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208화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촬영으로 이스케이프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단역 배우들부터 스태프들, 특수분장사들까지 모두 밝은 얼굴로 박수를 쳤다.
마지막 촬영을 보기 위해 왔던 플러스+ 코리아의 지사장과 이한솔 대표도 활짝 웃으며 열심히 박수를 치고 있었는데 두 사람 다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있었다.
“안 입고 있으신 분들도 있군요.”
지사장이 촬영장을 둘러보았다.
촬영장에 있는 사람들은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3분의 1쯤이었고, 나머지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여기저기 일하면서 돌아다니기엔 롱패딩이 불편할 수도 있었지만,
“뭐. 디자인이 한글이라서 그렇죠. 저도 ‘탈출’이라고 적혀 있었으면 조금 고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입었겠지만요.”
디자인이 한몫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었다.
“그래도 버리지만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따뜻해서 버리진 않을 겁니다. 뒤에 글자를 없애거나 가리는 정도겠죠.”
“그 글자가 진짠데 말입니다.”
지사장과 이한솔이 후후후 악당처럼 웃었다. 그러다 옷을 갈아입으러 가는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 아는 얼굴에 서준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자, 두 사람도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서준이 사라질 때까지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던 지사장과 이한솔이 본론에 들어갔다.
“다른 곳에서 찍었던 장면들의 세트장도 여기에 복원하기로 했습니다. 남아 있는 방이 꽤 있어서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썼던 휴게실도 그대로 두고 매점도 만들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지사장이 문뜩 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건 어디에 놔두실 생각입니까?”
“아, 그거요.”
‘그거’라고 말해도 이한솔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이서준 배우가 연기했던 연구실 문은 건물 가장 안쪽에 홀로 놔둘 예정입니다. 방 안쪽은 좀비 발생 후의 연구실처럼 꾸밀 거고요.”
이한솔이 빙그레 웃었다.
“구석에 스피커를 달아서 그 장면에 녹음했던 소리를 그대로 들려줄 생각입니다. 여름에 인기가 많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겠네요.”
완성될 ‘이스케이프 테마파크’를 기대하며 지사장도 만족스럽게 웃었다.
* * *
[(단독)영화 이스케이프 촬영 종료!]
<영화 이스케이프의 촬영이 어제 끝났다.
한국형 좀비 영화로 소개된 이스케이프의 주연 배우는 김종호 배우(임장우 역), 이다진 배우(연재희 역) 이서준 배우(고주원 역)로 막강한 티켓 파워를 보일 것이라 짐작된다.
(중략)
한때 루머로 퍼지던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미러와 제나 트라이드의 협업은 사실로 드러났고, 한국 Top 3의 특수분장팀들이 모두 함께 작업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략)
편집 작업과 CG 작업 등만 남겨둔 지금, 할리우드 CG팀이 합류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이스케이프의 개봉일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영화의 장르상 여름쯤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단독 기사가 뜨고, 그 뒤를 이어 많은 기사가 떴다. 얼마나 많은 관심이 몰렸는지 몇 시간 동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였다.
-촬영 끝났다아아아!!
=아직 작업이 좀 남았지만, 끝났다아아!!
-이렇게 보니 장난 아닌데ㅎ
=할리우드 CG팀까지 불러오는 거?
=투자사가 엄청 돈 쓰나 본데?
-그래서 개봉은 언제?
-ㅎ시사회 보러 가야지ㅎ
=똥손이긴 하지만 도전!
=저기. 시사회 신청은 어떻게 해요?
=일단 공고가 떠야 가능함.
-여름방학 계획표: 1일 1이스케이프
=1일 2이스케이프!
* *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마니 받으세요!”
한복을 입은 서준이 절을 하자, 서준을 보며 눈을 반짝이던 은수도 바닥에 엎어지듯 절을 했다. 자그마한 은수가 입은 한복 치마가 나풀거렸다.
고개를 바닥에 묻은 은수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서준을 바라보았다.
오빠. 언제 일어나지?
아예 고개를 서준 쪽으로 돌려 눈치를 보는 은수를 보며 어른들과 엎드려 있던 서준이 실실 웃었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가만히 있는 것은 답답했다. 은수는 얼른 세배를 끝내고 오빠랑 놀고 싶었다.
조막만 한 두 발을 꼼지락대는 은수의 사진을 찍은 서은찬이 신호를 보내자 서준이 일어났다. 그 모습에 은수도 활짝 웃으며 벌떡 일어났다. 김수련과 서은혜, 이민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손자 손녀의 귀여운 모습에 외할머니도 활짝 웃었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절도 할 줄 아네!”
“그러게. 우리 은수. 엄청 잘해!”
“와! 은수 대단하다!”
할머니의 칭찬에 서은혜의 칭찬, 서준의 박수까지 더해지자 은수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입술이 씰룩씰룩거리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응! 나 잘해! 또 할래!”
가만히 못 있어 발을 꼼지락대던 게 조금 전인데 까맣게 잊은 듯했다. 신이 난 은수는 다시 한번 외할머니 앞에 섰다.
“억! 은수야. 두 번은 안 돼!”
서은찬이 얼른 다시 엎드리려는 은수를 말렸다.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오늘은 설날.
길고 긴 연휴가 시작되었다.
“이건 우리 서준이 세뱃돈. 이건 우리 은수 세뱃돈.”
“감사합니다.”
“감사함니다!”
세뱃돈을 받은 은수가 서은찬에게 쪼르르 달려가, 자랑했다. 한복 치마를 나풀거리며 달려가는 네 살 아이의 모습에 어른들도 서준도 귀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아빠, 나 돈 이만큼 있어!”
“아이고. 우리 은수 부자네!”
“그치? 나 초코 먹고 싶어!”
“그럴까? 초코가 어디 있나?”
어째서 세뱃돈 자랑 다음이 초콜릿인지는 모르겠지만, 딸의 귀여움에 넘어간 서은찬은 헤벌레 웃으며 은수와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서은혜는 서은찬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은수를 보며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은수가 은찬이 안 닮아서 다행이네.”
“큽!”
먹던 식혜를 뱉어낸 이민준과 빵 터진 서준은 물론이고 김수련과 외할머니까지 실소를 뱉어내고 말았다. 모두 말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초코를 먹은 은수에게 서준이 물었다.
“은수야. 뭐 하고 놀까?”
“청룡님 놀이!”
그 말에 서준도 어른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서 그 이름이 나올지는 몰랐다.
“청룡님 놀이?”
“응! 청룡님한테 소원 비는 거야!”
“그래. 그러자. 청룡님 놀이라면 세상에서 오빠가 제일 잘할걸!”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에 어른들이 작게 웃었다.
은수가 눈을 반짝였다. 은수는 언제나 재미있게 놀아주는 서준이 오빠의 말을 당연히 믿었다.
“진짜아?”
“그럼! 잠시만 기다려 봐.”
“서준아. 은수 가방에 청룡님 인형 있어.”
놀이에 필요할까 싶어 서은찬이 인형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잠시 방으로 들어갈 핑계를 생각하던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알았어!”
은수의 가방이 있는 방으로 들어온 서준은 얼른 [(선)여름곰의 겨울잠]을 이용해 생의 도서관에서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를 꺼내왔다. 그러곤 은수의 가방에서 청룡님 인형을 꺼냈다.
“오랜만이라 반가운데.”
능력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목에 새겨진 문양이 반짝거렸다. 서준은 중하급의 능력을 최하급으로 낮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직 동생을 위한 연기였으니까.
[(선)블루 드래곤 해츨링의 약한 피어-최하급이 발동됩니다.]
엉덩이를 씰룩이며 서준만을 기다리던 은수의 시선이 방에서 나온 서준의 손으로 향했다. 블루 드래곤의 마나를 품은 청룡님 인형이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인형이라 작지만, 부드럽게 흔들리는 수염과 반짝이는 비늘은 정말로 진짜 같았다.
“와아아!”
눈앞에서 만나는 청룡님의 모습에 은수의 눈이 반짝반짝해졌다.
“청룡님, 청룡님. 제 소원을 들어쥬세요!”
[그래. 무슨 소원이니?]
“……진짜 청룡님이야!”
목소리까지 똑같아 은수는 꺄아아, 환호성을 질렀다. 아빠의 어색한 흉내와는 차원이 달랐다. 잔뜩 흥분한 은수와 오랜만의 청룡 연기에 들뜬 서준은 즐겁게 청룡님 놀이를 하며 놀았다.
“청룡님, 청룡님! 비를 내려주세요!”
[이런. 내 여의주가 없어서 소원을 들어줄 수가 없구나.]
여의주!
은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막만 한 두 주먹을 꽉 쥐고 외쳤다.
“은수 가방에 있어요!”
[오호. 그래?]
“네에!”
은수가 쪼르르 방으로 달려가 여의주를 가지고 왔다. 서준은 은수의 소원을 들어주고 난 후(분무기로 가볍게 물을 뿌렸다), 여의주를 방에 숨겼다. 은수와 함께 여의주를 찾고 다시 소원을 들어주었다.
퀄리티가 남다른 놀이에 어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요새 은수가 ‘봄’에 푹 빠졌거든.”
“어디서 봤대?”
“어린이집에서 보여줬대요. 애들 얌전하게 만드는 건 여의주가 딱이라 거의 어린이집 첫날에 보여준다고 하더라구요.”
김수련의 이야기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청룡님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더라. 은하수 센터까지 갔다니까.”
“은수는 서준이가 진짜 청룡님이란 건 꿈에도 모르겠네.”
“크면 알겠지만, 지금은 무리지.”
은수가 소원을 빌면 서준이 소원을 들어주었다. 네 살 아이가 빌 법한 작고 재미난 소원들에 은수와 서준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꺄르르 웃는 아이들을 보는 어른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맴돌았다.
서은수, 4세.
본인도 모르게 ‘진짜 청룡님’을 만난, 성공한 덕후가 되었다.
“……저렇게 호화로운 역할극 놀이도 없을 거야.”
문득, 현실감각이 밀려들어 온 슈퍼스타 이서준의 소속사, 코코아엔터 사장의 말에 어른들은 빵 터졌다.
* * *
꽃피는 3월.
서준은 여울 예술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새롭게 반이 편성되고 서준은 한지호, 양주희와 함께 1반이 되었고 강재한, 김주경은 2반이 되었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치열했다더라.”
“나도 들었어. 우리 실기 시험은 이틀이었는데, 이번엔 나흘이었대.”
“단순하게 따져도 두 배는 올랐네.”
입학식을 위해 여울홀에 모인 아이들이 떠들었다. 연기과는 물론이고, 보통 때와는 다른 주목도에 미술과와 음악과까지, 음악과는 특히 바이올린 쪽이 치열했다고 한다.
“서준아. 저기.”
“응?”
옆자리에 앉은 한지호가 서준을 불렀다. 올해 연말 공연을 할 거라면서 신이 난 주희의 이야기를 듣던 서준이 한지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1학년이 잔뜩 서 있는 그곳에 한 남자아이가 서준이 있는 쪽을 보며 열심히 두 팔을 흔들고 있었다. 남자아이의 옆에 서 있던 아이들도 눈을 반짝이며 서준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고 있는 얼굴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한석이네!”
“한 걸음에 같이 출연했던 애 맞지?”
“응. 어디 중학교 가는지 말 안 해주더니, 우리 학교였구나!”
서준이 손을 흔들어주자, 김한석이 환하게 웃으며 더 격하게 팔을 휘둘렀다. 벌써 친구들이 생긴 듯, 옆에 있던 1학년들이 김한석에게 몰려들어 여울홀이 시끌벅적해졌다.
“진짜 이서준이랑 아는 사이네!”
“이서준이 뭐야! 선배님이라고 해!”
“내가 이서준 선배님이랑 같은 학교라니!”
할리우드 스타를 직접 보고 들뜬 1학년들과 학부모들을 겨우 진정시킨 후, 여울 예중의 입학식이 시작되었다.
입학식이 끝나고 2학년 1반 아이들은 교실로 향했다. 담임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반장을 뽑기로 했다.
“그럼 반장은 양주희.”
“열심히 하겠습니다! 연말 공연 같이할 사람!”
지금만을 기다렸던 듯 양주희가 외쳤다.
무슨 말인지 잠시 못 알아들은 아이들은 눈을 몇 번 깜빡인 후에야 주희의 말을 이해했다. 몇몇 아이들이 번쩍 손을 들었다. 담임 선생님은 씩씩한 반장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이 넌?”
“난 촬영이 있어서.”
함께 공연할 아이들의 명단을 적어 내려가던 주희의 물음에 서준이 답했다.
서준의 말에 선생님도 아이들도 눈을 반짝였다. 서준의 옆자리에 앉은 지호가 물었다.
“쉐도우맨3 촬영해?”
“응. 아마 가을쯤에 촬영 시작할 것 같아.”
와아.
아이들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에반 블록이랑 만나겠네!”
“리첼 힐도!”
잠시 머릿속으로 법으로 정해진 출석 일수와 여울 예중에 허용된 특별활동 일수를 떠올려보던 담임 선생님이 말했다.
“일정 나오면 선생님한테 알려줘. 준비는 해놨지만 예상보다 촬영이 길면 방법을 마련해야 하니까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새로운 학년, 새로운 반, 새로운 친구들에 익숙해질 때쯤, 4월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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