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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18화 (21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18화

“고사?”

마린사의 부사장, 리처드 보윈이 되물었다. 페일런 박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라이언 윌 감독의 요청입니다.”

“그게 뭐지?”

한국계 미국인, 페일런 박이 고사에 관해 설명했다.

“한국 미신인데, 영화 제작이나 드라마 제작, 창업 등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기도를 하는 겁니다. 영화 같은 경우에는 사고 없이 촬영을 끝내고 흥행을 바라는 기도를 올린답니다.”

처음 들었을 때는 페일런 박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알아보니 한국에선 영화 촬영 전 꽤 하는 모양이었다. 역도 그렇고, 이스케이프도 고사를 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사진 속 고사상을 보니 어릴 때 할아버지가 가게를 열기 전 제사를 올렸던 희미한 기억이 있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웃는 돼지 머리에 깜짝 놀라 울었던 기억도 함께 떠올랐다.

페일런 박의 설명을 대충 이해한 리처드 보윈이 의자에 등을 기댔다.

“영화에 필요하면 하는 거지. 라이언 감독이 하고 싶다고 하면 하라 그래. 의미도 괜찮군. 한국에 꽤 홍보가 될 테지?”

“네. 홍보 안 해도 볼 사람은 다 보겠지만요.”

쉐도우맨3의 흥행은 걱정하지 않는 리처드 보윈과 페일런 박이 미소를 지었다.

그 이후 짧게 쉐도우맨3의 프리프로덕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부분 마린사의 쉐도우맨3 제작팀에서 알아서 할 테지만 일정이 늘어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작비였다.

쉐도우맨3처럼 규모가 큰 블록버스터는 하루가 늦어지면 엄청난 돈이 깨진다.

레드본2의 촬영이 사고로 몇 달 미뤄졌을 때, 쉐도우맨1과 그린윙1을 대신 제작할 정도였으니 말은 다했다.

그 때문에 리처드 보윈은 한 번씩 보고를 받았다.

‘뭐, 둘 다 기대 이상의 흥행이라서 다행이었지.’

설마 그 영화가 시리즈 화까지 되며 레드본과 비슷할 정도로 성장할 줄은 몰랐다. 쉐도우맨3의 수익은 레드본보다 기대하고 있었다.

“장소 협조도 거의 마무리됐고 세트장 제작도 순조롭습니다. 배우들 관리도 철저하고 파파라치를 막을 경호 인원도 충분합니다. 크랭크인까지는 계획대로 될 것 같습니다.”

10년 전 일이지만, 유난히 파파라치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그 이후 배우들의 안전에 철저한 마린사였다.

“그래. 촬영 중에도 긴장 늦추지 말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페일런 박의 보고가 끝나고 리처드 보윈이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 그 건은 어떻게 됐나?”

기대감 서린 리처드 보윈의 물음에 페일런 박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 없다고 합니다.”

“뭐, 그럴 줄 알았어.”

리처드 보윈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A3 훈련장으로 들어선 서준이 보이는 풍경에 눈을 깜빡이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보았다.

빨간색 전자시계가 [09:12]를 가리키고 있었다.

‘나도 빨리 온 것 같은데…….’

더 빨리 온 사람이 있었다.

신이나 발걸음이 빨라진 서준의 뒤를 따라온 안다호도 놀란 눈으로 스트레칭을 하는 김재연을 바라보았다.

서준의 재촉에 아침 일찍부터 나왔는데 이쪽도 만만치 않게 부지런한 것 같았다.

진 나트라의 스턴트맨, 김재연은 스트레칭 하나하나 집중하면서 하는 듯 서준과 안다호가 나타난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서준은 김재연에게로 다가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재연이 형.”

“아, 안녕. 서준아.”

화들짝 놀란 김재연이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엄청 일찍 오셨네요. 에이든은 10시에 오신다던데.”

“아, 난 원래 9시에 와. 서, 서준이 너도 일찍 왔네? 10시부터 수업 아니야?”

서준의 첫 훈련은 10시부터 시작이라 트레이너인 에이든도 10시 출근이었다.

서준의 등장에 살짝 긴장한 김재연의 물음에 서준이 헤헤 웃었다.

“맞아요. 근데 너무 기대돼서 일찍 일어나버렸어요.”

“그렇구나.”

“형도 오늘 훈련 있어요?”

“아니, 훈련은 없는데 연습 좀 하려고.”

“그렇구나. 재연이 형. 여기 탈의실이 어디에요? 옷 갈아입고 싶은데 어제 못 들었거든요.”

서준이 운동복이 든 가방을 들어 보였다.

“아, 이쪽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김재연이 서준과 안다호를 탈의실로 안내했다. 각 훈련장에 탈의실과 샤워실이 붙어 있었다.

“여기 지문 등록하면 돼. 카드 같은 거 받지 않았어?”

그 말에 안다호는 어제 센터를 나가기 전 조나단이 건네준 카드를 떠올렸다.

주섬주섬 가방에서 ‘액션 트레이닝 센터’라고 적힌 검은 카드를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어제 받았습니다.”

“10번이네요. 카드를 대고 지문을 등록하면 됩니다.”

10번 캐비닛 앞에 선 김재연이 능숙하게 도어락에 카드를 대자, 삐 소리와 함께 지문그림이 떴다.

“엄지나 검지를 올리면 돼.”

“네.”

김재연 옆에 선 서준이 그 위에 검지를 올렸다.

삑 소리와 함께 10번 캐비닛의 문이 열렸다. 심플한 겉처럼 캐비닛 안도 깔끔했다.

오.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문을 닫아 다시 검지를 대니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김재연은 카드를 안다호에게 건넸다.

“카드는 나중에 조감독님께 주시면 될 겁니다.”

“조감독님요?”

다시 검지를 도어락에 대고 있던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그 멍한 얼굴에 오히려 김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당황한 김재연이 안다호를 바라보자 안다호도 서준과 같이 의문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어…… 조나단 윌 조감독님 말이야.”

김재연의 말에 서준과 안다호가 깜짝 놀랐다.

“조나단이 조감독님이었어요!?”

“그랬습니까?!”

되묻는 서준과 안다호의 모습에 김재연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와.

다시 물어도 바뀌지 않는 대답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조나단이 중학생이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조감독이라니.

아이들의 울음소리에 울상이던 중학생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한데 조감독이라니.

“조나단이 왜 말 안 해줬지? 어제 케이크를 살 걸 그랬어요!”

“그러게. 선물도 하나 안 줬는데 말이야.”

서준은 너무 기뻐 발을 동동 굴렀다.

* * *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서준의 앞에 조나단이 서 있었다.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평소보다 반짝이는 서준의 모습에 조나단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제 카드 사용법은 안 알려준 것 같아서, 어머님께 전화해 보니 벌써 나갔다더라고. 킴이 가르쳐준 거야?”

“조나단! 왜 말 안 해줬어요?”

“응? 뭘?”

“조감독이라면서요!”

“아…….”

조나단이 쑥스러운 듯 뒷목을 매만졌다.

“아니, 삼촌이랑 같이 일하던 조감독님이 이번에 다른 영화 찍거든. 빈자리였던데다가 삼촌이 감독이니까 조카가 조감독이면 인맥으로 들어간 것 같잖아.”

“에이. 조카면서 그렇게 삼촌을 몰라요? 조나단은 라이언 감독님이 그런 사람 같아요?”

생각할 시간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그럴 사람이 아니긴 하지.”

조나단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근데 조감독이면 라이언 감독님이 조나단 실력, 엄청 믿고 있다는 거 아니에요?”

“그, 그런가?”

“와아! 조나단 대단해요!”

서준의 칭찬에 조나단의 얼굴이 거의 불타오르듯 빨갛게 변했다.

하는 일은 쉐도우맨2 때와 변하지 않아 별생각이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과 마린사 직원들이 다 아는 사람들이라서 편하게 일했지만, 해야 하는 일도, 결정해야 하는 일도 많아졌다.

어라?

몇 번 눈을 깜빡이며 기억을 되새기던 조나단 윌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거 중요한 자린가?’

라이언 윌 감독이 들었다면 이마를 싸맸을 말이었다.

* * *

어리벙벙한 조나단이 카드를 받고 A3 훈련장을 떠나고 트레이너 에이든이 출근했다.

서준이 훈련하는 동안, 안다호는 휴식 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안다호의 손에 들린 파인패드에는 킹즈 에이전시에서 전해준 일거리가 가득했다.

서준 리가 쉐도우맨3 촬영을 위해 미국에 온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일거리에 안다호의 눈이 바빠졌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에이든이 서준과 김재연을 불렀다.

먼저 김재연의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에이든이 물었다.

“연. 아픈 곳은?”

“없습니다.”

“컨디션은 어때?”

“괜찮습니다.”

다치기 쉬운 손목, 발목을 중심으로 김재연을 살펴본 에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종일 운동하는 만큼 운동 전, 운동 후 몸 상태도 중요했다.

‘일주일에 하루쯤 쉬었으면 좋겠지만.’

쉬는 날 김재연이 공원에서 혼자 운동하는 모습을 발견한 이후로는 그냥 자신의 시야 안에 두는 쪽을 선택한 에이든이었다.

“그럼 오늘 분량 쉬엄쉬엄하고.”

“네.”

에이든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준은 테스트부터 해볼까?”

“테스트요?”

“라이언 감독님이 진 나트라의 액션 장면을 세세히 나눠주셨거든.”

에이든이 건네는 종이뭉치를 받아든 서준이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본격적인 운동을 하기 전 스트레칭을 하고 있던 김재연은 팔랑팔랑 넘어가는 저 종이가 뭔지 알고 있었다.

쉐도우맨3에 나오는 진 나트라의 액션 장면 콘티였다.

“무술감독님이랑 의논해서 정하셨대. 난이도 1부터 난이도 5까지.”

“아하.”

콘티를 읽던 서준이 에이든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콘티의 순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더니, 액션 난이도로 나눈 모양이었다.

“1이 가장 쉬운 거고 5가 가장 어려운 액션이지. 4와 5는 확실하게 연이 맡을 거야.”

다시 난이도 1부터 5까지를 훑어보던 서준은 최대한 본인이 연기하길 바라는 배우를 떠올렸다.

“에반은 어디까지 해요?”

잠시 생각하던 에이든이 입을 열었다.

“에반은 4까지 하지. 5도 간간이 하긴 하는데 열 장면이 있다면 한둘 정도?”

“그렇구나.”

서준도 4 그리고 5까지 자신이 연기하고 싶지만, 그건 자신의 욕심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일단 오늘 테스트로 2까지 할건지 3까지 할 건지 정할 예정이야. 훈련 스케줄도 짜야 하니까. 물론 실력이 빨리 늘면 훈련 중에도 바뀔 수도 있어.”

“네.”

“그럼 스트레칭부터 할까?”

모든 운동의 시작과 끝은 스트레칭. 에이든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든을 따라 스트레칭을 하는 서준의 모습에 김재연과 에이든이 눈을 빛냈다.

나이가 어려 몸이 유연하다고 하지만 생각보다 더 잘했다.

에이든은 라이언 감독에게서 받은 서준 리의 프로필을 떠올렸다. 서준이 배운 운동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체조 선수처럼 유연한 서준의 몸에 김재연은 인터넷에 떠돌던 [이서준 운동 천재 설]을 떠올렸다.

태권도를 배우면 태권도 국가대표를 제의받고, 축구를 배우면 축구 국가대표를 제의받고, 이번 이스케이프 촬영 때는 양궁 국가대표를 제의받았다는 ‘배우’ 이서준.

“어쩌면 무난히 난이도 3 액션까지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한국에서 서준이는 ‘운동 천재’라고 소문났거든요. 운동만 하면 국가대표를 제안받아서요.”

“오. 국가대표? 운동 신경은 꽤 있나 보네.”

농담으로 받아들인 에이든이 피식 웃었다.

김재연이 볼을 긁적였다. 자신도 반쯤만 믿고 있긴 했다. 이번 테스트로 그게 진짠지 아닌지 드러날 것이다.

“그럼 먼저 악력 테스트부터 하자.”

“네!”

에이든이 준비해 온 악력 측정기를 서준에게 건넸다.

오른손, 왼손 번갈아 악력을 측정한 에이든이 놀란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다음은 유연성.”

이미 스트레칭 단계에서 확인했지만, 서준의 유연성은 대단했다.

몇 년 운동한 체조 선수처럼 보이는 서준의 모습에 훈련하고 있던 김재연과 다른 스턴트맨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았다.

“애들이 유연하다고 해도 저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그러게.”

테스트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균형감각. 민첩성. 반응 속도. 지구력.

“자, 자, 잠깐만.”

A3 훈련장에서 간단한 테스트만 하려고 했던 에이든은 점점 드러나는 서준의 운동 신경에 경악했다.

자신이 적은 숫자가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에이든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본관에 제대로 된 측정실이 있거든.”

“네?”

“거기서 한번 받아보자. 측정.”

측정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진 서준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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