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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17화 (217/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17화

액션 트레이닝 센터, A3 훈련장.

여기저기서 기합소리와 고함, 타격음이 들려 시끌벅적했다.

넓은 훈련장에 4명의 스턴트맨과 그들을 훈련시키는 트레이너들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쉐도우맨의 스턴트맨과 벨 나트라의 스턴트맨, 그리고 튤 나트라의 스턴트맨.

그리고 진 나트라의 스턴트맨이 있었다.

“쓰리, 투. 원!”

트레이너의 신호와 함께 와이어에 매달린 남자가 2층에서 뛰어내렸다. 그저 바닥으로 떨어지는 모습이 아니라 사냥감을 노리듯 빠른 속도로 창처럼 매트 위에 내려꽂혔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모습을 쳐다보던 트레이너는 착지 후 옆으로 기우는 남자의 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연.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어. 몸이 굳어 있으면 다치기 쉽다고.”

“죄송합니다.”

김재연이 머리를 긁적였다. 착지할 때 발을 잘못 디딘 모양이었다. 균형이 잡히지 않은 몸이 옆으로 쓰러질 뻔했는데, 와이어 때문에 털썩 주저앉진 않았다. 어정쩡한 모습으로 있던 김재연이 몸을 똑바로 세웠다.

“발목은 괜찮아?”

트레이너의 말에 김재연은 발목을 돌려보았다. 오른쪽 세 번 왼쪽 세 번. 익숙하게 발목과 무릎, 다리까지 확인한 김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조심하라고. 이제 그 몸은 너 혼자만의 몸이 아니야.”

김재연이 입고 있는 와이어 조끼를 벗겨주며 트레이너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조끼에서 벗어나 스트레칭을 하던 김재연이 하하 웃었다. 스턴트맨 계약서에 사인을 했을 때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마린사에, 쉐도우맨, 라이언 감독님. 게다가 전 세계 쉐도우맨 팬들까지. 모두 개봉만 기다리고 있다고. 쉐도우맨을 촬영하게 돼서 기쁜 건 알겠는데 다치면 말짱 꽝이야.”

“네. 알고 있습니다. 촬영 때까지 조심하겠습니다.”

“놉. 촬영 끝날 때까지 조심해. 제일 위험한 건 촬영 중이니까. 촬영에 익숙해졌다고 방심하는 배우들이 꼭 하나씩 있거든.”

단호한 트레이너의 말에 김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잠깐 쉬고 다시 하자.”

김재연은 훈련장 한편에 마련된 휴식 장소에서 숨을 골랐다. 트레이너가 김재연에게 수건과 물통을 건넸다. 수건으로 땀을 닦고 물을 마신 김재연이 숨을 내쉬었다.

“침착하고 유연하게. 잊지 말라고.”

“네. 감사합니다.”

끝까지 조언하는 트레이너의 모습에 주위에 있던 스턴트맨들이 질린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김재연으로서는 이런 한 마디 한 마디가 달갑기만 했다.

트레이너가 다른 스턴트맨에게로 떠나고 홀로 남은 김재연은 잠시 숨을 고르다 눈을 감았다. 두근두근 심장이 뛰었다. 너무 뛰어서 몸 밖까지 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힘들어서 뛰는지 배역을 맡아서 너무 기뻐서 뛰는지 모르겠다.

‘결정된 게 벌써 몇 달 전 일인데…….’

아직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자기 자신의 모습에 김재연은 작게 웃고 말았다.

‘하지만 쉐도우맨이라고. 마린사……!’

오디션 결과가 나오고 얼마나 울고 웃었는지 아무도 모를 터였다. 계약서를 쓸 때까지는 매일같이 오류였다, 실수였다, 다른 스턴트맨이 뽑혔다 같은 악몽을 꾸기도 했다. 정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하루하루였다.

눈을 뜬 김재연이 두 손을 쥐었다 폈다. 몸이 굳어 있는 게 확연하게 느껴졌다. 이런 몸으로 훈련했다가는 다칠 게 뻔했다.

‘조심하자.’

자신의 몸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긴했다. 하지만 김재연은 그 말을 온전히 믿지 않았다. 대체하기 어렵다고 해서 아예 대체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었다.

쉐도우맨 측에서 말하진 않았지만, 김재연이 다칠 때, 스턴트를 대신할 사람이 적어도 2명은 더 있을 터였다.

‘이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내가 조심해야 해.’

김재연은 각오를 다지며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연! 라이언 감독님 오셨어!”

“넵!”

트레이너의 부름에 김재연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겨우 진정시켰던 심장이 감독의 부름에 다시금 쿵더쿵 뛰었다.

* * *

“감독님. 조나단. 오늘 괜찮으시면 우리 집에서 저녁 드실래요?”

간질간질한 분위기가 가라앉고 서준이 말했다.

“저녁?”

“네. 환영 파티랄까, 에반하고 리첼도 오기로 했어요.”

이틀을 푹 쉬고 오늘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라이언 감독님에게도 여쭈어보라는 엄마의 말을 떠올린 서준이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에게 말했다.

서준의 물음에 라이언 감독과 조나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도 드려야 하니 가야지.”

“나도 갈게.”

흔쾌히 대답하는 두 사람에 서준은 휴대폰을 꺼냈다.

“잠시만요.”

엄마는 조나단이 있는 걸 모르니, 서준은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

<라이언 감독님 오신대!

<조나단도 있어서 같이 가기로 했어!

>그래? 그럼 음식을 더 준비해야겠네!

서준이 서은혜에게 연락하고 안다호가 라이언 감독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A3 훈련장에 도착했다.

“A3하고 A4 훈련장을 쉐도우맨이 쓰고 있는데 A3는 주연 배우들과 주연 배우들의 스턴트맨들이 사용하고 A4는 그 이외의 스턴트맨들이 사용하고 있어. 준은 앞으로 여기서 훈련하면 돼.”

조나단의 설명에 안다호가 물었다.

“이용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까?”

“훈련장 이용 시간하고 같아요. 고난도의 액션 같은 경우에는 트레이너들이 있을 때만 할 수 있지만 준은 그렇게 어려운 건 없으니까 마음대로 사용해도 됩니다.”

그 말에 서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A3 훈련장의 문이 열렸다.

서준과 안다호가 감탄하며 훈련장 안을 둘러보았다. 훈련장은 넓었고 천장이 높았다. 알 수 없는 기계들과 장치들도 여기저기 있었다. 한국 액션스쿨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히어로들 훈련장 같아요.”

“일반인이 보면 히어로랑 다를 바가 없지.”

자신과 눈이 마주친 트레이너에게 손짓한 라이언 감독이 말을 이었다.

“내일부터는 준도 여기서 훈련할 거다. 처음에는 기초를 배우고 그 후에 무기를 휘두르는 법이랑 짜인 합을 맞출 계획이야.”

잠시 서준을 보던 라이언 감독이 말을 이었다.

“기초 훈련은 지루할 거고 무기를 휘두르는 것도 합을 맞추는 것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을 거다. 생각보다 훨씬 지치고 힘들겠지. 생각처럼 몸이 안 따라 줄 수도 있고.”

겁을 주듯, 서준이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늘어놓는 라이언 감독의 말에 조나단과 안다호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조금은 겁을 먹을 줄 알았는데 서준의 얼굴은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괜찮아요. 중학생이라도 프로 선수들은 힘들게 운동하잖아요. 저도 프로 배우예요.”

서준은 연기를 위해서라면 그 힘듦마저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니, 그 힘듦마저도 즐겁고 행복했다.

자신의 말에 오히려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는 서준의 모습에 라이언 감독은 물론이고 조나단과 안다호까지 웃고 말았다.

“근데 제 스턴트맨은 누구예요?”

스턴트맨처럼 보이는 사람이 세 명 있었지만, 한 명은 쉐도우맨2를 촬영할 때 봤던 에반 블록의 스턴트맨이었고 한 명은 리첼 힐의 스턴트맨이었다. 모르는 얼굴의 남자는 서준보다 덩치가 있었다.

“두 사람은 봤지? 저 배우는 튤 나트라의 스턴트맨이야. 아 참. 진 나트라의 스턴트맨, 한국인이야.”

조나단의 말에 서준과 안다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교포요?”

“아니. 3년 전에 한국에서 왔대.”

조나단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준의 눈에 구석에서 걸어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들어왔다.

라이언 감독을 먼저 발견하고 인사를 하려던 두 사람이 서준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준이 있는 줄은 몰랐던 것 같았다.

조나단이 웃으며 두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이쪽은 진 나트라의 액션을 맡은 에이든 트레이너야. 촬영 전에 할 훈련도 쉐도우맨 촬영 동안의 액션 지도도 에이든이 해주실 거야.”

“안녕하세요. 서준 리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에이든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놀란 표정을 가라앉힌 에이든이 손을 내밀었다. 서준도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이쪽은 진 나트라의 스턴트맨, 재연 킴이야.”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재연 킴, 아니, 김재연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말 편하게 하세요. 앞으로 같이 훈련할 거잖아요.”

서준의 말에 김재연은 잠시 머뭇거리다 어색하게 웃었다.

“그, 그럼 그럴까?”

“재연이 형이라고 불러도 되죠?”

“물론이지. 서, 서준아.”

서준아…… 라니!

미국에 올 때까지만 해도, 아니, 스턴트맨이라는 꿈을 가졌을 때만 해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들었으면 깜짝 놀랐을 거다. 벅참에 김재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김재연은 들뜬 마음을 열심히 숨겼지만 직업 특성상 눈썰미가 좋은 배우와 매니저, 감독과 트레이너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인사를 마치고 김재연은 다시 에이든과 함께 훈련을 시작했다. 서준이 본다는 생각에 흩어지려는 집중력을 애써 다잡은 김재연이 몸을 움직였다.

오.

김재연의 화려한 움직임에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 * *

그날 저녁.

서준의 숙소에 쉐도우맨팀이 모였다. 서은혜와 리첼 힐, 에반 블록이 모여 만든 요리들로, 넓은 식탁 위에는 빈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센터는 재미있었어?”

“응! 엄청 재밌었어. 아, 진 나트라 스턴트맨 있잖아. 한국인 형이었어.”

“그래?”

한국인이라는 소리에 서은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서준을 따라 여러 작품을 함께 촬영하는 동안, 할리우드에서는 촬영 때문에 한국인을 만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직접 빚은 만두를 먹던 에반 블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할 때 봤는데 생각보다 잘했습니다. 제가 훈련 있던 날마다 마주친 걸 보면 성격도 성실한 것 같고요.”

에반 블록의 말에 삼겹살을 쌈 싸 먹고 있던 리첼 힐이 고개를 갸웃했다.

“엉? 너도? 나도 갈 때마다 본 것 같은데. 그 사람, 진짜 매일 훈련하는 거 아니야?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안 좋을 텐데.”

걱정 어린 리첼 힐의 말에 서준이 김재연의 모습을 떠올렸다.

‘힘든 기색은 없던데.’

“한국인이라니, 어떻게 찾은 거예요?”

서은혜의 질문에 스테이크를 커다랗게 잘라 입에 넣어 씹고 있던 조나단이 대답했다.

“오디션을 했어요. 준과 완벽하게 똑같은 체격과 실루엣을 찾기는 힘드니까 가장 실루엣이 비슷한 배우 중에 가장 실력이 뛰어난 사람을 골랐죠. 준이 성장기라 키도 고려했고요. 실력은 믿어도 될 거예요.”

서은혜의 얼굴을 살핀 라이언 감독이 말을 이었다.

“성격도 문제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가끔 훈련장에서 본 모습도 좋았고. 트레이너의 평도 좋았습니다.”

서준과 함께 훈련하고 함께 촬영할 사람이라 라이언 감독도 주의해서 뽑았다. 나쁜 영향을 끼칠지도 몰라 마린사까지 이용해 여러모로 살펴보았다.

“저도 봤는데 괜찮은 사람 같았습니다.”

라이언 감독와 안다호의 말에 서은혜가 안심한 듯 미소를 지었다.

“다행이네요. 서준아. 다음에 형 만나면 물어봐. 밥이나 한번 같이 먹게.”

“응! 알았어.”

미트볼이 잔뜩 들어간 스파게티를 흡입하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훈련이라. 처음은 엄청 힘들다? 각오해야 할걸?”

리첼 힐의 말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발갛게 상기된 뺨과 반짝이는 눈이 내일 있을 훈련에 대한 기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런 서준의 모습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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