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19화
서준과 에이든, 그리고 안다호가 본관의 측정실로 향했다.
오.
병원이나 프로 선수들이 사용할 것만 같은 신기한 기계들에 안다호와 서준의 눈이 빛났다. 에이든이 설명했다.
“영화를 찍다 보면 가끔 부상을 당하는 스턴트맨들이 있거든. 얼마나 다쳤는지 어디를 중점으로 재활해야 할지 정밀측정실 자료로 파악해.”
액션 트레이닝 센터는 화려한 액션 장면이 많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기본이 되는 스턴트맨을 공급하는 곳이었다.
훈련 시설도 좋을뿐더러 촬영 중 부상을 당한 스턴트맨들을 위한 재활 프로그램도 잘 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정밀측정실이었는데 과거에 입력된 정보와 현재의 정보를 비교해 재활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럼 다시 처음부터 측정 시작할게.”
“네!”
측정실 직원의 도움을 받아 서준은 차례로 하나하나 체크했다. 유리창 건너 지켜보던 안다호가 물었다.
“어떻게 측정되는 겁니까?”
“1부터 20까지 점수로 나옵니다. 20점 만점이죠. 스턴트맨들이 성인들이라 성인 기준이라서…… 준이 14살이죠? 그럼 만점은 13, 14점 정도 되겠네요.”
에이든이 웃었다.
“아무래도 배우라 만점 받긴 힘들겠지만요. 스턴트맨 중에서도 20점 만점은 드뭅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서준의 운동신경을 알고 있는 안다호는 만점은 거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약에 만점을 받는다면 어떨까요?”
“글쎄요. A3에서 테스트한 걸 보면 민첩성, 유연성이 가능성이 큰데…… 근데 아무리 만점이라고 해도 하나만 받으면 쓸데없거든요. 운동이란 게 균형이 중요합니다. 민첩하다고 해도 지구력이 개떡 같으면 못 써먹죠.”
폐활량 테스트를 끝낸 서준이 동체 시력 테스트를 시작했다.
모니터에 뜬 점들을 좇는 서준의 시선을 카메라 센서가 체크했다. 천천히 움직이던 점들이 점점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준의 눈동자도 거기에 맞춰 빠르게 움직였다.
[성공]
[성공]
[성공]
모니터에 뜨는 결과에 측정실 직원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이든의 답에 안다호가 다시 물었다.
“전부 만점이라면요?”
재미있는 농담을 들었다는 듯 에이든이 웃었다.
“바로 운동시켜야죠. 야구든 미식축구든 농구든. 체격이 따라줘야 하겠지만 14살이면 아직 성장기고 지금부터 키우면 슈퍼스타는 확정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결과가 나왔다.
결과지를 뽑은 측정실 직원들도, 트레이너 에이든도, 제법 기대하고 있던 안다호도 할 말을 잃었다.
종이를 받아든 서준이 활짝 웃었다. 테스트가 신기해서 열심히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
“다호 형! 저 만점이에요!”
만점이었다. 그것도,
‘……14점이 아니라 20점이라고?’
성인 기준 만점인 20점이었다. 그것도 모든 테스트가.
액션 트레이닝 센터에서도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는 기록에 너무 놀라 모두 경악하는 가운데 서준만 천장까지 닿은 그래프를 보며 기뻐했다.
“엄마 아빠한테 말해줘야지!”
안다호도 대충 짐작하고 있던 서준의 운동신경이 숫자로 드러나자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에이든은 테스트 결과에 이마를 짚었다. 결과지를 들고 있는 손이 덜덜 떨렸다.
‘이게 14살의 운동신경이라고? 어렸을 때부터 훈련한 운동선수면 또 몰라…… 얘 배운데? 할리우드 배운데? 아니, 근데 이게 훈련한다고 나오는 수치야? 14살이라고……!’
고개를 들어 휴식을 취하는 서준을 바라보다 다시 테스트 결과지를 바라본 에이든은 저도 모르게 내뱉고 말았다.
“……이거 공개되면 난리 나는 거 아니야?”
국가대표를 제안받았다는 게 더는 농담으로 느껴지지 않는 에이든이었다.
* * *
짧게 하려던 테스트가 길어졌다. 오전 시간을 통째로 테스트에 쓴 서준과 안다호는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다.
“점심 맛있게 먹었어?”
“네! 에이든은요?”
“나도 간단히 먹었어.”
점심도 건너뛰고 테스트 결과지를 보며 3주간의 계획을 세운 에이든의 얼굴은 왠지 초췌하면서도 시원해 보였다.
서준은 눈을 반짝이며 테스트 결과를 기다렸다. 서준과 안다호가 생각하기로는 난이도 3은 당연했지만 에이든의 생각은 다를지도 몰랐다.
“난이도 3까지 모두 촬영할 수 있을 것 같아.”
“네! 열심히 할게요!”
기뻐하는 서준을 보며 에이든이 쓴웃음을 지었다.
난이도 3이 뭐냐.
성인이 이런 피지컬을 가지고 있었으면 난이도 5까지 훈련했을 거다. 난이도 4의 몇 장면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던 에이든은 한숨을 쉬며 원래 계획대로 진행했다.
“기본 피지컬이 받쳐주고 1단계의 응용이 2단계, 2단계의 응용이 3단계니까. 3주면 다 배울 수 있을 거야.”
콘티 장면을 외우고 반복하면 촬영 전까지는 완벽하게 배울 수 있을 터였다.
“네!”
잔뜩 신이 난 서준의 모습에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오늘은 난이도 1이다. 그럼 먼저 시범을 보여줄게.”
난이도 1은 가볍게 무기를 휘두르고, 공격을 피하는 것이었다.
“빌런 같은 경우에는 일반인을 상대할 때 공격이지. 어설픈 일반인의 공격에 당할 리가 없으니 가볍게 피하는 거야. 그게 더 멋있거든.”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기울이며 가볍게 피하는 액션을 보여주는 에이든의 모습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액션은 원래 대등한 상대여야지 치열한 거야. 그건 나중에 배울 거고.”
“네.”
“나트라인들의 무기가 그림자라는 설정이라서 조금 애매하긴 해. 늘어났다가 줄어드니까, 봉, 창, 검까지 길이도 모양도 다양하거든. 진짜 무기라면 힘들겠지만, 소품이라 가벼우니까 괜찮을 거야.”
게다가 피지컬이 받쳐주니까.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에이든이 미리 준비한 두 개의 봉을 들고왔다. 하나를 서준에게 건네주었다. 봉은 예상보다 가벼웠다.
“일단 휘두르기.”
위에서 아래로.
에이든은 봉으로 허공을 갈랐다. 빠른 속도에 쉭- 하고 바람 소리가 들렸다. 다음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 사선으로. 그리고 반대로 왼쪽 위에서 오른쪽 아래 사선으로.
오,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봉으로 바닥을 짚은 에이든이 말했다.
“준. 검도도 배웠다고 들었는데?”
“네. 지금은 안 하지만요.”
“길이가 좀 길지만, 기본적으로 목검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난이도 1은 봉, 창, 검을 휘두르는 거야. 일주일 동안 하기엔 좀 지루하겠지만 정확한 곳에서 멈추는 게 상대방도 안 다치니까 잘 익혀야 해. 아무리 소품이라고 해도 맞으면 아프니까.”
“네!”
그 후 에이든은 봉과 창, 검을 차례로 바꿔가며 콘티에 나온 장면을 직접 보여주었다.
“준은 연기도 해야 하니까. 여기선 CG가 들어갈 거야.”
서준은 콘티 하나하나마다 설명을 해주는 에이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여기서 경찰이 총을 쏘고.”
홀로 훈련하던 김재연까지 잠시 부른 에이든은, 때론 진 나트라가 때론 일반인이 되어 몸소 장면을 재연해주었다. 콘티와 비교해 보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봉, 검, 창.
콘티마다 진 나트라의 무기는 자꾸만 바뀌었다. CG를 넣을 장면은 안다호가 보기엔 좀 민망해 보이기도 했지만, 서준은 머릿속으로 장면을 떠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자. 여기까지가 난이도 1. 어때?”
“괜찮을 것 같아요. 타이밍이 문제지만요.”
“그래. 난이도 1이든 5든 타이밍이 문제지. 그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서 다 같이 연습하는 거고. 먼저 무기를 손에 익히고 재연과 함께 콘티 연습까지 할 계획이야.”
“네!”
씩씩한 서준의 대답에 에이든이 씨익 웃었다.
“오늘은 간단하게 휘두르기만 하자.”
“네! 잘 부탁합니다!”
그리고 두 시간도 안 돼 에이든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나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건가?”
어마어마한 운동 천재를 썩히고 있는 게 아닐까?
겨우 두 시간.
봉을 휘두르고 있던 서준은 거의 봉술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서준의 모습에 김재연과 다른 스턴트맨들은 열렬히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난이도 1을 배우는 데 일주일도 안 걸릴지 몰랐다.
* * *
첫날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대를 잡은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새까만 경호 차량이 앞과 뒤를 따랐다.
“어땠어?”
“엄청 재미있었어요. 에이든이 저 잘한대요. 그래서 내일은 검이랑 창 둘 다 배우기로 했어요.”
“내가 봐도 잘하는 것 같더라. 마지막에 봉 돌리면서 던졌다 받는 거, 장난 아니던데? 어디서 본 거야?”
분명 가르쳐 준 건 양손으로 봉 돌리기, 한손으로 봉 돌리기였는데, 서준은 응용까지 했다.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도는 봉을 던졌다 잡는 서준의 모습에 얼이 빠져있던 에이든의 얼굴을 떠올린 안다호는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에서 봤어요. 중국 영화요.”
“중국 영화가 무술이 많이 나오긴하지.”
아직도 손에 남아있는 감촉에 허공을 휘두르듯 손짓을 몇 번 하던 서준이 등받이에 등을 푹 기대고 입을 열었다.
“근데 다호 형. 라이언 감독님은 왜 저한테 콘티를 안 보내주셨을까요?”
약간 불만이 섞인 듯한 서준의 질문에 안다호는 작게 웃었다.
“미리 연습할 것 같아서겠지. 콘티 받았으면 당장 사장님한테 가서 액션스쿨 보내달라고 했을 거잖아.”
“그…… 건 그렇죠.”
음. 아무래도 그랬을 것 같았다.
“다친다고 액션스쿨 안 보내주면 연습실에서 혼자 연습했을 거고.”
“하하.”
“그러다 다치면 큰일이지. 라이언 감독님이 잘 생각하셨어.”
“하하하하.”
걱정이 돼서 하지 말라고 하면 실망할 서준의 모습이 뻔히 보이니 말리기도 힘들었을 거다. 뭐, 그래도 말렸을 테지만. 안다호는 라이언 감독의 결정이 참 고마웠다.
안다호의 말에 안 다칠 자신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고 다쳐도 금방 낫는다고 말할 수도 없는 서준은 그저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 * *
학교 숙제를 끝내고 선생님께 메일을 보낸 서준은 잠자리에 들었다. 폭신폭신한 베개에 머리를 대자 뒤통수에 새겨진 [여름곰의 겨울잠]이 저절로 발동되었다. 10초도 안 돼 잠든 아들에게 이불을 잘 덮여준 서은혜는 웃고 말았다.
서준이 눈을 떴다.
앞에는 선의 도서관. 뒤에는 악의 도서관.
그 중앙에 서 있던 서준이 발걸음을 옮겼다. 악의 도서관 쪽이었다.
“오늘은 찾았으면 좋겠네.”
악의 능력은 그 여파가 너무 강해서 중급까지 도서관 문을 열 수 있었지만 사용하지는 않고 있었다. 다행히 중급 문을 열게 되면서 가능해진 [스킬의 일시적 하락]은 악의 능력에도 통했다.
서준은 악의 도서관의 책들을 둘러보았다.
“방울 도깨비 같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악령’을 찍을 때 사용했던 능력.
[(선)방울 도깨비의 김서방 놀리기-하급-]
방울 도깨비의 기운이 뿜어져 나옵니다.
기운의 형태를 바꿀 수 있습니다.
무당 방울의 힘으로 아주 드물게 김서방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발동 : 김서방, 놀자
취소 : 김서방 놀리기 끝
최대만 감독과 이지석, 그리고 소수의 스태프가 신과 같은 황금빛 도깨비불을 본 그때처럼 눈에 보이는 기운이었으면 했다.
“진짜 진 나트라가 그림자를 움직이는 것처럼.”
서준의 눈이 빛났다.
진 나트라의 마지막 이야기를 멋지게 마무리하고 싶은 서준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한 후 다시 책더미 속에 파묻혔다.
* * *
“응? 별일이네?”
센터의 경비원이 모자를 살짝 들며 정문을 통과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킴? 오늘은 왜 이렇게 늦었어요?”
“버스가 고장이 나서요. 저기부터 걸어왔습니다.”
“그것참. 고생했어요.”
경비원의 위로에 김재연이 고맙다고 인사하고 얼른 A3 훈련장으로 향했다.
할리우드 배우 이서준이 훈련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사이 서준과 김재연은 꽤 친해졌다.
‘오늘 서준이 집에 초대도 받기도 했고.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진 나트라의 스턴트맨이 된 후 계속 좋은 일만 생기고 있었다. 돈도 충분히 있었고 매일 하는 훈련도 즐거웠다.
‘오늘 버스 사고야, 뭐. 가끔 액땜도 필요한 법이니까.’
웃음을 참지 못한 김재연이 비실비실 웃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라?”
드나드는 사람이 적었던 평소와 달리 A3 훈련장은 북적북적거렸다. 센터 직원부터 스턴트맨들까지 모여 훈련장 중앙을 둥그렇게 감싸고 있었다.
조용히 훈련장으로 들어온 김재연은 구석에 서서 훈련장 중앙을 바라보고 있는 쉐도우맨팀의 스턴트맨들을 발견했다. 서준의 매니저 안다호도 그곳에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쉐도우맨과 진 나트라로서 합을 맞추면서 친해진 케빈이 대답했다.
“아. 재연 왔어? 리첼하고 에반이 왔어.”
“스케줄이 다 끝났나 봐요.”
“오늘부턴 크랭크인까진 스케줄 없대.”
“근데 다들 모여서 뭐하는 거예요?”
케빈이 웃었다.
“조금 전에 에반이랑 준이 합을 맞춰봤는데, 어마어마해서 다들 구경하러 왔어.”
“네?”
고작 두 배우가 합을 맞추는 걸 보러 모였다고?
어리둥절한 김재연의 표정에 케빈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도 나지만…… 재연. 너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더라.”
걱정 섞인 케빈의 말에 김재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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