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201화 (20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01화

“레디, 액션!”

그어어어.

병원 1층.

전등이 깜빡깜빡거리는 그 아래에 좀비들이 몰려 있었다. 연습한 동선으로 움직이는 좀비, 단역 배우들이 열심히 연기하고 있었지만, 아역 배우들은 더 빛났다. 아역 배우의 연기를 보면서 배우는 엑스트라가 있는 반면, 일찌감치 단념한 엑스트라들도 있었다.

그렇게 제각기 좀비 연기를 이어가던 중이었다.

‘근데 언제까지 돌아다녀야 하지?’

저기 벽 뒤에 숨어 있을 이서준의 인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움직임이나 소리나, 뭐든 있어야 할 텐데, 이서준과 좀비를 한 앵글에 찍어야 하는 카메라와 촬영 감독의 모습만 보였다.

‘친구들을 찾으려면 이서준이 이쪽을 봐야 하잖아?’

그러려면 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야 하기 때문에, 연기하는 좀비들의 시선에 이서준의 머리끝이 안 보일 리가 없었다.

‘이서준 연기하는 거 보고 싶었는데……!’

아역 배우들이 이렇게나 잘하는데, 이서준은 얼마나 잘할까!

모두 궁금증을 가지고 코너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물론, 계획된 동선과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에 계속 그곳만 바라볼 수는 없었다. 고개는 돌렸지만, 시선은 최대한 코너 쪽으로 곁눈질을 했다.

도저히 드러나지 않는 이서준의 모습에 모두 의문을 품으면서도 열심히 좀비 연기를 하던 그때,

“컷! OK!”

……네?

최대만 감독의 말에, 열심히 돌아다니던 좀비들이 고장이 난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뭐 했다고? 컷? OK?

아역 배우들은 물론이고 좀비들까지 의아함에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잘못 들은 게 아닌 듯, 이서준과 촬영진이 좁은 코너 쪽에서 밖으로 나왔다.

최대만 감독과 이서준의 밝은 얼굴이 정말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들 의문이 가득한 눈을 끔벅거리고 있을 때, 최대만 감독과 서준이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모니터 앞에 자리를 잡았다. 서준의 친구인 아역 배우들도 모니터 쪽으로 향했다.

이한솔 대표가 준비한 커다란 모니터는 그 뒤에서 있던 단역 배우들도 조금이지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화면 속.

고주원은 좀비들 속에서 좀비가 된 친구들을 발견했다. 안타까운 눈빛으로,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좀비가 된 친구들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서준의 얼굴을 보지 못했나, 의아할 정도로 고주원은 고개를 빼꼼 내밀어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벽 밖으로 튀어나온 반질반질한 뒤통수를 보던 주희가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리고는 입을 열었다.

“근데 왜 우린 서준이를 못 봤지?”

다른 아이들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깨를 으쓱한 서준이 대답했다.

“피했어.”

“……뭐?”

“좀비한테 들키면 안 되잖아. 그래서 다 피했어.”

서준의 대답에 사람들이 고개를 모로 꼬았다. 재한이 물었다.

“어떻게?”

“얼굴 방향 보면 대충 시야의 범위를 알 수 있거든.”

“……응?”

“동선이랑 움직임이 정해져 있으니까, 생각보다 쉬웠어.”

정말 쉬웠다는 듯 가볍게 말하는 서준과는 달리, 아이들과 아이들 옆에서 듣고 있던 단역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니까, 좀비들의 얼굴을 보면서 전부 피했다고?’

자신의 연기가 만족스러운 듯, 활짝 웃는 서준을 바라보던 지호는 순간 떠오르는 어떤 장면에, 서준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거구나.”

“그거?”

“워킹맨 말이야.”

워킹맨?

눈을 몇 번 깜빡거리며 기억을 되새기던 아이들과 어른들의 머리 위로 느낌표가 떴다.

아!

모두 동시에, 카메라 렌즈 각도를 보고 미션을 해결했던 서준의 모습을 떠올렸다. 신기했던 그 기술이 그사이 더 발달한 모양이었다.

* * *

그렇게 서준과 좀비들이 함께 나오는 장면이 많아질수록, 서준의 출연을 아는 사람은 늘어갔다. 배우들이 깜짝 놀라고, 비밀이라며 주의를 주기도 여러 번.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이 끝나고 최대만 감독이 머리를 긁적였다. 박재민 조감독도, 이한솔 대표도 미묘한 표정으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스태프들, 특수분장팀들, 배우들, 아역 배우의 보호자들을 바라보았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잘 지킬 줄은 몰랐는데 말이죠.”

벌써 촬영을 시작한 날로부터 3주나 흘렀다. 길어도 촬영을 시작하고 일주일이면 이서준에 대한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질 것이라고 생각한 세 사람은 3주나 지나도록 조용한 한국에 허탈하게 웃었다.

홍보 계획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 인터넷이 폭발할까, 얼마나 뒤집힐까, 하는 기대감에 하루에도 여러 번 인터넷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검색 사이트가 먼저일까, 영화 게시판이 먼저일까, 커뮤니티가 먼저일까. 혹시 팬카페? 택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희희낙락 인터넷 서핑을 했다.

그게 일주일이 넘어가서 3주에 다다를 때쯤, 이스케이프 관계자들은 깨달았다.

어쩌면 이거…… 안 터질지도 모르겠다고.

관계자 중 하나인 이한솔 대표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좀 쉽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최대만 감독도 동의했다.

“대상이 할리우드 배우인 데다가, 투자사도 할리우드 특수분장팀까지 불러올 정도로 큰 곳이고. 말 잘 못 했다가는 큰일 날 거라고 생각한 거겠죠.”

그렇다고 진짜, 뜬소문으로도 퍼지지 않을 줄은 몰랐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홍보 계획이 잠시 멈춰 버렸다.

“그렇다고 계속 잠잠하게 놔둘 수는 없습니다. 이러다간 개봉할 때까지 조용할 것 같으니까요.”

이한솔의 말에 동의한 최대만 감독이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 * *

시끌벅적한 삼겹살집.

김수한과 그의 친구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친구들의 일상 이야기를 듣던, 휴가 나온 김수한이 오호 감탄했다.

“영화 찍었다고?”

“그래. 엑스트라지만.”

어쩌다 보니 김수한이 영화계 쪽으로 진로를 잡고, 돈도 사람도 없는 김수한이 독립영화를 찍는 데 도움을 주다 보니 이쪽 일에 익숙해진 네 친구였다.

대학을 다니면서 알바 겸, 영화 스태프 일이나 엑스트라를 하기도 했는데, 네 명 중 2명이 이번에도 엑스트라를 하기로 했다.

영화?

평범한 일상과는 조금 동떨어진 주제에 옆 테이블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그런 낌새를 모르는 김수한이 물었다.

“좀비 영화랬지? 이스케이프?”

“맞아. 좀비 역이야.”

이스케이프란 소리에 테이블 근처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한 단계 줄어들었다. 휴대폰을 들어 이스케이프를 검색해 보는 사람도 있었다.

“좀비 영화라니 신기한데? 박중우 감독님 말로는 할리우드 특수분장팀까지 불렀다는 소문이 있다더라. 생각보다 제작비가 많은가 봐.”

군대에 있으면서도 영화계 소식에 밝은 김수한의 모습에 친구들이 웃었다. 별생각 없이 갔던 극장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하게 될 줄은 고등학생 김수한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할리우드?!

사실인가 아닌가 검색해 보니 그런 루머가 있었다. 바로 옆 테이블뿐만이 아니라, 그 옆 테이블들의 사람들까지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눈은 휴대폰으로, 귀는 김수한의 테이블 쪽으로 향해 있었다.

“처음 엑스트라 공고 봤을 때는 그냥저냥 한 영화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영화 홍보도 별로 안 했으니까. 나도 그대로 묻힐 줄 알았는데 김종호 배우하고 이다진 배우라니……”

“두 사람이면 괜찮지.”

몰래 듣고 있던 손님들이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촬영은 잘했어? 좀비면 얼굴은 알아볼 수는 있는 거야?”

“단체로 나오는 장면이라서 알아보긴 힘들 거야.”

“그건 좀 아쉽네. 아, 그러면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이야기는 진짜야? 좀비 분장할 때 봤을 수도 있잖아.”

김수한이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좀비 엑스트라로 열심히 촬영하고 온 두 친구가 눈을 마주쳤다. 이서준 배우의 출연에 대해 소문을 내달라던 최대만 감독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거 비밀인데…….”

비밀!

삼겹살집 사장이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소리를 줄였다. 막 불판 위에 올라가 지글지글 굽히던 삼겹살이 다시 위로 들려졌다.

말을 나누던 사람들도, 술잔을 부딪치며 쨍한 소리를 내던 직장인들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하던 알바생들도 소리를 죽였다.

침묵에 잠긴 삼겹살집은 시끌벅적한 바깥과 완전히 단절된 것 같았다.

김수한과 두 사람은 그런 상황에 놀랐지만, 두 친구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오히려 이런 상황은 환영이었다.

마치 연기를 하는 것처럼 둘이서 짜온 대사를 내뱉었다. 카메라는 없지만, 재미있었다.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이야기 진짜더라.”

“미러라고. 할리우드 탑이래. 제나 트라이드 팀.”

진짜라고?!

손님들이 일제히 경악하며 휴대폰을 들었다. ‘제나 트라이드’와 ‘미러팀’을 검색해 보니, 제나 트라이드가 맡은 할리우드 영화들과 특수분장으로 받은 상들이 올라와 있었다. 길게 나열된 경력만 봐도 입이 떡 벌어졌다.

영화감독 지망생이라, 제나 트라이드와 미러팀을 아는 김수한이 감탄했다.

“오. 돈 많이 썼나 봐.”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가게 안 사람들의 몸이 김수한의 테이블 쪽으로 기울었다.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그것도 탑이 한국 영화를 맡게 된 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에 다들 입을 다물고 눈을 빛냈다.

직접 바라보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자신에게로 쏠렸다는 걸 느끼고 있던 친구는 몇 년간 엑스트라로 단련된 연기력으로,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폭탄을 떨어뜨렸다.

“우리 거기서 이서준 봤어.”

“……뭐!?”

이서준 이야기에 벌떡 일어나는 김수한이 아니었다면, 손님들이 소리를 질렀을지도 몰랐다. 손님, 사장, 알바생 할 것 없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김수한의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이서준이 왜 나와?’

뭐? 뭐래? 이서준? 이서준이라고 했지?

누군가는 휴대폰으로 이서준의 행방을 검색했고, 누군가는 저들이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상상도 못 한 배우의 등장에 삼겹살집이 떠들썩해졌다. 자신들이 몰래 듣고 있었다는 사실도 잠시 잊을 정도로, 파괴력 있는 이름이었다.

시끌벅적하던 삼겹살집을 다시금 침묵에 잠기게 만든 건, 좋아하는 배우의 등장에 잔뜩 흥분한 김수한이었다.

“서준이가 거긴 왜 가? 뭐 하고 있던데?!”

뜨겁게 불타고 있는 테이블을 넘어올 것만 같은 김수한의 기세에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이서준, 영화 촬영하는 것 같더라.”

영화 촬영!

그 네 글자에 삼겹살집이 소리 없이 폭발했다.

아니, 삼겹살집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그런 이야기들이 퍼져 나갔다.

* * *

<좀비 영화 게시판>

[(공지)이스케이프에 관한 정보를 모아보자. (루머ok)]

한국형 좀비 영화가 나온다는데…… 이런 공지까지 써야 할 정도로 이스케이프에 관한 정보가 부족합니다.

모두 이것저것 많이 적어주십쇼! (_ _)꾸벅

-배경 병원인 것 같음.

=ㄱㅅㄱㅅ!

-아역 배우들 모집했음. 윗댓 보니 다양한 나이대의 환자가 필요한 모양.

=감사!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이야기는?

=플러스 코리아가 투자했으니 불렀을지도 모름.

-영화 촬영하는 곳 근처에 사는 주민(우리 할머니ㅎ)이 이서준 봤대!

-아역 배우 중에 여울 예중 1학년 있다고 함.

=윗윗댓이랑 윗댓. 친구 만나러 간 거 아님?

=222 그런 듯

-양궁장에서 이서준 봤다는 목격담.

=왜 자꾸 이스케이프랑 이서준이랑 엮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서준은 원래 이것저것 많이 배움.

=222 양궁 선수는 좋은 선수가 많으니 부디 우리 축구팀으로!

=333 부디 우리 야구팀으로!

-이서준 봤다는데?

=도대체 이서준이랑 이스케이프랑 왜 자꾸 엮음?! 나도 이스케이프에 이서준 나왔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222 이서준 내일 청룡영화제 때문에 바쁠걸?

=ㄴㄴㄴㄴ 아까부터 계속 뜬다!!!

=헐헐헐. 진짜!!!

=목격담 엄청 뜨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나 엑스트라 알바하는데 이서준 봄!]

[좀비 영화 알바하러 간 지인 이야기 들음! 이서준 나온대!]

[삼겹살집에서 관계자한테 들었다. 이서준 촬영 중이라고 함.]

[친구 밥차 일하는데 영화촬영장에서 이서준 봤다고 함!]

[아는 사람이 영화제작사에서 일하는데, 회사에서 이서준 봤다고!]

청룡영화상 전날.

인터넷에는 이서준의 목격담들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