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188화 (18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88화

‘이스케이프’ 아역 배우 오디션 대기실.

김주경, 양주희, 강재한이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 중 몇몇도 학원에서 촬영한 자신의 연기를 보며 다시 한번 점검하거나, 밖으로 나가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을 풀고 있었다.

오디션장 안쪽에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소리는 들리는데 확실히 들리지는 않았다. 3명의 지원자가 들어가 지정 대사를 받고 10분 동안 암기한 후, 랜덤으로 순서를 정해 연기를 보는 오디션이었다.

“지정 대사 어려울까?”

주경의 말에 주희가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가 아는 것 중에 나오지 않을까? 아역 배우니까 그렇게 특이한 건 안 시킬 것 같아. 좀비 역할은 연습이 좀 필요할 것 같지만 말이야. 그건 합격하고 가르쳐 주겠지.”

주희의 말에 주경과 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2반 애들도 왔네.”

아는 얼굴을 발견한 아이들이 손을 흔들자, 방금 들어온 아이들도 인사했다.

“1반 애들도 왔네.”

“쟤들 이서준이랑 다니는 애들 맞지?”

자리에 앉은 2반 아이들이 속닥거렸다. 이서준과 제일 붙어 다니는 세 사람은 여울 예중에서도 꽤 유명했다. 김주경은 ‘한 걸음’ 덕분에, 양주희는 1반 반장으로 발이 넓었고, 강재한은 동생 같다는 아이들이 많았다.

“이서준은 이번에 신청 안 했나 봐.”

“하긴 역 촬영 끝난 지도 얼마 안 됐잖아.”

배역 중 하나가 채워지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2반 아이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았던, 김주경과 양주희가 조용히 강재한의 양옆으로 자리를 옮겨 강재한의 등을 찰싹찰싹 때렸기 때문이었다.

등이 따가운 듯 강재한은 몸을 비틀며, SOS 신호라도 보내는 양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두드렸다. SOS 신호가 제대로 통했는지 김주경과 김주희가 산뜻한 얼굴로 다시 원래의 자리로 이동했다.

한 편의 콩트 같은 상황에 대기실에 있던 아이들이 작게 웃었다.

긴장감이 풀린 듯, 대기실에 부드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그것도 곧 바뀌었다. 오디션장 문이 열리고 직원과 함께 지원자 세 사람이 나온 것이었다. 직원의 등장에 다음 차례로 번호를 불릴 지원자 세 명이 굳은 표정으로 기다렸다.

종이를 살핀 직원이 다음 번호를 불렀다.

“재한아. 우리 먼저 갈게.”

“화이팅!”

김주경과 양주희의 번호였다.

세 명 모두 나란히 번호를 배정받았지만, 오디션까지 함께 볼 수는 없었다. 주경과 주희는 앞 순서였고, 강재한은 홀로 뒷순서였다.

그래서 함께 오디션을 보는 두 사람보다도 홀로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강재한이 더 긴장하고 있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기운 나게 한 대 더?”

쫙 손바닥을 펴는 주경의 모습에 강재한이 얼른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재한의 모습에 작게 웃은 주경과 주희가 오디션장으로 향하고, 강재한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주희랑 주경이 들어갔어.

>서준 : 그래? 나도 지금 집에 가는 중.

<금방 끝났네?

>서준 : 오늘 약속이 있거든.

>서준 : 등은 괜찮아?

<ㅠ 둘 다 손이 너무 매워ㅠㅠ

서준의 물음에 강재한이 울상을 지었다. 따가운 건 사라졌는데 아직도 등에 찰싹찰싹하던 손바닥의 느낌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서준 : ㅋㅋ오디션 힘내.

<응!

강재한이 후우 숨을 내쉬며 순서를 기다렸다.

* * *

“오늘 오디션 날이야?”

안다호의 물음에 조수석에 타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우리 학교 애들도 있대요.”

“합격했으면 좋겠네.”

“근데 인원이 정해져 있어서…….”

“양궁부원이 5명이던가?”

“네.”

“다섯 명만 합격이라. 치열하겠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들이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 짧게 기도한 서준이 안다호에게 물었다.

“다호 형. 주연 배우는 정해졌어요?”

“그래. 서준이도 아는 배우야.”

서준은 안다호의 말에 생각에 잠겼다.

배우라면 대부분 알고 있었다. 조주연 배우들은 물론이고, 인상 깊은 역이었거나 연기를 잘했다면 엑스트라로 나왔던 배우들의 이름도 알고 있을 정도니까.

‘이름만 아는 배우들이 아니라면, 나랑 친한 배우들일 텐데 누구지?’

서준이 생각에 빠지자, 안다호가 웃으며 말했다.

“이다진 배우랑 김종호 배우야.”

안다호의 말에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다진이 누나랑 종호 삼촌이요?!”

진짜 생각도 못 했다.

서준의 놀란 목소리에 안다호가 작게 웃었다.

“그래. 나도 깜짝 놀랐어. 둘 다 서준이가 이스케이프에 출연하는 건 몰랐다던데, 용케 같은 작품에서 연기하게 됐네.”

“진짜요?”

믿기지 않았다.

종호 삼촌이랑 다진이 누나라니.

“그렇다니까. 이다진 배우 쪽 말로는 이다진 배우가 어린이 연극 봄 이후에, 이런 ‘판타지’ 같은 작품을 해보고 싶었대. 근데 판타지가 섞인 작품은 별로 없잖아. 그래서 계속 다른 작품을 했는데, 이번에 이스케이프가 나와서 단번에 승낙했대.”

“와!”

서준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다진.

어린이 연극 봄에서 주인공 역을 맡았던 최소영의 친구이자, 사냥꾼 역을 맡았고 팬 미팅에서 MC를 맡았던 유쾌한 누나였다.

‘연기도 잘하고.’

서준이 활짝 웃었다.

“종호 삼촌은요?”

“김종호 배우는 현대물도 해봤으니, 판타지가 하고 싶으셨대. 그러던 차에 이스케이프 대본이 들어와서 승낙한 거고.”

내의원에서 성녕대군의 아버지였던, 태종 역을 맡았던 김종호. 이지석과 투닥투닥하던 모습이 떠올라 서준은 웃음이 나왔다.

……아하!

실실 웃던 서준이 뭔가를 떠올렸다.

“그래서 오늘 종호 삼촌이 불렀구나!”

결국 서준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 *

눈꽃 같은 마블링이 박힌 소고기가 불판 위에 올라갔다. 치지직, 소고기가 익는 소리와 함께 김종호가 실실 웃었다.

반대편에 앉아 있던 이지석과 박도훈이 미묘한 눈빛으로 김종호를 바라보았다. 김종호가 아까부터 계속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삼촌. 무슨 좋은 일 있어요?”

“그러게. 형이 소고기를 다 산다고 하고.”

“잠만 기다려 봐. 서준이 오면 이야기해 줄게.”

‘이상하단 말이지.’

실실 웃으며, 간간이 보란 듯한 눈빛을 보내는 김종호. 그 수상한 모습에 이지석의 눈이 가늘어졌다.

“안녕하세요! 종호 삼촌, 지석이 형. 도훈이 형. 저 왔어요!”

“서준아, 어서 와!”

“잘 지냈어?”

“다호 씨도 오랜만입니다.”

“네. 잘 지내셨습니까.”

그때 개인실의 문이 열리고 서준과 안다호가 들어왔다. 서준과 안다호는 세 배우와 인사를 나눈 후,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세 배우는 매니저와 함께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짧게 근황을 이야기하던 중 김종호가 우쭐거리며 입을 열었다.

“크흠. 너희. 내가 누구랑 촬영하는 줄 알아?”

금세 익은 소고기를 입에 집어넣던 이지석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걸 내가 왜 알아야 해?”

“차기작 찍으세요, 삼촌?”

삐딱한 이지석과는 달리, 박도훈은 웃으며 물었다.

‘저 삐딱한 놈. 도훈이 반만 닮아봐라.’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김종호가 다시 실실 웃으며 말했다.

“나 서준이랑 촬영한다!”

그 말에 이지석과 박도훈이 깜짝 놀라 서준과 김종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서준아, 차기작 해?”

“벌써? 역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좋은 작품이 있어서요. 하고 싶어서 하기로 했어요.”

서준이 대답하고, 김종호가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가 딱 하고 싶었던 걸 서준이도 골랐다는 거 아니냐!”

우쭐대는 김종호를 뒤로하고, 이지석과 박도훈이 기억을 더듬었다.

“뭔데? 영화? 드라마? 요즘 들어온 시나리오가 뭐더라?”

“그러게요. 뭐가 있죠? 아역 배우가 나왔던 건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서준의 마음에 들 만한 건 떠오르지 않았다.

“좀비 영화요. 제목은 이스케이프에요.”

서준의 말에 떠돌던 소문을 떠올린 이지석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좀비 영화라면, 그 주연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던 그거? 그걸 찍는다고?”

“그거 망한다, 망한다 하더니…… 망할 수가 없는 거였네요.”

박도훈도 깜짝 놀랐다.

서준과 김종호의 출연이라니, 망하라고 제사를 지내도 망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근데 왜 홍보를 안 해?”

이지석의 물음에 김종호가 웃으며 뻐기듯 말했다.

“그게 홍보 계획이지. 노이즈마케팅처럼 부정적인 반응으로 시끄럽게 하다가 서준이가 촬영한다는 소문을 조금씩 풀 거라더라.”

김종호의 말에 서준과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저기 시끄러워야 노이즈마케팅이든 뭐든 하죠. 종호 삼촌. 이건 거의 묻혔어요.”

박도훈의 말이 맞았다.

좀비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관심도 없었다. 보통의 영화라면 그 상태 그대로 망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박도훈도 바로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왜 걱정이 안 되죠?”

“걱정할 필요가 뭐 있어. 제대로 된 홍보는 촬영 끝나고부터 해도 충분해. 서준이가 나오면 아주 깊이 파묻혀도 금방 되살아날 테니까.”

자랑하는 듯 신이 난 김종호의 말에 이지석이 불만스러운 듯 말했다.

“근데 왜 나한텐 시나리오가 안 온 거야?”

“지석이 형은 역에 나와서…… 다른 조합이 보고 싶었대요. 감독님이.”

“감독님이 누군데?”

“최대만 감독님요.”

“…….”

순간 이지석은 일말의 배신감을 느꼈다. 첫 작품의 인연으로 제법 소식을 주고받던 사이가 아니었나. 이지석은 휴대폰을 꺼내 열심히 두드렸다. 아마 수신자는 최대만 감독일 터였다.

그 모습에 다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저한테는 왜 안 보내신 거래요?”

“도훈이 넌 어려 보여서 배역이랑 이미지가 안 맞는다더라.”

“아, 아쉽다. 서준이랑 촬영할 수 있었는데. 형도 삼촌도 서준이랑 촬영하는데 나만 못했네. 다음엔 나랑 하자 서준아.”

“네!”

아쉬움 가득한 박도훈의 얼굴에 서준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방이 도통 전화를 받지 않는지, 이지석이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서준아. 최대만 감독님 어디 계시는지 알아? 통화가 안 되네. 또 촬영장소 찾으러 다니셔?”

악령 때를 떠올린 이지석이 서준에게 물었다. 서준이 오디션장에 있을 친구들을 떠올리며 웃었다.

“지금 아역 배우 오디션 중이거든요. 거기 계셔서 전화 못 받으실 거예요.”

최대만 감독에게 전화를 포기한 이지석은 실실 웃는 김종호를 바라보았다. 배우라서 그런지 얼굴에 뻔히 드러나 있는, 놀리는 듯한 표정에 이지석의 표정이 나빠졌다.

‘어쩐지, 이 형이 소고기를 사준다고 했어.’

“이래서 오늘 불렀구나.”

“그래. 서준이랑 촬영한다고 네놈이 얼마나 자랑을 했냐.”

촬영하는 동안에도, 개봉한 후에도 아주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다.

“나도 좀 하자. 자랑! 부럽지? 엄청 부럽지?”

약 올리는 김종호와 분한 표정의 이지석을 보며 박도훈과 서준, 안다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다호 형에게서 종호 삼촌의 출연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왠지 이렇게 될 것 같았다.

“서준아. 촬영 준비는 잘 돼?”

“네. 제가 맡은 역이 양궁 선수라서 양궁 배우고 있어요.”

“그것도 잘하지?”

“히히. 네. 선생님이 저 잘한대요. 도훈이 형은 차기작 정해졌어요?”

“아직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어서 뭐할지 고민 중이야.”

이지석과 김종호가 평소처럼 투닥거리고, 서준과 안다호, 박도훈이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도훈아!”

이지석이 박도훈을 불렀다. 서준과 두 사람의 고개가 이지석에게로 향했다. 이지석을 약 올리고 있던 김종호도 갑작스러운 이지석의 부름에 눈만 끔벅이고 있었다.

분해서 이를 갈고 있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이지석이 킬킬 악당 웃음을 지었다.

“우리도 저기에 출연하자.”

“……네?”

“카메오로!”

“……네에?!”

이지석의 말에 세 사람은 물론, 놀리던 김종호마저 킬킬 웃고 있는 이지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찾았다!”

“내가 또 최 감독님이랑 같이 일하면 사람이 아니에요.”

“으하하하.”

로케이션 매니저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지, 최대만 감독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겉모습은 마음에 쏙 들었지만, 안쪽은 다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쪽은 고치면 되겠지.’

헉헉 숨을 내쉬던 로케이션 매니저가 휴대폰을 들었다. 이미 자신의 세상에 푹 빠진 최대만 감독은 제작사에 연락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힘들게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며 숨을 고른 로케이션 매니저가 입을 열었다.

“네. 대표님. 찾았습니다.”

-빨리 찾았네요.

“조건에 맞는 건물이 별로 없으니까요. 후보지를 둘러보는 정도죠. 크기가 좀 작긴 하지만 이리저리 바꿔서 촬영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 후보지를 찾는 게 힘들긴 했지만…….’

전국 시골을 떠돌아다녀야 했던 악령보다야 나았다.

-장소는 어딥니까?

로케이션 매니저가 위치를 설명했다. 서울에서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아주 먼 곳은 아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펜션이 있어서 숙식하기에도 좋았다.

-좋네요. 차량 진입은요? 주차장은 있습니까?

“길이 있긴 한데, 보수해야 할 것 같습니다. 주차장도 여름에 태풍이 온 이후로 안 치운 모양인지 쓰레기로 엉망입니다.”

-네. 보수하죠. 아주 튼튼하게 새길도 만들고, 주차장도 만들면 좋겠네요.

휴대폰을 귀에 댄 로케이션 매니저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차장이었던 장소와 아스팔트가 갈라진 도로가 보였다. 보수하면 멀쩡한 상태가 될 터였다. 보수한 걸 원상복구 시키려고 엉망으로 만들지는 않을 테니,

‘건물주만 노났군.’

그때, 휴대폰 건너에서 이한솔 대표가 말했다.

-그럼 건물 주인에게 연락해 주세요.

“예. 임대하면 되죠? 이거 배경 다 만들고 원상복구 시키려면 힘들겠네요.”

-아뇨.

이한솔 대표가 작게 웃었다.

-사죠. 건물.

“……네?”

-소방청이 일을 잘하더라고요.

이제는 거의 꼭 들러야 하는 관광코스가 되어버린 ‘한 걸음’ 투어를 떠올린 이한솔 대표의 눈이 반짝였다.

-우리도 그거 한번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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