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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98화 (19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98화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떠나는 날이 되었다.

공항까지 함께 가고 싶었지만, 사람이 많은 터라 숙소에서 작별 인사를 하기로 했다.

바리바리 싸 온 음식들과 준비한 선물들을 건네준 서준은 에반 블록을 꽈악 껴안고, 리첼 힐을 꽈악 껴안았다.

두 사람도, 부쩍 자랐지만, 아직 어린아이처럼 보이는 서준을 꽉 안아주었다.

“쉐도우맨3 촬영 때 보자.”

“잘 있어. 준.”

“조심해서 가요. 그동안 정말 좋았어요.”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은 이민준과 서은혜에게도 인사를 하고, 고생했을 안다호와 서은찬과도 악수를 하였다.

“편하게 지내다 갑니다.”

“고생하셨어요.”

“다 인맥 좋은 조카 덕분이죠.”

서은찬의 말에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의 추천으로 시작된 일이 이렇게 커질지는 몰랐다.

하지만 더 큰 일이 아직 남아 있었다. 진정한 폭풍은 개봉 후가 될 것이었다.

쏟아질 전화와 연락을 떠올리기만 해도 안다호와 서은찬은 해탈한 듯 웃었다.

이제 두 할리우드 배우의 서포터를 끝내고, 원래 일로 돌아갈 코코아엔터 2팀은 청룡영화상의 일이 끝난 이후, 돌아가며 이스케이프 개봉 전까지 길고 긴 유급휴가를 즐길 예정이었다.

허허허 웃고 있는 서은찬에게 에반 블록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새까맣게 선팅된 차에 오르는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뒷모습을 보며 서은찬은 고개를 갸웃했다.

[제목 : 에반 블록, 리첼 힐이랑 비슷한 외국인 봄.]

주택가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는데,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이랑 비슷하게 생긴 외국인 봄.

여기 외국인이 드물어서 처음에는 놀랐는데(영어 못함ㅎ) 둘 다 한국어 잘하더라. 남자만 잘하면 에반 블록인가 싶다가도 여자까지 잘하니…… 아닌가 싶음.

한 며칠 오는 것 같더니 이젠 안 오네. 누구였을까?

-뭐 입고 있었음?

=ㄱㅆ : 야구모자에 후드티 모자 겹쳐 쓰고, 마스크하고 그냥 트레이닝 바지 입었음. 얼굴은 확실히 본 적 없음.

=……둘 다?

=ㄱㅆ : ㅇㅇㅇ

=옷차림이 너무…… 나도 울집 앞 편의점 갈때 그러고 감ㅋㅋ

=22 아닌 것 같다. 그냥 그 동네 사는 외국인 아님?

-이젠 안 온다고 하니, 다른 지역에서 일하다가 잠시 서울에 여행 온 건가? 에이앤비 같은 거.

=그럴 듯. 외국인은 다 비슷비슷해서ㅎ

-뭐 사 갔음?

=ㄱㅆ: 다양함. 올 때마다 편의점 탐방하는 듯 다른 거 사 가더라.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라는 제목 때문에 조회 수가 미친 듯이 올라갔던 게시글이었지만, ‘후줄근한 옷차림’과 ‘유창한 한국어’ 때문에 곧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다.

몇 달 후, 성지가 될, 두 할리우드 배우의 목격담은 그렇게 묻혀 버렸다.

* * *

덜컹덜컹.

비포장도로에 차가 덜커덩거렸다.

“촬영을 이런 산속에서 하네.”

“너무 먼 거 아니야?”

“야외촬영장치고는 가까운 편이래.”

부모님과 함께 이스케이프 촬영장으로 향하는 주희가 재잘댔다. 내비게이션에 입력된 촬영장이 점점 가까워졌다. 운전대를 잡은 주희의 아빠가 손가락을 운전대를 툭툭 쳤다.

“여기 제대로 된 주차장이 있으려나?”

“그러게…… 어? 여기서부터 새 도로네?”

비포장도로가 끝나고 깨끗하게 포장된 길이 나타났다. 아직 색이 선명한 아스팔트가 공사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깔끔한 길을 따라 주희 가족의 차가 촬영장으로 향했다. 도로도 깔끔했지만, 주차장도 그에 못지않았다. 넓고 깨끗한 주차장은 커다란 차량이 여러 대가 주차되어 있었지만, 아직도 많은 자리가 남아 있었다.

“무슨 관광지 온 느낌이네. 깔끔하니 잘돼 있어.”

“입장권 사야 할 것 같은 느낌이긴 하네.”

짐을 옮기는 스태프들만 아니라면 그런 것 같았다. 차에서 내린 주희는 주변을 돌아보다 나무 아래에서 햇빛을 피하고 있는 친구를 발견했다.

“재한아!”

“주희야. 왔어?”

“안에 안 들어가고 밖에서 뭐 해?”

“긴장해서 그런지 안은 좀 답답하더라.”

“그렇구나. 이쪽은 우리 엄마랑 아빠. 이쪽은 같은 반, 강재한!”

“같이 촬영한다던 친구가 너구나. 혼자 온 거니?”

“아뇨. 엄마가 데려다주셨어요. 일이 있으셔서 금방 돌아가셨지만요.”

“그럼 돌아갈 때는 우리랑 같이 갈까?”

주희 엄마의 말에 재한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친구가 데려다주기로 했어요.”

“또 같이 촬영하는 친구가 있었어?”

“옆 반에 한지호라고 있어.”

‘한 사람 더 있지만…….’

깜짝 놀랄 엄마 아빠의 모습을 떠올린 주희가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그런 딸의 속마음도 모르고, 주희의 엄마 아빠가 촬영장을 둘러보았다. 주희 덕분에 촬영장은 몇 번 와봤지만, 언제봐도 새로운 느낌이었다. 좀비 영화의 촬영장이라고 하니, 더욱 그런 느낌이었다.

그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한지호 아역 배우, 엄마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지호랑 같은 학교 학생이라고 들었어요.”

한지호의 엄마를 시작으로 아역 배우들의 보호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보호자들은 이스케이프에 관한 기사들, 부족한 홍보, 믿을 만한 주연 배우들에 관한 이야기로 순식간에 의기투합했다.

“왔네? 이쪽은 저번에 나랑 광고 촬영했던 애들이야.”

“만나서 반가워.”

다섯 명의 아역 배우들도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바톡!

그때, 재한과 주희, 지호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휴대폰을 본 세 아이의 눈이 반짝였다.

“왔구나!”

“응? 누가 와?”

안에도 연락이 간 모양인지, 건물 안쪽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주차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 조감독이 나오자, 짐을 옮기고 있던 스태프들의 시선이 쏠렸다. 보호자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지호야! 감독님이시지? 기사로 본 것 같은데?”

“주희야. 인사드려야 하는 거 아니야?”

“좀 이따가요.”

“응?”

“온다!”

다들 최대만 감독만 보고 있는데, 도로 입구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 나타날 사람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도로 입구에서 까만 차가 하나 나타났다. 커다란 차는 새까맣게 선팅되어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어지간한 차보다 비싸 보이는 차였다.

특정 직종의 사람들이 자주 타고 다니는 차.

“연예인 차 아니야? 오늘 누가 오나?”

“그러게. 엄청 비싸 보인다.”

스태프들과 보호자들이 속닥거리고 있을 때, 차는 부드럽게 주차장 한편에 멈춰 섰다.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 조감독이 그곳으로 향했다. 모두 의문이 서린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최대만 감독이 입을 열었다.

“먼저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차 문이 열리고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희와 재한이 친구의 모습에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바로 어제 서준의 출연을 들은 지호는 웃으며 얼이 빠진 아역 배우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짐을 옮기던 스태프도, 무슨 일인가? 창밖을 내다보던 스태프도, 주희의 부모님과 보호자들도 모두 멍하니 차에서 내리는 배우를 바라보았다.

최대만 감독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이스케이프의 주연 배우, 이서준 배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

소리 없는 경악이 촬영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스케이프 주연 배우? 이서준?

“……주희야. 주연 배우가 또 있었어?”

“응. 고주원이라고 배역이 하나 있는데 서준이가 연기해.”

“우리 딸…… 알고 있었구나!”

이런 사실을 숨긴 딸을 원망하는 것도 아주 잠깐이었다.

상상도 못 한 곳에서 등장한 슈퍼스타를, 멍하니 보고 있던 보호자들은 주희의 말에 그제야 실감이 난 듯, 소리 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조금 전까지도 제작비가 부족해서 홍보를 못 한다, 우리라도 소문을 내야 한다,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하나, 투덜거리던 보호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누구 하나 빠짐없이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글 올릴까요? 이서준이 나온다는 글만 올리면 이번 영화는 대박이겠죠?”

“그럴까요? 카페에 글 하나만 올려도 될 것 같은데!”

“사진. 사진도 찍죠!”

홍보할 기색이 가득한 보호자들의 모습에, 최대만 감독은 간단히 홍보 계획에 관해 설명하고, 서준에 관한 이야기가 새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아직도 넋이 나간 스태프들에게도 말했다.

최대만 감독의 말에 아쉬움 가득했던 보호자들이었지만, 이젠 흥행에 대해서는 하나도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비밀을 유출할까,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비밀 꼭 지키죠. 그래야 더 흥행할 테니까!”

“네! 연극 봄도 그래서 대박 났잖아요.”

어린이 연극 봄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잘 알고 있는 아역 배우들의 보호자였다. 그리고 비밀의 지킨 대가가 얼마나 달콤한지도 알고 있었다.

“이다진 배우처럼만 돼도 좋겠네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연기파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이다진. 이서준을 제외한 아역 배우 중 가장 성공한 배우. 그 기저에는 나 진의 비밀을 꽁꽁 숨겼던 어린이 연극 봄이 있었다.

제2의 이다진을 꿈꾸며 보호자들은 입에 지퍼를 채웠다.

* * *

소개가 끝나고, 서준은 열심히 손을 흔들고 있는 재한과 주희에게로 향했다.

“둘 다 일찍 왔네?”

“긴장해서 너무 일찍 일어났어.”

“나도. 우리 엄마 아빠도 제대로 못 잤대.”

주희의 말에 서준과 재한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 재한아. 다호 형이 가는 길에 집 앞까지 데려다줄 수 있대. 집 앞까지 데려다줄까?”

“그럼 고맙지. 편하게 가겠네.”

“올 때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까 서준이가 차에서 내릴 때 몰렸던 시선을 생각해 보면 따로 오는 게 나았어. 내가 다 떨리더라.”

“그런가?”

“못 봤어? 다들 서준이 너만 쳐다보는 거.”

주희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항상 그래서 잘 모르겠는데?”

이 슈퍼스타……!

능청스러운 서준의 말에 재한과 주희가 옆구리를 찔렀다. 서준과 아이들이 아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아이들을 모습을 보고 있던 두 아역 배우가 지호의 팔을 붙잡았다. 할리우드 배우인 이서준과 함께 연기를 한다니,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지호야.”

“응?”

“나 떨려서 대사 다 잊어버린 것 같아.”

친구의 말에 지호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서준과 처음 연기를 할 때는 그랬다. 이럴 땐 연습이 최고였다.

“그럼 다 같이 연습하러 갈까?”

“그래도 돼?”

“서준아. 촬영 전에 잠깐 같이 연습해도 돼?”

“그래!”

지호의 말에 서준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감독님!”

막 최대만 감독의 뒤를 따라 건물 안으로 향하려던 박재민 조감독이 서준의 부름에 고개를 갸웃하며 다가왔다.

조감독님을 불렀어! 아이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서준아, 왜?”

“친구들이랑 대본 연습하려는데 안 쓰는 방 있어요?”

서준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박재민은 빈방을 알려주었다. 겸사겸사 스태프들이 휴게실로 쓰고 있는 곳도 알려주었다.

“과자도 있고 음료수도 있어. 마음껏 먹어도 돼. 연습 열심히 해서 영화가 잘 나오면 우리가 더 좋지.”

“감사합니다.”

서준의 감사 인사에 흐뭇하게 웃은 박재민 조감독의 시선이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바짝 긴장한 아이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서준이 친구들? 여울 예중 배우들이 몇 명 있다던데?”

“네. 양주희입니다!”

“강, 강재한입니다!”

“한지호입니다.”

여울 예중이라는 소리에 세 아이가 꾸벅 인사했다. 서준은 다른 학교인 아역 배우들도 소개해 주었다. 아역 배우들의 씩씩한 소개를 들으며 박재민이 입을 열었다.

“서준이 친구들이면 연기는 기가 막히게…… 악!”

“안녕하세요! 감독님!”

오지 않는 박재민을 찾으러 온 최대만 감독의 스매시와 타이밍 좋게 큰 소리로 인사하는 서준이 덕분에, 아이들은 방금 조감독이 하려던 말을 듣지 못했다.

‘나이스 타이밍! 감독님!’

‘미안하다. 이 자식은 필터가 없어.’

대충 눈빛으로 대화한 감독과 배우가 아하하하 웃으며 아역 배우들을 소개했다. 하늘 같은 감독님과 하하호호 이야기를 나누는 서준의 모습에, 아이들은 같이 수업을 듣고, 급식을 먹는 서준이 정말 탑 배우처럼 보였다.

“그러고 보니 김주경 배우도 서준이 친구지?”

“네. 이번 오디션에 지원했는데 떨어졌어요.”

“아무래도 재난 상황이 비슷하니까. 한 걸음이랑 이미지가 비슷했어.”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그럴 것 같았다.

“그래도 연기는 잘하니까 다른 작품엔 합격할 거야.”

“네. 주경이한테 전해줄게요.”

“그래. 촬영 때까지 편하게 있어.”

바짝 긴장한 아역 배우들에게 웃어준 최대만 감독은 박재민을 끌고 건물 안으로 향했다.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던 박재민이 사나운 최대만 감독의 얼굴에 입을 꾹 다물었다.

“넌 입조심 좀 해라. 서준인 서준이고, 애들은 애들이야. 서준이 같은 배우가 그렇게 흔한 줄 알아?”

박재민 조감독은 침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이 짧았다.

“다른 스태프들한테도 주의하라고 해. 이 나이 때 애들은 가벼운 한마디에도 상처받아. 넌 네 한마디에 개들이 영영 배우 생활 관뒀으면 좋겠어?”

“윽. 미안.”

“나한테 미안할 게 아니지. 애들한테 잘해줘.”

“알았어.”

최대만 감독의 말에 박재민 조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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