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185화 (18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85화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 이한솔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한국 내 외국인 배우들을 떠올리고 있었던 세 사람에게는 진짜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이었다.

“저번에 한국에 왔을 때, 두 사람 다 한국 작품에도 나오고 싶다고 했거든요.”

숨도 못 쉬고 있는 세 어른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신이 난 서준이 열심히 두 할리우드 배우를 어필했다. 안다호는 이미 에반 블록의 이름이 나왔을 때부터 해탈한 표정이었다.

‘할리우드 배우들이 내 영화에 출연한다고? 이렇게 갑자기?’

바로 30분 전까지만 해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대본을 쥐고 있는 최대만 감독의 손이 눈에 띌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지. 무려 할리우드 배우인걸. 엄청 바쁘지 않을까?’

서준이야 학교도 다녀야 하니 스케줄이 널널했지만, 두 배우는 다를 수도 있었다. 최대한 현실적으로 생각한 최대만 감독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에반 블록도 리첼 힐도 바쁘지 않을까?”

“어제 메시지 보냈는데 지금 휴가래요. 내년에 쉐도우맨3를 찍을 예정이라서 올해는 이제 촬영 일정은 없대요. 자잘한 일은 있지만요.”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완벽하게 대답했다.

‘감독님이 벗어날 구멍은 없어요’라는 듯한 서준의 미소에 최대만 감독이 침을 꼴깍 삼켰다. 아니, 진짜로? 일이 이렇게 된다고?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는 최대만 감독과는 달리, 정신을 차린 박재민 조감독은 태평했다.

아니,

‘대만이 형 따라다니길 잘했다!’

내적 댄스를 추고 있었다. 세상에. 할리우드 배우 3명이 나오는 한국 영화라니, 조감독으로 참여해도 이름값이 어마어마하게 높아질 게 분명했다.

영화드림 제작사 대표인 이한솔도 천천히 생각을 이어나갔다.

‘서준이만으로도 대박 날 예정이긴 하지만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출연이라니…… 이번 영화 미친 거 아니야?’

이한솔 대표가 입을 틀어막았다. 가볍게 떠올려봐도 어마어마할 수익에 비명이 나올 것 같았다. 이 소식을 알려주면 플러스+코리아의 지사장도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지를 터였다.

흐흐흐. 항상 지사장의 스케일에 놀라기만 했는데, 이렇게 되갚아 주게 되다니…… 속이 시원해졌다.

표정 관리에 실패한 세 사람의 얼굴을 보며 서준은 대충 그들의 생각을 짐작했다. 안다호야, 언제나 서준이 좋을 대로 하라는 상태였다.

헤헤 웃은 서준이 말을 이었다.

“감독님, 어때요? 감독님이 괜찮다고 하시면, 에반이랑 리첼한테 얼른 대본 보낼게요. 아, 물론 에반이랑 리첼이 거절할 수도 있어요.”

“!”

서준의 마지막 말에 떨리던 최대만 감독의 손이 멈추었다. 앞으로 펼쳐질 꽃길에 내적 댄스를 추고 있던 박재민 조감독도, 수많은 수익과 화들짝 놀랄 지사장의 얼굴을 떠올리던 이한솔 대표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네?’

왜 저쪽에서 거절할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했을까!

박재민 조감독과 이한솔 대표의 얼굴에는 엄청난 실망감이 떠올랐다.

최대만 감독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안도감과 실망감이 섞인 한숨이었다.

‘조금 전까지 그렇게 떨어놓고는…… 왜 이렇게 아쉽지.’

할리우드 배우의 출연이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도 모르게 기대한 모양이었다.

최대만 감독은 손에 쥐고 있던 대본을 내려다보았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의 등장에, 너무 놀라서 꽉 쥐는 바람에 대본은 많이 구겨진 상태였다.

[이스케이프]

열심히 궁리하고 열심히 쓴 대본이었다. 최대만 감독은 잠시 자신의 작품에 의문이 들었다.

‘이게 할리우드 배우의 마음에 들까?’

시험대에 선 기분이었다. 서준에게 대본을 보여줄 때처럼, 손에 땀이 나는 것 같았다. 고민에 잠긴 최대만 감독의 모습에, 서준은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서준은 ‘이스케이프’가 마음에 들었다. 에반과 리첼에게 추천해 주고 싶을 정도로.

좋은 작품이었다. 좋은 배우가 참여한다면 좋은 영화가 될 터였다.

구깃구깃 구겨진 대본을 조심스럽게 펴던 최대만 감독이 서준을 바라보았다. 계속 최대만 감독을 보고 있었는지, 서준과 눈이 마주쳤다.

‘아.’

최대만 감독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배우가 누구인지 새삼 깨달았다.

이미 자신의 작품을 선택한 할리우드 배우가 있었다. 자신의 작품은 그렇게 못나지 않았다. 그 생각에 최대만 감독의 마음이 편해졌다.

“그럼 한번 연락해 줄래?”

최대만 감독의 대답에 서준이 활짝 웃었다.

“네.”

이제 확률은 반반. 부디, 좋은 답이 전해지길 기도하며 이한솔이 말했다.

“대본을 영어로 번역해야 할 텐데…….”

“제가 할게요. 저 영어 잘해요.”

서준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에반 블록과 리첼 힐이라는 폭풍이 지나가고, 잠시 후 저녁 식사로 주문한 요리들이 도착했다.

저녁 식사 준비를 끝내고, 자리를 잡은 어른들이 지친 얼굴로 맛있는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딱히 뭘 한 것 같진 않은데 엄청 피곤하네요.”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 것 같습니다.”

안다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몸도 마음도 지쳐 버린 어른들과는 달리, 서준은 완성된 대본을 받고, 어쩌면 에반 블록, 리첼 힐과 연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즐거운 상태였다.

‘여기 샐러드 맛있네!’

아삭아삭.

평소라면 스테이크나 고기류의 요리를 먹었겠지만…… 요즘은 묘하게 채소가 끌렸다.

‘엘프화가 묘하게 된 것 같지?’

엘프들의 귀처럼 귀가 길게 변하지도 않았고, 몸이 변하는 느낌이 없었는데, 몸속이 변한 모양이었다.

고기를 먹는 엘프도 있었지만, [(선)엘프 궁수의 궁술]에서의 엘프는 채식만 했다.

‘그렇다고 고기를 완전히 안 먹게 된 건 아니고.’

치킨 샐러드의 치킨은 역시 맛있다. 바삭바삭한 튀김에 새콤달콤한 드레싱까지. 서준은 행복한 얼굴로 치킨 샐러드를 흡입했다.

서준이 맛있게 먹는 모습이 어른들의 눈에 들어왔다. 다들 저도 모르게 치킨 샐러드로 손을 뻗었다. 한 입 베어 문 이한솔 대표가 감탄했다.

“이거 맛있네요.”

“그러게요. 어제도 먹었는데, 왜 이렇게 맛있지?”

호텔에서 내내 지내면서 온갖 호텔 요리를 먹어온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이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어른들의 손에 치킨 샐러드가 자꾸만 줄어들었다.

‘음. 다른 거 먹지, 뭐.’

바닥을 보이는 치킨 샐러드에 서준은 눈을 돌려 연어 샐러드로 손을 뻗었다.

요즘 서준이 채소를 잘 먹는다, 자주 찾는다는 서은혜의 말에, 안다호가 저녁을 주문하면서 여러 가지 채소 요리를 주문한 상태였다.

부드러운 연어와 드레싱, 아삭한 양상추와 채소에 서준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치킨 샐러드 접시를 깨끗하게 비운 어른들이 다음 타깃으로 연어 샐러드를 노렸다.

그러기를 여러 번.

넉넉하게 주문한 요리를 전부 해치운 서준과 어른들이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 호텔 요리. 원래 이렇게 맛있습니까? 포장도 되면 포장하고 싶은데…….”

“오늘따라 더 맛있었던 것 같아요. 어제까지만 해도 조금 물렸거든요. 그래서 컵라면 사 먹기도 했습니다.”

이한솔의 말에 박재민이 거실 한구석을 가리켰다. 온갖 종류의 컵라면들이 거기에 쌓여 있었다.

“미리 연락하면 포장도 될 겁니다.”

“그럼 하나 주문해야겠네요.”

“저도요. 엄마 아빠 갖다 드릴래요.”

서준의 말에 어른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잠시, 이런저런 소소한 이야기로(에반 블록과 리첼 힐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소화 겸 휴식 시간을 보내고, 이한솔이 입을 열었다.

“국내 특수분장팀을 찾아봤습니다.”

다른 건 다 수정할 수 있어도 ‘좀비’라는 소재만큼은 바뀌지 않을 테니, 대본이 완성되기 전에도 찾아볼 수 있었다.

“국내 특수분장팀을 찾아봤는데, 아무래도 좀비도 많고 분장 시간도 오래 걸려서 많이 고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 특수분장팀들을 총괄할 특수분장팀도 있어야 할 것 같고요.”

각자 취향에 맞는 차를 마시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렌지 주스를 고른 서준도 동의했다.

이한솔은 미리 준비해 온 목록을 나눠주었다.

특수분장팀의 인원부터 그동안 맡았던 드라마, 영화 등의 작품까지. 특수분장팀의 실력을 잘 볼 수 있도록 분장한 사진도 나와 있었다.

“최 감독님. 어떤 팀이 가장 마음에 드세요? 그쪽 팀을 총괄팀으로 선택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한솔의 물음에 사진들을 훑어본 최대만 감독이 볼을 긁적였다. 이것도 저것도 다 멋있고 잘하긴 했다.

“음. 제가 생각한 건 데스월 같은 느낌이라…….”

데스월.

그 말에 서준과 세 사람이 고개를 들어 최대만 감독을 바라보았다. 이제야 최대만 감독이 바라는 ‘좀비’의 형태를 깨달은 박재민은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끼며 말했다.

“할리우드 배우는 무서운데, 할리우드 분장팀은 괜찮아?”

“아니. 처음에는 아니었는데, 플러스 지사장님이 도와주신다니까…….”

최대만 감독이 박재민의 시선을 피했다.

시놉시스를 쓸 때까지만 해도 국내 분장팀의 실력으로도 충분했지만, 대본 작업을 하면서 조금조금 욕심이 생겼다.

“데스월…… 데스월이라…….”

안다호와 서준은 동시에 데스월의 좀비를 떠올렸다.

데스월.

할리우드의 좀비 영화로 아슬아슬하게 청소년 관람 불가 판정을 빗겨나간 영화였다. 여기저기 썩고 배 속에서 뭐가 튀어나오고…….

무덤 속에서 섞어가다가, 흑마법사의 마법에 의해 최하급 언데드로 몇 번 태어난 적이 있는 전생 좀비, 서준이야 아무리 징그러운 좀비라도 별생각 안 들었지만 말이다.

툭 빠진 눈알도 다시 끼워본 적이 있고, 배가 찢어지면 손수 한 땀 한 땀 꿰맨 적도 있었다. 주위에 있던 게 다 비슷비슷한 좀비들이라 딱히 징그럽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데스월 정도면 양호하지, 뭐.’

더 심한 애들도 있었으니까. 악의 도서관에서 읽었던, 자신의 머리로 공놀이하던 좀비 친구들을 떠올린 서준이 아련하게 웃었다.

태평한 서준과 달리, 당시 인터넷은 떠들썩했다. 데스월은 천천히 사람에서 좀비로 변해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마치 ‘좀비’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였다.

그런 데스월의 좀비를 떠올린 이한솔 대표가 기겁하며 말했다.

“청불은 안 됩니다. 감독님!”

“아뇨. 느낌만요. 느낌만 비슷하게요. 배경도 병원인데 너무 가벼운 분장이면 좀비 영화라는 느낌이 안 드니까요. 적당히 무겁게.”

최대만 감독의 말에 이한솔이 안정을 찾았다. 하지만 다시 한번 읊조리는 것은 잊지 않았다.

“청불은 안 됩니다. 감독님.”

다른 건 괜찮아도 관람객 수를 확 줄여 버리는 청소년 관람 불가는 절대 안 된다.

“알고 있습니다.”

최대만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한솔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사진을 살펴보던 박재민이 말했다.

“그러니까 여기엔 형 마음에 드는 팀은 없다는 거지?”

“좀비 분장 사진이 아니라서 비교하긴 어렵지만…… 좀 아쉽긴 하지.”

세 사람이 고민에 빠졌다.

그때, 서준이 입을 열었다. 아주 편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총괄팀으로 할리우드 특수분장팀을 섭외하는 건 어때요?”

“……할리우드?”

여기서 할리우드?

플러스+코리아의 지사장이 그런 말을 꺼낸 적이 있지만,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이한솔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다리고 있던 말을 들은 최대만 감독은 반색했다. 박재민이 그런 최대만 감독을 차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할리우드 배우는 무섭고, 할리우드 특수분장팀은 된다니…… 참 이상한 형이야.

“플러스에서도 도와준다고 했잖아요. 도움받아서 더 멋진 영화를 만들면 되니까요.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괜찮지 않아요?”

서준은 환하게 웃으며, 1차 ‘할리우드 배우 폭풍’에 이어 2차 ‘할리우드 특수분장팀 폭풍’을 만들어냈다.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