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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91화 (19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91화

에반 블록의 숙소.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은 그제 한국에 도착해 어제까지 숙소에서 푹 쉬었다. 서준도 평소 집이나 코코아엔터 연습실로 향했던 것과 달리, 이곳으로 와 두 배우와 함께 놀았다.

“워킹맨 재방송하네.”

“나 볼래!”

서준이 사 온 떡튀순(떡볶이, 튀김, 순대)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 한국어로 대화하는 에반과 리첼의 모습에 서준이 아하하 웃었다. 겨우 이틀 만에 한국에 적응해 버린 두 배우였다. 서준도 두 사람의 옆에 가서 앉았다.

떡볶이가 입에 맞는지 열심히 먹던 리첼 힐이 물었다.

“준. 오늘 저녁은 뭐야?”

“외할머니가 불고기 해주신대요.”

바다 건너 먼 미국에서 서준의 친구들이 놀러 왔다며, 외할머니가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서준의 말을 천천히 해석하던 리첼 힐이 곧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외-할머니. 알아! 은혜 어머님이시지?”

“맞아요.”

와아!

정답을 맞힌 한국어 1년 차가 소소하게 기뻐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한국어 능력 시험까지 본, 한국어 능숙자는 느긋하게 말했다. 물론, 유창한 한국어였다.

“불고기 맛있겠네. 미국 한식당에서 먹어봤지만, 가정식은 좀 다르려나?”

“외할머니가 만든 비법 양념이 들어가서 맛있어요.”

“그거 기대되는데?”

“비법? 비법이 뭐야?”

그리고 저녁 식사 시간.

엄마 아빠가 외할머니가 만든 불고기를 한 통 가득 들고 왔다. 불고기뿐만이 아니었다. 서은찬의 손까지 빌릴 정도로, 보디가드들까지 충분히 먹을 만한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대가족의 식탁처럼 오늘도 다들 모여 앉았다. 서준의 외할머니가 만든 맛있는 불고기를 먹던 에반 블록이 웃으며 말했다. 리첼 힐도 기대되는 듯 환한 얼굴이었다.

“내일 만나지?”

“내의원팀. 만나보고 싶었는데!”

“다진이 누나도 와요.”

“헌터! 사냥꾼! 그 이후에 출연한 작품들도 봤어.”

리첼 힐이 활짝 웃었다.

“선물도 가져왔지!”

“나도.”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말에 서준은 첫날 리첼 힐이 잔뜩 선물해 준 것들을 떠올렸다.

‘그것도 엄청 많았는데…….’

“더 들고 온 게 있어요?”

“부피가 작아서 캐리어 안에 넣어서 들고 왔어.”

“뭔데요?”

서준의 물음에 리첼 힐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비밀!”

* * *

약속 당일.

숙소 현관에 네 명의 한국인 배우와 두 명의 할리우드 배우가 마주 섰다.

조금 길어지는 대치에 서준은 바닥에 떨어진 포장된 물건들을 바라보다 다시 고개를 들어 네 배우를 바라보았다.

핏기가 하나도 없는 네 배우의 얼굴에 서준이 작게 웃었다. 예상보다 더 놀란 것 같았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뭐부터 말해야 하지? 입만 벙긋거리던 이지석이 겨우 한마디를 뱉어냈다.

“서준아…….”

“네?”

“친구라며……?”

이지석의 물음에 서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친구예요. 엄청 친한.”

“……그렇겠지.”

뭐, 일부러 오해하게 ‘친구’라고 소개했던 마음이 없진 않았다. 아하하하. 다들 놀란 얼굴이 너무 웃겼다.

종호 삼촌은 헛것을 보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고, 도훈이 형은 넋이 나간 것 같았다. 다진이 누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고 지석이 형은 그래도 천천히 상황을 파악하는 표정이었다.

잔뜩 얼어 있는 분위기를 깬 건 항상 밝고 유쾌한 리첼 힐이었다. 서준 이외의 한국인과 대화하게 되어 기쁜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리첼 힐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히익!”

갑작스러운 리첼 힐의 한국어 공격에 희한한 소리가 들렸다.

격하게 요동치던 네 배우의 눈동자가 리첼 힐의 옆에 서 있는 에반 블록에게 향했다가 다시 리첼 힐에게로 향했다.

“부, 분명히 에반 블록이 한국어를 한다고…….”

이다진이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리첼 힐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배웠어요. 저 잘해요?”

“……엄청요! 아, 안녕하세요. 이다진입니다!”

난생처음으로 할리우드 배우를 만나, 기합이 바짝 들어간 이다진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 인사에 눈을 동그랗게 뜬 리첼 힐도 웃으며 꾸벅 허리를 숙였다.

리첼 힐과 이다진이 아주아주 공손히 인사를 나누는 사이 에반 블록이 김종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에반 블록입니다.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김종호입니다.”

‘마이 네임’과 ‘아이 엠’ 사이에서 소개말을 고민하던 김종호가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아직도 정신의 반은 얼떨떨했다. 외국인의 입에서 자연스러운 한국어가 흘러나오는 모습이 꼭 더빙 영화를 보는 것 같아,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반쯤 정신을 차린 네 배우가 에반, 리첼과 인사를 나누었다. 리첼 힐, 에반 블록과 악수를 한 이다진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평생 안 씻을 거야!”

오른손을 왼손으로 받쳐 들고 외쳤다.

네 배우가 조금씩 상황을 인식하고 있을 때, 서준이 바닥에 떨어진 물건들을 하나둘 주워 들었다. 그중 하나는 까만 비닐봉지였는데, 비닐봉지가 작은지, 과자들이 많은지 과자봉지의 끄트머리들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근데 이건 뭐예요?”

“아, 이거 선…….”

서준에게서 저도 모르게 바닥에 떨어뜨린, 예쁘게 포장된 선물을 건네받은 네 배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얗게 변했다.

과자, 필기구, 다이어리, 손목시계.

네 배우가 고개를 들어 반짝반짝 빛나는 할리우드 배우들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갸웃하는 세 할리우드 배우의 모습에 돌아오던 정신이 다시 집을 나가버린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거로 사 왔을 텐데!

“서준아…….”

이지석이 서준을 불렀다. 원망이 잔뜩 섞인 부름이었다.

“네?”

“친구라며…….”

이지석뿐만이 아니라, 김종호도, 박도훈도, 이다진도 원망 서린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응? 뭐지?

다시 처음?

그런 네 배우의 모습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 * *

아하하하.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모인 배우들에게서 웃음소리가 떠나질 않았다. 리첼 힐은 거의 울 듯 웃고 있었고 에반 블록도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서준도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중학생인 줄 알았다고요?”

“서준이가 친구라고 하니, 또래 친구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까지 하면서 찾았는데, 두 분일 줄이야.”

김종호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서준이가 촬영 때, 친구를 데려온 적이 없었거든요. 사인도 받아간 적도 없고. 그래서 이번 기회에 멋진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자고 해서 이렇게 꾸미고 왔는데…….”

이지석의 말에 서준이 웃었다. 어쩐지 네 명 모두 평소와 달리 힘이 들어간 옷차림이었다.

“형. 내 친구들은 배우보다 아이돌한테 관심이 많아요. 아, 물론 우리 학교 애들은 좀 다르겠지만, 보통은 아이돌을 더 좋아해요.”

“아, 예중이지?”

‘예중?’ ‘예술중학교.’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조용히 이야기했다.

“네. 연기과요. 이번에 이스케이프 오디션도 합격했어요.”

오호.

뜻밖의 소식에 서준의 말에 배우들의 시선이 쏠렸다.

냠, 떡갈비를 한입 베어 문 서준이 웃었다. 이스케이프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제 대형 폭탄2를 터뜨릴 차례였다. 서준이 눈빛을 보내니, 에반 블록과 리첼 힐도 입꼬리를 들썩이고 있었다.

서준의 친구들 이야기에 이다진이 물었다.

“잘됐네! 친구들은 무슨 역으로 나와?”

“고주원 친구들인 양궁부원으로도 나오고 환자로도 나와요.”

“그렇구나. 다들 좀비 연기를 하겠네.”

“네.”

고개를 끄덕이던 이다진이 에반 블록과 리첼 힐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다 알지만, 두 분은 아직 모르겠구나!’

그 사실을 깨달은 이다진이 얼른 설명했다.

“이스케이프는 이번에 서준이가 찍는 차기작인데, 좀비 영화예요. 아직 기사는 뜨지 않아서 다들 모르지만요. 아, 이거 기사 뜰 때까지는 비밀이에요. 그게 홍보 계획이라서요.”

에반 블록이 웃으며 말했다.

“저희도 알고 있습니다.”

“아, 서준이가 말해줬겠군요.”

김종호의 말에 아하, 세 배우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세 명의 할리우드 배우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네 배우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리첼 힐이 입을 열었다.

“저희도 출연하거든요. 이스케이프.”

“……네?”

“여러분들과 함께 촬영하게 돼서 정말 기쁩니다.”

에반 블록의 말에, 어리둥절해하던 네 배우가 벼락을 맞은 듯 움직임을 멈추었다. 음식을 집던 젓가락들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로 왁자지껄하던 식당에 경악 섞인 침묵이 흘렀다.

“어, 그러니까…… 출연하신다구요? 이스케이프에? 한국 영환데요?!”

이다진의 말에, 질문한 이다진은 물론이고 세 배우가 입을 쩌억 벌렸다.

다시 한번 크게 요동치는 눈동자가 후후후, 악당 웃음을 짓고 있는 할리우드 배우들에게로 향했다.

에반 블록이 말했다.

“준이 소개해 줬어요. 대본도 좋아서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짧게 나오겠지만, 촬영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네 배우가 좀비가 된 것마냥 고장이 난 머리를 돌려, 이히히히 웃고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경악한 표정의 네 배우와 시선이 마주친 서준이 활짝 웃었다.

“다들 엄청 놀라겠죠?”

장난기 가득한 서준의 얼굴에 네 배우는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냥 놀라는 정도가 아닐 텐데.’

이스케이프 개봉 후, 난리가 날 한국이 저절로 떠오른 네 배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폭풍 같았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은 이지석이 사 온 과자를 먹으며 아기자기한 중학생용 선물을 즐겁게 구경했다.

“이거 귀엽다!”

“필기감은 좋은데?”

하하 호호 웃는 두 배우의 모습을 보며 따라 웃던 서준의 옆구리를 누군가 손가락으로 찔렀다.

“다 서준이 너 때문이야…….”

좋아하는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본의 아니게 중학생에게나 줄 법한 선물을 줘버린 이다진과 박도훈은 아기자기한 선물에 즐거워하는 두 배우를 바라보지도 못했다.

그저, 선물을 받을 사람을 숨긴 서준을 원망하며 서준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찌를 뿐이었다. 김종호와 이지석도 같은 마음으로 두 사람을 응원했다.

음.

아프지는 않지만, 옆구리가 쿡쿡 찔리는 게 꼭 양심이 찔리는 것 같았다. 솔직히 자신의 친구들을 위해 선물까지 사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서준이 항복하듯 두 손을 들었다.

“잘못했어요.”

그 말에 찌르던 손을 멈춘 박도훈이 작게 속닥거렸다.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이 좋아하는 거 알려주면 용서해 줄게.”

“나도!”

이다진도 작게 외쳤고, 이지석과 김종호도 눈을 빛냈다. 그런 네 배우의 모습에 서준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우들에게서 받은 선물을 잘 챙겨둔(네 배우의 눈이 크게 요동쳤지만 두 사람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미국에서 가져온 선물을 네 배우에게 건넸다.

에반 블록의 선물은 고급 만년필이었고, 리첼 힐의 선물은,

“세상에……!”

“스왈린 애넘이요?!”

스왈린 애넘의 사인과 짧은 편지였다. 내의원과 어린이 연극 봄을 잘 봤다는 짧은 편지에 네 배우는 감격한 얼굴로 리첼 힐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말하면 제 선물은 선생님 사인이에요. 편지는 여러분을 만나러 간다니까, 전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에 더욱 감격한 네 배우가 편지지를 만지작거렸다.

‘사인은 있는데, 손편지는 나도 갖고 싶다.’

서준은 아련한 눈으로 네 개의 편지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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