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211화 (21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11화

[O.W.C병원]

담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병원.

활짝 열린 정문으로 차들이 들락날락했다. 정문에 있는 경비실을 통과해 지상 주차장과 지하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이 나뉜다. 앞서가는 차를 따라 카메라가 움직였다.

사이렌을 울리며 구급차가 들어왔다.

본관.

동관.

센터.

정문을 통해 들어온 구급차는 센터 앞에 멈춰 섰다. 스트레쳐카(침대차)가 땅과 부딪히며 거친 소리를 냈다. 의료인들이 뛰쳐나와 스트레쳐카를 끌고 응급센터라는 표지판 쪽으로 향했다.

병원을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센터는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응급센터와 조금 떨어진 1층 로비에서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재잘대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카메라는 사람들을 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저 평범하고 평범한 병원. 단조로운 일상.

그런 평화로움 앞에 관객들의 마음도 천천히 풀어지는 것 같았다.

험상궂게 생긴 임장우의 모습이 보였다. 침상에 누워 있는, 한눈에 봐도 조폭 같은 남자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는 모습이었다.

연재희의 모습이 보였다. ㄴ 모양으로 생긴 본관 2층 옥상. 3층 정원 카페에서 느긋하게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친구를 맞이하는 고주원의 모습도 보였다. 고주원의 엉뚱한 모습에 친구들도 관객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특히, 활을 보고 반짝반짝 웃는 고주원의 얼굴에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앞의 공포는 전부 잊어버릴 만한 어마어마한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로움도 잠시.

침대에 누워 있는 사내의 모습이 보이자 관객들은 침을 꼴깍 삼켰다.

“도대체 언제 시작하는 거야?!”

실험을 위해 사내의 몸에 붙여놓은 심박계가 삑삑 소리를 냈다. 사내의 심장 박동에 따라 위아래로 크게 솟구쳤다. 연구소 내에 자리 잡은 병실은 사내의 목소리와 심박계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왜 안 오는 거냐고!”

오.

관객들이 주먹을 꽉 쥐었다. 욕설을 내뱉는 사내보다 그 뒤 굳게 닫혀 있는 병실 문이 더 신경 쓰였다.

또다.

기이한 것이 병실 문밖에서 느껴졌다.

단짠단짠의 묘미가 여기서 발휘된 모양인지, 편안하게 풀어졌던 마음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의자에 앉은 관객들이 저도 모르게 방어적인 자세를 취해갔다.

그 기묘함을 사내도 느낀 모양인지,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던 사내가 입을 멈추었다. 병실을 울리는 소리는 사내의 상태를 알려주는 심박계의 소리뿐.

삑- 삑-.

묘하다.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사내가 어떻게든 문밖 상황을 알아보려고 하지만, 사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소리를 지르거나 열리지 않는 문을 바라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두 방법이 통하지 않자 사내는 그저 귀를 쫑긋 세우고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앉아 있는 좌석에서 움직일 수 없는 관객들은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사내에게서 미묘한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한 카메라 앵글은 병실 내부만 비치고 있었다.

천적에게 쫓기는 토끼처럼 관객들은 귀를 바짝 세우고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기에 있는 건 사내뿐만이 아니었다. 사무엘에게 보낸 경호팀장 말고도 경호원들이 있었다.

웅얼웅얼.

방음벽에 막혀 말소리 같은 소음이 들렸다.

사내도, 관객들도 목을 쭉 빼고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소리에 집중한 사내와 관객들의 표정은 조금 달랐다. 미지의 두려움이 가득한 사내의 얼굴과 알고 있는 무서움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얼굴.

그리고,

“으아아악!!”

방음을 뚫고 나올 정도의 비명이 들렸다. 한둘이 아니었다.

“뭐야! 뭐냐고!”

당장에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사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건 목 위뿐이었다. 숨을 죽였다. 제발 저것이 그저 이 병실을 지나가기를 바랐다.

삑- 삑- 삑-.

떨리는 심장 박동이 그대로 나타났다. 모니터에 비친 그래프가 요동쳤다. 그래프가 요동치면 칠수록 소리가 빠르게 울렸다.

안 돼. 안 돼. 안 돼!

새하얗게 변하는 사내의 얼굴은 보는 사람마저 오싹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미연과 박성아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사내의 심장 소리가 상영관 내에 울려 퍼졌다. 사내의 심장 소리에 맞춰 관객들의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쿵!

하고 병실 문이 무언가와 부딪쳤다.

삑삑삑.

쿵!

삑삑삑.

사내의 심장이 요란하게 울었다.

쿵!!

문이 넘어졌다.

찢어진 양복을 입은 피투성이의 경호원들이 복도에 서 있었다. 사내는 한눈에 그들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어어어. 우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

죽은 시체들이 환한 불빛 아래 사색이 된 사내에게 달려들었다.

환한 곳에서 보는 좀비들의 사냥은 빠르고 과격하고 오싹했다. 사내를 둘러싼 좀비들이 검은 등이 죽음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아아아악!”

고통스러운 사내의 비명이 들리고,

삐이이-

심장이 멎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극이 없어지자 좀비들은 다시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래.

좀비들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갔다.

아래에서 소리가 들렸다.

사내의 죽음 이후 본격적인 전염이 시작되었다. 연구소의 경비를 서고 있던 경비원이 물렸다. 좀비들에게 잡혀 비명을 지르고 있는 동료를 버리고 경비원은 달려갔다.

겨우 손가락 끝이 물렸지만 따뜻한 피는 쉴 새 없이 흐르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인간의 심장은 아직 뛰고 있었다.

경비원은 곧바로 뛰쳐나와 병원 응급센터로 향했다.

“누구한테 물렸다고요?”

“사, 사람!”

“……사람요?”

이리저리 체크를 한 응급실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이러스 X로 인해 경비원의 심장이 점점 죽어갔다.

“사람한테 물린 게 아닌데? 일단 소독해 드릴게요. 정 간호사!”

백색의 가운을 입은 의사가 뒤를 돌아 간호사를 불렀다. 네! 대답하고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른 의사를 본 간호사의 얼굴이 새하얗게 탈색되었다.

“선생님!”

“? 뭐…… 아아아악!”

그사이 심장이 멈추고 좀비가 된 경비원이 의사의 어깨를 물어뜯은 것이었다. 옆에 있던 환자와 의사, 간호사가 경비원을 말렸다.물린 의사가 어깨를 잡으며 뒷걸음질 쳤다. 간호사가 의사에게로 달려갔다.

“소독약! 왜 이렇게 피가 많이…… 아아아악!”

경비원에게 물린 의사에게 달려간 간호사가 손을 물렸다. 경비원을 잡고 있던 환자와 의사도 물렸다.

“이…… 이게 뭐야?”

그렇게 의사, 환자, 간호사, 가족이 물리고 물렸다. 누군가 비상벨을 울렸다. 비상 상황에 경비 인원들이 모두 응급센터로 모였다. 응급센터가 난리가 난 사이, 연구소에서 쏟아져나온 건장한 좀비들이 정원과 주차장으로 향하던 사람들을 공격했다.

가볍게 물려 아직 인간의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의사나 간호사를 찾았다. 상처를 지혈하며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기도 했다. 누구도 상처 때문에 감염된다는 생각은 하질 못했다.

상처 입은 사람들도 ‘아직’ 의식이 멀쩡하게 있었으니까.

응급센터에서 시작된 상황은 센터 로비까지 전해졌다.

막 센터를 나서려던 교복 입은 아이들의 얼굴이 흐렸다.

“주원이. 병 많이 심각한가 봐.”

“그러게. 걘 심각해지면 괜히 더 날뛰잖아. 시합 전에도 그렇고.”

활 자세인지 뭔지. 평소보다 더 촐싹대는 고주원의 모습이 떠오른 아이들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오늘 활 가지고 오길 잘한 것 같아.”

“응. 고주원한테서 양궁을 빼면 안 되지.”

“다음 주도 오자.”

“그래!”

그리고 응급센터에서 뛰쳐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색이 된 얼굴로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다. 로비에 있던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불안한 표정으로 응급센터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먹이를 뒤쫓아온 좀비들이 달려들었다. 조금 전까지 다음 주를 약속하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를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국 자신까지 먹히고 말았다.

사람들이 달려가고 좀비들이 쫓아갔다. 카메라는 앵글 너머로 사라지는 그들을 쫓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아이들을 비췄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의 팔과 다리가 들썩거렸다.

카메라의 중심에 섰던 본 브레이킹 댄스팀과는 전혀 다른 움직임이었다. 관절과 팔다리가 이상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다른 좀비들에 깔렸다 일어난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다른 좀비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현실감.

사진으로만 보던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느낌.

인외의 것이 태어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그렇게 물린 누군가는 몸을 피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차를 타고, 밖으로 도망쳤다. 누군가는 가족을 데리고 차에 올랐다. 휴대폰으로 경찰에 신고하다 물리고, 비명이 흘러나왔다.

아비규환이었다.

막 돌아가려고 주차장으로 향하던 임장우의 손이 떨렸다.

응급센터에서 사람들이 뛰쳐 나왔다. 그 뒤를 피투성이의 사람들이 쫓았다. 좀비보다 느린 노인과 환자, 아이들이 물렸다. 다시 이상행동을 보인다. 차마 아이를 놓지 못하다 자신마저 물린 부모도 있었다.

“……씨X!!”

너무 놀라 굳어졌던 임장우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이놈의 직업병! 달려드는 좀비를 다리로 밀치고 구한 아이를 아빠의 품에 넘겨주었다. 감사 인사를 받을 새도 없이 새로운 피해자에게 달려갔다.

몸이 움직이니 머리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리면 변하는 거군.’

형사 임장우의 눈이 빠르게 병원을 훑었다.

사람보다 높은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O.W.C.병원. 출입구는 정문과 직원들이 쓰는 후문뿐.

꾀병으로 입원한 조폭 놈이 달아날까 봐 미리 조사한 게 이렇게 도움이 될지는 몰랐다.

“꺄아아악!!”

“엄마아아아!!”

“으아아앙!!”

“아아아악!”

눈앞에 구해야 할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임장우는 망설이지 않고 뒤를 돌아 달려갔다. 주머니를 뒤져 차 열쇠를 꺼냈다.

그사이에도 임장우의 옆으로 좀비를 피해 달아나다 넘어진 아이와 안절부절못하는 아이의 가족이, 살려달라 외치는 남자가, 휴대폰으로 신고를 하는 여자가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차로 달려간 임장우는 얼른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앞뒤 차 신경 쓰지 않고, 운전대를 돌렸다.

끼이익!

입술을 꽉 깨문 임장우가 액셀을 밟았다. 사람들과 좀비들을 피한 임장우의 차가 정문으로 향했다.

‘사람들을 병원 밖으로 보내면 안 돼!’

임장우가 자신의 차로 달려가, 올라타고 정문까지 운전해 오는 사이에도 몇몇 대의 차가 빠져나갔다.

또 한 대. 병원을 빠져나가려는 자가용을 발견한 임장우는 액셀을 아주 세게 밟았다.

끼이익!

임장우의 차가, 거의 자가용을 박을 듯 정문을 막아섰다.

“뭐 하는 거야!”

가로막힌 자가용의 운전자가 소리쳤다. 그도 불안한지 연신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빨리 차 빼라고!”

“나가면 안 됩니다!”

“씨X! 차 빼라니까!!”

운전자는 비명이 들리는 주차장의 풍경에 임장우를 노려보았다. 물러설 것 같지 않은 임장우의 눈빛에, 그냥 액셀을 밟기로 결정한 운전자가 옆에 앉은 아내와 아이를 달랬다. 애써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가 괴물에게 물렸던 기억은 힘겹게 털어냈다.

“조금만 기다려. 얼른 나가자. 나가서 치료받으면……!”

운전사의 옆에 앉아 있던 아내의 상태가 이상했다. 아이를 안고 있던 아내가 운전자에게 달려들었다.

“으아아악!”

차 앞 유리창에 새빨간 피가 튀었다.

남자의 비명이 임장우의 귀를 파고들었다.

‘다행이다.’

저 가족이 밖으로 나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해 버린 임장우가 입술을 깨물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정신이 어지러웠다. 하지만 여기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고작 임정우의 차 한 대로 막기엔 정문은 너무 넓었다. 정문을 닫기 위해 달려가던 임장우는 간절히 기도했다. 앞서 병원을 나간 차 중에 ‘저것’이 없었으면 하고 바랐다.

임장우의 싸움은 관객들을 숨죽이게 만들었다.

비장한 표정으로 자신의 차로 달려가던 모습. 일순간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가 죄책감에 얼굴을 흐리던 얼굴. 그리고 다시 움직이는 모습.

이해는 했다.

사람이 적은 병원 안도 이 난리인데 이 사태가 병원 밖, 도시, 지역, 나라까지 번지면 걷잡을 수 없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라면 저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도망가기도 바빠 가장 먼저 병원을 빠져나갔을 터였다.

임장우는 정문을 굳게 닫았다. 그도 모자라 다른 차들을 운전해 정문 앞을 막았다. 사람들이 아우성쳐도 무시했다. 임장우는 묵묵히 정문 입구를 막기 위해 움직였다.

열쇠가 꽂힌 차들을 찾는 건 쉬웠다. 죄다 달아나다가 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입술을 깨문 임장우가 차 안을 살폈다. 강력범을 잡은 경력이 있는데 일반인 좀비 하나 정도는 거뜬했다.

“젠…… 장!”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임장우는 땀을 흘리며 운전할 수 있는 차를 정문 앞에 갖다 댔다.

이런다고 차를 밟고 넘어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마구잡이로 달려드는 좀비만큼은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좀비를 차에서 꺼내고 운전하고 꺼내고 운전하기를 반복하다 지친 임장우가 숨을 몰아쉬었다. 잠시 쉴까 싶은데, 저기서 도망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놈의 직업병……!”

주위에 좀비가 있는지 살펴본 임장우는 차에서 내렸다.

병원 밖 사람들을 위해 병원 안 사람들을 가둔 임장우는 병원 안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 * *

응급센터에서 퍼진 좀비 사태는 동관, 본관까지 전해졌다.

본관은 다른 건물보다 연구소와 가까워 연구소의 좀비들이 본관을 습격하기도 했다. 도망치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던 연재희는 제가 일하고 있던 자료를 떠올렸다.

바이러스. 생명 연장.

감당할 수 없는 사실에 연재희의 안색이 흐려졌다. 걸음이 느려졌다. 비명과 울음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것이 연재희의 마음속에 쌓여 연재희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 * *

센터 7층 병실에 있던 고주원도 상황을 목격했다.

만반의 준비를 끝낸 고주원은 병실 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이상한 차림으로 병실을 나온 고주원을 간호사들과 환자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직 여기까지 알려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간호사에게 휴대폰을 받은 고주원은 아래로 향했다.

고주원은 아래로 내려갔다.

3층부터는 분위기가 달랐다. 비명이 들리고 위층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3층 환자들과 의사, 간호사들.

고주원은 반대쪽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잠시 멈췄다가 다시 굳은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라오는 사람들과는 반대로 고주원은 2층으로 내려갔다. 아직 이 계단까지는 오지 않은 듯 천장과 벽이 깨끗했다. 로비 쪽 중앙계단으로 달려가려던 고주원은,

“으아아악!”

비명에 얼른 몸을 숨겼다. 숨이 가빠왔다. 멀리서 봤던 좀비를 이제 곧 마주하게 될 터였다. 고주원은 들고 있던 양궁을 꽉 쥐었다.

관객들도 숨을 죽이고 몸을 움츠렸다.

무언가 달려갔다.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좀비 무리가 쫓아갔다. 고주원은 눈을 질끈 감았다. 도망가던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비켜! 비키라고! 아악! 엄마! 아빠! 으아앙! 사람들의 소리는 좀비들을 자극했고 2층에 있던 좀비들을 고주원이 방금 내려온 계단으로 모이게 만들었다.

그 틈에 고주원은 발걸음을 옮겼다.

좀비들을 피해 친구들을 찾고 있던 고주원은 처음으로 좀비와 마주쳤다.

고주원은 아연실색한 얼굴로 바닥을 기고 있는 좀비를 바라보았다. 피투성이 사이로 주름진 얼굴.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 아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어어어. 거친 울음을 뱉어내며 좀비는 바닥을 기어 먹이로 향했다. 고주원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좀비는 다리가 없었다. 좀비들에게 살이 먹히고 달려가는 좀비들에게 밟혀 부서진 것 같았다. 그런 상황임에도 이를 드러내며 자신에게로 오는 모습이 정말 ‘사람’ 같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천장과 벽. 사람들의 비명. 이를 드러내는 좀비.

적은 확실했지만, 사람과 비슷한 그 모습은…… 사람이라면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고주원이 입술을 깨물며 화살 하나를 꺼냈다.

처음 양궁을 잡았을 때도 떨지 않았던 고주원인데, 양궁의 손잡이와 화살을 잡은 고주원의 두 손이 눈에 띌 정도로 흔들렸다.

그럼에도 고주원은 기어오는 좀비에게 활을 겨누었다.

양궁을 하면서 이렇게 두렵고 힘들고…… 비참하고 슬플 때가 있었나.

항상 즐거웠던 추억에 피같이 새빨간 낙인이 찍혀 버렸다. 하지만 고주원은 덜덜 떨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친구들을 구하러 가야 했다.

콱!

명중.

기쁘지 않은 명중이었다.

좀비에게 꽂힌 화살을 바라보던 고주원은 두 눈을 질끈 감고, 화살을 빼냈다. 기분 나쁜 감각에 잔뜩 찌푸린 고주원의 표정에 관객들까지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으.

“……화살은 구하기 힘드니까. 그래도 닦을 게 있으면 좋겠다…….

고주원의 말에 관객들도 동의했다.

한 번 공격해 보니, 처음보다 마음먹기가 수월했다. 몸을 숨기고 홀로 있는 좀비를 공격하고 화살을 쏘고. 고주원은 그렇게 천천히 로비로 향했다.

임장우와는 다른 방식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고주원을 바라보며 모두 두 손을 모았다. 이미연의 눈이 촉촉하게 젖었다. 하지만 이미 고주원의 친구들은…… 관객들도 안타까운 얼굴로 열심히 힘내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고주원은 1층 로비에서 친구들을 발견했다. 고주원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안 그래도 좋지 않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아. 너무 늦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1층까지 내려온 고주원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도저히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바라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친구들의 모습에 고주원은 결국 눈물을 흘렸다. 소리가 새지 않게 입술을 깨물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

이제 어떻게 하지? 이제 뭘 해야 할까? 친구도 구하지 못했고, 이런 상황에 겨우 중학생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모두 좀비에게 먹힐 텐데…… 거의 포기한 듯, 빛도 없이 흐려진 고주원의 눈에 누군가의 휴대폰이 들어왔다.

아.

지호 거다.

케이스가 덮인 휴대폰을 멍하니 바라보던 고주원이 눈물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호 부모님께 전해드려야지.

친구들 부모님께도 알려드려야 하고.

……사과도 해야 해.

훌쩍. 코를 마신 고주원은 활을 들었다.

화살을 하나 꺼내 가장 요란한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곳으로 화살을 쐈다. 허공으로 날아간 화살은 자판기 유리를 깨고 음료수 캔들과 요란하게 부딪혔다. 소리가 나자 좀비들이 자판기 쪽으로 달려갔다.

그사이 고주원은 친구의 휴대폰을 낚아챘다. 좀비에게서 화살을 다시 빼내야 할 만큼 화살은 귀했지만, 친구의 휴대폰을 위해서라면 상관없었다.

친구의 휴대폰을 소중히 챙긴 고주원은 재정비를 하기 위해 원래 있던 병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모두 올라가 있었고, 계단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사람들의 비명이 들렸다. 그 소리에 몰려가는 좀비들을 피해 고주원은 방향을 바꾸어 위로 향했다.

“씨X!! 이거 치우라고!!”

그리고 6층과 7층 사이의 계단에서 참담한 현실을 마주했다.

나올 줄 알았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대피하는 고주원을 응원하던 관객들의 표정이 사나워졌다. 재난 영화에 꼭 등장하는 고구마들에 혈압이 상승하는 것 같았다.

“당신도 물린 거 아니야?!”

“안 물렸다고!!”

침대차와 가구들을 잔뜩 들고 온 사람들이 계단을 막고 있었다. 안도감과 경계심이 감도는 7층 사람들과 불안함에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7층 아래 사람들. 여기저기서 고성이 튀어나왔다.

“하여튼 여긴 못 들어오니까! 다른 데 가 봐!!”

욕설이 튀어나왔다. 삿대질이 오갔다. 침대차를 오르는 사람들과 기다란 막대로 그걸 막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런 어른들을 차가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던 고주원은 어깨에 멘 양궁을 꽉 쥐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 * *

-방금 전에 시작한 영화관에서도 난리 남 ㅎ

-반응이 다 똑같음ㅋㅋ 엄청 놀람!! > 놀람! > 좀비 등장 > ㅎ더ㅔㅂㄷ > 대답 없음

-근데 잘도 아무도 말 안 한다ㅎ

-222 나 같으면 다 불어버렸겠다.

-으아아! 궁금해 죽겠네!! 빨리 후기 올라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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