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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79화 (179/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79화

서준이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때, 코코아엔터 2팀은 쏟아지는 연락을 처리하고 있었다.

따르릉, 전화가 울리면 받아서 상대방의 용건을 듣는다.

용건이야 대동소이했다. 어디 어디 방송국, 제작사에서 무슨 무슨 촬영을 하는데 출연해 달라는 제의가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잡지나 신문의 인터뷰 요청이었다.

“네. 아직 결정된 사항은 없습니다.”

“검토 중입니다.”

자동응답기처럼 대답하는 2팀 직원들의 말에 전화를 건 상대방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역逆으로 국내에서만 천만을 기록하고, 사극임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의 흥행도 대단했다. 방송 한 편만 찍어도 어마어마한 이익을 거둘 수 있었다.

앞뒤로 붙을 광고료와 해외 수출. 해외 수출 통로를 개척하지 않아도 됐다. 이미 전 세계에서 사용 중인 스트리밍 사이트, 플러스+가 있었으니까.

과정부터 결과까지 정말 완벽했다. 이런 꽃길도 없을 터였다. 그런데 시작이 험난하다 못해 절망적이었다. 잡기만 하면 대박인 황금 거위가 도저히 잡히질 않았다.

‘잡히기만 하면 고이고이 길러 황금알만 얻을 자신이 있는데!’

보통의 배우들에게 통할 많은 출연료도, 으름장도 통하지 않을 테니, 순순히 코코아엔터에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2팀도 딱히 다른 할 말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배우 이서준을 도울 뿐이고 결정권은 모두 이서준에게 있었으니까.

“저번에 어떤 작가분이 그러시더라고요.”

막 전화기를 내려놓은 직원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다들 한쪽 귀를 기울이며 기계적으로 응답했다. 상대방의 말을 메모하는 손도 멈추지 않았다.

“‘이거 진짜 이서준 배우에게 전해지는 거 맞죠?’라고요.”

“아. 저도 그랬어요. 우리 회사에서 중간에 끊는다고 생각하나 봐요.”

“뭐, 보통 소속사라면 그렇겠지만…….”

2팀 직원들이 어깨를 으쓱였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경우, 2팀이 쳐낼 수 있는 범위는 엄청나게 좁았다.

부실한 제작사도 이서준이 나온다고 하면 단번에 탄탄한 회사가 될 테고 부실한 투자 상황도 이서준만 있으면 만사 해결. 그 이외의 문제도 이서준 이름이면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상황이 그 정도 되면 쳐낼 수 있는 대본도 적어진다.

“진짜 사기처럼 보이는 건 걸러내고 있지만요.”

“요즘은 사기도 엄청 공을 들여서 하는 느낌이라…….”

2팀 직원들이 한숨을 쉬었다.

작품은 온전히 이서준의 뜻.

2팀이 그나마 관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그 이외의 예능과 교양 정도였는데 이것도 결국 서준이 결정하는 거라서 2팀 직원들은 열심히 섭외 전화가 온 프로그램의 이름과 날짜를 메모할 뿐이었다.

안다호는 날림으로 쓰인 메모를 모아, 국내 방송 프로그램들을 정리해 놓은 파일에서 프로그램의 순위를 확인하고 차례대로 적어 내려갔다.

방송국, 프로그램 이름, 피디, 출연자, 시청률.

이미 많은 정보들을 모아 정리해 두었기에, 새롭게 만들어진 방송이거나 피디가 바뀌는 경우가 아니라면 따로 조사할 필요는 없었다.

한바탕 쏟아지던 전화가 잠잠해지면, 이번에는 메일로 들어온 시놉시스와 대본들을 살펴야 했다. 2팀 직원들의 반은 울리는 전화를 받고, 반은 프린트된 시놉시스와 대본들을 살폈다.

“다시 시놉시스의 바다인가.”

쌓여 있는 종이들만 봐도 눈이 아려오는 것 같았다.

“촬영 중이 편했죠.”

“그러게요. 촬영 중에는 다른 작품을 볼 일이 적을 테니까, 다들 안 보내고 있다가 딱 개봉한 후에 보내기 시작한다니까요.”

역 개봉 후, 촬영 동안 멈추었던 시놉시스와 대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대본을 구분하고 별점을 매기고 있던 2팀 직원이 낯익은 이름을 발견했다.

“이거 최대만 감독님 작품이네.”

“그래요?”

최대만 감독이라면 2팀 직원들도 안다호도 잘 알고 있었다.

서준의 첫 광고를 찍고, 첫 한국 영화 ‘악령’을 찍은 감독. 그리고,

“벌써 6번째네요.”

5번 거절당해도 6번째 시놉시스를 제안하는 끈질긴 감독이었다.

하지만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2팀에서는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슈퍼스타 이서준과 함께 촬영할 기회였다.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기회. 6번이 뭐냐, 10번, 20번도 도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뭐, 여기 안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래도 같은 대본을 여러 번 보내는 감독님도 있으니까요. 최대만 감독님은 매번 다른 이야기로 보내시니까 신기한 거죠.”

“게다가 서준이랑 인연도 있으니까요.”

“이번에도 새로운 작품이에요?”

최대만 감독의 시놉시스를 든 직원이 팔랑, 종이 한 장을 넘겼다. 잠시 쉬는 시간도 가질 겸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저번 작품이 어떤 작품이었죠?”

“사극이었던 것 같은데…….”

“사극은 그전 아니었어요?”

“음. 그랬나?”

많은 작품을 보다 보니, 가물가물했다. 직원들이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 사이, 직원이 팔랑팔랑 시놉시스를 넘겼다. 무언가 잘못 본 듯 다시 앞장으로 넘기고 다시 뒤를 읽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직원의 모습에 서준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던 안다호와 다른 직원들의 시선이 쏠렸다. 최대만 감독의 시놉시스를 보고 있던 직원이 얼떨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건…… 이 장르는 처음이지 않아요?”

코코아엔터 2팀이 읽은 작품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중복되는 소재는 물론이고 클리셰 범벅의 작품이라면 비슷한 전개에 비슷한 결말을 가진 작품도 많았다. 그만큼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처음?

안다호와 2팀 직원들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최대만 감독의 시놉시스를 들고 있던 직원이 안다호에게 넘겼다.

안다호가 시놉시스에 집중한 사이, 다른 직원들이 물었다.

“뭔데요? 뭔데 그래요?”

궁금함에 눈을 반짝이는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볼을 긁적이던 직원이 대답했다.

“좀비물이요.”

“……? 네?”

“좀비요. 좀비.”

시놉시스를 읽고 있던 안다호와, 대답을 들은 2팀 직원들의 눈이 한없이 커다래졌다.

* * *

오.

피가 빠져나간다.

내 피가.

새빨간 피가.

심장이 쿵쿵 뛴다.

새빨간 피를 보고 있는 서준의 눈이 번들거렸다.

“네. 끝났어요. 피가 안 나올 때까지 꾹 누르세요.”

주사기를 꽂았던 팔 안쪽에 반창고를 붙여준 간호사가 말했다. 자신의 피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서준이 정신을 차렸다.

“감사합니다.”

“피가 멎은 것 같으면 문진표 작성해주세요.”

“네.”

자리에서 일어난 서준이 의자를 재한에게 양보했다. 재한은 새하얀 얼굴로, 어색한 걸음으로 엉거주춤 의자에 앉았다.

내의원 이후, 매년 하는 건강검진이라 별생각 없는 서준과는 달리, 기억하기로는 인생 처음으로 채혈하는 재한은 떨림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은 나라에서 정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건강검진이 있었다. 학교와 연계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해야 했는데, 여울 예중도 마찬가지였다. 제출 기한은 10월까지.

학교를 마치고, 서준은 재한과 함께 가까운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기로 했다. 타이밍 좋게 병원에 사람이 적어, 엑스레이 촬영과 신체측정 등 다른 검사는 벌써 끝냈고, 채혈과 문진표만 남은 상황이었다.

서준은 반창고를 꾸욱 누르며 거의 울 것 같은 재한을 바라보았다.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겁먹은 재한의 모습이 우스워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안 아파.”

“엄청 아플 것 같아. 바늘도 날카롭고…….”

채혈용 주사기 바늘이 조명을 받아 번쩍였다. 살벌하게 빛나는 바늘에 재한이 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보지 말자. 안 보면 안 무서워…… 안 무서워…… 무서워!’

눈을 감고 잔뜩 겁을 먹고 있는 재한의 팔뚝에 간호사가 고무줄을 단단히 묶었다.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채혈해 본 적 없어?”

“으응.”

서준의 물음에 살며시 눈을 뜬 재한이 생각에 잠겼다. 기억하기로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처음인 것 같은데…… 서준이 넌 해봤어?”

“응. 내의원 때 건강검진 했거든.”

“아. 나도 봤어. 내의원 스페셜에 나왔었지?”

같이 텔레비전을 보던 엄마 아빠가 이서준처럼 건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본 기억이 있었다.

내의원.

서준이는 그때도 연기를 참 잘했다. 텔레비전 속 대군마마가 자신과 같은 3학년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대군마마는 손짓 한 번, 발 짓 한 번으로 많은 사람을 웃고 울게 만들었다. 한국이 들썩였고, 강재한의 주변에 있던 대부분이 대군마마를 사랑했다. 고작 초등학교 3학년이던 강재한도 마찬가지였다.

대군마마는 눈부셨고, 엄마 아빠에게 진짜 궁궐에 대군마마가 사냐고 물어볼 정도로 현실감이 넘쳤다. 물론, 그 멋진 대군마마는……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다.

강재한이 연기를 시작한 것은 그 이후였다. 엄마 아빠를 졸라 연기학원을 등록하고 열심히 연습했다. 그렇게 재한은 5학년이 되고, 6학년이 되었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여러 예중 중, 가장 지원을 잘해주는 여울 예중에 지원했다. 치열한 경쟁률에 반쯤은 안 돼도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지원했는데, 덜컹 합격해 버렸다.

재한은 합격 연락이 왔던 그 날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었다.

[배우 이서준, 여울 예중 합격!]

텔레비전 속에서 반짝이던 대군마마와 같은 학교, 같은 반 친구가 될 거라고, 어렸던 3학년 강재한은 상상이나 했을까.

친구.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아직도 긴장되는 단어였다.

재한이 실실 웃었다.

“응. 그때 이후로 1년에 한 번씩 해.”

“올해는 안 했어?”

“중학교에서 건강검진 한다고 해서 안 했어.”

“그렇구나.”

서준의 말에 재한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간호사가 재한의 팔에서 주사기 바늘을 뽑았다.

“자. 끝났어요.”

“어, 벌써요?”

재한이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서준이 아하하하 웃었다.

간호사도 웃으며 재한의 팔에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이런 작은 병원에 이서준 배우가 와서 깜짝 놀랐는데, 겁먹은 친구를 생각해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정말 기특해 보였다.

“문지르면 멍드니까, 꾹 눌러야 해요.”

“네. 감사합니다.”

채혈을 끝낸 서준과 재한은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아 문진표를 작성했다.

“이상 없음. 이상 없음.”

거의 빛의 속도로 작성하는 서준과 달리, 재한은 차근차근 읽어 내려갔다. 재한을 기다리는 동안, 서준은 안다호에게 바나나톡을 보냈다. 다호 형에게는 어제 미리 건강검진 때문에 집에 늦게 갈 거라고 이야기했었다.

<다호 형, 건강검진 끝났어요.

>그래? 바로 집에 갈 거야?

<재한이랑 떡볶이 먹고 갈 거예요.

>알았어. 집에 도착하면 연락해.

<네.

마지막까지 주의 깊게 읽고 체크한 재한이 고개를 들었다.

“나 다 적었어.”

“그래? 그럼 떡볶이 먹으러 가자.”

문진표를 제출하고 병원을 나온 서준과 재한은 근처 분식집으로 향했다.

떡볶이와 튀김을 시키고 잠시 있으니, 금세 따끈따끈한 떡볶이와 튀김이 나왔다. 매콤한 떡볶이를 베어 문 서준이 입을 열었다.

“주희랑 주경이는 여름방학부터 오디션 공고 찾는다던데, 재한이 너도 오디션 볼 거야?”

두 사람 모두 2학기가 아니라, 여름방학부터 열심히 오디션 공고를 찾아다닐 거라고 했다.

‘연기과 애들은 대부분 오디션 보겠지만…….’

실제로 촬영을 하거나 무대에 오르는 것보다 경험을 쌓기 좋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 반 아이들 중에는 의외로 연기 수업에만 매진하겠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자신의 약점을 알고, 그걸 보완하겠다는 뜻이니까.

‘재한이는 어떠려나?’

튀김을 우물거리던 재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도 공고 뜨면 오디션 신청하려고.”

신중한 재한이라면 연기 수업을 듣지 않겠나, 싶었던 서준은 생각과는 다른 대답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드라마? 영화?”

“둘 다 신청할 생각이야. 나 지금까지 촬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거든.”

촬영 경험이 없는 아역 배우.

딱히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아역 배우 지망생들은 많지만, 배역은 별로 없으니까. 여울 예중 연기과에도 그런 아이들이 꽤 있었다.

“그래? 그것도 좋겠다. 이것저것 해봐야 어떤 게 맞는지 알 수 있으니까.”

서준의 대답에 환하게 웃은 재한이 물었다.

“넌 언제 새 작품 들어가?”

좋아하는 배우의 차기작을 기다리는, 팬심이 조금 섞인 물음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하지 않을까? 근데 마음에 드는 작품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겠어.”

“마음에 드는 작품? 어떤 게 좋은데?”

“음…….”

튀김 하나를 떡볶이 양념에 콕 찍은 서준이 웃으며 말했다.

“재미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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