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213화 (21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13화

상영관의 문이 열렸다.

다음 타임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쭉 빼고 상영관을 나오는 관객들의 얼굴을 살폈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 모두 2시간 동안 인터넷에 올라온 ‘이상 반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에. 미친 거 아니야?”

“돈은 얼마나 썼을까?”

“한국 영화에서 볼 줄은 상상도 못 했어.”

상영관을 나오는 관객들은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연신 옆 사람과 속닥거리거나 전화로 누구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이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묘한 기대감을 심어주었다.

‘뭔진 몰라도 대단한가 보다.’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이야기하는 이미연과 박성아를 본 김수한과 친구들이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후, 사람들은 입을 쩌억 벌리고 스크린만 바라보게 되었다.

“……미친. 너희 알았어?”

“아니.”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다들 흥분한 얼굴로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처음엔 너무 놀라고, 후엔 영화에 집중하느라 사간 팝콘과 음료수는 거의 먹지도 못했다.

“그 배우들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근데 더 신기한 건 영화 끝났을 때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거야.”

“몰입…… 장난아니었지.”

몰입.

김수한과 친구들은 문뜩, 7년 전을 떠올렸다.

청룡의 울음소리로 떠들던 아이들과 관심 없던 어른들을 한 번에 사로잡았던 아역 배우의 연기.

“그때도 장난 아니었는데.”

“그 좀비. 서준이었구나.”

“으. 지금 생각해도 무섭네.”

떠오르는 장면에 모두 몸을 떨었다.

다음 타임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그런 김수한과 친구들의 반응에 눈을 반짝였다.

도대체 상영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 *

“영화 끝날 때 다됐네.”

[이스케이프 개봉 첫날? 관객 수는?!]라는 제목의 기사를 업로드한 기자가 시계를 보았다.

“신입은 뭐래?”

“이것만 보내고 반응이 없어.”

[선배. 이건 미쳤어요!!]

그 문자에 연예부 기자들이 허탈하게 웃었다.

“좀비 영화 보러 갔더니, 진짜 좀비한테 당했나?”

“근데 이스케이프 게시판도 비슷한 반응인데요?”

[이스케이프 게시판(스포)]에 달린 댓글들도 비슷했다. 영화 10분까지는 여러 정보가 나오더니, 그다음부터는 묵묵부답이었다.

-죽은 듯.

-진짜 좀비 나온 거 아님?

-전국 상영관이? 전부?

모니터로 [이스케이프 게시판(스포)]를 보고 있던 기자가 다시 자신의 메일함을 보았다. [코코아엔터][영화드림] 등 입력된 메일 주소에서 보낸 메일은 하나도 없었다.

기자의 표정이 삐딱해졌다.

“배짱도 좋지. 어떻게 보도자료 하나 안 보내냐?”

“그러게. 촬영 전에도 홍보는 거의 없었고, 이서준이 주연이라는 것도 거의 끝까지 숨기고.”

“시사회도 안 하고 방송 홍보도 없고요.”

“이서준이면 괜찮다는 거겠지. 사전예매율만 봐도 알잖…… 왔다!”

휴대폰이 울리자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선배 기자는 스피커 모드로 바꾼 다음 신입의 말을 기다렸다.

-선배! 제작사가 미쳤나 봐요!

“왜? 무슨 일인데?”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이요!

막내의 말에 기자들이 눈을 끔뻑였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누군지 몰라서 머뭇거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잘 알고 있어서 반응을 못 한 것이었다.

할리우드 스타, 에반 블록과 리첼 힐.

할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한국 영화를 보러 간 신입의 입에서 나올 이름이 아니었다.

“갑자기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은 왜?”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이 나왔어요! 할리우드 배우 말이에요! 게다가 이지석이랑 박도훈도 나왔어요!

“……뭐?”

-이스케이프에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이 나왔다니까요!

상상도 못 한 소식에 기자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 * *

방송가도 뒤집혔다.

어쩔 수 없이 들어버린 스포에 아쉬워하는 사람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눈을 빛내며 휴대폰과 전화기를 들었다.

“이래서 방송 홍보를 안 나왔구나! 이지석 소속사 연락돼요?!”

“아니! 통화 중인가 봐! 근데 나 같아도 안 밝힐 것 같아!”

“미친 거 아니야?! 왜 아무도 그 둘이 한국에 들어온 걸 몰랐던 거야? 이다진은!?”

“거기도 마찬가지예요! 나도 영화 보고 싶어!!”

감상과 제 할 말을 섞어서 말하는 베테랑들을 보며 막내 작가는 눈만 끔벅였다.

“나도 보고 싶다고! 넌 여기서 뭐 해?”

“어…… 글이 하나 뜨고 있어서요.”

“글?”

이스케이프 배우들의 소속사에 전화를 계속 걸면서도 피디와 작가들의 시선이 막내 작가의 노트북으로 향했다.

[제목 : 에반 블록, 리첼 힐이랑 비슷한 외국인 봄.]

-……너 진짜 본 거 맞나 봐…….

-왜 못 알아본 거야!

=ㄱㅆ : ㅠㅠ리첼 힐이 엄청 한국어를 잘했다니까ㅠㅠ 영화에서 봤잖아ㅠㅠ

=그게 연기가 아니라, 찐 실력이라고?

=ㄱㅆ : ㅠㅠ진짜라고ㅠㅠ

-그 정도로 말했으면 나라도 그냥 외국인인 줄…… 알 리가 있냐! 리첼 힐이랑 에반 블록이라고!

-진짜 아쉽겠다. 바로 앞에서 봤는데! 말도 했는데!

=ㄱㅆ : ㅠㅠㅠ

-그래서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이 뭘 사 갔음?

=ㄱㅆ : 그러니까…….

!

메인 피디가 거의 모니터 속에 들어갈 듯 고개를 들이밀었다. 모니터 빛에 반사된 눈이 번뜩였다.

“이런 게 있었다고?”

“처음 올라왔을 때는 묻혔는데, 이스케이프 개봉하고 난 뒤에 뜨기 시작한 것 같아요.”

“세상에. 임 작가! 여기가 어딘지 알아낼 수 있어?”

박도훈 소속사에 전화하고 있던 임 작가가 대답했다.

“찾아보면 나올 것 같긴 한데…… 방송 내보내시게요?”

“……안 되려나?”

“이것도 스포라면 스포지 않아요? 게시판 난리 날 걸요. 다른 방송국이랑 언론사도 알 텐데 지금까지 기사 나온 거 봐요.”

임 작가가 모니터에 뜬 화면을 바꾸어 메인 피디에게 보여주었다.

[이스케이프를 꼭 봐야 하는 이유!]

[스포주의! 이스케이프를 보기 전 주의해야 할 것!]

[상상 그 이상의 영화, 이스케이프!]

이스케이프에 관한 기사로 가득 찼지만, 에반 블록과 ‘에’도 리첼 힐의 ‘리’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눈치를 보고 있었다. 누가 가장 먼저 총대를 메느냐. 처음 내뱉은 곳은 온갖 욕을 듣겠지만 두 번째부터는 괜찮았다.

“……대단하네.”

메인 피디가 침음성을 삼켰다.

그렇다고 이렇게 좋은 화제를 그냥 몇 주 동안 묵히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고민에 빠진 피디와 작가들의 모습에 막내 작가가 손을 들었다.

“그…… 쉐도우맨은 어때요?”

“쉐도우맨?”

“이스케이프가 아니라 쉐도우맨으로 대충 엮는 거예요. 출연진은 똑같잖아요.”

“어……?”

괜찮은데?

피디와 작가의 눈이 마주쳤다. 꽤 좋은 반응에 막내 작가가 신이 나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서준이 주연이란 건 나왔으니까, 대충 이서준이 나온 방송 틀면서 에반 블록하고 리첼 힐이 같이 나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오오!”

그리고 이스케이프 개봉 둘째 날.

예정되어 있던 TV 편성표가 바뀌었다.

[OCM, 쉐도우맨1, 쉐도우맨2, 어셈블1, 어셈블 2 특별 방송!]

[WTV, WTV 시상식 재방송!]

-엥? 갑자기?

-내년에 쉐도우맨3 나온다고 해주는 건가?

-후후후후.

=히히히히.

-???왜 그래???

-여기 안 본 눈이 많구나.

=하나만 팔아라. 비싸게 살게.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방송국들의 행동이 시작되었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과 관련된 영상이 없는 다른 방송국은 이서준과 관련된 영상을 내보냈다.

[MBS, 골든글로브 시상식 재방송!]

[SBC, 워킹맨 이서준 편 재방송!]

[KBC, 내의원 재방송!]

-되게 이서준 없는 이스케이프 홍보다ㅎㅎ

-역 때도 이렇게 안 했는데, 신기하네.

-오오. 그게 아닌…….

=쉿. 쟤넨 아직 안 본 눈이라고!

=그래. 아껴주자. 안 본 눈.

-??도대체 안 본 눈이 뭐야?

=이스케이프 안 본 눈임.

=22 될 수 있으면 빨리 보길 바람.

=333 세상에 떡밥이 가득한데ㅎㅎ 즐길 수 없다니ㅎ

댓글대로 세상엔 떡밥이 가득했다.

[에반 블록]

이스케이프 재미있었습니다. 사무엘 배우가 누군진 모르겠지만, 연기를 잘하던데요!

다음에 같이 연기했으면 좋겠네요.

#이스케이프#한국영화#사무엘 배우 누구?#나만큼 잘하던데;)

[리첼 힐]

이스케이프. 한국어로는 [탈출]이라고 적고 영어 발음은 [이스케이프]라고 적어요!

마리아 교수님! 정말 멋진 캐릭터입니다!

#이스케이프#한국 영화#마리아 배우 누구?#한국어 잘하던데:)

[라이언 윌]

언제 한번 사무엘 배우와 마리아 배우와 히어로 영화를 찍고 싶군요.

둘 다 연기 인상 깊었습니다.

#이스케이프#한국 영화#히어로 영화

-오. 에반 블록이 칭찬할 정도야? 진짜 잘하나 보네

-그러게. 한국 영화라. 그럼 한국인인가?

=아. 그거 아닌데ㅋㅋ

-리첼 힐도 한국어 배워? 잘하나?

=엄청 잘해ㅋㅋ한국 영화에 출연해도 될 정도로ㅋㅋ

-라이언 감독까지. 둘 다 한국인 배우?

-아닠ㅋㅋ 다들 너무한 거 아니냐ㅋㅋ

[이스케이프 게시판(스포)]

-(에반 블록, 리첼 힐, 라이언 윌 SNS 링크)

-쉐도우맨팀 단체로 시치미 떼는 중ㅋㅋ

-진짜ㅋㅋ 라이언 감독님은 올해 찍잖아요. 쉐도우맨3ㅋㅋ

-서준이 SNS만 있으면 완벽한데

-서준이는 SNS 안 함ㅎ

>세상에에!!

>왜 미쳤다고 했는지 알겠다ㅎ 이건 안 미칠 수가 없음!!

-오. 윗글은 영화 보는 중인가 봐?

-나도 엄청 놀랐지(아련)

>오. 좀비! 되게 잘 만들었다!

>근데 배우들보다 임팩트가 약한데?

-왔구나ㅋㅋ

-그게 문제가 아님ㅋ

>머ㅔ;ㅣㅂ;ㅈ

-좀비한테 먹혔네ㅎㅎ

-근데 다시 생각해도 무섭ㅎㄷㄷ

* * *

여울 예중이 시끌벅적해졌다.

영화에 관심이 많은 만큼 많은 아이가 이스케이프를 보고 온 것이었다. 게다가 바로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출연한다는데 관심이 없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본 이스케이프는 충격적이었다.

“세상에. 세상에!”

이스케이프를 본 학생과 선생님들은 서준을 보면 놀란 표정으로 ‘세상에’만 내뱉었다. 이스케이프에 출연했던 지호와 주경, 주희, 재한도 떨리는 눈으로 서준을 끌고 구석으로 향했다.

“이게 뭐야?”

“헤헤헤.”

“헤헤헤가 아니야!”

“에반 블록하고 리첼 힐이 왔었어?”

“촬영장에?”

눈을 반짝이며 묻는 아이들의 모습에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실내 촬영장에서 찍은 거야.”

“아. 그렇겠다.”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실망하는 아이들에게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촬영장에서 롱패딩 나눠줬잖아. 그거 에반이랑 리첼이 보내준 거야.”

아이들의 눈이 둥그렇게 변하고 볼이 천천히 붉게 물들었다.

“진짜!?”

“그 뒤에 글씨도 직접 쓴 거고. 물론 프린트한 거지만.”

“와아아!”

아이들의 얼굴이 꽃처럼 반짝였다.

“나 그거 구석에 처박아뒀는데!”

“드라이클리닝! 엄마한테 전화해야겠다!”

“집에 가자마자 벽에 걸어둬야지!”

“그거 좋다! 글씨 잘 보이게!”

아이들의 반응에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이 여름에?”

벽에 걸린 검은색 롱패딩은 보기만 해도 더워지는 기분이었다.

“무슨 상관이야! 리첼 힐이랑 에반 블록 사인인데!”

잔뜩 신이 난 아이들의 모습에 서준은 어깨를 으쓱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인은 아니었지만, 친구들이 좋다면 좋은 거지.

* * *

인터넷은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실체가 없는 창과 방패의 아주 치열한 전쟁이었다.

스포하는 사람들과 스포 당해버린 사람들.

-누가 화장실에 이스케이프 스포 적어놨어ㅠ

-시험지 채점하는데 시험지에 적는 건 인간적으로 너무하지 않냐!?

-영화관 앞에서 들어버렸다ㅠㅠ

-중고 거래하는데ㅠㅠ 인증글이 스포였어ㅠㅠ

그리고 아직 방패로 막고 있는 사람들.

-아아아아아아. 안 들린다. 안 들려!

-으아아아아. 안 보인다. 안 보여!

-오늘도 견뎠다! 귀도 막고 인터넷도 안 봤어!

=너 지금 인터넷 중ㅎ

-실시간 검색어도 위험하다는 소식임!

-ㅠㅠ사방이 지뢰구만.

-나도 스크린으로 보고 싶다고……!

그리고 2주가 지났다.

영화를 볼 사람은 다 봤다고 생각했는지, 비밀을 지키던 사람들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크게 외쳤다.

[여기서 형이 왜 나와? ‘이스케이프’에 출연한 상상 이상의 인물들!]

[00 00과 00 0! 이스케이프 특별출연!]

[이스케이프 카메오 4인!]

[이게 무슨 일이야?! 이스케이프 카메오로 출연한 스타들!]

[이스케이프 테마파크 개장! 예약제!]

-영화관에서 얼굴 보고 기절할 뻔했다.

=나도. 소름 돋아서 말도 못했어.

=계속 헛웃음 나오더랗ㅎㅎ

-근데 기사 제목 너무 뻔한 거 아니냐? 00 00과 00 0이라니.

=글자 수부터 대놓고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얔ㅋㅋ

-박도훈이랑 이지석도 나올 줄이야.

-이서준 인맥이지.

-인맥이 너무 대단해ㅋㅋ

-이스케이프 테마파크?

=가 보고 싶은데…… 어떨지…….

=그럼 방송 보고 가. 영화객 님이 야방한대.

=헐? 이스케이프 테마파크 감?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