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87화
얼마 후, ‘한국형 좀비 영화’가 나올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최대만 감독이 주연 배우 후보로 뽑아, ‘이스케이프’의 시나리오를 받은 배우들과 그 소속사들이었다.
주연 배우 후보, 1순위에 오른 김태인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대본을 내려다보았다. 연기력으로 따지자면 이지석보다는 못하다는 평이 있긴 했지만, 괜찮은 연기력을 가지고 있긴 했다.
‘성격이 개떡 같아서 그렇지.’
김태인의 성격을 알고 있는 매니저가 안절부절못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지석 배우는 그렇게 성격이 좋다고 하던데…….
“좀비 영화라고?”
“네. 이번에 영화드림에서 제작한다고 하더라고요.”
“이딴 걸 나보고 하라고? 너 지금까지 한국에서 좀비 영화 성공하는 거 봤어?”
매니저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미국도 아니고 좀비 영화라니. 게다가 감독이 최대만? 처음 듣는데?”
“그 옛날에 이서준이 나왔던 영화 악령 감독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소속사에서 거르지 않고 김태인에게까지 올라온 것이었다. 하지만 김태인의 소속사도 크게 기대하지는 않고 있었다. 그저 ‘이서준’과 연관된 기사를 만들어 화제나 한번 되어볼까 했다.
“이서준?”
그 이름에는 천하의 김태인이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니저와 김태인 두 사람만 있는 장소였지만 김태인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서준이 나온대?”
“……아뇨.”
김태인이 욕설을 뱉어내며 대본을 바닥으로 던졌다.
“그럼 이서준도 안 나오는 영화를 나가라고?”
“그, 그럼 안 하신다고 이야기할까요?”
“당연한 소리하지 말고! 최민성 피디님 차기작이나 알아와! ‘비밀’도 끝났는데, 곧 차기작 준비할 거 아니야!”
드라마 ‘비밀’은 내의원이 끝나고 최민성 피디와 소은진 작가가 제작한 차기작이었다. 내의원만큼의 화제성이나 시청률 독점까지는 아니었지만 동시간 대 시청률 1위를 달성했다. 재수사, 내의원, 비밀로 이어지는 대박 행진에 슬슬 스타 피디와 스타 작가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넵!”
얼른 대답한 매니저가 속으로 구시렁구시렁 대며 자리를 떴다.
좀비 영화라는 사실은 꽤 벽이 높았다. 김태인 배우가 거절하고 다른 배우들도 하나둘 출연을 거절했다. 그런 배우들과 관계된 사람들과 소속사가 많았다. 새어 나가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 이후, 주인을 찾아 떠도는 시나리오와 엑스트라 모집, 아역 배우 오디션 공고에 영화계와 연예계가 떠들썩해졌다. 좀비 영화라는 색다른 주제에 감탄하는 배우들도 있었지만, 고개를 젓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영화드림이 제대로 사고를 치는구나.”
“사장이 튀었다더니, 망하려고 작정을 했네.”
“아직 정해진 주연 배우도 없다는데, 오디션을 보네.”
“투자자는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리고 그 소문이 일반인들에게까지 알음알음 알려지기 시작했고, 작은 기사도 뜨기 시작했다.
[한국형 좀비 영화가 나온다!]
-오! 한국형 좀비? 망했네.
-?한국에서요? 좀비요?
-근데 기사가 이것뿐인 것 같은데? 출연하는 배우들도 안 떴음.
-그냥 던져본 거 아닌가? 좀비 영화 만들어 볼까? > 네티즌 반응: 망했다. > 아이고, 만들면 안 되겠구나!
=222 이건 듯. 간만 보고 사라질 듯ㅎ
한국형 좀비 영화.
그 누구도 성공해 보지 못한 장르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다. 그저 ‘한국형 좀비 영화’라는 사실이 신기해서 재미 삼아 떠드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좀비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좀 더 자세히 파고들었다.
-제작사가 어디임?
=영화드림.
=오. 거기 아는데. 비주류 장르 영화 만드는 곳. 거기 영화 괜찮음.
=그것도 옛말이지. 거기 영화 판권 다 팜. 이서준이 나온 악령도 팔았음.
=악령을 팔았다고? 헐? 진짜 황금 거위 배 가르는 곳이 요기 있네?
-감독은 누구야? 시나리오 작가는? 주연 배우는?
=아직 풀린 게 없음. 오디션 본다는 것만 나오고 있어서.
-나 같으면 좀비 영화라고 엄청 홍보하겠다. 망할 것 같긴 하지만…… 이 정도 기사에 댓글이면 다른 사람들은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모를 것 같은데?
=222 이런 영화가 있는지도 몰라서 망할 듯.
=그러게. 지금부터 홍보해도 알려질까 말깐데…… 왜 이렇게 잠잠하지?
-제작비는 얼마야? 100억? 150? 설마…… 100억도 안되는 건 아니겠지?
=할리우드 좀비 영화까지는 아니더라도 돈 좀 썼으면…….
-이 영화 투자자는 뭐 하길래, 홍보가 이런 식인데 별말이 없냐?
=ㅋㅋ영화 처음 투자해 보는 듯ㅎ
=222 그러니 좀비 영화에 투자하지ㅎㅎ
=……마이너 장르 팬이라 슬프네.
=……222ㅜ
=죄송함다.
좀비 영화로 인터넷이 아주아주 조금 시끌벅적할 때, 영화드림 제작사에 희소식이 도착했다. 이한솔 대표와 직원들의 눈이 빛났다.
“나이대를 넓혔더니…… 이런 대어가 걸릴 줄이야.”
“김태인 배우가 거절해 준 게 정말 고마운 일이었네요.”
“자기 복을 발로 찼죠, 뭐.”
처음으로 출연을 승낙한 배우가 나타난 것이었다. 게다가 출연을 승낙한 배우가 어마어마했다. 휴대폰으로 소식을 들은 최대만 감독도 배우의 이름을 듣고 기뻐했다. 계약서를 챙긴 이한솔 대표가 회사를 나가고 직원들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공서연 배우는 아쉽겠네요.”
“그쪽은 예전에 찍었던 비주류 장르 영화가 너무 망해서 겁나긴 할 거예요.”
그다음으로 출연했던 작품이 흥행했지만, 그게 주류 영화였다는 점이 공서연 배우가 이번 좀비 영화를 꺼리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했다.
비주류 영화는 망했고, 주류 영화는 흥행.
그렇다면 당연히 비주류 영화인, 이번 좀비 영화도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공서연 배우를 좋아하는 직원이 아쉬움 가득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영화를 보고 최대만 감독님이 선택하셨다던데…… 진짜 아쉽게 됐어요.”
“그러게요. 이서준 배우랑 같이 촬영하는데…….”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죠.”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서연 이후로 3명의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다. 하지만 모두 거절. 다음으로 나이대를 넓혀 5명의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냈다. 벌써 3번째 거절 연락이 도착했다.
“이번에도 안 되면 어쩌죠?”
“뭐, 대표님이랑 감독님이 알아서 하시겠죠.”
그때,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직원이 네, 네. 대답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천히 환한 웃음을 지었다.
그 반응에 직원들이 숨을 죽였다.
“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기고 직원이 활짝 웃으며 크게 외쳤다.
“출연한답니다!”
“누군데요?”
“이다진 배우요!”
배우의 이름에 직원들이 입을 틀어막았다.
이다진의 출연 소식은 바로 이한솔에게로 전해졌다. 전화를 끊고 다시 회의실로 향하는 이한솔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실례했습니다.”
자리에 앉은 이한솔의 앞에는 이번에 임장우라는 배역으로 출연하게 될 배우가 앉아 있었다. 남자가 사인한 계약서를 챙겨 든 이한솔이 남자가 묻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
“다른 주연 배우가 승낙했다는 연락이었습니다.”
고주원 역이 이서준이라는 사실은 방금 들었다. 상상도 못 한 소식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남자가 물었다.
“연재희 역, 말입니까?”
이한솔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다진 배우 쪽에서 출연하겠다고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남자의 눈이 커졌다.
허, 작은 웃음소리로 시작한 웃음소리가 곧 커다랗게 회의실 안을 울렸다. 이한솔도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서준, 이다진에 자신까지.
“이건 또 인연이네요.”
남자, 김종호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 * *
영화 ‘이스케이프’의 아역 배우 오디션이 열리는 날.
영화드림 제작사에서는 서준에게 오디션 심사에 참여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지만, 서준은 고개를 저었다.
왜냐하면,
>주경 : 긴장된다!!
>주희 : 나도!!
>재한 : 어째서 바로 앞뒤 순서인 거야?
<ㅋㅋ신청서 내는 시간이 비슷했나 보다.
친구들이 오디션에 참가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정하게 심사할 거지만…….’
사람들 시선이라는 게 그렇다.
서준이 심사에 참여해서 친구들이 합격한다면 안 좋은 소리를 들을 게 분명했다.
‘그게 나보다는 애들이 들을 확률이 높지.’
연기력을 ‘세계’에 인정받은 서준보다는, 아직 배우는 중이라 연기력이 부족한 친구들이 욕을 들을 확률이 높았다.
‘애초에 싹도 피우지 않는 편이 좋아.’
그래서 오디션 심사위원 자리를 거절했다.
>주경 : 내가 제일 앞이야!
>주희 : 우리 반 애들도 몇 명 있네. 2반 애들도 있어.
긴장한 아이들에게서 메시지가 쏟아졌다. 세 사람 말고도 1반 아이들과 2반 아이 중에서도 합격한 아이들이 있나 보다.
>재한 : ㅠ 2반 애들 잘하던데.
>주경 : 나는? 나는 못 해?
>주희 : 그러게! 1반 무시함?
>재한 : 아니ㅣㅣㅣㅣ
>재한 : 서주나ㅠ주겨ㅇ이ㄹ랑 주히가 ㄸㅐ려ㅠㅠㅠㅠ
<마음 넓은 두 사람이 이해해 주자ㅎ
>주경 : 그랭.
>주희 : 알았어.
친구들의 메시지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아. 쉬는 시간 끝났어.”
“네.”
의자에 앉아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던 서준이 주영훈의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양궁을 연습하는 날.
화살통에서 능숙하게 화살 하나를 꺼낸 서준이 활을 들어 올렸다.
‘연습이라기보다 거의 취미생활 같지만 말이야.’
이제는 익숙해진 서준이 숨을 가볍게 들이마시고 손가락을 놓았다.
퉁!
“텐!”
이런 인재에게 양궁을 시킬 수가 없다니, 안타까움 반.
근데 오늘도 진짜 잘하네, 감탄 반.
복잡한 심경이 담긴 주영훈의 목소리가 양궁장을 울렸다.
* * *
“사장님.”
“……예.”
“아무래도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케어를 우리 회사에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다호의 말에 서은찬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호가 두 배우의 출연 사실을 알렸던 그 날부터 어쩌면…… 하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에이전시에서 킹즈 에이전시를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아무래도 친분도 있고, 할리우드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서준의 소속사인 만큼 잘 케어해 줄 거라고 생각하더군요.”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서은찬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무려 할리우드 스타 2명이, 그것도 내년의 어마어마한 대작을 촬영을 앞둔 두 스타였다. 옛날에도 대단한 인기였지만, 어셈블2의 홍보를 위해 열렸던 이벤트에서 에반 블록이 한국어를 하는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 더욱 인기가 많아졌다.
작게는 촬영 동안의 의식주 해결부터 크게는 여론 관리까지.
자주 활동하는 미국에서도 믿고 맡길 만한 곳을 찾기 어려운데, 두 스타가 촬영하러 갈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지도 못했던 외국이었다.
아예 낯선 나라라, 유능한 직원들을 보내도 제대로 케어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렇다고 단 한 번이 될지도 모르는 영화 촬영을 위해 지사를 만들 수도 없고.
코코아엔터가 서준의 할리우드 활동을 맡을 때와 비슷한 일아 벌어진 것이었다.
그때, 나라 킴이 만들고 관리하는 킹즈 에이전시라는 해답이 나온 것처럼, 이번에도 아주 적당하고 확실한 해답이 있었다.
소속사 배우를 알고 있어서 꽤 믿을 만하고, 할리우드 배우를 케어해 본 적이 있는 경험도 있는 데다가 한국에서도 일반인이 알 정도로 유명하고 힘 있는 소속사가 있었다.
“그게 우리 회사지.”
서은찬은 마른세수를 했다. 안다호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계약 후에는 킹즈 에이전시를 거치지 않고 두 에이전시에서 바로 자료가 넘어올 예정입니다. 두 배우의 일정부터 식성, 취향, 그 이외에 케어할 부분까지요.”
다시 한번 어마무시한 사고를 친 할리우드 스타, 조카를 원망한 서은찬이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이미 닥친 일, 완벽하게 해내서 코코아엔터의 이름값이나 높여보자.
이서준과 브라운블랙, 화이트, 레드크라운 덕분에 더 올라갈 곳도 없지만 말이다.
사장, 서은찬이 입을 열었다.
“일단, 2팀에 인원이 부족하겠네요. 휴식기인 브라운블랙 팀에서 몇 명 차출하고 개별 활동 중인 화이트에서도 데려가세요.”
활동 중인 레드크라운은 바쁠 테니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 직원들에게는 서준이 모니터링만 맡기고, 서준이 작품 분류는 일단 미뤄둡시다. 어차피 촬영 때문에 보지도 못할 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들어오는 대본은 회의실에 모아 두겠습니다.”
코코아엔터 소속사에서 가장 입이 무거운 팀을 말한다면 바로 이서준 배우 전담팀인 2팀. 코코아엔터에서 오래 일한, 믿을 만한 직원을 배치해 두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 번 사람을 새로 뽑을 때도 아주 신중하게 뽑았다.
“2팀 팀원들은 이제부터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케어를 맡습니다.”
2팀에 청천벽력같은 지시가 내려졌다.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을 맡았던 경험이 여기서 쓰일 터였다.
팀장 안다호에게서 사장의 지시를 들은 2팀 직원들이 멍한 표정으로 안다호만 바라보았다.
“아, 아니…… 서준이랑 그 두 배우랑은 다르죠.”
“맞습니다. 서준이는 꼬꼬마 때부터 봐서 편한 데다가 할리우드 배우라고 해도 따로 케어할 필요 없었고. 기껏 해봐야 모니터링에 대본 점수 매기는 게 다인데…….”
게다가 아직 어려서 루머가 나올 건더기도 없었다.
걱정이 가득한 2팀 직원들의 표정에 안다호는 미국에서 만났던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을 떠올려보았다.
두 배우의 에이전시에서 자세한 정보가 와야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겠지만, 서준과 잘 지내던 모습을 보면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팀장님. 저…… 영어 못해요.”
“저도…… 시험용 영어라…… 실전은…….”
“에반 블록 배우가 한국어를 잘합니다.”
알고 있었다. 서준을 케어하면 모를 수가 없는 사실이었다.
“외국인 울렁증이…….”
“저도 외국인을 만나면 안 되는 병이…….”
안 될 걸 알면서도 이렇게 현실 도피를 할 수밖에 없는 2팀 직원들에게 안다호가 한마디 했다.
“사장님이 보너스 주신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기합이 바짝 들어간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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