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203화 (20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03화

청룡영화상이 끝나고 다음 날.

시상식에 참여한 배우들을 위해 오늘은 이스케이프의 촬영이 없는 날이었다.

어제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지인들에게서 쏟아지는 축하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던 서준은 휴대폰이 잠잠해지자 거실 한편에 자리를 잡아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봐도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트로피들.

맨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차례로 놓인 트로피를 바라보던 서준은 가장 좋아하는 트로피를 보며 헤헤 웃었다.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골든글로브 트로피, 오스카 트로피도 아니었다.

[WTV영화제/주목할 만한 배우상]

이서준 인생 처음으로 받은, 이 빨간 팝콘 상자 모양의 트로피가 슈퍼스타 이서준이 가장 좋아하는 트로피였다.

‘아니, 모든 생을 통틀어서 제일 처음 받은 상이니까.’

서준이 WTV 영화제 트로피를 보며 그때의 추억을 되새기다가, 이번에 받은 청룡영화상 트로피를 바라보며 헤헤 웃었다. 새로 받은 것도 그에 못지않게 좋았다.

“엄마. 이거 금메달을 든 것 같지 않아?”

“그러게. 꼭 올림픽 금메달 같네.”

방실방실 웃으며 새로운 트로피가 들어간 장식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서준의 모습에 서은혜와 이민준이 작게 웃었다. 뿌듯한 얼굴로 청룡영화상 트로피를 보고 있던 서준이 무언갈 떠올렸다.

“아빠. 팬카페에 사진 올릴까? 감사 인사도 하고.”

“그럴까? 아빠가 사진 찍어줄게.”

“응!”

장식장에서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꺼낸 서준이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었다.

* * *

서준의 팬카페 [새싹부터]에 트로피를 들고 있는 서준의 사진을 올라왔다. 활짝 웃는 서준과 금빛의 트로피가 반짝반짝 빛났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상 탔어요!]

주르륵 달리는 팬들의 댓글과 함께 서준의 사진은 금세 기사화됐다.

서준의 남우주연상 수상과 차기작.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이서준의 기사 속에서 많은 조회 수를 달성했다.

[배우 이서준, “저 청룡상 받았어요!”]

-청룡님이 청룡상을 받았어!

=그러네. 청룡님이었지!

-뒤에 보이는 장식장. 엄청 눈부심ㅎ

=WTV 영화제, KBC 신인상, SBC 예능상ㅎㅎ

=여기 왜 있나 싶은 골든글러브상, 오스카상ㅎㅎ

=이제 청룡상도 생겼네!

-대종상이랑 백상예술대상 남았음.

=1타 3피ㅎ

=1석 3조ㅋ

=근데 내년에도 이서준 영화가 하나 있네?

-……영화계도 참 힘들겠다. 그냥 자연재해네. 피해가 어마어마한데 막을 수도 없어.

=개봉 일정도 다시 생각해야 하고ㅎ

=근데 피하는 게 좋긴 함. 난 이스케이프만 볼 거라서ㅎ

=222 N차 뛸 거임.

=333 열심히 볼 거다.

-어째서 이스케이프가 홍보 안 했는지 알았다. ‘이서준’만 있으면 알아서 기자들이 홍보해 줌.

=ㄴㄴ 깜짝 놀래키는 게 홍보 계획이었던 듯ㅎ

=나도 윗댓에 한 표. 진짜 놀람.

아직 놀랄 게 남아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 * *

이스케이프 촬영 날.

김종호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서준이 주차장으로 향했다.

“삼촌. 안녕하세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서준의 모습에 김종호가 씨익 웃었다. 그러고는 차 안으로 다시 들어가 큼지막한 꽃다발을 들고 내렸다.

“서준아. 수상 축하한다.”

김종호가 준 커다란 꽃다발을 안아 든 서준이 활짝 웃었다.

“감사합니다. 삼촌. 저 주시는 거예요?”

“시상식 때 못 줬으니까. 지석이 놈 거보다 큰 걸로 샀다.”

서준의 기쁜 얼굴에 김종호가 흐뭇한 미소를 짓다가 저도 모르게 나온 이름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나하나 마음에 쏙 드는 서준이와는 달리, 하나하나 약이 오르는 놈이었다.

종호 삼촌과 지석이 형의 경쟁에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지석이 형이 또 뭐라고 했어요?”

“상을 10개나 받았다고 얼마나 자랑을 하던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야. 정작 자기는 한 개도 못 받았으면서 말이야.”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는 김종호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김종호가 씨익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우리도 내년에 꼭 받자. 청룡상.”

“네! 열심히 찍어서 꼭 상 받아요. 종호 삼촌!”

다른 영화 관계자들이 들었다면 제발 힘 빼고 찍으라고 부탁할 것 같은 말을, 연기파 두 배우는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 * *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이번 촬영은 두 군데서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3층 복도에서 이서준과 최대만 감독이, 지상에서 김종호와 박재민 조감독, 촬영 감독이 촬영할 계획이었다.

좀비가 나타나고 형사인 임장우가 일반인을 데리고 대피한다. 그 모습을 3층의 고주원이 발견한다. 일반인을 공격하는 좀비를 막던 임장우의 뒤로 좀비가 나타난다. 고주원이 들고 있던 활을 쏴 좀비를 맞힌다.

“물론, 여긴 CG 작업을 할 거야. 시위를 당기는 모습만 연기하면 돼.”

최대만 감독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허설이 시작되고 물 흐르는 듯 두 배우의 연기가 이어졌다.

좀비를 발견한 서준이 시위를 바짝 당기는 모습까지.

날카로운 화살은 활에서 떠나지 않고, 리허설이 끝났다.

최대만 감독은 고민에 잠겼다.

‘직전까지 모습도 괜찮지만, 릴리즈 장면까지 넣는다면 더 좋겠는데…….’

아쉬워하는 최대만 감독에게 서준이 말했다.

“저기까지 쏠 수 있을 것 같아요. 감독님.”

서준도 여기서 시늉만 하는 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양궁 연습도 많이 했고, 엘프의 능력까지 있었다.

서준의 말에 최대만 감독과 스태프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기까지?”

“종호 삼촌이 있는 곳까지요.”

최대만 감독과 스태프들이 창문 너머, 건물 밖에 서 있는 김종호를 바라보았다. 박재민 조감독, 촬영 감독과 이야기를 하고 있던 김종호는 느껴지는 시선에 3층을 올려다보았다. 서준이 손을 흔들자, 김종호도 응답해 주었다.

“여기서 저기까지 쏠 수 있다고?”

여기서 서준이 저기까지 화살을 쏠 수 있다면 좋은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 방향만 비슷해도 괜찮았다.

“무리하는 거 아니야?”

서준에게 한 번, 뒤에 서 있는 안다호에게로 한 번, 최대만 감독의 시선이 향했다. 서준의 양궁 실력을 아는 안다호가 부드럽게 웃었다.

“괜찮아요. 거리도 가까운 걸요!”

“……가깝다고?”

“양궁 연습 할 때는 70M도 쏘거든요. 그것보단 가깝잖아요.”

70M.

그 긴 거리와 3층과 지상의 거리를 가늠하던 최대만 감독이 턱을 매만졌다. 마음이 한쪽으로 쏠리고 있었다.

“그런데 양궁은 평지에서 하잖아. 아래쪽으로 쏠 수 있겠어?”

“네!”

나무 위에서 사냥하는 엘프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어쩐지 허락해 줄 것 같은 분위기에 서준이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배우가 하고 싶다는데, 감독이 시도도 안 해보고 거절할 수는 없었다. 완전히 마음이 기운 최대만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연습부터 해보자.”

“네!”

최대만 감독이 아래에 있는 박재민에게 연락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준비를 시켰다.

“재민아. 마네킹 있지? 분장 안 된 거. 그것 좀 좀비 위치에 갖다 놔.”

마네킹은 영화드림 제작사에서 특별히 준비한 것이었다. 일반 마네킹보다 표면이 말랑말랑해서 와장창 깨지지도 않고, 관절 부분을 움직일 수 있어 형태를 취하기도 쉬웠다.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면, 이 마네킹은 특수분장으로 진짜 좀비가 되어, 주연 배우들의 온 힘을 다한 공격은 모두 받을 예정이었다.

-어. 알았어.

박재민 조감독이 1층 창고로 향했다. 함께 듣고 있던 김종호와 촬영 감독이 3층 창문으로 보이는 서준의 모습에 작게 웃고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을 물렸다.

그사이 박재민은 마네킹을 꺼내 와 김종호를 공격할 좀비가 서 있을 위치에 마네킹을 잘 세워두었다. 그러고는 눈먼 화살에 맞을까 촐랑거리며 건물 안으로 대피했다.

서준은 고주원이 서 있을 위치에 섰다.

서준의 앞에는 커다란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주차장 한가운데 마네킹이 세워져 있었다. 저게 서준이 맞혀야 할 목표물이었다.

저기서 여길 맞힌다고?

서준의 이야기는 금세 퍼졌다. 스태프들도, 단역 배우들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하나둘 창밖을 바라보았다. 물론, 다들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쏠까요, 감독님?”

“그래.”

서준이 활을 들었다.

양궁 연습 때 썼던 진짜 활로, 가짜 활과는 달리 묵직했다. 묵직한 활과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물. 서준의 몸에 새겨진 엘프의 감각이 춤을 췄다.

목표는 한 곳.

서준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선)엘프궁수의 중급 궁술이 발동됩니다.]

특수분장사들도 뜻밖의 이벤트에 구경하려고 모여들었다. 제나 트라이드의 눈에 서준의 얼굴이 비쳤다. 어디선가 상쾌한 숲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조용히 서준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안다호는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양궁장에서의 모습과 뭔가가 달랐다. 뭐가 다르지? 틀린 그림을 찾는 것처럼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깨달았다.

‘아, 스타비 라이저!’

활의 균형을 잡아줄 장치가 없었다. 그럼 활이 흔들릴 테고, 그 진동에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갈지도 몰랐다.

“서,”

준아! 하고 부르기도 전에 화살이 날아갔다.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날아간 화살은 퍽! 하고 마네킹을 맞혔다.

“와! 정말 맞혔네?!”

“화살 진짜 빨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잠시 상황을 살피던 박재민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아스팔트가 깔린 바닥 위로 마네킹이 쓰러졌다.

잘도 저 위에서 마네킹을 맞혔다고 생각한 박재민인 마네킹을 살피다, 침을 꼴깍 삼켰다. 신기하게도,

“미친…….”

“왜 그래?”

어디에 맞았다고 알려줘야 할 박재민이 조용한 모습이자, 최대만 감독이 물었다.

“맞았어…….”

“뭐?”

“왼쪽 눈에 맞았어!”

왼쪽 눈.

최대만 감독과 김종호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리고 대본을 기억하고 있는 스태프들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본 속 고주원은, 이때 좀비의 왼쪽 눈을 맞힌다.

사람들이 놀란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서준이 헤헤 웃었다.

다들 멋진 실력에 박수를 보낼 때, 그 완벽한 양궁 실력에 다른 선수들이 다 쓰는 ‘스타비 라이저’가 없었다는 사실을 혼자 알고 있던 안다호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서준아.”

“네?”

“양궁은 취미로 하고 연기 계속하자. 알았지?”

“? 네.”

당연한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하던 서준은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쪽으로!”

형사, 임장우가 작게 소리쳤다. 그에 넋이 나간 부부가 울음을 삼키며 임장우의 뒤를 따랐다.

‘이게 무슨 일이야!’

이 병원에 입원한 조폭과 그 일당에게 으름장을 놓고 나가려던 사이 상황이 이상하게 변해 있었다.

병원을 나서려던 차들이 서로를 박고, 치고.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상함을 감지한 임장우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 교통정리를 하려고 했는데, 교통정리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어어어!!”

“악!”

여자가 소리를 지르고 임장우가 달려드는 좀비를 걷어찼다. 남자가 얼른 여자를 부축했다. 이를 드러내는 좀비들을 패고, 밀고, 엎어뜨리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제 체력이 바닥나고 있었다.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갑시다. 건물 안이라고 이 괴물들이 없을 거라고는 장담 못 하지만…….”

“네…….”

낙담한 일반인 부부를 신경 쓰느라, 임장우는 정작 자신의 뒤쪽에서 접근하는 좀비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마, 이 환자가 목에 중한 상처를 입고 병원에 들른 환자라 더 그랬을 것이다. 목을 긁는 듯한 그르렁거림도 없이 접근한 좀비가 임장우의 어깨를 물려고 입을 쩌억 벌리던 그때,

“아저씨! 뒤!”

갑자기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에 놀란 임장우가 말을 이해하고, 부부를 감싸 바닥에 엎어지려고 할 때, 바로 옆으로 무언가 휙 지나갔다.

콱!

무언가 뚫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컷! OK!”

최대만 감독의 외침에 모두 움직였다. 화살을 쐈던 서준은 기다란 활을 아래로 내렸고, 사람들은 서준의 멋진 활 솜씨에 박수를 보냈다.

모두 시끌벅적하게 움직이는 가운데, 일반인 부부와 임장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좀비를 피해 몸을 움직이던 그 모습 그대로 멈춰 있었다. 아무도 그런 세 사람을 신경 쓰지 않았다.

화살을 맞고 뒤로 쓰러진 좀비를 확인하러 간 박재민이 감탄했다.

또 왼쪽 눈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진짜 잘하네요. 서준이.”

“서준이가 운동을 잘하거든요.”

임장우, 아니, 김종호가 웃으며 말했다.

임장우가 둘.

아직까지 움직이지 않는 임장우와 웃고 있는 김종호.

다음 촬영을 위해 스태프들이 움직였다. 멈춰 있는 임장우와 일반인 부부가 스태프들의 손에 덜렁 들려 옮겨졌다.

3층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서준과 안다호가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서준이 화살을 쏘기 전, 임장우와 일반인 부부는 특수분장한 마네킹으로 바뀌었다. 서준이 활을 잘 쏜다고 해도, 어떤 사고가 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진짜 종호 삼촌 같았어요. 피규어 같지 않아요? 좀 크긴 하지만.”

“요새 배우들도 피규어 만들긴 하지.”

서준에게도 꽤 제안이 왔었다. ‘이서준’도 좋고, 진 나트라나 성녕대군, 늑대인간, 그레이 바이니도 좋다고 했다. 퀄리티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절했지만.

안다호가 잠시 다른 생각에 잠긴 사이, 다음 촬영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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