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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05화 (20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05화

“저도 같이 갈래요.”

고주원의 말에 임장우가 인상을 썼다.

이젠 임장우 자신이 고주원 대신 밖에 나갔다가 오겠다고 말하자마자 들려온 말이었다.

“넌 겁도 없냐?”

“아저씨. 저 없으면 죽을 뻔한 거 알아요?”

“그래. 그건 고맙다.”

고주원이 씨익 웃었다. 하지만 임장우의 말을 끝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데리고 간다는 말은 아니야.”

어른들마저 덜덜 떠는 이 상황에서, 어째서 중학생밖에 되지 않은 이 아이는 담담하고 멀쩡해 보이는 걸까. 고주원이 1층을 찾아왔을 때부터, 형사 임장우의 직업병이 발휘되었다.

‘현실도피, 저 나이 때의 영웅 심리, 아니면…….’

“이건 게임이 아니고 넌 죽을 수도 있어.”

고주원의 얼굴에 순간 그늘이 졌다.

이 상황을 게임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은 지금 현실도피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고주원은 생각했다.

좀비가 된 친구들을 만나고, 자신이 입원해 있던 병실로 돌아가지 못하고, 기껏 만난 어른들은 겨우 중학생인 자신에게 의지하고. 그러다 좀비와 싸우고,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는 임장우를 보았다.

처음으로 기댈 어른이 나타나자, 몸과 마음을 잠식하는 두려움에 애써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려고 했던 고주원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드러났다.

“……저도 알고 있어요.”

고주원이 들고 있던 양궁을 매만졌다. 자신의 활이었지만, 어쩐지 친구들의 유품처럼 느껴졌다.

“근데 여기에 가만히 있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이곳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스멀스멀 좀비가 된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 빨리 구하러 오지 않았냐는 원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럴 친구들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주원의 마음은 약해져 있었다.

괜히 내가 아파서. 괜히 내 병문안을 와서.

죄책감에 가슴 속이 불타는 것 같았지만, 고주원은 더욱더 활기차게 웃고 떠들었다. 겉이 밝으면 밝을수록 고주원의 마음은 축축하게 가라앉았다.

일 초 일 초 쌓여가는 죄책감에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전부 친구들처럼 보여 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저도 갈래요.”

그제야 보이는 고주원의 표정은 꼭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있는 피해자의 얼굴 같았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썩어가는. 이런 사람들의 결말이 어땠는지는 임장우는 잘 알고 있었다. 끝맺지 못한 말을 알고 있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쫓기는 고주원의 얼굴에 임장우는 마른세수를 했다.

“……주원아.”

“아니면 저 혼자서라도 갈 거예요.”

고주원의 통보에 임장우는 이마를 짚고 앓는 소리를 냈다. 임장우를 만나기 전 잘도 병원 안을 돌아다니며 두 명이나 구한 이야기를 조금 전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임장우가 병실 한편을 바라보았다. 병실 침대 매트리스를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고주원의 문자에 재깍 문을 열어주긴 했지만 지금 사태에 겁을 많이 먹은 듯 보였다. 겨우 안전한 곳을 찾아 안심한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움직일 생각이 있는 건, 직업병이 튀어나온 형사 임장우와 죄책감 때문에 현실도피 중인 중학생 고주원뿐이었다.

막막한 현실에,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던 임장우의 시선이 고주원이 들고 있는 양궁으로 향했다. 이 겉만 강한 중학생은 굉장히 쓸모 있는 무기도 가지고 있었다.

‘안 되는데…….’

그런데 이 무기는 고주원이 아니면 쓸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고주원을 데리고 가면 임장우 홀로 움직이는 것보다 많은 사람을 구하고 안전하게 돌아올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러면 이 아이가 위험했다.

‘근데 이 녀석은 혼자서라도 갈 거란 말이지.’

의지할 수 없는 어른들은 여기 두고 혼자서. 죄책감과 압박감으로 병원을 여기저기 떠돌아다닐 터였다.

끙끙 앓던 임장우는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내 말 잘 들어야 한다.”

“네!”

고주원이 환하게 웃었다.

“컷, OK!”

최대만 감독이 크게 외쳤다.

* * *

오늘 촬영은 사람들을 구하고 식량을 얻기 위해 병실에서 나온 고주원과 임장우가 병원을 돌아다니다 본관 3층 정원 카페에서 연재희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O.W.C 병원은 ‘ㄷ’ 모양이었는데 윗 건물이 본관, 옆 건물이 동관, 아래 건물이 센터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고주원은 센터 7층에 입원해 있었고, 지금 피난처로 쓰고 있는 곳은 동관 4층 병실이었다.

구하기 힘든 휴대폰을 아끼고, 구할 수도 없는 화살도 아껴야 해서 근접전이 대다수였다. 서준과 김종호, 그리고 스턴트맨 좀비들과 무술 감독이 합을 맞추었다.

“정확히 이쪽을 때려야 해.”

“네.”

무술 감독이 좀비 역을 맡을 스턴트맨의 팔을 가리키며 말했다. 서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은 이쪽으로 움직여서, 여기서 달려드는 좀비를 피하고.”

무술감독이 마지막 시험을 몸소 보여주었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액션스쿨에 가서 합을 맞췄던 김종호와 서준이라 순서도 기억하고 잘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뇌에 새기듯 다시 한번 무술감독의 모습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액션 장면은 누구 하나 실수하면 사람이 다치는 일이었다. 다행히, 한 번에 쭉 이어 찍는 롱테이크가 아니라, 한 컷 한 컷 찍는 상황이라서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리허설을 완벽히 끝내고, 본 촬영에 들어갔다.

“레디, 액션!”

“휴대폰은 꼭 필요할 때만 쓰자. 더 구할 수도 없을지도 모르니까.”

“네. 화살도요.”

임장우는 고주원의 화살 가방을 어깨에 멨다. 열 개의 화살이 든 화살집과 양궁은 여전히 고주원이 들고 있었다. 병실 침대 다리를 부숴 무기를 몇 개 만든 임장우가 앞에 서서, 진짜 위험할 때 쓸, 전원이 꺼진 휴대폰 두 개가 있는 점퍼 안주머니를 툭툭 두드렸다.

“가자.”

“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좀비들이 몰려가고, 안전구역이나 다름없는 4층을 내려왔다. 고주원은 조금 전 통화목록을 보았다.

3층.

[케이스 없는 휴대폰]

통화버튼을 누르자, 희미하지만 소리가 났다. 고주원과 임장우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어렸다.

‘이걸로 휴대폰 하나는 세이브.’

두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본관, 동관, 센터는 홀수 층에 건물을 연결하는 다리가 있었다.

3층에 다리가 있긴 했지만, 그저 기다란 통로일 뿐인 연결 다리는 숨을 곳이 마땅치 않았고, 휴대폰을 쓴다고 해도 던질 곳은 다리 끝. 그곳에 좀비들이 모여든다면 고주원과 임장우는 독 안에 든 쥐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1층으로 가기로 했다. 본관과 동관으로 연결된 길은 정원처럼 꾸며져 있고 넓어서 휴대폰도 화살도 쓰기 쉬웠다.

3층을 통과하고 2층도 통과. 1층까지 무리 없이 왔다. 아까 벨 소리로 몰려들었던 좀비가 그쪽 계단 근처를 맴돌고 있는 모양이라, 이쪽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바로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가까운 방에 들어가 창문으로 좀비들을 살폈다. 휴대폰을 던지기 가장 좋은 곳을 살폈다. 적당한 곳을 찾은 임장우가 가방에서 휴대폰 하나를 꺼냈다. 고주원이 자신의 휴대폰으로 번호를 찾았다.

임장우는 창문을 열고 힘껏 던졌다. 벨소리가 들리고, 동관과 본관의 옆문 앞에 있던 좀비들이 굉음을 지르며 우르르 달려나갔다.

좀비들이 빠져나간 본관 1층 옆문.

이제부턴 고주원도 모르는 곳이었다.

임장우는 들고 있던 쇠파이프를, 고주원은 활을 꼭 쥐었다.

그리고 몇 분 후.

임장우는 어째서 고주원이 휴대폰 전원을 껐는지 알 것 같았다.

“타이밍도 개 같지……!”

낮게 읊조린 임장우가 쇠파이프로 좀비의 관자놀이를 내려쳤다. 퍽! 소리와 함께 좀비가 쓰러졌다.

‘해치웠나?’라는 부활 주문은 외치지 않았다. 외칠 시간도 없었다. 달려드는 좀비를 걷어차고, 왼손에 들고 있던 쇠파이프로 다른 좀비를 내려쳤다.

본관 1층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건물 안에 있던 휴대폰이 울렸다. 아마 병원 밖에서 병원 안에 있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 것이리라.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되는 마음은 이해했다.

근데, 그게 하필 임장우와 고주원 쪽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작은 벨 소리를 따라 달려오던 좀비들의 시야에 두 개의 싱싱한 먹이가 들어왔다. 그리고 지금 이 상황.

고주원이 활로 달려오는 좀비 네 마리를 죽였다. 뛰어난 속사였지만, 남은 좀비들까지 해치우기엔 무리였다. 남은 여섯 마리의 좀비와 두 인간의 싸움이 벌어졌다.

“주원아……! 괜찮……! ……아?”

“아니……!……요……!”

말하는 사이사이 달려드는 좀비들을 공격하느라, 한 문장을 완성하기도 힘들었다.

뒤에서 달려들 좀비들을 대비해, 고주원과 임장우는 병실에서 이야기했던 대로, 벽을 등지고 좀비들을 공격했다. 임장우는 근거리의 좀비를, 고주원은 원거리의 좀비를 활로 공격하고 있었다.

잠시 좀비들의 움직임을 멈추는 임장우의 쇠파이프와는 달리, 뇌를 관통하는 고주원의 화살은 좀비를 완전히 쓰러뜨렸다.

하지만 시위를 당길,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고주원이 화살로 공격하기란 쉽지 않았다. 양궁의 아랫날개를 붙잡고 좀비를 후려치고, 거리가 확보되는 순간 쏘는 수밖에 없었다.

고주원과 임장우의 눈이 팽팽 돌았다.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 소란을 듣고 더 많이 몰려오기 전에 얼른 도망쳐야 했다.

“숙여!”

고주원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리고 임장우가 좀비의 광대뼈 쪽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지만, 일일이 반응할 시간은 없었다.

좀비가 없는 쪽으로 얼른 물러난 고주원이 화살집에서 화살을 꺼내 곧바로 좀비를 향해 쐈다. 물 흐르듯, 재빠른 공격이었다.

그렇게 총 열 마리의 좀비를 해치우고, 복도에 서 있는 건 지친 인간 두 명뿐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던 임장우가 입을 열었다.

“……일단 화살 수거하고, 숨어서 쉬자.”

“……네.”

꼭 필요하지만, 이제 구할 수도 없는 소중한 화살이었다.

좀비의 피를 뒤집어쓴 형사와 중학생은 가을날 추수하는 농부들처럼 화살을 하나하나 뽑아 챙겼다.

“컷, OK!”

최대만 감독의 목소리가 울렸다.

클로즈업 샷을 찍기 위해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서준의 화살에 맞은 좀비들은 오른쪽, 왼쪽 눈이 관통되어 있었다. 가까이서 쏜 만큼 파괴력이 있던 모양인지 머리 안쪽까지 화살이 박혀 있기도 했다. 정확하게 꽂힌 화살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서준. 진짜 양궁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까 속사하는 거 봤어요? 하나 쏘고 바로 하나 더 쏘고. 와씨. 저 그런 거 처음 봤어요. 영화 보는 줄 알았어요!”

“……이거 영화야.”

“아뇨. 제 말은 편집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고요!”

서준의 활 솜씨에 연신 감탄하던 스태프들이 좀비 마네킹들을 달랑 들고 사라지고, 좀비 분장을 한 단역 배우들이 나타났다. 클로즈업 샷인 만큼 액션보다 표정 연기가 많을 예정이었다.

“레디, 액션!”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가 서준과 김종호, 좀비들의 얼굴에 가까이서 찍었다. 스태프들과 카메라 감독이 좀비들과 배우들 앞에서 얼쩡대니, 확실히 멀리서 좀비들이 달려드는 모습을 촬영했던 풀샷보다는 멋이 없긴 했다.

절망적인 아포칼립스에 눈치 없는 현실이 끼어든 느낌이었다.

좀비와 스태프들. 피 묻은 쇠파이프와 빛나는 조명.

이질적이고 가벼운 분위기였지만 한 곳만은 달랐다.

모니터 속 고주원과 임장우.

카메라 렌즈가 바로 앞에 있는 상황에서도 서준과 김종호는 풀샷을 찍을 때처럼, 진짜 좀비를 만난 것 마냥, 표정을 연기했다. 땀방울 하나, 시선 하나, 눈썹의 움직임 하나가 모두 진심인 것 같았다.

두 배우의 연기에 좀비들도 몰입한 듯, 카메라는 신경 쓰지도 않고 입을 쩌억 벌리며 캬아아악! 소리를 질렀다.

“……진짜 대단해.”

단역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시선이 모니터 속 고주원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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