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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04화 (204/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04화

좀비 분장을 한 김수한의 친구가 바닥으로 드러누웠다.

갈기갈기 찢어진 패딩에 좀비들에게 먹힌 옆구리와 팔은 뼈가 드러나 있었다. 감긴 왼쪽 눈꺼풀 위에는 양궁용 화살의 일부가 붙여져 있었는데, 정말 관통이라도 된 것처럼 보여, 자신이 봐도 소름이 끼쳤다.

고주원의 화살에 맞은 좀비 역.

‘못 찾을 일은 없겠네.’

저기 어딘가 떼로 몰려 있을 다른 친구와는 다르게 말이다. 키가 적당하다고 이 역을 맡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정도면 김수한과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하지 않을까. 좀비가 헤죽 웃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헤실헤실 웃다가 조감독의 목소리에 표정을 굳혔다. 아르바이트라도 일은 일. 이제 자신은 뇌가 곤죽이 된 좀비가 되어야 할 때였다.

“레디, 액션!”

콱!

하는 소리와 함께, 임장우가 뒤쪽을 바라보았다. 바로 뒤에 좀비가 있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에 머리가 아찔했지만, 몰려드는 좀비 무리 때문에 넋 놓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가죠.”

“네!”

임장우와 부부는 대피하는 시간 동안 좀비들이 소리에 민감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차량의 엔진 소리, 사람들의 비명 소리. 큰 소리가 나면 항상 좀비들이 몰려들었다.

‘아저씨, 뒤!’

여기까지 들릴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였다. 바깥뿐만 아니라 병원 안에도 좀비들이 있을 터였다. 아이도 안전하지는 않겠지.

임장우는 아이를 걱정하면서, 달려드는 좀비를 들고 있던 빗자루로 내려쳤다.

뇌에 타격이 가면 움직이지 않는다. 좀비의 머리를 노린 건, 정말로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던 좀비를 떠올린 임장우의 본능적인 공격이었다.

아이 걱정은 나중으로 미룬 임장우는 부부와 함께 좀비가 적은 곳으로 달려갔다. 좀비들을 해치우며 입구로 달려가는 임장우와 부부. 임장우는 주변을 경계하면서 아이가 서 있던 3층을 힐끗 바라보았다.

화살을 쏜 아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몸을 피해, 보이지 않았다.

임장우와 부부는 얼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재빨리 사방이 막힌 공간을 찾았다.

1층 가장 가까운 방에 들어간 세 사람은 좀비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부는 지쳐 바닥에 주저앉았지만, 임장우는 풀어지려는 긴장의 끈을 다시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저는 3층으로 올라가 볼 테니까. 두 분은 이곳에 계십시오.”

화장실도, 물도 없는 사무실에서 얼마나 버틸지는 모르겠지만.

임장우는 말을 삼켰다.

부부도 뒷말을 깨닫고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아내가 퇴원하는 날. 이런 불행이 닥칠 줄은 몰랐다. 조금만 더 빨리 병원을 나왔다면 좋았을까. 주차장에서 만난 형사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괴물이 될 뻔했다.

“……형사님!”

형사를 붙잡은 부부가 우물쭈물댔다. 총도 없는 맨몸의 임장우는 좀비 앞에선 그저 조금 강한 일반인일 뿐이었지만, ‘형사’라는 직책은 부부에게 무한한 믿음을 만들어주었다.

“그 아이는…… 이미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미 또 다른 괴물이 되어버린 부부를 바라보는 임장우의 표정이 냉랭해졌다.

최소한 아까 연락했던 동료 형사들과 경찰들이 올 때까지는 버텨야 했지만, 그게 홀로 구석에 박혀 있겠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부부가 도와주지 않는 것은 상관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행동까지 막게 놔둘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아이는 그들을 구해주지 않았나.

임장우의 차가운 눈빛에 부부가 고개를 숙였다. 아이가 구해주지 않았다면 임장우가, 임장우가 당했다면 부부까지 죽었을 터였다.

“조용히 숨어 계십시오. 전 올라가 보겠습니다.”

“어디 가세요?”

“3층에……?”

명랑한 아이의 목소리에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세 어른이 놀라 뒤를 바라보았다. 언제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 문을 잠그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 문도 안 잠그고 뭐 해요? 이러면 금방 들어와요.”

그 자연스러운 모습에 부부와 임장우의 입이 쩌억 벌어졌다.

“문만으로는 약해 보이니까 가구로 막고. 아, 여긴 화장실이 없네.”

중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쫑알쫑알대며 잔소리를 했다. 누가 보면 여기서 며칠은 산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른들은 멍하니 아이가 하는 말을 듣기만 했다.

“수도랑 전기는 돌아가니까, 여기보단 위층 병실로 가는 게 좋겠어요. 병실엔 화장실이 따로 있거든요. 먹을 건 따로 구해야겠지만 말이에요.”

조금 정신을 차린 임장우는 아이를 살펴보았다.

아이, 아니, 중학생은 평소에는 거의 보기 힘든 양궁을 어깨에 메고, 반대쪽 어깨에는 검은색 가방과 화살 같은 것이 든 화살통을 매고 있었다.

겹쳐 입은 듯, 조금 두툼해 보이는 옷에 텔레비전으로만 본 양궁 선수들의 장비들을 갖춘 소년의 모습이, 평범한 옷을 입고 있는 세 어른과는 이질적으로 보였다.

닮은 점이 있다면, 소년도 어른들도 옷 이곳저곳에 피가 묻어 있다는 정도였다.

눈만 끔뻑거리던 임장우가 입을 열었다.

“너…… 어떻게 3층에서 여기까지 왔어?”

가장 궁금한 건 그것이었다. 숨을 곳이 없는 바깥보다야 방이 많은 병원 안이 더 이동하기 쉬울 수도 있었지만, 어느 방에서 언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것은 똑같았다.

그 질문에 고주원이 환하게 웃었다. 크흠. 헛기침하고는 나머지 화살이 든 가방을 어깨에서 내려, 지퍼를 열었다. 그리고 활짝 펼쳤다.

“신에게는 12개의 휴대폰이 있사옵니다!”

알록달록한 휴대폰들이 거기에 있었다.

투명 케이스 휴대폰, 캐릭터 케이스 휴대폰, 케이스가 없는 휴대폰…… 한눈에 봐도 아이의 물건은 아닌 것 같았다. 신기한 점이 있다면, 하나같이 전부 새하얀 붕대에 둘둘 말려 있다는 것.

절도?

반사적으로 떠올린 임장우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이놈의 직업병은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13갠데?”

실없는 남편의 말에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찔렀다. 고주원이 활짝 웃었다.

“하나는 제 거예요. 들고 다니면 활쏘기가 불편해서. 도망치다가 떨어뜨릴 수도 있거든요.”

“뭐, 그래. 근데 휴대폰은 갑자기 왜?”

“가면서 설명할게요.”

“간다고?”

되묻는 어른들에 고주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여럿이 있는 게 더 안전하잖아요. 좀비한테 물린 사람은 없죠? 그럼 입 꼭 다물고 조용히 따라오세요.”

묘한 카리스마에 어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컷! OK!”

* * *

“레디, 액션!”

사무실을 나온 고주원은 주변을 살폈다. 좀비는 없었지만 어디서 불쑥 튀어나올지는 몰랐다. 고주원은 들고 있던 휴대폰의 전원을 켰다. 켜지는 소리가 울리지 않게 스피커도 손가락으로 막았다.

완전히 켜진 것을 확인한 고주원은 계단과 반대 방향으로 휴대폰을 힘껏 던졌다. 시위를 있는 힘껏 당기던 팔 힘은 던지기에도 많은 힘을 발휘했다.

어른들의 눈이 둥글게 날아가는 휴대폰으로 향했다. 저 멀리 날아가던 휴대폰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제야 어른들은 붕대의 용도를 알아차렸다. 힘껏 던진 것치고는 큰 소리는 나지 않았다.

“근데 저걸로 어쩌게?”

“입 꼭 다물고.”

아내의 사나운 눈초리에 남편이 입을 꼭 다물었다. 혹시라도 아까 이야기를 들었을까 봐, 아내는 마음이 쓰였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이만한 아이한테 우리가…… 아내의 얼굴에 그늘이 지자, 남편도 찔린 듯 바닥만 바라보았다.

“시작할게요. 바로 계단으로 올라가세요.”

고주원이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간호사실에서 찾은 자신의 휴대폰과 같이 압수당한 휴대폰들. 그리고 주인을 잃고 복도에 있던 휴대폰들 중 잠금이 되어 있지 않은 휴대폰만 찾아 전화번호를 등록해 놓았다. 고주원은 전화번호부에 뜬 이름을 바라보았다.

[노란 단무지 케이스]

그래서 이름은 이 상태였다.

쉘터에 있는 휴대폰을은 모두 고주원이 설정을 바꾸었다. 스피커를 막고 휴대폰의 전화벨 소리를 중간으로 설정했다. 최대 크기로 하면 어디에 있는 좀비들까지 몰려올지 예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는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울릴까 봐 잠금이 된 휴대폰이든 아니든 모두 전원을 꺼두었다. 꼭 사용하기 직전에만 전원을 켰다. 휴대폰 주인들과 전화를 건 사람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일이었다.

노란 단무지 케이스의 휴대폰.

쌓여 있던 부재중 전화를 떠올린 고주원은 주먹을 몇 번 쥐었다가 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좀비와 피.

사람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절망적인 아포칼립스.

-아기 사자, 뚜뚜루뚜뚜! 귀여운, 뚜뚜루뚜뚜! 밀림 속, 뚜뚜루뚜뚜! 아기 사자!

아기자기한 동요가 피투성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산부인과 일로 입원했던 아내의 표정이 무너져 내렸다. 남편도 입술을 꼭 깨물었다.

고주원은 어른들을 만나고 처음으로 얼굴을 굳혔다. 소리를 키울 때는 금방 켰다 금방 꺼서 어떤 노래인지 귀를 기울여 듣지는 않았던 탓이었다.

그나마 동요하지 않는 것은 온갖 잔인하고 용서받지 못할 범죄들을 마주해온 형사, 임장우뿐이었다.

“꼬맹아. 올라가자.”

“……네.”

“올라갑시다.”

좀비들이 휴대폰 쪽으로 몰려들고 임장우가 앞장서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 뒤를 부부와 고주원이 따라갔다. 등 뒤로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벨소리가 들렸다. 이제 저 휴대폰은 좀비들의 발에 짓밟혀 다시는 울지 못할 터였다.

2층.

임장우가 손짓하자 고주원이 휴대폰을 켜서 건넸다. 임장우가 있는 힘껏 던졌다.

-너를 두고 떠날 수가 없어. 나는 다시 한 번 뒤돌아

이번엔 발라드.

“몇 층까지 가면 돼?”

“4층이요.”

고주원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좀비들을 피하기가 쉽다고 생각하며 모두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3층을 올라 4층에 다다랐다. 임장우가 손짓을 하자 고주원이 웃었다.

“괜찮아요. 여긴 준비해 놓은 게 있거든요.”

“뭐?”

고주원이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4층 오른쪽 계단 앞]

고주원이 버튼을 누르자, 지금 있는 계단과 정반대편에 있는 계단 쪽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민감한 좀비들이 캬아악 소리를 내며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몰려들어갔다.

임장우와 부부가 멍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통화버튼이 아니었다.

“그게 뭐냐?”

“블루투스 스피커요.”

음악 재생 버튼이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레드크라운의 노래에, 어른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바닥에 던지면 한 층 한 층 오를 때마다 휴대폰이 하나씩 부서지잖아요. 결국 휴대폰도 바닥이 날테고. 그래서 휴대폰을 천장에 달려고 했거든요. 근데 생각해 보니 전화는 다른 곳에서 연락할 수도 있잖아요.”

요즘 중학생, 고주원이 해맑게 웃었다.

“그래서 나만 작동시킬 수 있는 게 없나, 싶다가 찾았어요. 천장에 붙일 시간은 없어서 벽 위 쪽에 붙였지만요.”

의자같은 받침대는 생각도 못하는 좀비들의 손이 닿지 않는 벽 위쪽. 테이프로 벽에 고정된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가 울리고 있었다.

얼빠진 세 어른과 환하게 웃는 요즘 아이가 한 앵글에 들어왔다.

“컷! OK!”

최대만 감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긴장을 푼 김종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블루투스 스피커라니…… 스피커 회사만 노났군. 그런데 서준아. 저 노래 레드크라운 노래지? 서준이랑 같은 소속사.”

아직까지 북극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평범하게 질문한 김종호였지만, 지레 찔린 서준은 화들짝 놀라, 일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음악과 함께, 신나게 다음 촬영을 준비하던 스태프들이 아쉬운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아하하.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서준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연기에 영향을 줬다면 거절했겠지만.’

인기 있는 최신 가요면 다 좋았던 최대만 감독은 서준에게 음악사이트 TOP10까지의 노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그 소식을 들은 서은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중학생인 고주원이 인기 많은 ‘레드크라운’의 노래를 듣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는 서은찬의 말에 미묘하게 고개를 끄덕인 서준은 목록의 제일 위쪽을 바라보았다.

1. Midnight -레드크라운

어차피 1위를 고를 생각이었지만, 찬이 삼촌의 부탁을 들어준 것만 같은 이 찜찜함. 서준이 볼을 긁적였다.

이야기를 들은 김종호가 웃으며, 음악사이트를 검색했다. 서준이야 찜찜하겠지만, 김종호였어도 레드크라운의 노래를 골랐을 거다.

1. Midnight -레드크라운

레드크라운의 미드나잇은 여전히 1위였다.

“근데 4주째 1위인데 홍보가 따로 필요한가?”

“그쵸?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삼촌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휴대폰 건너 히죽히죽 웃던 찬이 삼촌을 떠올린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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