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97화
“다호 형. 오늘 한다는 이야기 청룡영화상 이야기에요?”
안전벨트를 매면서 말하는 서준에 안다호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
“친구들이 말해줬어요.”
“하긴. 연기과라면 영화제나 시상식에 관심이 많을 테니까.”
아직 후보 명단도 뜨지 않았지만 인터넷에서도 슬금슬금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안다호가 시동을 걸었다.
“내일 후보작 명단이 뜰 예정이야. 주최 측에서 미리 보내준 자료를 보면 역도 후보에 많이 올랐어.”
“다들 정말 좋아하겠어요.”
우정한 감독과 배우들, 스태프들.
오랜만에 만날 사람들을 떠올리며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 * *
사과를 포크로 찍은 서준이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둘 다 이제 미국에 돌아가죠?”
“촬영도 다 끝났으니까.”
사과를 한 입 베어 문 에반 블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학교에 간 사이, 두 할리우드 배우의 카메오 신 촬영은 모두 끝났다. 아쉬움 가득한 스태프들과 감독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까지 찍고 왔다고 했다.
물론, 비밀 유지는 필수 사항이었다.
“대본으로 볼 때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이렇게 촬영하니까 같이 나오는 장면이 없어서 좀 아쉬워요.”
“나도 그래. 같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아쉬움 가득한 서준과 리첼 힐의 모습에 에반 블록이 웃었다. 그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근데 더 있다가는 한국에 온 거 들킬 것 같더라.”
에반 블록의 말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이제 편의점 가는 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아까 가니까, 알바생이 의심하는 눈빛이었어.”
숙소에서 가까운 24시 편의점.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자주 들르는 편의점이었다.
처음에는 외국인이라서 당황하며 어설픈 영어로 응대하는가 싶더니, 이제 익숙해지니 두 사람의 얼굴을 살피기도 했다.
남자만 한국어를 잘하면 더욱 확신이 생길 텐데, 여자까지 한국어를 잘하니, 아닌가 싶다가도 비슷한 생김새에 알바생이 의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두 배우가 이야기했다.
“근데 기사 뜬 게 없으니까, 아직은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그럴 거예요. 누가 이런 곳에 할리우드 배우가 있다고 생각하겠어요.”
“난 영화 개봉하고 사람들 반응이 너무 궁금해. 우리가 이곳저곳에 들렀다고 하면 난리가 나겠지? 사진도 다 찍어놨어.”
장난꾸러기 아이처럼 세 배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과 부부, 두 배우가 이곳저곳을 들른 사진이 여러 장이었다. 얼마나 놀랄까, 얼마나 좋아할까.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하던 세 배우의 대화는 곧 새로운 화제로 이어졌다.
“청룡영화상?”
“네. 11월에 열리는 시상식인데, 한국 영화만 대상이에요.”
서준이 아삭아삭한 사과를 베어 물며 말했다.
올해의 한국 영화라면.
불과 몇 개월 전에 개봉했던 영화를 떠올린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웃었다.
“역도 받겠네.”
“헤헤헤.”
주최 측에서 코코아엔터에 미리 보내주고, 안다호가 서준에게 전해준 명단을 보면 역이 후보에 오르지 않은 상을 찾는 게 더 쉬울 정도였다.
청룡영화상의 시상 부문은,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녀주연상, 남녀조연상, 남녀신인상, 신인감독상, 촬영조명상, 음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기술상 등이 있었다.
“최우수작품상이랑 감독상, 남자주연상, 남자조연상에 올랐어요.”
촬영조명상, 음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기술상에도 올랐다.
에반과 리첼 힐이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물었다.
“시상식은 언제 하는데?”
“시간이 되면 보러 가고 싶은데…….”
서준은 눈을 끔벅이다가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3주 뒤에요. 한참 멀었어요.”
“그건 안 되겠네.”
“하루 이틀쯤은 늦출 수 있지만 3주는 좀.”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아쉬운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상을 받을 때 직접 축하해 주고 싶었는데 아쉬워.”
“괜찮아요. 다음에 받을 때 축하해 주세요.”
씩씩한 서준의 말에 두 배우가 미소를 지었다. 시계로 시선을 돌려 시간을 확인한 리첼 힐이 벌떡 일어났다. 아직 저녁 식사 시간까지는 시간이 남았다.
“그럼 우리 미리 축하파티를 할까? 어떤 상을 받을지는 몰라도 하나는 꼭 받을 테니까!”
리첼 힐의 의견에 서준과 에반 블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아빠한테 이런 이유로 파티를 할 거라고 전화하던 서준이 작게 웃었다. 어째, 두 사람이 한국에 온 이후로는 하루하루가 파티 같았다.
때 이른 축하 파티의 음식을 준비하고 있을 때, 후식으로 먹을 쿠키 반죽을 치대던 리첼 힐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 고사한다며? 나도 고사라는 거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 고사 때는 다른 사람들도 꽤 오니까요. 저도 안 갈 예정이에요.”
리첼 힐과 마찬가지로, 고사라는 걸 체험해 보고 싶었던 에반 블록이 입을 열었다.
“음. 그럼 쉐도우맨3 찍을 때 해볼까? 라이언 감독님은 미신 같은 거 안 믿으시지만, 하고 싶다고 하면 해줄 것 같은데 말이야.”
그 말에 리첼 힐이 눈을 반짝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돼지머리는 징그러우니까 인형이나 사진으로 하자!”
“근데 고사 절차가 좀 복잡해요. 축문도 읽어야 하고 절도 해야 하고. 정식으로 하려면 미국에서는 힘들지 않을까요?”
서준의 말에 리첼 힐이 활짝 웃었다. 이미 리첼 힐은 할 생각이 가득한 모양이었다.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괜찮지 않아?”
에반 블록도 동의했다.
“그런 미신이 있다는 걸 알면 마린사가 먼저 하자고 할걸? 게다가 촬영 기간 동안 안전을 바란다는 의미도 있잖아. 다른 액션신도 있지만, 준의 액션신도 있어서 라이언 감독님도 마린사도 두 팔 걷고 나설지도 모르지.”
나이가 나이이고 CG 작업을 많이 해서 어렵고 힘든 액션 장면은 없을 테지만, 운이 나쁠 경우에는 평범한 촬영에서도 다칠 수가 있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미신이지만, 이런 게 있다는 걸 알면 찜찜해서 계속 신경 쓰이는 게 사람 마음이야. 그렇게 되면 결국 하자고 할걸./”
긴 문장 탓에,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말한 리첼 힐이 악당처럼 후후후 웃었다.
‘음. 그런가?’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말에 정작 당사자인 서준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배우의 안전을 위해서는 미신의 힘도 빌리고 싶었던 안다호는 눈을 반짝였다.
‘고사라…….’
알고 있는 영화감독들에게 자세한 방법과 절차를 물어야겠다고, 안다호는 생각했다.
* * *
다음 날.
아침부터 인터넷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기사들이 떴다.
[영화 역逆, 청룡영화상 후보만 여러 개!]
[역逆,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자주연상, 남자조연상, 촬영조명상, 음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기술상, 총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역시 역.
=역시 역222
-안 올라간 걸 찾는 게 빠른 역.
-후보로 오른 상, 다 받을 것 같은 역.
-헐. 남우주연상 후보 봤음?
=?? 이서준 아님?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후보. 배우 이서준!]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후보. 배우 이지석!]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적! 이서준과 이지석의 경쟁!]
[남우주연상! 과연 누가 받을 것인가!]
-서준이 남우주연상!
-이지석도 후보에 올랐네!
-와. 집안싸움임? 이서준은 예상했는데, 이지석까지!
-이지석도 잘했음. 앞으로 수양대군은 이지석임ㅎ
-조연상 받기에는 정말 잘했음. 누구 하나 빠졌으면 이런 작품 안 나왔다.
-근데 둘 중 하나만 받는 것도 너무 아쉬울 듯.
-공동 수상은 없나? 둘 다 받으면 안 됨?
=예전엔 있었던 것 같은데. 요샌 없었음.
=게다가 한 작품에 두 사람이 받는 건 아예 없었지 않나?
=심사위원들도 엄청 고민하겠네ㅎㅎ
-난 이서준 한 표.
=나도 이서준
=서준이!
“다들 서준이 편이네.”
김종호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읽었다. 김종호의 옆에 앉아 있던 이다진이 작게 웃었다.
“선배님도 서준이 편이세요?”
“당연하지. 지석이 녀석도 잘했지만, 서준이가 더 잘했어. 모두 오버 더 레인보우를 봤는데 누구 하나 단종과 그레이가 비슷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잖아.”
“이지석 선배님은 조금 그런 말이 나오기는 했죠.”
대다수가 그렇지 않았지만, 간간이 허의관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주 조금이지만 말이야.”
김종호는 ‘아주 조금’을 강조하며 말했다. 이지석만 만나면 제 페이스를 잃는 김종호지만, 인정할 건 인정했다.
김종호는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게 보통이긴 해. 아니, 이 정도 언급량이면 이미지 변신은 완벽한 거지.”
인생연기. 인생작품.
좋은 말이고 배우라면 누구나 듣고 싶은 말이지만, 이미지가 고정되고 캐릭터가 다음 작품까지 영향을 주는 단점도 있다. 김종호도 아직까지 때때로 태종이라고 불리고 있었고, 이다진도 어렸던 예전에는 자주 사냥꾼이라고 불렸다.
지금 이다진이 사냥꾼으로 불리지 않는 이유는, 아마 연기력보다는 그때보다 많이 자라서 그럴 터였다. 쑥쑥 크는 청소년 때, 아이들은 정말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니까 말이다.
준비되어가는 고사상을 보며 김종호가 입을 열었다.
“아마 이스케이프가 나오면 또 임장우라는 이름으로 불리겠지.”
“저도 그렇게 되겠죠?”
이제는 성장기 때처럼 쑥쑥 크지도 않을 테고, 관리만 잘하면 지금의 얼굴이 그대로 유지된다. 피부나 주름, 미세한 곳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바뀌겠지만, 화면에 비치는 얼굴은 꽤 오래 그대로일 것이다.
‘이스케이프는 흥행할 거야. 그것도 아주 크게.’
아주 많은 사람이 볼 테고, 아주 여러 번, 반복해서 관람할 터였다. 그만큼 이스케이프 속 연재희는 사람들에게 많이 노출될 터였다.
다 자란 지금. 어지간한 외적 변화로는 이미지 변신이 힘들 터였다. 이스케이프 속 연재희의 이미지가 거의 고정될 터였다. 어쩌면 평생, 연재희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미지가 고정된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어.’
이다진은 다짐하듯 입을 열었다.
“다음 작품도 최선을 다해서 연기해야겠네요.”
“그렇지.”
해결책은 열심히 연기하는 것.
다부진 어린 배우의 말에 김종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고사 시작하겠습니다!”
그 외침에 최대만 감독, 박재민 조감독, 플러스+코리아의 지사장, 영화드림 대표 이한솔, 주연 배우 김종호, 이다진. 그리고 비공개 촬영 때 함께했던 스태프들과 앞으로 함께 촬영할 스태프들이 고사상 앞으로 모였다.
* * *
[한국형 좀비 영화, ‘이스케이프’의 고사장 풍경!]
[배우 이다진, “정말 재미있는 영화가 될 것.”]
[배우 김종호, “충분히 기대할 만한 영화.”]
[최대만 감독, “관객분들에게 드리는 선물 같은 작품.”]
-오. 촬영 시작하나 봐.
-근데 되게 빨리하네. 좀비 영화 찍는다는 소리를 얼마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쟤네가 홍보를 안 해서 그럼ㅎ
=22 준비는 전부터 했을 텐데, 기사가 안 뜨니 우리가 알 수가 있나.
-근데 뒤에 외국인? 아님?
=그러게. 어디서 봤는데?
=외국인을? 어디서?
=오오. 찾았다. 플러스 코리아 지사장임. 제작비는 걱정 없을 듯.
=아. 하긴 외국은 좀비 영화 팬들 많지? 그래서 투자했나 보네.
=22 한국에서 흥행 못 해도 플러스에 업로드 하면 되니까. 제작비는 건질 듯.
-근데 보통 좀비 영화에, 재미나 선물 같은 단어는 안 쓰지 않나?
=보통 ‘재미’는 코믹영화에 쓰고
=‘선물’은 감동적인 영화에 쓰지.
-……음 ……신파임?
=ㅠㅠ 좀비 영화에 신파 넣기? 있기 없기ㅠㅠ?
=보러 가려고 했는데 신파는 좀…….
-이다진이랑 김종호가 부녀로 나옴?
=……김종호 얼굴을 보면 그럴 듯.
-조폭 아빠가 딸 구하러 가는 건가…….
=이걸 듯222
-근데 얘넨 진짜 홍보 개떡같이 한다. 아직 줄거리도 안 올림ㅎㅎ
-ㅇㅇ지금까지 나온 정보 좀 봐라. 어이가 없다ㅋㅋ
[이스케이프]
장르 : 좀비영화(한국형;;;;)
제작사 : 영화드림(한 번 망했다 살아남/이서준 악령 판권 팜ㅎㄷㄷ)
투사자 : 플러스+코리아(플러스 업로드용인 듯)
감독 : 최대만(악령 감독/ 2번째 작품 손익 넘김)
특수분장팀 : 아마 한국 탑 쓰리(or 할리우드 특수분장팀?<루머임)
주연 : 김종호, 이다진(<<<믿을 건 이것뿐ㅎㅎ)
줄거리 : 안 뜸ㅎ
-……이게 내일 크랭크인에 들어간다는 영화의 정보량이냐!
-믿을 건 이다진, 김종호뿐
=2222
=3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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