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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200화 (20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200화

보통 양궁 시합에 쓰는 활을 리커브보우라고 부른다.

리커브보우는 중심이 되는 손잡이인 ‘라이저’에, 위아래 날개인 ‘림’을 연결하고, 림의 끝에 활시위를 거는 것만으로도 조립이 끝난다.

그 이후, 라이저와 수직으로 이어지는 ‘스타비라이저’와 그 이외의 장치를 달면 올림픽 때 볼 수 있는 양궁 활이 완성된다.

“짜잔!”

오!

순식간에 늘어놓았던 양궁을 조립한 서준의 모습에 촬영을 준비하고 있던 스태프들이 박수를 짝짝 쳤다.

“생각보다 쉬워요.”

“해체는?”

“해체도요.”

이런저런 장치를 떼어 내고, 활시위를 빼고, 두 날개를 라이저에서 빼낸 서준은 처음처럼 늘어놓았다.

다시 한번 박수가 나왔다.

서준과 양궁 선수들에게는 별다를 게 없는 조립이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기만 했다.

시끌벅적한 병실에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 조감독이 들어왔다. 오늘은 서준만 찍는 오전 촬영과 엑스트라들과 찍는 오후 촬영이 있었다. 촬영 중에 엑스트라 배우들이 도착할 수도 있으니, 미리 이야기하고 온 두 사람이었다.

“우리 이 배우 귀찮게 하지 마.”

“에이. 감독님도.”

찔끔한 스태프들이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아하하하 웃는 서준에게 최대만 감독이 말했다.

“오늘은 좀 바쁘겠는데, 잘할 수 있겠어?”

“걱정 마세요.”

그 누구보다도 믿음직한 배우가 활짝 웃었다.

* * *

“레디, 액션!”

비명이 들렸다.

침대에 앉아, 친구들이 가져다준 양궁을 조립하고 해체하기를 반복하며 놀고 있던 고주원이 눈을 깜빡였다.

반쯤 열려 있는 창문을 바라보았다.

푸른 하늘. 높이 떠 있는 태양. 그리고 비명.

밖에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여기까지 들려올 정도로 크고 처절한 비명이었다.

“……사고라도 났나?”

하지만 구급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실려 온 취객이 난동이라도 부리는 건가?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은 고주원은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사이에도 비명은 끊임없이 들렸다.

남자의. 여자의.

아이의. 노인의.

비명이.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 고주원은 떨리는 손을 창문틀 위에 올려두려다 헛짚었다. 주먹을 두어 번 쥐고 고주원은 다시 제대로 창문틀에 손을 올렸다. 불안한 감각에 머리가 쭈뼛 섰다. 크게 숨을 들이쉰 고주원은 창문틀에 몸을 기대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고주원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불안함과 궁금함이 섞여 있던 고주원의 얼굴이 천천히 새하얗게 질리면서 창백해져 갔다. 도저히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에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초조함에 창문틀에 올린 손가락도 떨리고 있었다.

고주원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잊은 것 같은 고주원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컷, OK!”

최대만 감독의 목소리에, 스태프들의 시야가 넓어졌다. 마치 귀마개를 낀 것처럼 먹먹하던 귀가 뻥 뚫린 것 같았다.

하지만 적막함은 가시지 않았다. 서준과 최대만 감독이 모니터링하는 사이, 스태프 하나가 중얼거렸다.

“……우리 비명 소리 안 틀어 놨지?”

“어.”

오히려 집중에 방해된다는 서준의 말에 틀어놓지 않았던 사람들의 비명.

남자의. 여자의.

아이의. 노인의.

비명.

“……근데 왜 난 들은 것 같지?”

스태프들은 소름이 돋은 두 팔을 열심히 문질렀다.

* * *

나무 배트의 무게 약 900g.

활의 무게는 약 3㎏.

서준이야 매번 한 번의 촬영으로 오케이를 받지만, 함께 연기하는 배우들까지 그런 촬영을 기대할 순 없었다. 거기다 풀샷부터 바스트샷, 클로즈업샷, 이 방향 저 방향에서 찍느라 몇 번을 반복해서 찍어야 할지도 모르는 게 촬영이었다.

그럼 당연히 활을 배트처럼 휘둘러야 하는 서준의 팔과 어깨도 제법 무리가 갈 테고.

“그래서 미술팀에서 만든 가짜 활이야.”

박재민 조감독이 건네준 활은 가벼웠다. 진짜 활보다도 가벼워 되레 어색한 느낌이었다. 이리저리 만져보며 무게를 가늠하던 서준이 비슷한 물건을 떠올렸다.

“나무로 만들었어요? 나무 배트가 이 정도였던 것 같은데.”

“글쎄. 재료는 잘 모르겠는데…… 가볍지? 모양도 저 활이랑 똑같고. 미술팀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대.”

가짜 활의 아래 날개를 잡고, 마치 배트처럼 이리저리 휘두르고 자세를 잡아본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기할 때 잘해야겠네요.”

“뭘?”

“무게감이 없으니까 막 휘두르게 되잖아요. 그럼 진짜 활같이 안 보이고.”

관객들의 몰입을 흐트러뜨린다. 가짜 활을 잡고 시위를 당겨본 서준은 확실히 진짜 활과 장력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짜 활의 시위를 퉁퉁 튕겨보던 서준이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잘하면 쏠 수 있을 것 같은데…….’

엘프들의 활도 나무가 아니었던가.

물론, 활을 만들던 나무는 이런 평범한 나무가 아니라 특별하긴 했다.

박재민은 서준의 말을 금세 이해했다.

“아.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짐 상자 같은 거?”

“네.”

대사로는 무겁다고 말하지만, 시청자들은 가볍게 드는 배우들과 바닥에 떨어질 때 가볍게 부딪히는 짐 상자를 보고, 안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한다.

‘원래 소품이란 게 그렇지.’

“근데 중요한 장면에서는 진짜 활을 쓸 거니까, 괜찮지 않을까?”

“그렇네요.”

박재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서준의 시선은 가짜 활에 머물러 있었다.

어떻게 연기할지 생각해 봐야겠다. 가짜 활을 쓰는 장면에서도 진짜 활인 것처럼 보여주고 싶으니까 말이다.

* * *

“레디, 액션!”

좀비다.

간신히 진정한 고주원은 창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머리를 빼꼼 내밀고 창밖을 살폈다. 이리 보고 저리 보고 다시 봐도,

“진짜 좀비잖아!”

소리를 지르려던 고주원이 제 목소리에 놀라, 손으로 입을 턱 막았다.

현실에 좀비가 존재할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사람을 물고, 물린 사람이 똑같은 모습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 분명히 좀비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고주원은 방 안을 둘러보다 침대 위에 올려져 있던 활을 발견했다.

무기!

여러 개의 장치로 해체된 활이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해 보였다. 고주원은 얼른 침대 위에 올려놓은 활의 손잡이, 라이저를 낚아챘다. 작은 부품이었지만, 지금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고주원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1인실.

“여기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

화장실에 물도 있고 친구들이 준 과자와 빵도 있었고 부모님이 사 온 과일도 있었다.

“문 잠그고 그 앞을 가구들로 막아놓으면…….”

문 앞을 막을 가구를 살펴보던 그때, 고주원은 깨달았다.

“애들!”

조금 전까지 함께 웃고 떠들었던 친구들이 있었다.

양궁부에 들어간 날부터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 걱정해 주고 병문안까지 와준 친구들.

초조하게 입술을 씹던 고주원이 고개를 들었다.

병실에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지금 찾으러 가면 괜찮을지도 몰랐다. 친구들과 함께 안전한 곳에서 기다리면 누군가 구하러 올지도 몰랐다.

불안함에 흔들리던 까만 눈동자가 불꽃처럼 불타올랐다.

고주원은 곧바로 옷을 챙겨 입었다. 좀비 영화를 본 것처럼 얇은 옷을 여러 겹 입고 그 위에 운동복을 겹쳐 입었다.

고주원의 준비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양궁 가방에 있던 장비들을 침대 위에 늘어놓았다.

손에 핑거탭을 끼우고 가슴 쪽에는 체스트가드를 찼다. 팔에 암가드를 차고, 예비용으로 가지고 있던 또 하나의 암가드를 반대쪽 팔에 찼다.

물이 흐르듯 부드러운 동작으로 고주원은 양궁을 조립했다.

손잡이가 될 라이저의 위아래에 날개를 붙이고 그 끝에 시위가 될 스트링을 연결했다. 그리고 조준경 등의 장비를 하나하나 조립하다 손을 멈추었다.

“좀비가 가까이 오면…… 휘둘러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몰라.”

잠시 고민하던 고주원은 스타비라이저를 떼어 냈다.

‘스타비라이저’는 활을 쏠 때, 흔들리는 걸 막고 균형을 잡는 데 필요한 장치였는데, 아래 날개보다 길이가 더 길었다. 활의 손잡이에 아래 날개보다 더 긴 막대가 마치 ‘ㅏ’처럼 수직으로 달려 있어,

“이걸 달고 휘두르면 내가 더 위험할 거야.”

활의 아래 날개를 붙잡고 몇 번 허공에 휘둘러본 고주원은 안타까운 듯한 얼굴로 여전히 멋들어진 자신의 활을 바라보았다.

“이러면 휘어지는데…… 여기서 나가면 엄마한테 사달라고 해야겠다.”

이번에 나온 신상품을 떠올리며, 애써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고주원은 친구들이 가져다준 화살도 챙겼다. 스무 개의 화살 중 몇 개는 바로 꺼낼 수 있게 화살집에, 나머지는 가방에 넣어두었다.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게, 화살집은 허벅지에 달지 않고 어깨에 멨다.

“다 챙겼지? 아, 내 휴대폰 어디 있지?”

압수된 휴대폰을 떠올린 고주원이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저었다.

“전화는 밖에도 있으니까 괜찮아.”

또 자신처럼 아직 멀쩡한 사람이 경찰에 연락했을지도 몰랐다.

“애들을 데리고 오자.”

만반의 준비를 한 고주원은, 떨리는 심장을 애써 가라앉히고 굳게 닫혀 있는 병실 문 앞에 섰다.

* * *

서준이 촬영을 하는 동안, 양궁부원 아역 배우들이 하나둘 나타나 1층에 있는 특수분장실로 향했다. 함께 출연할 단역 배우들도 스태프들의 안내에 따라 특수분장실로 향했다.

아역 배우들의 등장에, 이리저리 살펴보던 제나 트라이드가 반색했다. 열심히 영어를 내뱉는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리더의 모습에 아역 배우들은 눈만 데굴데굴 굴렸다. 통역을 맡은 스태프가 웃으며 말했다.

“이쪽으로 오랍니다.”

“네!”

잠시 후, 미러팀의 심혈을 기울인 특수분장이 끝났다. 제나 트라이드가 팔을 걷어붙인 좀비는 더 현실 같으면서도 이질적으로 보였다. 제나 트라이드와 미러팀이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봐도 봐도 무섭네.”

“난 이제 좀 익숙해진 것 같은데.”

분장을 끝내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역 배우들을 보며 옆에서 분장을 기다리고 있던 단역 배우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난 촬영에서 저 아이들이 얼마나 좀비 연기를 잘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복도 끝이 시끄러워졌다.

경악 섞인 환호성과 이상한 비명, 떨림이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역 배우들의 시선이 쏠렸다. 아역 배우들은 그게 누구 때문인지 알고 있어 키득키득 웃었다.

이서준이었다.

운동복에 양궁 선수처럼 이것저것 걸친 이서준이 아우라를 뿜뿜 퍼뜨리며 나타나자, 다들 자신도 모르게 입을 떡하니 벌렸다.

“안녕하세요!”

서준이 인사를 하고 함께 온 박재민 조감독(있는지도 몰랐다.)의 설명이 이어지자, 더 벌어질 수 없을 것 같았던 단역 배우들의 입이 더 크게 벌어졌다. 박재민 조감독은 ‘비밀을 지키라’는 주의사항까지 빼놓지 않고 말한 뒤에 서준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키득키득 웃으며 서준의 모습을 보던 아이들이 휴대폰을 두드렸다.

>주경 : 어디가?

>서준 : 잠깐 인사하러 온 거야. 촬영 시작하기 전에 알면 다들 놀라서 촬영 못 한다고. 아직 촬영 남았어.

>주희 : 촬영 열심히 해!

>서준 : 너희 분장 잘 됐더라. 진짜 좀비 같았어!

>재한 : 사람 많았는데 우리는 어떻게 찾았어?

>서준 : 교복 입고 있잖아ㅋㅋ

>재한 : 아하!

서준의 등장으로 1층 특수분장실이 시끌벅적해졌다.

“미친. 진짜 이서준이 주연이라고?!”

“할리우드 특수분장팀도 말이 안 되는데 이서준이 주연? 이 영화 대박 나겠다.”

“이서준이 할리우드 팀 데려온 거 아니야?”

“진짜 그런 것 같은데?”

믿을 수 없는 소식에 단역 배우들이 들떴다. 아르바이트 겸 왔던 사람들도, 진심으로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뜻밖의 배우의 등장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등장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뒤집어 놓는 스타.

“역시 내 친구.”

흥분한 어른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들이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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