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15화
이스케이프 개봉 3주째.
플러스+에 ‘이스케이프 메이킹 필름’이 공개되었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에게 대본을 보내게 된 이야기. 번역을 서준이 직접 했다는 것. 그리고 지금 비밀리에 들어와 한국에 있다는 사실까지.
-으아아아. 내가 저기 편의점에서 일했다고!
=ㅋㅋ 글 봤음.
=진짜 아쉽겠다.
촬영장에 나타난 세 배우를 보고 깜짝 놀라는 스태프들의 모습에 시청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저랬는데.
-나도. 너무 놀라서 소리도 못 지름.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연기하는 모습. 박도훈과 이지석, 에반 블록이 함께 연기하는 모습이 나왔다. 한국인 스태프들과 감독이 그 주위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랄까. 배우도 스태프도 전부 한국인인데 둘만 외국인이잖아. 우리나라 배우가 할리우드에 가면 이런 느낌일까?
=이런 느낌은 아닐 듯. 이름값이 다르잖아.
=22 무시만 안 당해도 다행ㅠㅠ
=거기서 상까지 받은 서준이가 대단하긴 해.
-근데 저기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이 있으니까 되게…… 신기하다.
이스케이프에 출연한 배우들이 다 함께 식사를 하는 모습. 외출한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직접 한국의 이곳저곳을 찍은 장면도 있었다. 간식거리가 든 검은 봉투에 달랑달랑 들고 나타나는 서준의 모습도 자주 나왔다.
-떡튀순ㅋㅋ 내 동생 같다. 맛있는 거 사오는 거.
-진짜 친한가 봐. 서준이 할머니가 음식 보내주실 정도면.
-그러게. 시상식 파티는 다 배우들이라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모습 보니까 진짜 친한가 봄.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한국을 떠나도 메이킹 필름은 계속되었다.
메이킹 필름 속 서준이 활을 쏴, 3층에서 좀비의 왼쪽 눈을 맞혔다. 찍고 있던 카메라 주위의 스태프들이 놀라 대본을 확인하는 모습이 보였다.
-텐! 텐! 엑스텐!
-스태프들도 다 놀랐어.
-세상에. 대본대로 맞힌 거야?
또 영화 하이라이트 장면이 편집이 아니라 이서준이 진짜 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테마파크 센터 3층에 있는 화살이 촬영 때 꽂힌 화살이란다. 물론 불은 CG였다.
-와…… 서준이 진짜 대단하다. 영화보다 거리가 가깝긴 했지만 대단!
-양궁해라. 양궁해.
=이서준은 배우가 천직임. 양궁도 영화 아니었으면 안 배웠을걸.
메이킹 필름이 공개되고 이스케이프는 또 한 번 불타올랐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라는 어마어마한 카메오, 할리우드 특수분장팀이 참여한 소름 돋는 좀비, 모두의 눈을 사로잡는 배우들의 연기.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당연히 이 모든 걸 가능하게 만든, 어리지만 대단한 슈퍼스타.
[이건 이서준 사단이라고 할 만하죠!]
어떤 방송에서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다.
주머니를 튀어나온 송곳 같은 재능이 아니면 거의 인맥과 친분으로 만들어지는 연예계. 흥행이 걸린 만큼 아는 배우와 모르는 배우가 있다면 아는 배우를 고르는 것이 당연할 정도인 세계.
다음 작품의 흥행을 위해 이름난 작가나 감독은 저마다 좋아하고 믿는 배우들이 따로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 스타 작가, 스타 감독 등이 자주 함께 촬영하는 지인들을 통칭하는 ‘사단’.
[이서준 사단! 저도 꼭 들어가고 싶네요!]
그 이야기가 나오고 모두의 관심은 ‘이서준 사단’으로 향했다.
누구부터 누구까지 이서준 사단에 들어가는 걸까? 흥미로운 주제에 다들 의견을 보탰다.
-이서준 사단. 누가 들어갈 것 같음?
-일단 이지석.
=22 누가 뭐래도 1번은 이지석.
-김종호, 박도훈, 이다진. 최대만 감독.
-이스케이프에 카메오로 출연한 걸 보면 에반 블록, 리첼 힐.
-내의원 감독하고 작가도 들어갈 것 같다.
=역 감독도.
-같은 소속사인 아이돌도 넣음?
=넣자. 이서준이 부르면 다 올 것 같음. OST로 쓸 수도 있고.
=+)브라운블랙. 화이트. 레드 크라운.
-와…… 이서준만 얻으면 이게 다 딸려오는구나.
-++어마어마한 흥행, 어마어마한 수익
-이러니까 다들 이서준만 찾지.
‘이서준’만 잡으면 그 영향력이 어디까지인지 대놓고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아직 후보가 여럿 남아 있다는 사실이 더 무시무시했다.
[제목 : 요즘 평범한 중2의 인맥을 알아보자!]
마린사/웨일 스튜디오
플러스+코리아 지사장(서준이 팬임)
라이언 윌 감독/사라 로트 감독
음악계 : 벤자민 모튼/ 제이슨 무어
여러분! 이게 중학교 2학년의 인맥입니다!
-알고 지내는 사이면 데이비스 가렛도 가능하지 않나? 뒤풀이 파티도 왔고.
-스왈린 애넘도. 쉐도우맨3 촬영하면 친해질 듯.
-평범 다 죽었네ㅎ
다시 봐도 놀라울 정도의 인맥이었다.
* * *
>박도훈 : 지석이 형이랑 나는 완전히 묻혔어ㅠ
>이지석 : 그러게ㅠ
바나나톡 메시지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라는 어마무시한 카메오 덕분에 두 사람이 완전히 묻혀 버렸다.
>김종호 : ㅋㅋㅋㅋ
종호 삼촌은 비웃고 있었고, 다진이 누나는 대학 과제로 바쁜지 메시지도 못 읽고 있었다. 교양 조별과제가 있다나? 조별과제의 무시무시함을 모르는 서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형들 힘내요!
<도훈이 형은 다들 연기 잘했대요.
>이지석 : 나는?
<지석이 형은 너무 짧게 나와서ㅎㅎ
서준의 메시지에 김종호와 박도훈이 열심히 ㅋㅋㅋ을 보냈다. 그렇게 웃으며 메이킹 필름과 이스케이프 테마파크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 박도훈의 메시지가 떴다.
>박도훈 : 아. 서준아. 이거 봤어?
>박도훈 : (고주원 모형에 앉아 있는 참새들 사진)
>이지석 : 이게 뭐야ㅋㅋ
>박도훈 : (고주원 모형에 앉아 있는 까치들 사진)
>김종호 : 왠 새들?
>박도훈 : (고주원 모형에 앉아 있는 뿔종다리새 사진)
>박도훈 : 이 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래요.
>박도훈 : 이것 말고도 많이 있어요. 가끔 독수리랑 수리부엉이도 나온대요.
>김종호 : 촬영장이 산 근처긴 하지만 신기한데?
>이지석 : 원인이 뭐래?
>박도훈 : 원인불명이래요.
그 원인을 알고 있는 서준은 볼을 긁적였다.
명성대로 제나 트라이드와 미러팀은 실력이 좋았다.
‘좋아도 너무 좋았지.’
제나 트라이드와 미러팀은 처음 서준이 활 쏘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고주원의 모형을 만들었다고 했다.
고주원의 모습에서 상쾌한 숲 냄새를 맡았다고. 그걸 재연하고 싶었다고.
눈을 반짝이면서 말하는 제나 트라이드의 모습에 최대만 감독과 배우들, 스태프들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서준만은 그 말을 이해했다.
‘잘한다고는 생각했는데, 고주원의 분위기까지 표현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
특히 [(선)엘프궁수의 중급 궁술]을 쓰고 있던 고주원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내, 고주원의 모형은 엘프의 흔적이 스물스물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느낄 수 없는 아주 미미한 흔적이었지만 서준은 느낄 수 있었다.
‘그 미미한 흔적이 새에게 영향을 줄지는 몰랐는데.’
고주원의 모형에 몰려드는 새들을의 사진을 보며 서준은 제나 트라이드의 재능에 새삼 감탄했다.
>박도훈 : 그래서 새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이 온대.
그것참.
엘프의 힘은 대단했다.
<그럼 옥상정원 식물은 어때요?
>박도훈 : 식물? 글쎄. 이상한 점은 없는 것 같던데……?
박도훈의 대답에 서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식물의 성장까지 힘을 쓰기엔 모자란 모양이었다. 엘프의 힘이면 일주일도 안 돼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버렸을 터였다.
‘새 정도면 다행이지.’
그게 멸종위기급 생물이라 좀 찝찝하긴 하지만, 엘프의 힘 덕분에 개체 수가 늘어나면 좋은 일일 거다.
‘……좋은 일이겠지?’
서준은 미묘한 표정으로 화면에 뜬 뿔종다리새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 * *
[이스케이프 테마파크. 너튜버, 좀비 체험장에 몰려들어!]
[공포체험은 이게 최고! 이스케이프 테마파크!]
[팸플릿 순서가 아니라? 새로운 이스케이프 체험 루트!]
[유난히 고주원의 주위를 맴도는 새들. 원인은?]
-여기 예약 빡세네;;;
-그래도 가 보고 싶음. 너튜브로 봤는데 재밌어 보이더라.
=222 사진도 찍고 좀비 체험도 기대!
-근데 그냥 소리만 들리는데 무서울까?
=요즘은 문도 들썩거린다고 함. 그래서 더 무서워졌대ㅋㅋ
=나중엔 좀비 고용해서 사람들 놀래킨다더라.
=오오! 재밌겠다!
-이거 처음에 좀비 체험하고 이스케이프 테마파크 구경하면 몰입 100%래.
=22 진짜 영화 속에 들어온 것 같음. 그림자에도 흠짓흠짓하게 됨ㅎ
=그래서 좀비 체험 먼저 하는 사람이 많았구나!
-(고주원 모형 주변을 날고 있는 독수리 사진) 이거 찍는다고 고생했다!
=진짜 사냥꾼 같다ㅎ
=모형인데 전혀 어설프지 않아. 눈빛도 좋고.
=22 모형인데 어색한 데가 없음.
-크기도 큰데 진짜 잘 만듦. 역시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이거 축소해서 내 방에 놓고 싶다.
=누가 안 만들어주려나! ‘몬’으로 시작하고 ‘터’로 끝나는 회사가!(쩌렁쩌렁)
=22 몬스X사 힘내라!!(이왕이면 예전 작품들까지!)
=333 몬X터사 믿고 있어! 돈도 준비됨! (집문서 흔드는 곰 이모티콘)
“음.”
열렬한 댓글에 소환된 몬스터사 사장, 김희상이 턱을 긁적거렸다.
* * *
오늘도 시끌벅적한 코코아엔터.
아직 이스케이프가 상영 중이라 방송국에서 오는 예능 출연 문의가 많았다. 서준이 학교에 있는 동안 2팀 사무실에서 일하던 안다호에게 메일 하나가 도착했다.
[마린사]
“왔구나.”
모니터를 바라보는 안다호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안다호를 연예계로 향하게 만들었던 영화 시리즈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것의 시작.
이서준의 성장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 쉐도우맨 마지막 편의 촬영 일정이 드디어 나왔다.
* * *
수업이 끝나고 휴대폰을 확인한 서준의 눈이 잠시 커졌다가 작아졌다.
“나왔구나.”
>안다호 : 쉐도우맨3 일정 나왔어.
>안다호 : 선생님께 말씀드려.
<네.
안다호에게 답장을 보낸 서준은 다시 일정표를 바라보았다. 11월부터 시작되는 촬영은 2월 초에 끝날 예정이었다. 지금이 7월이란 걸 생각하면 멀게만 느껴졌지만 7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2월 초.
쉐도우맨 시리즈의 끝이었다.
막상 끝이 눈앞에 닥쳐오니 서준은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쉐도우맨3을 촬영하게 돼서 기쁘기도 하고, 이번 촬영이 시리즈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슬프기도 했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함께했기 때문이리라.
애써 시원섭섭한 기분을 털어낸 서준은 교무실로 향했다.
“선생님.”
“어. 서준아. 무슨 일이야?”
뜻밖의 얼굴에 담임선생님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큰 문제가 아니면 거의 교무실을 찾지 않는 아이들이었다.
‘아. 예능 촬영인가?’
아니면 스케줄이 생기면 찾아오고는 했다.
담임선생님은 서준의 수업일수를 떠올렸다. 쉐도우맨3 촬영으로 2학기에 빠질 날이 많을 테니, 하루라도 수업 일수를 버는 일이 중요했다.
“쉐도우맨3 촬영 일정이 나와서요.”
“……그래?”
나왔구나.
여울 예중 교무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 침묵 속에 담긴 시원섭섭한 감정을 느낀 서준이 웃었다. 서준처럼 다른 사람들도 아쉬움과 기쁨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다들 쉐도우맨을 좋아한다는 거겠지.’
“11월부터 촬영하는데, 액션 장면 때문에 2, 3주는 일찍 가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출발 날짜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미리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서준의 수업일수 때문에 올해 들어 계속 생각해왔지만 새삼스럽게 마음에 와닿았다.
대학생 때 쉐도우맨1을 보며 친구들과 울음 챌린지를 하고, 선생님이 돼서 쉐도우맨2를 보고 ‘이서준’이라는 할리우드 스타의 등장에 자신이 더 놀라고 기뻐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어셈블1과 2로 이어지던 이야기.
그 끝이 다가오고 있는 걸 느낀 담임은 괜스레 코가 찡해졌다.
“큼. 그럼 10월 초쯤일 텐데…… 2학기 중간고사랑 기말고사는 못 치겠네.”
서준이 입학하면서 여울 예중은 교육청과 이야기를 나누며 열심히 수업일수의 대안을 마련했다.
담임선생님은 서준을 옆에 앉히고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일단 최대한 ‘특별활동’으로 수업일수를 채우고, 나머지 수업일수는 각 과목 선생님들이 내주는 숙제로 대신하기로 했다.
서준의 메일로 선생님들이 숙제를 보내주면 기한 내에 해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촬영 때문에 늦어질 것 같으면 메일로 보내줘. 기한을 늘릴 수 있으니까.”
“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행평가도 선생님들이 잘 고려해서 내주실 거야. 그리고 중간고사랑 기말고사는…… 아쉽지만 1학기 시험 성적의 80%만 반영될 거고. 그래도 서준이는 1학기 성적이 만점이라서 80%라고 해도 80점이니까 예고 가기에는 충분할 거야.”
“네. 감사합니다.”
서준 말고도 다른 아이들에게도 해당하는 교칙이었지만,
‘몇 달씩이나 해외 촬영을 할 아역배우가 서준이 말고 있으려나.’
교무실을 나서는 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선생님들은 생각했다.
* * *
그리고 10월 초.
한국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상상 이상의 흥행을 하고 영화관에서 내려온 이스케이프가 플러스+에 업로드되고 며칠 후.
서준은 서은혜, 안다호와 함께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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