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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93화 (19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93화

묵직한 침묵이 세트장에 내려앉았다.

미리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모르고 있던 사람들도 멍한 얼굴로, 뜬금없이 나타난 세 할리우드 스타를 바라보았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배우들이 작게 웃었다.

“우리도 저랬어?”

“네.”

이다진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서프라이즈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이서준, 에반 블록, 리첼 힐, 김종호, 이지석, 박도훈, 이다진.

7명의 배우는 서 있는 것만으로도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침을 꼴깍 삼킨 촬영 감독이 최대한 잘 찍기 위해 카메라를 움직였다.

“어서 오세요.”

최대만 감독이 배우들을 반겼다. 어제 만났지만, 촬영장에서 보는 느낌은 완전히 달랐다. 정말로 이 배우들과 함께 촬영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됐다.

“최 감독님.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에반과 리첼이 최대만 감독과 인사를 나누고 최대만 감독이 플러스+ 코리아의 지사장과 영화드림 제작사 이한솔 대표를 소개해 주었다. 두 사람은 감격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이거 우리는 뒷전인 것 같은데?”

“뭐, 리첼과 에반이면 저라도 그랬을걸요.”

이지석의 말에 박도훈이 웃으며 말했다.

아차, 싶었던 최대만 감독이 얼른 사람들에게 이지석과 박도훈을 소개했다.

“이지석 배우와 박도훈 배우도 카메오로 출연해 주실 예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해요.”

그저 김종호와 이서준을 보러 온 것이라고 생각이 뻗어 나가던 두 배우의 카메오 출연 소식에 다시 한번 스태프들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이 영화 미친 거 아니야?’

이서준과 김종호, 이다진이 주연인 것으로도 모자라, 에반 블록과 리첼힐, 이지석, 박도훈이라는 어마어마한 배우들까지 출연하다니. 상상으로도 해본 적이 없는 상황에 꿈인지 생시인지 볼을 꼬집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 배우도 처음 보는데 할리우드 배우까지 보게 된 본 브레이킹 댄스팀 리더는 아직도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프리프로덕션 기간 동안, 그와 좀비의 움직임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던 무술 감독도 할 말을 잃었다.

그사이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은 아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에반! 리첼! 여긴 어쩐 일이에요?/”

“/오랜만입니다. 제나. 여기서 제나를 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에반 블록의 말에 제나 트라이드와 미러팀의 팀원들이 한바탕 웃었다.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세상에. 한국 영화에 출연하는 거예요? 카메오로?/”

“/준 덕분에 좋은 대본을 볼 수 있게 되었거든요./”

리첼 힐이 웃으며 말했다. 제나 트라이드가 눈을 반짝였다.

“/저도요!/”

“/네?/”

“/저도 서준 리를 보러 왔어요. 겸사겸사 돈도 벌고요./”

“/저요?/”

에반 블록과 리첼 힐 옆에 서 있던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요! 내가 늑대인간의 변신을 봤거든요./”

서준과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제나 트라이드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세상에. 그런 허접한 분장으로 그런 분위기를 낼 수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허접……./”

희상이 삼촌이 들었다면 슬퍼할 말이었다. 근데 생각해 보면, 특수분장사의 눈으로 보면 허접할 법도 했다.

‘당일 분장한 것도 아니고, 그건 그냥 늑대 귀가 달린 후드티를 입은 거니까.’

“/그래서 꼭 한 번 분장해 보고 싶었습니다. 준을요./”

“/늑대인간으로요?/”

“/어떤 거든 좋아요. 늑대인간도, 좀비도, 그 이외의 생물도. 준이라면 제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것참.

서준의 마음에 쏙 드는 말이었다. 서준이 눈을 반짝이고 있는 빨간 머리의 제나 트라이드를 바라보며 웃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선 제가 좀비로 변하는 장면은 없어요./”

“/……그게 문제죠. 뭐, 이번이 안된다면 다음 영화에서도 분장 장면이 있다면 꼭 저와 미러팀을 불러주세요./”

“/네. 알겠어요./”

플러스+ 코리아의 지사장이 턱을 매만졌다. 어쩐지, 돈을 많이 불러도 그다지 내키지 않아 하던 제나 트라이드와 미러팀이 움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게 서준 리라는 점에서 신기하군.’

이번 영화, 이스케이프는 이서준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다.

* * *

스태프들이 촬영을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이제 이번 촬영이 ‘연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조금 전보다 기합이 바짝 들어간 모습이었다.

“진짜 할리우드 배우랑 촬영하는 거야?”

“와. 이런 건 상상도 못 해봤는데…….”

“나도.”

들뜬 스태프들의 움직임이 가벼워 보였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시선이 스태프들에게 향할 때마다 몸이 굳는 스태프들도 있었고, 은근슬쩍 세트장으로 몸을 가리는 스태프들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눈은 두 배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와. 리첼 힐까지 한국어로 대화하네.”

"에반 블록도 생각보다 엄청 잘한다. 완전 한국인 같은데?”

금방이라도 두 배우의 출연을 알릴 것 같이 들뜬 스태프들의 모습에 최대만 감독은 다시 한번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에반 블록 배우와 리첼 힐 배우의 출연은 물론이고, 이서준 배우와 이지석 배우, 박도훈 배우의 출연까지 꼭 비밀로 해주시길 바랍니다. 가족도, 친구도 안 됩니다.”

서준은 어쩐지 재미있었다.

‘악령 찍을 때도 이랬는데…….’

그때도 서준의 출연을 숨겼다가 밝혔다. 쉐도우맨2의 쿠키영상과 똑 닮은 악령의 예고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도 그랬지?”

이지석도 마침 똑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에반과 리첼이 관심을 갖자, 이지석과 서준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김종호, 박도훈, 이다진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었다.

* * *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박재민 조감독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우렁찼다. ‘연습’일 거라고 생각했던 촬영이 본 촬영보다 더욱 중요한 촬영이 되어버렸다.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촬영에 감독들은 이 일을 하면서 이렇게 집중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집중했다.

할리우드 배우와의 촬영.

오늘이 아니면 평생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스태프들도, 감독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세트장을 바라보았다. 세트장 위에 서 있는 두 할리우드 배우가, 이상할 정도로 멀게 느껴졌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커다란 유리창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느낌이었다.

“꼭 미드 보는 것 같지 않아?”

“그러게. 아니면 할리우드 영화.”

현실감이 너무 없어서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마지막으로 대본을 체크하는 두 배우의 모습에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눈을 반짝였다.

서 있는 것만으로 주변을 장악하는 두 배우의 모습을 의자에 앉아 있던 배우들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할리우드 배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직접 보다니, 그들의 연기는 어떨지 궁금했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대본을 매니저에게 건네고, 신호를 보냈다.

촬영장 안의 소음이 멎고 모두 아무 말 없이 눈으로 보고 있을 때, 최대만 감독이 외쳤다.

“레디, 액션!”

여러 대의 컴퓨터와 높게 쌓여 있는 종이들.

그 사이로 긴 금발을 대충 묶고 흰색 가운을 입은 여자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손에 잡힌 종이를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다. 몇 번을 봐도 종이에 적힌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미쳤어! 미쳤다고!/”

마리아 교수가 쌓여 있던 종이들을 들쑤셨다.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건……!/”

저 서류를 읽고, 이 종이를 읽었다. 자신이 연구하고 작성한 서류들과 누군가의 실수로 섞여들어 온 서류들은 모두 한 가지를 가리키고 있었다.

“/마리아 교수님./”

마리아 교수가, ‘아닐 거야’를 외치며 서류를 살펴보고 있을 때, 느긋한 얼굴의 남자가 마리아 교수를 불렀다.

마리아 교수는 사나운 눈빛으로 입구에 선 사무엘을 바라보았다. 그 눈초리에 푸른 눈을 두어 번 깜빡거린 사무엘이 웃으며 활짝 열려 있던 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 노크를 안 했네요./”

“/사무엘! 이게 정말인가요?!/”

“/음. ‘이게’ 무슨 뜻인지?/”

깔끔한 정장을 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뒤로 넘긴 사무엘과 새하얀 가운을 입고 흐트러진 금발을 대충 묶은 마리아 교수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 이 연구 말이에요!/”

마리아 교수는 제가 말하면서도 소름이 돋는 모양인지 말을 더듬었다.

“/아, 연구요./”

“/X를 완전히 죽일 방법을 찾는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건…… 이건…… 말이 다르잖아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사무엘은 두어 번 눈을 깜빡였다. 엉망진창이 된 연구실을 둘러보던 사무엘이 턱을 매만졌다.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에반 블록의 분석’이라는 사실을 아는 배우들이 눈을 반짝였다.

“/역시. 교수님은 너무 똑똑하십니다. 저희가 이번 일을 맡기길 참 잘한 것 같습니다. 헤드헌터에게 성과금을 더 줘야 하겠군요./”

“/사무엘! 농담할 때가……!/”

“/농담이 아닙니다.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온 후부터 한 번도 미소를 잃지 않던 사무엘이 처음으로 차가움을 내비쳤다. 그 냉정한 목소리에 마리아 교수가 몸을 움찔 떨었다.

“/마리아 교수님. 돈, 권력, 명예까지 가진 자들에게 없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뭔지 아십니까?/”

“/……!/”

사무엘의 말에 마리아 교수의 눈이 커졌다. 교수도 답을 알아챈 것이었다. 사무엘이 다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습니다. 젊음. 아니면 죽음을 피해 영원히 사는 것./”

“/……미쳤어!/”

“/어느 날, 기이한 생물이 나타났죠. 죽여도 죽여도 움직이는 그것. 타액을 통해 살아 있는 사람을 감염시키는, 좀비./”

사무엘은 바닥에 떨어진 종이를 주워 들며 말했다. 이런, 이 귀한 걸.

“/뭐, 그건 너무 만화 같으니, X라고 하죠./”

사무엘이 주운 종이에는 바이러스 X에 대한 분석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연구나 과학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사무엘로서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자료였지만, 자신은 그저 이걸 다른 팀에게 고스란히 넘기기만 하면 됐다.

“/X의 등장으로 과학계는 한바탕 뒤집혔습니다. 바이러스 X를 없애기 위해 분석하고 연구하고. 그러던 어느 날, 한 과학자가 의외의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고, 연구비를 대는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미치광이 과학자의 발언은 마리아 교수도 기억하고 있었다. 마리아 교수는 씹어뱉듯이 말했다.

“/……영생./”

“/네. 영생.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바이러스 X를 연구하면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영생까진 아니더라도 그 끈질긴 생명력이면 생명 연장에 대한 단서라도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사무엘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저희도 이렇게 좋은 사업 아이템이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넓은 테이블을 천천히 돌며, 사무엘은 종이 하나하나를 소중히 챙겼다. 내용은 영 모르겠다는 얼굴로, 소중하게 챙기는 모습이 정말로 기이하게 보였다.

마리아 교수가 소리쳤다.

“/그건 불가능해! 그게 생명력이라고?! 그건 그저 바이러스 X로 움직이는 시체일 뿐이야!/”

마리아 교수는 바이러스 X에 감염된 동생을 떠올렸다. X가 처음으로 발견된 장소를 살펴보러 갔다 감염되어, 실험체로 전락한 동생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이번 실험에 참여했는데……! 자신이 분석한 자료가 이렇게 쓰이고 있었다니! 잘못 도착한 서류가 아니었다면, 평생 모를 뻔했다.

그리고 화가 나는 만큼 두려웠다.

군인이었던 자신의 동생의 일을 그 위에서 모를 리가 없었다. 국방부는 물론이고, 아주 높은 곳까지. 바이러스 X의 출연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잠잠하다는 이야기는 모두 저 남자의 생각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의 기술력으로 바이러스 X와 그로 인해 발생할 변종들을 모두 감당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

마리아 교수가 뚫어질 듯, 사무엘과 그 뒤에 있을 사람들을 노려보았다.

“/마리아 교수님. 그런 자들은 실낱같은 희망…… 아니,/”

‘희망이라기엔 너무 질척이긴 하죠.’ 사무엘이 웃으며 바닥에 떨어진 종이들을 하나둘 모았다.

“/가능성에도 막대한 돈을 겁니다./”

잠시 말을 멈춘 사무엘이 웃으며 ‘이거 순서는 잘 모르겠네요’ 하며 테이블 위에 모은 종이들을 탁탁 쳐서 가지런히 정리했다.

“/그리고 저희 O.W.C.는 그런 가능성을 이뤄드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답니다. 물론, 비용은 좀 많이 들지만 말입니다./”

사무엘은 가지런히 모은 종이들을 마리아 교수 앞에 놓아두었다.

마리아 교수는 가지런히 정리된 종이를 바라보았다. 순서와 상관없이 엉망진창으로 뒤섞인 종이들이 마치, 이번 바이러스 X에 대한 사무엘과 O.W.C.의 현재 인식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리아 교수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교수님은 그저 동생분을 위해서 바이러스 X를 없앨 백신을 연구하시면 됩니다. 그 자료를 분석해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는 팀은 따로 있으니까요./”

기증된 시체와 여러 개의 X로 실험을 이어가던 자신과 달리, 그 ‘팀’이 자신의 연구 자료를 가지고 무슨 일을 했을지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아, 마리아 교수는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가볍게 목례한 사무엘이 입구 쪽으로 걸어가다 뒤를 돌아보았다.

“/아, 이 말 하려고 왔는데…… 깜빡했습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사무엘이 말을 이었다.

“/남한에서 새로운 X가 발견됐답니다. 그래서 한국에 갈 예정인데, 부디 교수님도 동행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 회사 소유의 병원과 연구소가 있으니, 한국에서도 충분히 연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돈만이 전부인 진창에 발을 들인 사냥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사무엘의 파란 눈이 사납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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