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10화
이스케이프 개봉 하루 전.
인터넷은 하루 종일 이스케이프에 대해 떠들었다.
[이스케이프 게시판]
-왜 시사회를 안 했을까?
-그래도 볼 테니까?
-내 생각엔 뭔가 있는 것 같음
-근데 기사를 써줄 기자들도 영화를 못봐서ㅋㅋ 알 수가 없음
-그래서 연예부 기자들 영화관 간댘ㅋㅋ
-잘도 표를 샀구나.
-안 좋은 자리는 좀 남아 있던데. 그런 자리 산 듯.
-뭐. 기사 쓰는 데 영화는 잘 안 봐도 되겠지.
-난 스포 보고 영화 볼까. 미리 이스케이프(스포) 게시판 만들어 둠. 거기 스포 써줘.
다음 날.
아침부터 영화관이 북적거렸다.
“잘도 왔네.”
“연차!”
이미연의 말에 박성아는 눈을 반짝였다. 직장인인 박성아는 오늘 영화 관람을 위해 피 같은 연차를 썼다.
“첫날 영화표가 생겼는데 못 올 수가 없지!”
“티켓 뽑아놨으니까, 포스터 가지러 가자.”
넉넉하게 준비된 포스터들을 챙기고, 이서준의 영화인 만큼 팝콘과 음료수는 포기했다. 좀비 영화라서 더 그랬다.
영화 시간까지는 아직 십 분 정도 남아, 이미연과 박성아는 의자에 앉아 들떠 보이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 누구도 보지 못했고, 관계자가 아니라면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영화를 보러 간다는 느낌은 재미있고 신기했다.
“첫날이라서 마음이 편하네.”
“시사회도 없어서 어디서 스포당할 걱정도 안 해도 되고.”
이번 영화가 끝나면 여기저기 [스포주의] 글이 떠돌고, 이야기가 번져나갈 터였다.
“대부분 조용하겠지만, 그래도 어디선가 퍼지겠지.”
“역시 첫날이 마음이 편해.”
그렇게 조금 기다리니, 영화 시간이 되었다.
“제8관! 이스케이프를 관람하실 분들은 8관으로 입장해 주시길 바랍니다!”
직원의 안내와 함께, 영화관에 온 많은 사람은 일제히 8관으로 향했다. 이미연과 박성아도 들뜬 마음으로 8관으로 향했다.
영화표에 쓰여 있는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끄고 몸을 의자에 기댔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스크린 가득 뜬 광고를 보았다. 광고가 끝나고 대피로를 안내 영상이 흘렀다.
옛날이라면 신경도 안 썼을 안내 영상이었지만, ‘한 걸음’을 인상 깊게 본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가며 비상구를 확인했다.
곧 상영관이 어두워지고,
배급사 로고와 영화드림 제작사의 로고가 떴다. 투자사 플러스+의 이름도 떴다.
‘플러스?’
플러스 코리아가 아니고?
이미연과 박성아, 이스케이프에 대해 잘 아는 관객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 생각해 보면 플러스+코리아라고 짐작한 건 이스케이프 측이 아니라 네티즌이었다.
‘뭐, 어디든 상관없지.’
지금 궁금한 건 영화였다.
모두 소리를 죽이고 커다란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 * *
하늘에서 땅을 내려찍고 있던 카메라 앵글에 새까만 차 한 대가 들어왔다. 거칠 것 없이 홀로 달리는 차의 모습은 이 땅이 얼마나 넓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는지 짐작하게 했다. 차를 따라 이동하던 카메라에 굳게 닫힌 문이 보였다.
[미국-O.W.C 연구소]
?
시작부터 미국이요?
이미연과 관객들은 눈을 깜빡였다.
잠시 대기 후, 문이 열렸다. 무겁게 열린 문 안으로 차가 들어갔다. 여기저기 총을 든 경비원들이 지나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차는 지하 주차장에 멈춰 섰다. 운전기사의 손에 차 뒷문이 열리고 양복을 입은 남자가 내렸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뚜벅뚜벅 걸어가 지문과 암호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카메라는 최첨단 시설로 둘러싸인 공간을 거침없이 가로지르는 남자의 뒤를 따랐다.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남자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뒷모습까지 여유로운 남자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남자는 손짓으로 인사하며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탄 남자가 도착한 곳은 지하 연구실이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여러 대의 컴퓨터와 높게 쌓여 있는 종이들.
그 사이로 긴 금발을 대충 묶고 흰색 가운을 입은 여자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손에 잡힌 종이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몇 번을 봐도 종이에 적힌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어?
수백 명이 있던 상영관에 순간 멈추었다.
스크린을 빼고 시간이 멈춘 것처럼 한 사람도 빠짐없이 똑같은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쳤어! 미쳤다고!/”
여자는 쌓여 있던 종이들을 들쑤셨다.
어어?
공기마저 멈춘 듯, 아무도 숨을 쉬지 못했다.
관객들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눈동자가 크게 요동쳤다. 누군가는 입을 쩌억 벌리기도 했다.
“/마리아 교수님./”
마리아 교수라고 불린 여자가, ‘아닐 거야’를 외치며 서류를 살펴보고 있을 때, 누군가 마리아 교수를 불렀다.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으면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이미연과 관람객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고개를 돌리면 귀에 익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남자가 웃으며 활짝 열려 있던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 노크를 안 했네요./”
“/사무엘! 이게 정말인가요?!/”
“/음. ‘이게’ 무슨 뜻인지?/”
깔끔한 정장을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사무엘과 새하얀 가운을 입고 흐트러진 금발을 대충 묶은 마리아 교수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
!
!!!
“으아아악!?”
상영관 어디선가 커다란 비명이 들려왔다. 이미연과 박성아는 이번만큼은 이해할 수밖에 없는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들도 비명이 나올 것 같아, 입을 손으로 꾹 막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미 속으로는 상영관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으아아아! 미친 거 아니야!?’
이미연과 박성아는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숨이 턱 막히고 심장이 두근두근 뛰다 못해 쿵쾅쿵쾅 뛰었다. 발끝에서부터 머리털까지 삐죽삐죽 소름이 돋고 있었다.
여기서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할리우드 스타,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었다.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려 놓고도 영화는 계속 진행되었다.
“/역시. 교수님은 너무 똑똑하십니다. 저희가 이번 일을 맡기길 참 잘한 것 같습니다. 헤드헌터에게 성과금을 더 줘야 하겠군요./”
“/사무엘! 농담할 때가……!/”
“/농담이 아닙니다. 교수님./”
내가 영화관을 잘못 들어왔나?
이젠 여기가 어딘지 헷갈릴 정도였다.
아니, 저 배우들이 왜 여기서 나와? 새로운 할리우드 영환가?
생각지도 못한 배우들의 등장에 상영관이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는 휴대폰을 꺼내 제 놀람과 경악을 전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망했네.’
이미연도 옆에 앉은 박성아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참고 있었다. 슬쩍 옆을 쳐다보니 박성아도 복잡한 표정이었다.
‘한 번 더 봐야겠어.’
떠들썩한 사람들의 소리와 여기저기서 보이는 휴대폰 불빛에 해탈한 이미연과 박성아가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할리우드 스타들이 열연하고 있었다.
“/아, 이 말 하려고 왔는데…… 깜빡했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사무엘이 말을 이었다.
“/남한에서 새로운 X가 발견됐답니다. 그래서 한국에 갈 예정인데, 부디 교수님도 동행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 회사 소유의 병원과 연구소가 있으니, 한국에서도 충분히 연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무엘의 파란 눈이 사납게 빛났다.
[두 달 후]
[한국]
화려하게 꾸며진 VIP 병실에 누워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나타난 외국인과 경호원.
세상에…….
이미연과 박성아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싶었다. 깜짝 선물은 할리우드 배우들만이 아니었다. 다들 멍한 얼굴로 욕설을 내뱉고 있는 박도훈과 굳은 자세로 서 있는 이지석을 바라보았다.
세상에……! 할리우드 배우들보다는 덜 놀라긴 했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게 놀랐다.
사내가 사납게 소리를 질렀다.
“저 새낀 누구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고객님. O.W.C.에서 왔습니다./”
“O.W.C.? 도대체 약은 언제 만들어지는 건데!”
“/오./”
사무엘이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아직 실험 중이라……./”
“당장 가져오라고!!”
“/그래서 제안할 게 하나 있습니다만./”
씩씩거리던 사내가 되물었다.
“……제안?”
“/지금 개발 중인 약이 있습니다만, 제법 효과를 보인답니다. 아직 부작용도 약간 있지만요./”
“부작용?! 그걸 나한테 쓰겠다고?! 미친 거 아니야!!”
“/아주 약간의 부작용입니다. 지금 상태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중얼중얼 욕을 뱉던 사내가 대답했다.
“……좋아.”
“/감사합니다./”
사무엘은 여전히 사람 좋은 얼굴로 웃으며 병실 밖으로 나왔다. 아아아악, 제 분을 못 이긴 사내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리고 경호원은 급히 의사를 불렀다.
사무엘은 휴대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좋은 실험체를 하나 구했습니다. 정신도 멀쩡하고 몸 상태도 괜찮습니다.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 어쩌면 일반 실험체보다 좋을 수도 있겠군요. 네. 약을 준비해 주십시오./”
사무엘의 눈동자가 만족스러움에 번들거렸다.
실험자의 동의를 받은 사무엘은 O.W.C 본사에 연락했다. 사무엘과 같은 업무를 맡은 사람들에게도 ‘실험’ 소식이 전해졌다. 바이러스 X를 연구하고 있는 다른 연구소에도 전해졌다.
과연 누가 가장 먼저 황금알을 낳을 거위를 만드나.
돈에 눈이 먼 경쟁은 치열해졌다.
마리아 교수에게 실험을 통보한 사무엘은 날짜를 잡았다.
‘실험자’를 연구소의 한 병실에 대기시키고 생명 연장팀으로 향했다.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보고 사무엘이 어깨를 으쓱였다. 도어락에 검지의 지문을 입력시켰다.
삐릭-
하고 두꺼운 문이 열렸다.
깜깜한 사무실 안.
“/박사님./”
사무엘은 전등 스위치를 찾기 위해 차가운 벽을 손으로 더듬었다.
“/잠은 숙소에서 주무시라고……./”
그으으으.
기이한 소리에 사무엘은 말을 멈추었다.
“/박사님?/”
사무엘은 실험체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실험체는 눈이 안대로 가려져 있고 입을 막아놓은 상태였다.
제어장치가 없는 실험체를 한 번이라도 봤다면 사무엘은 바로 연구실을 뛰쳐나갔을 터였다.
[O.W.C.의 관리는 완벽하다.]
그 생각이 허점을 만들어냈다.
달칵.
상황을 파악하려던 사무엘은 불을 켜고 말았다.
!!
어떻게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몰랐을까.
피투성이에 여기저기 살이 물어뜯긴 좀비가 빛 아래 나타났다.
스크린 가득 나타난 좀비의 얼굴에 관객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순간 상영관이 조용해졌지만 그걸 이끌고 나갈 힘은 없었다.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미러와 제나 트라이드가 열심히 분장하고, 본 브레이킹 댄스팀 리더가 열연한 좀비의 등장에도 상영관은 여기저기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좀비 영화를 예상하고 온 만큼 충격이 크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미연과 박성아의 눈이 마주쳤다. 이런 상태에서는 영화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2시간 내내 이런 소음을 들으며 영화를 볼 바에야 나중에 잠잠해지면 다시 처음부터 관람하는 게 나았다.
‘괜히 첫날에 봤나?’
하지만 에반 블록과 리첼 힐, 이지석과 박도훈의 깜짝 출연을 이야기로 들었다면 아쉬웠을 거다. 이미연과 박성아. 그리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관객들이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중,
카메라 화면이 바뀌었다.
사무엘이 방금 들어간 문이 보였다.
스크린 가득 굳게 닫힌 문만 보였는데, 어쩐지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힘이 느껴졌다. 고민하던 관객들의 눈이 스크린으로 향했다.
배경음도 효과음도 들리지 않는 스피커는 조용했다.
아직 ‘에반 블록, 리첼 힐, 이지석, 박도훈’의 출연이라는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관객들도 있었고 그 소식을 밖으로 전하기 위해 휴대폰을 두드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길어지는 조용함과 느껴지는 무언가에 하나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했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해서 고장이라도 난 게 아닌가 싶었을 때,
쿵!
문 뒤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울림은 생각보다 컸다.
쿵!
다시 한번 소리가 울렸다.
그저 쿵쿵 소리였을 뿐이었는데도 등골이 오싹오싹했다. 누군가 침을 삼켰다. 두 번의 큰 울림만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쿵!
화려한 배우들의 깜짝 등장에 정신이 팔렸던 관객들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변했다. 옆 사람과 떠들고 있던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관객들은 저도 모르게 놀라, 휴대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목을 움츠렸다. 휴대폰 불빛이 하나둘 사라졌다. 다시금 깜깜해진 상영관은 무거운 어둠에 깔린 듯 조용했다.
모두의 시선이 스크린으로 향했을 때, 또 한 번.
쿵!!
상영관의 사방에 달린 스피커에서 문에 부딪히는 충격까지 전해주는 것 같았다.
몇몇 관객은 몸을 뒤로 뺐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문 건너.
위험한 것이 있었다.
의자에 몸을 파묻고, 친구의 손을 꼭 잡고, 눈을 질끈 감고.
그러나 소리는 들렸다.
쿵!
문의 위쪽이 살짝 튀어나왔다.
쿵!
문의 아래쪽이 살짝 튀어나왔다.
쿵!
문의 아래쪽이 움푹 파였다.
잠시의 소강상태.
침묵이 길어졌다.
끝났나?
몸을 웅크리고 손에 땀을 쥐며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던 이미연과 박성아, 그리고 관객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스크린을 올려보았다.
쿵!
쿵! 쿵! 쿵!
쿵쿵쿵쿵쿵쿵쿵!
계속되는 커다란 울림과 함께, 굳게 닫혀 있어야 할 문이, 사정없이 찌그러지며 금방이라도 열릴 듯 들썩였다.
“히익!”
“흡!”
남자의 마지막 숨까지 끊어놓기 위해 날뛰는 좀비.
보이진 않아도 상상이 되는 그 장면에 여기저기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쿠웅!
마지막 벽처럼 관객들과 좀비의 사이를 막아주던 두꺼운 문이 반으로 찌그러졌다. 잠겨 있었던 문이 문틀과 맞지 않아 삐그덕, 열려 버렸다.
이미연과 박성아는 숨소리가 들릴까, 손으로 입을 덮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는지 상상하지도 못한 카메오의 등장에 들썩이던 상영관은 언제 그랬냐는 듯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도 카메오들을 떠올리지 못했다.
에반 블록? 리첼 힐?
그런 관심도 모두 제 안전이 확실한 후에나 나타나는 것이었다.
후우, 후우.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모를 숨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마저 들릴 것 같았다.
죽음 같은 적막이 흘렀다.
상영관 안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던 그때.
마지막 경계선 같았던 문 사이로, 축축한 피가 묻은 신발이 나타났다.
그저 스윽, 발을 내밀었을 뿐이었지만,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모습에 모두 몸을 움츠렸다. 아플 정도로 주먹을 꽈악 쥐었다. 심장이 쫄깃해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쿵쾅쿵쾅 심장이 뛰었다.
무섭고 오싹하고 기이한 느낌.
그럼에도 묘한 분위기에 관객들은 고개를 돌리면서도 눈만큼은 스크린을 향하고 있었다. 제 목숨을 노리고 있는 적을 향한 경계심인지, 기이한 것을 직접 보고 싶은 호기심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과연 저기선 뭐가 나타날 것인가.
관객들은 숨도 쉬지 않고 눈도 깜빡이지 않고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화면이 바뀌었다.
새가 날아다니고, 푸르른 나무와 잘 정돈된 정원이 보였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차의 엔진 소리가 들렸다. 새하얀 구급차가 보이고 짧은 휴식시간을 즐기고 있는 의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병원에 가기 싫어 우는 아이들의 모습마저 평화롭게 보였다.
조금 전, 사람들의 심장 소리마저 들릴 것 같던 적막과는 다른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생명력이 가득한 소리가 들리자, 바짝 긴장하고 있던 관객들은 허탈하면서도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는 게 명백한데 무슨 배짱으로 그 문을 계속 바라봤는지 모르겠다.
“으아…….”
너무 긴장한 나머지 힘이 빠졌다. 다들 뻣뻣하게 굳은 몸을 의자에 기댔다. 너무 꽉 쥐어 저릿한 손을 쥐었다 펴고, 목이 말라 물을 마시면서도 관객들의 시선은 스크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일상의 풍경.
하지만 관객들은 평화롭지만, 평화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평화를 뒤덮을 좀비를 떠올리니, 다시 등골이 오싹해졌다.
단 한 번의 등장.
그것도 얼굴도 나오지 않은 장면이었다.
서준의 연기는 어린이 연극 봄 때처럼 관객들을 이스케이프의 세상으로 끌고 와버렸다.
영화가 시작한 지 겨우 10분.
여러모로 시끌벅적했던 이스케이프 상영관들처럼 상영관 밖도 만만치 않게 떠들썩했다.
[이스케이프 게시판(스포有)]
-언제 글 올라올까?
-젤 빠른 타임은 이제 시작했음. 끝나기까지 아직 2시간 남았어.
-오늘 자리가 없어서 내일 보는데……. 궁금해 죽겠다.
-이서준 연기 잘했겠지?
-엄청 잘했겠지.
>이건 미쳤어어어어ㅓㅓ
-??뭐야??
>제작사가 미쳤나 봐ㅏㅏ!!!
>으아아아아
>세상ㅇ에ㅔㅔㅔ
>소리지르고 싶은데 영화관이라 이걸로 대신한다아아아ㅏ
-……다들 왜 이럼?
-SNS도 장난 아닌데? 난리 났음.
-근데 다들 뭐 때문인지 말을 안 해ㅋㅋㅋ
-지금 영화 시작한 지 10분도 안 됐는데 도대체 무슨 일임?
-다들 영화 보면서 휴대폰 하는 거야?
-와. 관크 대박이다.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말하고 싶은데 말하면 안 돼!
>22 이건 직접 봐야 한다!
-나 스포 괜찮음. 말해
-ㅇㅇ여긴 스포 허용 게시판임
>아니야! 이건 스포하면 절대 안 돼!
>영화관! 영화관에서 봐야 해!!
>귀 막고 눈 막고 영화관에서 봐!!!
-?그럼 영화관 어떻게 감?
>안 돼애ㅐㅐ이건 모르고 봐야 해.
>222제발……!
>으아아아ㅏㅏㅏ또 나왔어!!
>여기서 보다니!!!
-기사 떴다!
-아직 영화 상영 중인데 기사가 떴다고?
-이게 뭔 개판이냐?
-??기자도 스포는 보지 말라는데? 영화관에서 봐야 한대.
-기사 쓰는 기자까지 그런다고? ……도대체 지금 영화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상상도 못 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
>222진짜 내가 살다 살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
>우리 상영관은 뒤집어졌다.
>우리도 다들 떠듦. 관크 대박!
-너도 진상짓 중이다.
>오늘 봐서 진짜 다행임.
>진심 다행. 근데 영화엔 집중 못 하고 있음ㅎ
-와. 궁금해 죽겠다.
-스포 게시판인데 왜 스포를 안 하냐.
>헉 좀비
>좀비 나왔다!
-좀비! 어떤데??
-할리우드 팀 좀비는 어떰?
>ㄴ호ㅕㅇㅎ에레
-???
-저기요?
>내ㅠ자ㅔㅂ라ㅜ
-저기요???
-??왜 갑자기 글이 안 올라옴?
-좀비한테 먹힌듯ㅎㅎ
-진짜 뭔 일이래??
-으아아아! 보고 싶다아아아ㅠㅠ
-시골 간 사람이 승자였어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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