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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90화 (190/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90화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미러에서 질문들이 도착했다. 끊임없이 프린트되는 질문지들에 최대만 감독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걸 다 적어야 한다고요?”

“네. 화면에 잘 보이지 않는 좀비들은 미러팀 재량껏 할 예정이지만 양궁부원이나 의사같이 사람에서 좀비로 변하는 경우는 화면에 꽤 잡히잖아요. 감독님 의도를 모르면 이질감이 생깁니다.”

라고 전해달랍니다.

영어를 잘하는 플러스+ 코리아의 직원이 전화 건너, 제나 트라이드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는 통역 솜씨가 지사장이 추천한 이유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전화기 건너 무어라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들리고 통역하던 직원이 입을 열었다.

“특히, 배경이 병원이고 다친 곳이 있는 환자들이 많은 만큼 더 자세한 설정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머리 수술을 받은 환자 좀비의 상처를 팔에 만들면 이상할 테니까요.”

당연한 이야기에 최대만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에 이미 영화 장면이 모두 구상되어 있는 만큼 어떤 좀비들을 화면 앞에 세울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는 이미 결정해 두었다.

그저 저 많은 질문지를 하나하나 글로 써야 한다는 게 막상 하려니 막막할 뿐이었다.

“다음 주 한국에 갈 때까지 부탁드립니다.”

제나 트라이드의 전화가 끊기고 플러스 코리아의 직원이 말했다.

“감독님. 답변을 번역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바로바로 메일로 보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에 조금 마음을 놓고 있던 최대만 감독이 아차 싶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상함을 제일 먼저 느낀 건 영화 촬영팀이었다. 몇몇 장면에 특수분장이 필요했는데 제작사와 감독은 조금 욕심을 내기로 했다.

“도화원 팀에 연락해 보죠.”

거절의 말이 들려왔다. 먼저 계약한 곳이 있다고 했다.

“그럼 다음은 리오로!”

RIO에서도 거절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제작사 직원과 감독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 그럼 스탐은?!”

탑 쓰리 중 마지막. 스탐도 거절 의사를 밝혔다.

세 번째 거절에 제작사 직원과 감독이 눈만 끔벅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도화원, RIO, 스탐 어디 갔는지 아시는 분?

=거기가 어딘데?

=특수분장팀. 한국 탑 쓰리임. 요새 먼저 계약한 곳이 있다고 들어오는 일 다 거절 중이라고 들음.

-좀비 영화 찍으러 간 것 같은데?

=222 엑스트라도 뽑고 아역 배우 오디션도 하고, 조연 배우도 다 정해진 걸 보니 진짜 찍는가 봄. 기사는 별로 없지만.

=주연 배우는 누구야?

=아직 안 떴음

=???

-탑 쓰리를 모두 고용했다고? 오. 제작비 좀 썼나 본데?

-제작비로 일단 주연 배우를 좀 섭외해라.

-이거 루머긴 한데, 좀비 영화 때문에 제나 트라이드랑 미러가 한국에 왔대.

=걔네가 누군데?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탑임.

=? 할리우드 특수분장팀을 여기다 갖다 붙인다고?

=개네 한국까지 불러오려면 얼마나 써야 함ㅋㅋ

=주연 배우도 아직 없는데 제나 트라이드라닠ㅋㅋㅋㅋ

* * *

제나 트라이드가 준 질문지는 본 브레이킹 댄스팀에게도 전해졌다. 최대만 감독이 좀비의 특징을 세세히 적은 자료를 받아 든 본 브레이킹 댄스팀의 리더가 웃었다.

“하하. 죽겠네.”

오른쪽 다리에 깁스한 좀비는 그에 맞게 움직여야 했다. 좀비가 된다고 부서진 뼈가 멀쩡해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그래도 고통은 느끼지 않을 테니 오른쪽 다리를 아예 못 쓰지 않는다는 추가 설명이 붙어 있었다.

리더가 머리를 벅벅 긁었다.

“로봇을 생각하면 되려나?”

바꿔 낀 다리 부품이 맞지 않아 덜그럭거리는 로봇.

대강 머릿속으로 움직임을 떠올려본 리더가 종이를 넘겼다. 그런 좀비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 설정에 맞추어 좀비의 움직임을 만들어야 했다.

“더 쉽게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것보다 더 쉽게? 그거 완전히 기초 동작 아니야?”

“그 기초부터 해야죠.”

연습실 한쪽에서는 본 브레이킹 팀원들이 좀비로 등장할 단역 배우들에게 알려줄 간단한 좀비의 움직임을 촬영 중이었다. 이미 본 브레이킹 댄스에 익숙한 팀원들은 어디부터가 일반인들도 할 수 있는 ‘기초’인가에 대해 열심히 의논했다.

대충 자료들을 훑어본 리더가 예상되는 일거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어쩐지 돈을 엄청 주더라니…….

“진짜 죽을지도…….”

앞날이 막막한 리더는 머리를 쥐어 싸맸지만, 리더의 속도 모르는 팀원들이 재잘거렸다. 댄스 대회만 나갈 줄 알았는데, 영화 촬영은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 다들 들떠 있었다.

“야. 나 부모님께 자랑해 놨거든? 열심히 하자.”

“나도. 영화 나온다니까, 농담인 줄 알아.”

“저도요! 댄스영화냐고 물으시던데요. 우리 엄마 이런 좀비물 엄청 좋아하는데 내가 좀비로 나오면 엄청 놀랄지도 몰라요.”

시끌벅적한 팀원들을 바라보며 리더는 이 태평한 놈들을 어떻게 하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 * *

플러스+ 코리아 지사장이 들뜬 얼굴로 이한솔에게 물었다.

“얼마나 진행됐습니까?”

“필요한 배역은 전부 뽑았고, 공사 진행도 순조롭습니다.”

그 이외도 프리프로덕션 과정에서 해야 하는 모든 일이 끝났다.

제나 트라이드와 미러 팀은 한국에 도착해서 특수분장팀들과 협력하며 각자 분장할 좀비를 배분했다. 본 브레이킹 댄스팀은 일반인도 따라 할 수 있는 좀비의 기초적인 움직임을 영상으로 찍어 단역 배우들에게 전달했다.

소품도 촬영장소도 계획대로 만들어졌다.

이한솔에게서 하나하나 설명을 듣던 지사장이 만족한 듯 웃었다.

“이제 일주일 후부터 촬영을 시작할 겁니다.”

“그럼 오겠군요?”

기대감 가득한 지사장의 표정에, 이한솔도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내일 온답니다.”

“……내일요?”

다음 날 저녁, 미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한국에 도착했다.

* * *

시끌벅적한 인천국제공항.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 중 일부가 외국인들이라, 방금 도착한 한 무리의 외국인들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국도 1년 만이네!”

“그러게.”

평상복을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리첼 힐, 에반 블록. 그리고 두 사람의 매니저들과 경호원들이었다. 바짝 긴장한 일행들과는 달리,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은 태평했다.

그때, 누군가 손을 흔들었다. 두 남자가 서 있었는데, 그중 한 남자는 아는 얼굴이었다.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의 얼굴이 밝아졌다. 준의 매니저, 안다호였다.

“어서 오십시오. 힐. 블록.”

“오랜만이에요. 다호.”

“한국에서 또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미국에서 볼 줄 알았는데 말이죠.”

안다호의 말에 리첼 힐도 에반 블록도 작게 웃었다. 두 사람도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럴 줄 알았다.

“일단, 숙소를 정해놨습니다. 촬영 동안 거기서 지내시면 됩니다.”

“호텔입니까?”

에반 블록의 물음에 안다호가 고개를 저었다.

“일반 가정집을 잠시 빌렸습니다. 주택이라 주민들과 마주치지도 않을 겁니다. 호텔은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서 들킬 염려가 있거든요. 두 배우는 우리의 비밀병기니까요.”

“이쪽은?”

“아, 서준이 경호팀장님이십니다.”

“반갑습니다.”

경호팀이라는 말에 매니저들의 뒤에 서 있던 보디가드들의 시선이 경호팀장에게로 향했다. 앞으로 한국에 있을 동안은 협력해야 할 사이였다. 경호원들이 고갯짓으로 인사를 나누는 사이, 안다호가 일행을 차로 안내했다.

“보디가드분들은 경호팀장님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타실 차량도 준비해뒀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다호가 운전석에 앉고 에반 블록과 리첼 힐, 매니저 두 사람이 차에 올랐다.

자리에 앉은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차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 생활감이 묻어나는 차였다. 반듯하게 개어진 담요도 있었고, 작고 귀여운 인형들과 무시무시하게 생긴 인형들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 이외에도 차 주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차 안에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누가 봐도 준의 차였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리첼 힐이 말했다.

“대본을 쌓아놓을 줄 알았는데 없네요.”

“있었습니다. 지금은 잠시 치워뒀지만요.”

안다호의 말에 두 배우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이라면 그럴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서준의 차와 세 대의 경호 차량은 두 할리우드 배우가 묵을 숙소에 도착했다.

“여깁니다. 이 집과 바로 옆집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방도 여러 개 있어서 보디가드분들이 쓰셔도 되고요.”

“좋네요.”

작지만 정원도 있는 주택이라 답답하지는 않을 것 같아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반색했다. 서로 어느 집을 숙소로 쓸 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두 사람의 앞에 누군가 나타났다.

“어서 와요! 에반, 리첼!”

“준!”

서준의 등장에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활짝 웃었다. 서준뿐만이 아니라 서은혜와 이민준, 그리고 서은찬도 있었다.

“모두 오랜만입니다.”

“민준. 은혜! 두 사람도 있었네요! 은찬도 반가워요!”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부부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한국 활동을 케어할 코코아엔터 사장과 두 배우의 매니저들도 인사를 나누었다.

한껏 들뜬 서준이 말했다.

“환영 파티를 하려고 했는데 시차 적응을 해야 하잖아요. 오늘 간단하게 저녁 식사만 하려고요. 괜찮죠?”

“아까까진 피곤했는데, 지금 막 멀쩡해졌어. 파티해도 될 것 같아!”

리첼 힐의 밝은 목소리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첫날부터 무리하면 앞으로 촬영 힘드니까 얼른 먹고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그건 그래요. 파티는 다음에 하면 되니까요.”

에반 블록과 서준의 말에 리첼 힐이 아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저녁부터 먹어요.”

서준이 앞장섰다. 서준을 따라 도착한 식탁의 풍경에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첼 힐과 에반 블록이 좋아하는 음식들과 한국에서 잘 먹었던 한식들이 적당히 섞여 식탁 위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뜻밖의 진수성찬에 모두 놀라고 있는데, 에반 블록이 의아한 듯 물었다.

“간단하게 먹자면서?”

“한국식 ‘간단하게’에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서준의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 * *

며칠 전.

이스케이프 촬영 전에 이다진도 소개할 겸, 네 배우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서준이 말했다.

“제 친구들이 형들이랑 삼촌 만나고 싶대요. 누나도요.”

이지석과 김종호는 올 것이 왔다 싶었다. 그동안 용케도 지인들의 사인도 요구하지 않았고, 촬영장에 친구도 부르지 않았던 서준이었다. 한 번쯤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을 텐데 말이다.

네 배우의 눈이 순식간에 모였다 흩어졌다. 서준이가 제 나이답게 친구들에게 자랑할 모양이니, 어느 때보다 멋진, 연예인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할 말을 마친 서준이 맛나게 소갈비를 먹고 있는 사이, 네 배우는 무언의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약속이 잡힌 오늘.

이지석의 차를 타고 온 네 배우가 차에서 내렸다. 평소보다도 힘을 주고 메이크업을 하고 차려입은 네 배우는 모두 손에 무언가를 하나둘 들고 있었다. 서준의 친구에게 줄 선물이었다.

“선물 사 오긴 했는데, 요새 중학생은 뭘 좋아할지 모르겠네.”

“뭐 사 왔는데요?”

박도훈의 물음에 이지석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난 과자. 애들한텐 역시 과자지.”

“전 무난하게 필기구요.”

“어, 저도 다이어리…….”

이다진과 박도훈이 서로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이지석과 김종호가 묘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어디서 핑크빛이 떠다니는 것 같은데…….

“난 손목시계. 줄도 여러가지로 사 왔어.”

김종호의 말에 다들 감탄했다.

“손목시계라. 다들 좋아할 것 같아요.”

“줄도 다양해서 취향에 맞게 바꿀 수 있겠어요.”

박도훈과 이다진의 칭찬에 김종호는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했다. 그런 김종호의 모습에 비쭉 웃은 이지석이 뭐라고 말하려던 찰나, 이다진의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서준 : 누나, 어디에요?

<도착했어. 문 앞이야.

>서준 : 지금 나갈게요!

“서준이 나온대요.”

“그래?”

이지석이 아쉬운 얼굴로 되물었다.

곧 대문 너머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듯한 발소리가 들리고 덜컹하고 대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서준이 활짝 웃으며 이지석 일행을 반겼다.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작지만 잘 꾸며진 정원이 있었다.

“집 좋네. 정원도 있고.”

“그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정원 있는 집은 처음이거든요.”

“전에 아파트에 산다고 하지 않았어? 여기로 이사 온 거야?”

이지석의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뇨. 여긴 친구 숙소예요.”

“……숙소?”

서준이 친구가…… 아이돌인가?

뜻밖의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며 서준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간 네 배우는 현관 앞에서 자신들을 반기는 서준의 친구들의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선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서준아. 친구라며?’

과자를 좋아하는 중학생들이 아니라, 선물로 뭘 사줘야 할지 짐작도 안 되는 할리우드 스타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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