 트레이너들은 두 배우가 처음으로 되돌아가, 거리를 벌리자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감탄했다. 아까와 다른 액션은 하나도 없는데 박진감이 넘쳤다.

탕! 탕! 두 개의 봉이 부딪히는 소리가 훈련장을 울렸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 그리고 서준 리까지 모였다는 소식에 훈련장 근처를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그 소리에 하나둘 몰려왔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어도 궁금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알음알음 서준의 신체 능력도 알려지는 중이었다. 놀랄 만한 기록에 반쯤은 안 믿고 있지만 말이다.

사람이 많아지자 훈련장은 시끄러워졌지만 서준과 에반 블록의 집중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한번.

탕!!

두 개의 그림자가 부딪혔다.

* * *

“저 분위기까지 따라 하진 못할 것 같지?”

케빈의 말에 김재연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저 연습인데도 불구하고 서준과 에반 블록의 분위기는 대단했다.

‘아니.’

서준의 쪽으로 자꾸만 시선이 갔다.

등골이 오싹하고 무섭고, 손에 땀이 찰 정도로 두려운데도 묘한 마력 같은 것이 시선을 잡아끄는 듯했다.

“나야 진짜 잠깐잠깐 찍지만…… 재연. 넌 나보다 많이 나올 거 아니야?”

싸우는 것마저도 저렇게 ‘나 진 나트라요’라고 아우라를 뿜어대고 있는데, 스턴트맨이 화면에 나타나는 다음 순간 아우라가 사라진 평범한 진 나트라가 싸우고 있다면 다들 무슨 생각을 할까.

김재연은 저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었다.

‘차이를 어떻게 메꿔야 하나.’

버스 사고는 액땜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 * *

“그럼 여기까지 하자.”

“네!”

한바탕 리허설을 끝낸 서준이 활짝 웃었다. 땀이 좀 나는 것 같은데 괜찮았다. 몸을 마음껏 움직인 데다가 연기까지 할 수 있어서 기분도 상쾌했다.

[(선)중급천사의 부채-중급이 발동됩니다.]

마기를 정화하는 것도 잊지 않은 서준이 즐겁게 웃었다.

“이 장면은 잘 찍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에반?”

“그래. 나중에 다른 장면도 같이 연습해 보자.”

“네!”

짧은 리허설 무대가 끝나고 사람들은 얼른 흩어졌다. 안다호가 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물을 마시고 있던 서준은 남아 있는 사람 중 김재연을 발견했다.

“재연이 형. 오늘은 늦게 왔네요? 근데 무슨 일 있어요?”

늘 밝은 얼굴이었는데 오늘은 까만 그늘이 져 있었다. 서준의 걱정에 고개를 저으려던 김재연이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서준이 액션은 대신할 수 있어도 연기는 못 따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그 차이가 확실히 보일 것 같은데 어쩌지?”

응?

이해를 못 한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김재연은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김재연은 에반 블록의 스턴트맨인 케빈을 불렀다. 김재연의 부탁에 김재연의 생각을 이해한 케빈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재연과 케빈이 조금 전 서준과 에반 블록처럼 마주 보고 섰다. 두 사람도 이 장면의 액션은 이미 알고 있었다.

김재연이 서준처럼 케빈의 옆구리를 향해 봉을 휘둘렀다. 그리고 케빈이 에반 블록처럼 김재연의 공격을 막았다.

아까와 똑같은 공방이 오갔다. 확실히 똑같은 액션에 다들 알 수 있었다.

저건 진 나트라가 아니었다.

* * *

저녁 식사가 끝나고 김재연은 서은혜가 바리바리 싸 준 음식들을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차가 없어서 같이 머무는 경호원이 데려다주었다.

“쓸 만한 능력을 찾으니 또 다른 게 문제네.”

그렇다고 스턴트맨의 연기 때문에 서준이 힘을 빼고 연기할 수도 없었다.

“쉐도우맨3만 스턴트맨하고 찍는 것도 아니니까 해결책을 찾아야 해.”

앞으로도 많고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촬영하고 싶은 서준은 얼른 폭신한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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