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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06화 (206/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06화

“서준아!”

“다진이 누나!”

활짝 웃으며 달려온 이다진이 서준과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았다. 서준도 환하게 웃으며 같이 돌았다. 아하하하 웃으며, 주차장 한가운데서 빙글빙글 도는 두 배우의 모습에 스태프들이 흐뭇하게 웃었다. 모두 어린이 연극 봄의 인연을 알고 있었다.

“자. 저쪽 가서 마저 하자. 주차장은 위험해.”

이다진의 매니저가 서준과 이다진을 안쪽을 슬며시 밀었다. 하이텐션인 이다진을 말릴 수 없다는 걸 매니저는 잘 알고 있었다. 충분히 만끽하도록 놔두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그 묘한 포기를 느낀 서준이 아하하하 웃었다.

“할리우드 특수분장팀이랑 우리나라 특수분장팀 정말 대단하더라. 좀비 영화 잔뜩 보고 각오하고 왔는데도 좀비 분장보고 엄청 놀랐어.”

“저도요. 상처도 진짜 같지 않았어요?”

“응, 응. 뼈가 보이는 건 좀 징그럽더라.”

서준도 자신의 기억에 있는 진짜 좀비와 비교해도 지지 않을 정도라 감탄했다. 재잘재잘 이야기를 나누다 서준이 말했다.

“누나, 팬분들이 커피 차 보내주셨는데, 커피 마실래요? 쿠키랑 빵도 있어요.”

단역 배우들의 몫까지 양도 넉넉했다.

“커피 차!”

이다진이 반색했다.

아침을 먹고 왔지만, 원래 밥 배랑 빵 배랑 디저트 배는 다른 거였다.

“뭐가 있으려나? 오렌지 주스는 있겠네.”

“아하하하.”

서준이 제일 좋아하는 주스.

서준의 팬이 서준에게 커피 차나 밥 차를 보낼 때 가장 신경 쓰는 음료였다.

서준이 커피 차로 이다진을 안내했다. 커피 차에서 오는 듯, 지나가는 사람마다 어쩐지 주황빛 오렌지 주스가 든 컵을 들고 있었다.

“인기 많네. 오렌지 주스. 하긴 다른 음료보다 신경 쓸 테니까 맛있을 것 같아.”

“여기서 직접 만들어준대요.”

“……오렌지 주스를?”

“네. 다호 형이 그랬어요. 착즙기도 있대요.”

서준은 안다호가 보내준 커피차의 사진을 이다진에게 보여주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세 대의 착즙기가 있었다. 이다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세 대의 착즙기 브랜드가 모두 달랐던 것이었다.

“왜 브랜드가 다 달라?”

“그게요.”

이다진의 질문에 서준이 웃으며 이야기해 주었다.

[새싹부터]에 커피 차 후원 공고가 뜨고, 서준이 제일 좋아하는 오렌지 주스를 즉석에서 갈아주자는 의견이 나왔다. 만장일치로 찬성하고 당도 높은 오렌지를 구입하고, 착즙기가 없는 커피 차에, 착즙기를 사거나 대여해서 보내주기로 했다.

그 소식을 어쩌다 들은 여러 착즙기 회사에서 협찬하고 싶다고 전해왔고, 팬들은 그 제안을 거절했다.

-사진 같은 거 찍히면 광고잖아요.

-ㅇㅇ 서준이 이름이랑 사진. 광고용으로 쓸지도 모르니까요.

언제 ‘이서준 팬카페에서 보낸 커피 차의 착즙기’가 ‘이서준이 사용하는 착즙기’로 변할지 몰랐다. 그렇다고 착즙기를 안 살 수는 없어, 가장 평이 좋은 착즙기 회사 세 곳을 골랐다고 한다.

이다진이 허허 웃었다. 역시 슈퍼스타와 슈퍼스타의 팬들은 달랐다.

“그걸 거절하는구나. 서준이랑 서준이 팬들은 진짜 대단해.”

“그쵸? 다들 엄청 멋지세요.”

서준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뭐, 내 팬분들은 더 대단하지만.”

이다진의 발언에 서준이 이다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다진도 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불꽃이 튀는 것 같았다.

곧 팬을 사랑하는 두 배우, 서준과 이다진의 팬 자랑이 이어졌다.

“제 생일 때마다 기부도 해주세요. 제 팬분들 엄청 착하시지 않아요?”

“나도! 생일 때 기부도 하고 봉사활동도 해주셨어.”

“영화 관람도 많이 해주시고. 감상도 자세히 적어주셔서 좋아요.”

“내 영화도 엄청 보시거든? 후기도 많이 올라와!”

“편지도 많이 보내주세요! 회사랑 집에 이만큼 쌓여 있어요!”

“나도 다들 손으로 써서 보내주시거든!”

“전 세계에서 와요!”

“그……!”

서준의 말에 이다진의 입이 턱 막혔다.

“-건 아니지! 인원수는 인간적으로 빼야지!”

“한 분 한 분 다 소중한 팬인데 어떻게 빼요.”

맞는 말이라 이다진은 또다시 할 말을 잃었다.

“너, 너!”

뒤늦게 온 김종호가 우쭐해하는 서준과 씩씩대고 있는 이다진을 보며 고개를 모로 꼬았다.

잠시 후.

두 후배 배우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김종호가 하하 웃고는, 팬 자랑에 참전했다.

“내 팬들은 벌써 20년 넘게 활동 중이야.”

그 말에 이다진은 일찌감치 두 손을 들었고, 서준은 잠시 고민했다. 먹방 때부터냐, 팬카페가 만들어졌을 때부터냐. 하지만 서준의 나이는 겨우 14살. 어떻게 해도 20년을 넘을 수는 없었다.

‘첫 생의 팬까지…… 끌어오는 건 안 되겠지.’

팬이 있었는지는 둘째치고,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이라 서준까지 두 손을 들었다.

“하하하.”

팬 자랑의 승자는 김종호였다.

* * *

“레디, 액션!”

종이로 가득한 사무실 안.

회의실로 쓰였는지, 커다란 테이블과 종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한 세 사람은 카페 주방에서 가져온 과일과 빵으로 배를 채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자와 아이는 돌아갈 것인가, 더 둘러볼 것인가, 의견을 나누면서도 테이블에 가득 쌓여 있는 종이를 읽어보기도 하고, 서랍과 방 안을 둘러보며 무기나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쩌다 이 팀에 합류하게 된 여자는 의자에 앉아 거세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연재희.

대학원생으로 아르바이트로 두 달째 출근 중.

오늘 중요한 실험이 있다고 출근 시간이 늦춰져, 3층 정원 카페에서 햇살을 즐기며 커피와 케이크를 먹던 중이었다.

쓸 만한 것이 없자, 임장우와 고주원도 자리에 앉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재희가 제 추측을 꺼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임장우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러니까 이게 좀비고.”

연재희와 고주원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좀비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연구소가 여기 뒤에 있는 연구소라고? 생명 연장 연구?”

이번에는 연재희만 고개를 끄덕였다.

임장우가 팔짱을 꼈다. ‘난 못 믿겠어’라고 온몸으로 거부하는 모습이었다.

“그걸 믿으라고?”

“안 믿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형사님은 ‘저거’한테 물리면 ‘저거’가 되는 병 본 적 있어요?”

“없지.”

그렇다고 좀비라고 말하긴엔…… 임장우가 한숨을 쉬듯 내뱉었다.

“그건 너무 영화 같잖냐.”

“때론 현실이 영화보다 더하죠.”

고주원의 말에 연재희가 눈을 끔벅였다. 중학생인 아이에게서 나올 말은 아닐 터였다.

임장우는 고주원의 사정을 모르지만, 속에 쌓아둔 이야기가 많다는 건은 알고 있었다. 잠시 짠한 눈빛으로 고주원을 바라보던 임장우가 고개를 돌려 연재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연구소에 가자고?”

“네. 연구소에 해결책이 있을 것 같아요.”

연재희가 기억을 더듬었다. 관련 학과가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서류를 분류하고 읽은 것도 두 달이었다. 영어는 자신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단어들에 잘못 해석했다고 생각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니 답은 하나로 이어졌다.

죽었지만 움직이는 ‘저것’을 이용한 생명 연장 연구.

그리고 마리아 교수는 그걸 막을 약을 연구 중이었던 것이다.

“교수님이 연구하고 있던 게 좀비를 막을 약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약의 시제품이 여러 개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이번 사태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요?”

“도움이 안 되면?”

“그럼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교수님의 연구 자료만이라도 가져올 수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거에요. 병원 밖에 있는 사람들한테 전해줄 수 있잖아요.”

임장우는 과학이라곤 하나도 모르지만 연재희의 의견은 마음에 들었다. 자료만 들고 가면 똑똑한 양반들이 알아서 해주겠지.

“좋아. 시제품이랑 자료가 있는 연구실이 어디야?”

혼자 갈 생각인 듯한 임장우의 말에 연재희가 얼른 말했다.

“저도 갈게요. 길 안내가 있으면 형사님도 편하시겠죠.”

연재희는 무서웠다.

하지만 이 상황을 알고 있을 O.W.C에서 아무 반응이 없다는 것이 더 무서웠다. 어쩌면 정말로, 이 사태에 대해서 실마리고 쥐고 있는 건 자신뿐일지도 몰랐다.

해결책이 없다면 좀비 사태는 점점 더 퍼져 나갈 테고 가족들과 친구들까지 위험해질지도 몰랐다. 한시라도 빨리 막아야 했다.

“게다가 제 의도는 아니었지만, 저도 이번 사고랑 관련되어 버린 것 같으니까요. 서류라도 들고 가면 정상참작은 해주겠죠.”

연재희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그에 임장우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갈래요.”

어린 목소리에 임장우와 연재희가 고개를 돌렸다. 고주원이 이렇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던 임장우는 이번에는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잔뜩 굳은 얼굴이었다.

“너……!”

안된다고 말하려던 임장우가 말을 삼켰다.

고주원은 울고 있었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피가 묻은 옷으로, 급하게 화살을 쏘느라 상처가 난 손바닥으로, 눈물이 멈추지 않는 얼굴을 닦으며 울고 있었다.

아마 마음껏 소리를 낼 수 있었다면, 고주원은 대성통곡을 했으리라. 끅 끅, 울음소리를 삼키면서도 눈물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멈추지 않았다.

친구들을 그렇게 만든 원인을 알아냈다. 해결책도 있는 것 같았다. 이미 친구들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친구들을 ……걔들을 계속 저렇게 놔둘 수는 없어요.”

계단을 내려갈 때 몇 번이고 뒤돌아봤다.

자신과는 반대 방향으로 대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민했다.

발걸음은 저절로 느려졌고 어깨는 잔뜩 굳었다.

짧은 머뭇거림이 모여 긴 시간이 되었다.

친구들에게로 향하는 시간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그렇게 빠르지도 않았다. 결국, 좀비가 된 친구들을 보고 나서야 고주원은 머뭇거렸던 자신을 원망했다. 무거운 죄책감이 목을 조르고 가슴을 내리누르는 것 같았다.

‘멍청한 고주원. 겁쟁이 고주원.’

그러니까 이건, 조그마한 속죄였다.

친구들…… 이 좀비가 된 건가.

임장우와 연재희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다.

고주원의 심정을 모두 짐작하지 못하지만, 그게 보통의 마음은 아닐 거라는 걸 임장우와 연재희는 알았다. 두 사람도 병원 밖에 있을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었으니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저 녀석은 따라온다.’

‘그럴 것 같아요.’

‘……데리고 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고주원이 감정에 복받쳐 우는 사이, 임장우와 연재희가 입 모양으로 대화했다. 도움이 안 되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묶어라도 놓을 텐데.

‘신에게는 12개의 휴대폰이 있습니다!’

의기양양하게 휴대폰을 늘어놓는 고주원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다란 양궁으로 좀비를 후려치는 힘도.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도. 활 솜씨야 두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였다.

두 어른은 이런 비상상황이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대답을 꺼냈다.

“그래. 알았다.”

“같이 가자. 주원아.”

그 말에 고주원은 힘겹게 울음을 삼키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임장우는 고주원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연재희는 고주원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형사 임장우, 양궁부원 고주원, 대학원생 연재희.

직업도 나이도 다른 세 사람의 목적지가 정해졌다.

이번 사태의 발생지라고 추측되는 O.W.C 연구소였다.

“컷, OK!”

최대만 감독이 외쳤다.

안다호가 펑펑 울던 서준에게 젖은 수건을 건네주었다. 눈물 때문에 뜨거워졌던 얼굴에 찬 기운이 들자 눈가가 시원해졌다. 서준의 눈가가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서준의 연기에 목이 먹먹해진 이다진이 100% 유기농 오렌지 주스를 흡입하다 뭔가 떠오른 듯 입을 열었다.

“아. 서준이 학교에서 연말 공연한다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던 김종호가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서준이 학교면 여울 예중?”

“네. 다음 주 금요일에요.”

수건으로 눈을 덮고 있던 서준이 대답했다.

오호.

이다진과 김종호가 눈을 반짝였다.

“서준이도 공연해?”

이다진의 기대 서린 말에 서준이 대답했다.

“아뇨. 2학년이랑 3학년만 해요. 1학년은 보조만 하는데, 전 이스케이프 촬영 때문에 못 해요.”

“그거 아쉽네.”

“그러게요.”

정말로 아쉬운 얼굴로 말하는 김종호와 이다진이었다.

“근데 연말 공연은 가족하고 학교 관계자만 올 수 있어서 종호 삼촌이랑 다진이 누나는 못 올 텐데요?”

이다진과 김종호가 씨익 웃었지만, 눈을 가리고 있던 서준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다 방법이 있어.”

“그래. 그러니까 서준이 너 공연할 계획 있으면 미리미리 삼촌한테 말해.”

“나한테도 꼭 말하기다? 알았지?”

“네.”

이다진과 김종호의 재촉에 서준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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