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84화
[(선)엘프궁수의 중급 궁술-중하급]
엘프 궁수의 중급 궁술입니다.
활과 화살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확도, 안정감, 집중력, 체력, 시력이 상승합니다.
신체의 일부분이 엘프화됩니다.
활을 잡은 서준의 왼손 손등에 새겨진 활의 문양이 반짝였다.
하나가 아니었다. 총 3개의 문양.
차례로 엘프 궁수의 기초 궁술(최하급), 엘프 궁수의 하급 궁술(하급), 중급 궁술의 능력의 문양이었다.
평소와는 달리 많아진 선택지에, 서준은 능력을 번갈아 가며 사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많은데, 하나만 쓰긴 아깝지!’
조영훈이 처음 가르쳐 줄 때는 기초 궁술의 능력을 사용했고, 30m까지는 하급 궁술의 능력을 사용했다. 50m부터는 하급 궁술로는 조금 벅찰 것 같아서 중급 능력까지 꺼내게 되었다.
‘궁술이랑 기초호흡이 케미가 좋아.’
[엘프의 궁술]은 [엘프의 기초호흡]하고 궁합이 좋았다.
다른 선의 능력도 [엘프의 기초호흡]과 함께 사용하면 기존 능력보다 좋은 효과를 보여주고는 했다.
하지만 같은 엘프 종족의 능력이라서 그런지, 약간 향상한 다른 능력과는 달리 한 등급은 오른 듯한 느낌이었다.
멀리 떨어진 과녁의 정중앙에 박힌 화살을 보며 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안다호는 카메라로 서준을 찍었고, 조영훈은 흥분해서 외쳤다.
“텐! 70m 텐이라니! 이번 것도 분명 엑스텐이야! 서준아, 우리 올림픽 나가자! 너라면 무조건 금메달이야!”
아차.
너무 신이 나서 조절하는 것도 깜빡했다.
왜 이제까지 활을 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과녁에 화살이 박힐 때마다 마음이 짜릿짜릿해서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게 손맛인가. 사냥하는 느낌도 좀 나고.’
날카로운 화살이 과녁에 콱! 박히는 느낌이 좋았다. 화살을 잡고 있던 오른손을 몇 번 꼼지락거린 서준이 웃었다.
“아하하하. 전 연기가 더 좋아요.”
저도 모르게 말을 꺼내본 조영훈도 서준이 양궁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다면 열심히 도울 마음은 있지만…….’
과녁에 꽂힌 화살을 회수하러 갔던 조영훈이 안타까운 탄성을 내뱉었다.
이렇게 정확하고 아름다운 엑스텐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정중앙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서준이 겨누었던 모든 과녁이 그랬다.
서준을 가르쳤던 모든 선생님이 그러했듯이, 조영훈도 미련 섞인 눈빛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진짜 아쉽네…….”
활을 쏘고, 화살을 회수하기를 여러 번.
서준은 능력 없이 활을 쏴보기도 했고, 중급 궁술로 엑스텐을 맞혔던 50m 과녁에 하급 궁술을 사용해 보기도 했다.
그렇게 실외양궁장을 대여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선생님! 안녕히 가세요!”
“그래. 그럼 다음 연습 날 보자.”
“네!”
양궁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서준에게 안다호가 종이뭉치를 건넸다. 어제까지 최대만 감독이 작업한 대본이었다.
“어때? 괜찮아?”
대본을 읽는 서준에게 안다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다호가 먼저 읽어본 바로는, 시놉시스에 적혀 있던 내용과 달리, 장면의 순서가 바뀌었다. 인물들의 흐름도 조금의 변화가 있었다.
서준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큰 틀이 바뀐 건 아니니까 괜찮아요. 더 좋은 장면이 있으면 그걸 쓰는 게 더 좋죠.”
“감독님이 들으시면 좋아하시겠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웃었다. 최대만 감독은 마치 숙제를 검사하는 것처럼, 조금씩 대본이 바뀔 때마다 알려주고는 했다.
“편하게, 마음껏 쓰셔도 괜찮다고 전해주세요.”
이미 좀비 영화라는 것에 마음이 빼앗긴 서준은 관대했다. 진짜 엉망진창인 대본이 아닌 이상 별말 없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감독님이 그렇게 엉망으로 대본을 쓸 것 같지도 않을 것 같고.’
무려 5전 6기의 감독님이 아닌가. 최대만 감독님이 그렇게 힘들게 얻어낸 기회를 엉망으로 낭비할 것 같지는 않았다.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웃었다.
“알았어. 최 감독님께 그렇게 전해드릴게.”
안다호를 통해 서준의 생각이 최대만 감독에게 전해졌다. 노트북 앞에 팔짱을 끼고 있던 최대만 감독은 좀 더 스케일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 * *
서준의 여름방학이 끝나가던 8월 중순.
최대만 감독에게서 대본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대본 완성 기념으로 감독님과 저녁을 함께 먹기로 약속을 했다.
“짧게 회의도 할 겸 이한솔 대표님도 오실 거야. 서준이도 의견 있으면 말하고.”
“네.”
안다호의 말에 조수석에 앉은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목이 쏠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회사 차를 빌렸다. 매번 타고 다니던 차가 아니라서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금세 익숙해진 서준은 편하게 지나가는 풍경을 구경했다.
얼마 안 가 차가 멈추었다. 서준이 도착한 목적지에 고개를 갸웃했다.
“다호 형. 여기 호텔 아니에요?”
“그래.”
그것도 5성급 호텔. 최대만 감독님의 집이나, 영화드림 제작사로 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반짝반짝한 외관에 서준이 눈을 깜박였다.
안다호가 주차하러 간 사이, 모자를 꾸욱 눌러쓴 서준은 평범한 청소년1의 모습으로 호텔을 구경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사람들. 설마 여기에 배우 이서준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잠시 후, 안다호가 돌아왔다. 두 사람은 호텔 안으로 들어가 곧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서준이 물었다.
“감독님 여기 계세요?”
“그래. 통조림 중이셨거든.”
안다호가 실실 웃었다.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통조림요?”
“한 장소에 가둬두고 계속 글만 쓰게 하는 거야. 밥 먹고 글 쓰고, 밥 먹고 글 쓰고, 자고 일어나서 또 글 쓰고.”
“……하루 종일 글만 써요?”
서준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최대만 감독님이 그렇게 해달라고 하셨대. 서준이 영상 보고 영감을 얻었는데, 도저히 머릿속에서 튀어나오지 않는다고.”
“아하.”
진짜 양궁 선수 같다던, 최대만 감독이 보냈던 답장을 떠올린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는 대사가 안 나오니, 처음에는 영화드림 회사 사무실 하나를 빌릴 생각이었는데, 거기도 영화 제작 때문에 시끄러워서 그만두셨대.”
게다가, 영화드림 제작사가 새로 빌린 사무실은 좁았다. 최대만 감독이 쓸 작업실을 따로 만들어줄 여유 공간이 없었다.
“코코아엔터는요? 남는 회의실도 있고, 방음도 잘 되어 있잖아요.”
감독님이 글쓰기에 괜찮지 않았을까? 서준의 물음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여쭈어봤는데, 다들 신경 쓸 거라면서 거절하시더라고.”
“그렇구나. 그래서 호텔에서 쓰시는 거예요?”
“작업실을 찾는다는 이야기가 플러스 지사장님에게 들어간 모양이야. 대본 작업도 영화에 아주 중요한 작업이니까, 좋은 곳에서 써야 한다고 호텔을 추천해 주셨대.”
‘추천이랄까…….’
플러스+코리아의 지사장이 미리 결제를 해두고 제안했다고 했다. ‘역시 미국인……’ 하며 감탄하던 이한솔 대표를 떠올린 안다호가 피식피식 웃었다.
“작업실이 호텔 스위트룸이라는 말을 듣고, 최 감독님은 차라리 코코아엔터에 가겠다고 했는데, 조감독님이 설득하셨대.”
이한솔이야 대환영.
부담감에 안색이 새하얗게 변한 최대만 감독은 코코아엔터 회의실을 빌리려고 했다. 하지만 말하는 것 하나는 자신 있는 박재민이 ‘이런 때 아니면 언제 호텔에 가 보겠냐’, ‘이것도 잘하면 영화에 쓸 수 있다’ 등, 이런저런 이야기로 꼬셨다.
결국, 최대만 감독의 작업실은 호텔이 되었다.
그 이야기에 서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그때부터 계속 호텔에서 작업 중이셨대.”
띵동-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미리 도착해 있던 이한솔이 두 사람을 반겼다.
“어서 오세요. 이서준 배우. 매니저님.”
“안녕하세요. 대표님!”
이한솔을 따라 향한 거실에는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 조감독이 있었다. 뭘 그리 잘 먹고 잘 잤는지 얼굴이 반질반질한 박재민과는 달리, 최대만 감독은 새하얗게 불타버린 듯 초췌한 모습이었다.
“안녕. 서준아!”
“안녕하세요. 조감독님!”
“서준이…… 왔어?”
“감독님. 괜찮으세요?”
서준의 걱정에 최대만 감독이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난 괜찮아. 일단 대본부터 볼래?”
“네!”
대본이라는 이야기에 신이 난 서준이 소파에 앉았다. 최대만 감독은 눈을 반짝이고 기다리고 있는 서준에게 미리 프린트한 대본을 건네주었다.
서준은 잔뜩 기대된다는 얼굴로 대본의 첫 장을 펼쳤다. 서준이 대본에 집중하는 사이, 짧게 대화를 나눈 안다호와 이한솔도 박재민에게서 대본을 받았다.
대본을 읽은 세 사람을 모습을 최대만 감독은 초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눈빛만은 반짝이고 있었다.
‘여기 올 때까지는 못 적을 것 같았는데…….’
처음에는 번쩍이고 깔끔한 호텔 방이 부담스러웠다. 한 줄도 못 쓸 것 같았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최대만 감독은 걱정했던 것보다 빨리 호텔에 익숙해졌고, 박재민의 도움으로 먹고 자고 것 이외에는 온전히 대본 작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쯤 되자 여기가 어딘지는 더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집과는 다른 환경이 머릿속에 박혀 있던 장면을 술술 글로 꺼낼 수 있게 해주었다. 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확 트인 풍경과 불빛으로 반짝이는 야경이 최대만 감독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물해 주었다.
그렇게 이스케이프의 대본이 완성되었다.
최대만 감독이 긴장한 눈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대본은 자신 있었다. 서준의 마음에도 들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서준의 눈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글을 따라 내려갔다가, 종이를 넘기고 다시 아래로 향했다. 얼마 안 가 끊임없이 넘어가던 종이들이 멈추었다. 서준의 손이 멈추자 사람들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최대만 감독이 침을 꼴깍 삼키고 물었다.
“어때?”
서준이 활짝 웃었다.
“좋아요! 엄청 재미있어요!”
큰 틀은 바뀌지 않았고 스케일은 커졌지만, 시놉시스와 달리 분명히 바뀐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바뀐 대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촬영하고 싶다.’
바로 촬영을 시작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반짝이는 서준의 표정에 어른들은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준의 반응에 최대만 감독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재민이 웃으며 차가운 물을 최대만 감독에게 건네주었다.
최대만 감독이 냉수를 마시며 한숨을 돌리는 사이, 서준은 다시 대본의 제일 앞장을 펼쳐, 천천히 대본을 읽어갔다. 자신이 맡을 역인 고주원의 대사와 행동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해해 나갔다.
대본을 확인하며 배역들과 장소에 대해 고민하던 이한솔이 입을 열었다.
“외국인 배역도 있던데 에이전시에 문의해 볼까요?”
마음이 편안해지자, 제법 안색이 돌아온 최대만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한국어가 되는 배우가 좋겠죠?”
“그러면 이야기하기 편해서 좋긴 합니다.”
외국인 배우를 구한다는 말에 대본을 읽고 있던 서준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감독님.”
“응?”
“그 배역 괜찮으면 추천해도 돼요?”
이한솔과 최대만 감독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저녁으로 먹을 음식을 호텔 레스토랑에서 주문하고 있던 안다호와 박재민의 시선도 서준에게로 향했다.
“추천? 누구? 나도 아는 배우야?”
다른 촬영을 하면서 알게 된 좋은 외국인 배우가 있나 싶어,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 이한솔은 귀를 쫑긋 세웠다.
‘서준이의 추천이라면 괜찮겠지?’
누구일까, 알고 있는 외국인 배우들의 얼굴들을 떠올리며 세 사람은 편안한 마음으로 서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 세 사람과 달리, 서준의 행동반경을 잘 알고 있고 서준이 아는 사람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안다호는 무언가 직감했다. 제법 슈퍼스타의 매니저라는 타이틀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던 안다호의 손이 떨렸다.
그런 매니저의 동요도 모른 채, 서준은 밝게 대답했다.
“에반이랑 리첼이요.”
“…….”
역시!
안다호는 헛숨을 들이켰고, 세 사람은 아직 서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한 얼굴이었다. 1%, 2%, 10% 아주 천천히 서준의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천천히, 세 사람의 눈과 입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니, 누구?
생각지도 못한 인물들의 등장에 세 사람에게서 소리 없는 경악이 흘러나왔다.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서준은 애매한 어른들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감독님?”
서준의 부름에, 최대만 감독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서, 서준아…… 누구?”
“에반 블록이랑 리첼 힐이요!”
서준의 맑고 순수한 대답에, 네 사람의 정신이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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