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81화
코코아엔터 3층 회의실.
안다호가 웃으며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 조감독을 반겼다.
“반갑습니다. 이서준 배우 매니저, 안다호라고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감독 최대만입니다.”
“조감독인 박재민입니다.”
인사를 나눈 세 사람이 자리에 앉았다. 서준은 안 오나, 살펴보는 기색에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오늘 방학식 하는 날이라서, 이서준 배우는 학교에 갔습니다.”
아쉬움이 가득했던 서준의 메시지가 떠오른 안다호가 미소를 지었다.
“아,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최대만 감독이 주섬주섬 가방에서 종이뭉치를 꺼냈다.
코코아엔터에서 연락이 온 게 일주일 전. 그동안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 조감독은 트리트먼트와 대본 일부분을 준비하느라 고생했다.
“이건 이번 영화의 트린트먼트고, 이건 조금이지만 대본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서너 장의 시놉시스보다는 긴, 영화의 전체적인 장면들은 크게 나눈, 10장 정도 되는 트린트먼트와 조금 두꺼운 대본에 안다호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시놉시스는 너무 짧은 느낌이라 걱정했는데, 감사합니다.”
“수정할지도 모릅니다만, 일단은 트린트먼트에 적힌 대로 촬영할 예정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방학식을 끝내고 회사로 올 서준에게 보여주기 위해, 트린트먼트와 대본을 챙긴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그럼 제작사를 구해야 하는데…… 생각해 두신 곳 있으십니까?”
안다호의 말에 최대만 감독이 움찔, 몸을 떨었다. 최대만 감독의 눈동자가 데굴 옆으로 굴러갔다. 안다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감독님?”
“그…….”
최대만 감독이 뒷목을 매만졌다.
3번째 도전까지는 제작사와 배급사는 물론이고 다른 배역들도 생각해 두었다. 꿈처럼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제작사, 배급사, 배우들을 떠올리며 신나게 시놉시스를 적어 나갔던 것이 세 번.
그 세 번이 모두 실패하자, 최대만 감독은 ‘일단 서준의 출연부터 확답을 받자!’고 생각해서 따로 생각해 둔 곳이 없었다.
“저희는 서준이, 아니, 이서준 배우가 편한 곳으로 해도 괜찮습니다.”
최대만 감독의 말에 안다호가 턱을 매만졌다.
서준이 한국에서 만난 제작사는, 악령의 제작사, 영화드림. 내의원의 제작사, 파도. 광고 제작사, 구름. 역의 제작사, 단홍.
광고 제작사인 구름과 드라마 제작사인 파도를 빼면 영화드림과 단홍이 남았다. 단홍은 역 때문에 올 한해 바쁠 테니, 남아 있는 건 영화드림뿐.
“영화드림 제작사는 어떤가요?”
어떠냐고 말하면…….
최대만 감독이 악령 때, 함께 일했던 영화드림 제작사를 떠올렸다.
한국에서는 드문 퇴마물을 제작하게 해준 제작사였다. 좋은 장소를 찾기 위해 한 달 반을 돌아다녔던, 마지막까지 제 고집을 들어준 좋은 곳이기도 했다. 차기작도 영화드림과 했다.
최대만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된다며 최대만 감독에게 끌려온 박재민 조감독도 동의하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죠. 거기도.”
“그럼 거기로 할까요?”
영화 제작사를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이것저것 따져보기에는, 일단 한국 제작사 중 좀비 영화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제작사는 거의 없었다. 다 비슷비슷하니, 그저 감독이 편하게 일했던 곳과 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게다가 제작비만 있으면 작은 제작사라도 못할 게 없고.’
투자금은 걱정하지 않는 안다호와 최대만 감독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제가 연락해 보겠습니다.”
최대만 감독의 말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회의를 끝내고 코코아엔터를 나온 최대만 감독이 휴대폰에서 영화드림 기획팀장, 이한솔의 연락처를 찾았다. 박재민이 운전대를 잡았다.
“형. 어디로 가?”
“음. 영화드림 제작사로 가자.”
“오케이.”
차가 출발하는 진동과 함께, 최대만 감독은 이한솔 팀장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 팀장님. 오랜만입니다.
>아니, 최 감독님! 차기작 찍으시려고요?
하루종일 휴대폰만 보고 있나, 싶을 정도로 금세 답장이 도착했다.
“아…….”
이한솔 팀장의 메시지에 최대만 감독이 뒷목을 매만졌다.
<어떻게 아셨어요?
>최 감독님은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하지 않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차기작 찍으실 예정입니까?
<네. 이번에도 영화드림과 함께 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 아직 모르시는구나.
“음?”
메시지를 보내던 최대만 감독의 손가락이 멈추자, 박재민이 물었다.
“왜 그래요?”
“아니, 이 팀장님 반응이 이상해서.”
마침 차가 신호에 걸렸다. 박재민이 고개를 쭉 빼고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 팀장에게서 메시지가 보였다.
>ㅎㅎㅎ저희 망했어요.
“……!?”
* * *
시끄러운 고깃집.
전직 이한솔 팀장, 현직 백수 이한솔이 허허로이 웃으며 고깃집 직원을 따라 개인실로 향했다.
“이 팀장님!”
“최 감독님! 오랜만입니다.”
“아하하하. 너무 오랜만이라고 강조하진 말아 주세요.”
“4년 만에 만나는 건데 오랜만이죠.”
최대만 감독과 이한솔이 자리에 앉았다. 박재민과도 인사를 나눈 후, 이한솔이 소주를 들이마셨다. 어, 어.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이 얼떨떨한 얼굴로 진짜 말 그대로 소주를 들이붓고 있는 이한솔을 바라보았다.
“그…… 이 팀장님…… 영화드림이 망했다고요?”
“박 대표 그 새…… 놈이 도박한다고 회사 싹 털어서 도망갔습니다.”
“싹 털어요?”
“네. 회사가 가지고 있던 영화 판권도 다 팔아먹고 튀었어요. 영화를 만들 수도 없고, 돈 나올 데도 없으니 월급도 못 줘서 직원도 전부 나갔고요.”
이한솔이 이를 갈며 말했다.
“이서준이 나온, 악령의 판권까지 팔아먹었다고요!”
“……그걸!”
지금도 방송으로 나와, 돈이 되는 그걸?!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이 경악했다.
“어, 어디로요?”
“……플러스요.”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소주잔을 든 이한솔이 말했다.
“그래서 영화 제작은 다른 곳을 알아보셔야 할 것 같아요.”
“다른 직원분들은……?”
“저처럼 아직 일 못 구한 직원도 있고, 이직한 직원도 있죠.”
하루종일 휴대폰만 보나 싶었는데, 백수라서 진짜 하루종일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안쓰러운 마음에 최대만 감독은 미리 시켜 구워놓았던 고기를 이한솔 앞에 놓아주었다.
“다시 시작할 수는 없습니까?”
“……아직 회사 이름은 남아 있긴 합니다. 인수할 사람이 있으면 되죠. 뭐, 남아 있는 게 없어서 인수 비용도 거의 공짜이긴 한데, 인수해도 일거리가 문제죠. 누가 사장이 도망간 제작사에 영화 제작을 맡기겠어요.”
“이 팀장이라면 믿을 만하죠.”
최대만 감독이 그렇게 오래 장소를 찾아다닐 수 있었던 것도 이한솔 팀장의 힘이었다. 최대만 감독의 칭찬에 이한솔은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흐. 감사합니다.”
“이 팀장님이 인수하는 건 어떻습니까?”
“뭐…… 할 수야 있지만……”
“저도 투자할게요.”
최대만 감독의 말에 이한솔의 눈이 반짝였다.
충무로에도 감독이 제작사를 차리는 경우가 꽤 있었다. 아무래도 감독으로서 버는 돈보다 제작사가 버는 돈이 더 많았으니까.
“그러셔도 돼요? 망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영화가 있습니다. 큰돈을 벌 수 있는. 그 이후는, 그때 생각해 보죠.”
“좋은 영화요?”
이한솔을 바라보는 최대만 감독과 박재민 조감독의 얼굴이 빛에 반짝 반짝거렸다. 이한솔이 눈을 깜박였다.
‘이건, 이 얼굴 어디서 봤는데?’
이한솔이 기억을 더듬었다. 희미하게 기억이 날 듯 말 듯한 느낌.
아주 옛날, 누군가를 섭외했다며 환호성을 지르던 최대만 감독의 얼굴이 문뜩 떠올랐다. 이한솔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어?”
“영화를 하나 준비 중입니다. 주연 배우 한 명도 정해졌고요.”
“……어?”
“이 팀장님도 본 적 있으실 겁니다.”
“……엑?”
기어코, 최대만 감독의 입에서 튀어나온 배우의 이름에 이한솔은 비명과도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영화드림 제작사의 인수를 결정하고, 떠난 직원들에게 연락을 돌린 이한솔 팀장이 이번에는 기쁜 마음으로 소주를 들이마셨다.
“여전히 말술이시네요. 이 팀장님은. 아니, 이 대표님인가!”
“조감독님도 많이 드세요! 제가 사겠습니다!”
“돈 있으세요?”
“……적금 깰 겁니다!”
화기애애한 세 사람의 대화로 개인실이 시끌벅적해졌다.
최대만 감독이 입을 열었다.
“투자사는 코코아엔터에서 추천해 주었습니다. 투자금은 가장 많았는데, 간섭이 없어서 좋았다고 하더라구요.”
“코코아엔터의 추천이라!”
코코아엔터. 이서준과 함께 작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 중에 이서준의 소속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거의 이서준 배우가 추천해 준 것과 마찬가지라, 이한솔이 눈을 반짝이며 최대만 감독에게 물었다.
“거기가 어디죠?”
* * *
플러스+ 코리아 지사.
회의실 중 한 곳에서 영화제작사, 영화드림의 대표, 이한솔이 긴장한 듯 굳은 얼굴로 투자 담당자를 기다렸다. 거절당할까 봐 굳은 것은 아니었다. 여기가 아니라도 투자받을 곳은 많았다.
그저, 가방 속에 있는 어마어마한 것이 도통 믿기지 않아서였다. 여기에 있는 그 누구도, 이 가방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예상도 못 할 터였다.
이한솔이 헤죽헤죽 웃었다. 다른 영화 같았으면 투자자를 구하러 다닌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제작비 걱정에 전전긍긍했을 텐데,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투자담당자가 들어왔다. 인사를 나누고 본격적인 대화에 들어갔다.
테이블 위에 시놉시스와 트리트먼트를 펼쳐 놓은 투자담당자는 처음부터 냉담한 반응이었다.
한국에서 좀비 영화라니.
비주류 장르 쪽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영화드림이라도, 조금 무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촬영 때마다 분장을 해야 하고, 그 엑스트라들의 연기도 하나하나 어설프게 할 수도 없었다. CG는 당연히 써야 했고, 하물며 배경이…….
이 영화에 투자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투자하면 어느 정도의 금액으로 하나, 회의하던 투자 담당 직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투자 담당자가 입을 열었다.
“좀비 영화라. 영화드림 제작사에 대해서는 저희도 잘 알고 있습니다. 비주류 장르 쪽에서는 제법 인지도가 있는 모양이지만, 요 몇 년 동안은 수익은 그렇게 높지 않죠? 손익분기점만 넘기는 정도고…….”
영화 판권도 팔아치웠다.
‘뭐, 판권이야 할리우드 제작사들도 사정이 급하면 팔아치우니까…… 상관없는데…… 전 사장이 도박이라…… 사장이 바뀌었다지만, 음.’
투자담당자는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이면서 이한솔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냉담한 반응에도 이한솔은 편안하게 웃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 태도에 민망했던 투자 담당자가 둘러대듯 말했다.
“물론, 이쪽에서는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겁니다. 저희 회사에 서비스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겠죠. 영화드림에서는 얼마나 투자받기를 원하십니까?”
“그전에…….”
이한솔이 목소리를 낮추었다. 투자담당자가 고개를 갸웃했다.
“담당자님.”
“네?”
“저희 주연 배우가 누군지 아세요?”
“? 아뇨. 보내주신 서류에는 없었습니다만? 벌써 주연 배우를 구하신 겁니까? 유명한 배우였으면 좋겠군요. 투자금액이 좀 더 늘 수도 있으니까요.”
유명한 배우.
그 단어에 결국,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지 못한 이한솔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움직이는 이한솔의 입이 확대된 것처럼 보였다.
이해되지 않는 단어에 투자 담당자가 되물었다. 다시 한번 언급되는 그 배우의 이름에, 투자 담당자는 그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하하하. 이한솔이 환하게 웃는 동안, 투자 담당자는 깨달았다. 이건 자신의 위치에서 다룰 만한 일이 아니었다.
곧바로, 플러스+ 코리아 지사장에게 전해졌다.
“세상에! 좀비 영화라니! 이서준 배우라니!”
플러스+코리아 지사장이 벌떡 일어났다.
오 마이 갓! 세상에! 왓더!
미국식 리액션과 한국식 리액션을 섞어가며 놀라던 지사장이 숨을 고르고 자리에 앉았다.
“아예 낯선 사극도 흥행했는데, 세상에 좀비 영화라니. 아주 전 세계의 돈을 쓸어모을 작정입니까.”
아직 얼굴엔 흥분한 기색이 조금 있었지만, 얌전해진 지사장의 모습에 이한솔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흥분할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래도 편하게 투자를 받을 수 있게 돼서 다행이었다.
“그래서 투자를…….”
하지만, 얌전해진 지사장의 모습은 함정이었다.
이한솔이 안도하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지사장의 머리를 팽팽 돌아가고 있었다.
낯선 언어로 개봉했던 역逆이 예상 이상의 이익을 거두었고, 곧 플러스+에도 업로드될 예정이었다. 영화 투자로 인한 수익에 플러스+로 들어올 수익까지.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데,
좀비 영화를 준비 중이란다!
말보다도 액션이 주가 되는 영화가 아닌가!
손에 땀을 쥐게 만들었던 ‘한 걸음’같은 재난 상황에, 어쩌면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들었던 ‘역’에서 나온, 죽음과 삶의 경계에선 사람들의 신경전이 나올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지사장이 침을 꼴깍 삼켰다.
더군다나, 이서준의 첫 액션 영화가 아닌가!
‘세상에! 그래. 첫 액션 영화!’
액션 장면이 100% 나올 거라는 ‘쉐도우맨3’보다도 먼저 개봉될, 배우 이서준의 첫 액션 영화가 되는 거였다.
지사장의 눈이 번뜩였다.
“합니다! 할게요! 뭐가 필요하지요? 좀비물이니까 역시 특수분장팀이 필요하겠죠? 저희 쪽에도 특수분장팀이 있습니다. 본사에 요청하면 바로 올 겁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장팀을 불러오겠습니다!”
지사장이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이한솔이 엉거주춤 몸을 뒤로 빼다가 소파 등받이에 막혀 버렸다. 파고들듯 등받이에 등을 파묻었다.
“소품? 할리우드 미술팀을 불러올까요? 스태프? 원하시는 전문가는 모두 불러오겠습니다! 지원금? 얼마든지 쓰세요! 장소? 대여요? 뭣 하러요! 만듭시다! 최신 공법이면 금방 만들 겁니다. 뭐든 말만 하세요! 필요한 건 뭐든지, 어디서든지 가져오겠습니다.”
숨도 쉬지 않고 말하는 지사장은, 운석을 구해달라면 경매를 하든 NASA를 털든, 당장 구해줄 기세였다. 어디서든지도…… 분명 한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를 뜻하는 것이리라.
번들거리는 지사장의 파란 눈에, 이한솔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미국인의 스케일이란…….’
진짜, 뭐든지 할 것 같아서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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