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78화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역逆이 개봉했지만 서준은 평범한 학교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가끔 복도에서 마주친 학생들이 짠한 눈빛으로 보는 것만 빼면, 촬영이 끝났던 4월과 5월의 생활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4교시, 수학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식당으로 향하던 주경과 주희가 키득키득 웃었다. 서준도 재한도 웃고 말았다.
벌써 3번째, 3학년 선배로 보이는 학생들이 짠한 눈빛으로 서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는 소름이 돋았는지 팔을 매만지는 학생도 있었다.
3학년들이 멀어지자 주경이 입을 열었다.
“다들 영화 보고 왔나 봐. 반응이 다들 비슷한데?”
“그러게. 서준이를 보면 영화가 떠오르나 봐. 불쌍하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서 무서워하는 것 같아.”
주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영화객 리뷰 봤는데 사극이 갑자기 공포영화가 돼서 깜짝 놀랐다니까. 그렇게 해석할지는 상상도 못 했어. 영화객 리뷰 나온 다음에 또 보고 왔는데, 처음부터 긴장하게 되더라.”
“영화객 리뷰, 영어 자막도 떠서 외국에서도 난리래.”
재한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도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저 궁궐 소개인 줄 알았던 그 짧은 장면에 그런 의미가 들어 있었을 줄 몰랐다는 댓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피휘부터 노산군일기, 조선왕조실록까지. 몇몇 사람들은 서준 리의 작품을 보면서 한국에 관해 공부하는 것 같다고 말하고는 했다.
“다른 건 몰라도, 해외에서도 성녕대군 시대랑 단종 시대는 엄청 유명할 거야.”
“역 플러스도 재미있더라.”
“아, 나도 봤어.”
식당에 도착한 서준과 아이들은 줄 서 있는 학생들의 뒤에 섰다. 학생 수가 적은 만큼 앞에 선 아이도 아는 얼굴이라 가벼운 인사가 오갔다. 식당 안에 있던 2학년과 3학년들은 서준을 힐긋힐긋 봤지만, 1학년들은 제법 익숙한 것 같았다.
식당 안을 둘러보던 서준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문양이 식당 한쪽 벽에서 반짝거렸다.
‘식당에도 새기길 잘했어.’
하루에 한 번. 학교에 오면 꼭 들러야 하는 곳 중 하나가 식당이었다. 게다가, 다른 곳과는 달리 2학년, 3학년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때문에 더 필요한 곳이었다. 서준이 흐뭇하게 웃으며 문양에 남아 있는 마나를 체크했다.
‘오늘 넣어야겠네.’
서준은 선기를 내뿜어 마나를 보충하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친구들은 역+에 대해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문종실록에 노산군일기에, 세조실록까지 다 조사하고. 야사랑 전설, 민담까지 조사했더라. 엄청 신기했어.”
“역에 나왔던 장면을 편집해서 보여줘서 좋지 않았어? 재미있는 장면은 너무 잘 편집해서, 다시 영화 보고 싶긴 했지만 말이야.”
“맞아. 감질나더라.”
아이들이 꺄르르 웃었다.
“그러고 보니, 국사쌤이 다음 시간에 계유정난 수업한다던데…… 재미있겠다…….”
“시험 쳐도 단종은 잘 맞힐 것 같아.”
“나도.”
서준의 앞뒤에 서 있던 아이들까지 주경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줄이 줄어들고 서준과 아이들 차례가 되었다. 서준의 식판 위로 음식이 하나둘 올라갔다. 오늘 점심 메뉴는 투움바 파스타에 웨지 감자, 샐러드, 된장국, 목살 스테이크. 밥도 있었고 후식은 팩에 든 사과 주스였다.
가게에서 나올 것만 같은, 맛있어 보이는 메뉴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우리 학교!”
비어 있는 자리에 앉은 아이들이 수저를 들었다. 좋아하는 음식에 제일 먼저 손을 뻗었다. 서준은 된장국을 한 수저 떠 국물을 마셨다. 간이 잘 맞은 된장국은 서준의 입에도 딱 맞았다.
“아, 맛있다!”
“파스타도 맛있어!”
서준과 아이들은 즐겁게 점심을 흡입했다. 맛있는 데다가 돌도 씹어먹을 나이라서 그런지 금세 점심식사를 끝냈다.
아이들은 깨끗하게 비운 식판을 정리하고 사과 주스를 들고 식당을 나왔다.
“오늘도 맛있었어.”
“그러게. 학교 급식이 너무 맛있어.”
주희와 주경이 만족한 표정으로 디저트로 나온 사과 주스를 마셨다. 서준과 재한도 사과 주스를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매실초 급식도 맛있었는데, 여기가 더 맛있어.”
“우리 초등학교 급식은 별로였어.”
“그래?”
“응. 맛없진 않았는데, 평범했어. 반찬도 비슷비슷했고.”
재한이 졸업한 초등학교 급식 이야기를 들으며 걷고 있으려니, 층마다 붙어 있는 여울 예중 게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여울 예중 게시판]
봉사활동이나 행사, 부활동 홍보나 기타 등등의 사항을 붙여놓는 곳이었다. 초등학생 때의 게시판이 선생님들만 붙일 수 있던 장소였다면, 여울 예중의 게시판은 학생들이 붙여놓은 게시물이 더 많았다.
게시판 앞에 선 서준과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오늘은 뭐가 많이 붙여져 있네?”
“그러게. 저번 주에는 별로 없었는데…….”
지난주 금요일까지는 선생님들이 붙여놓은 공고와 학교 밖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들밖에 없었는데, 월요일인 오늘, 게시판은 종이들로 가득했다.
빳빳한 새 종이들이 서준의 눈에 들어왔다.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은 공고였다.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공고, 검은색 글씨로 깔끔하게 적힌 공고. 공고만 봐도 붙인 학생들의 개성이 보이는 것 같았다.
붙여진 공고에는 공통된 단어가 있었는데, 바로 ‘졸업’이었다.
“3학년들 졸업 공연 준비하나 봐.”
주우웁. 사과 주스를 흡입하고 있던 서준도 게시판을 훑었다.
‘졸업 공연이라…….’
여울 예중 3학년들은 졸업식 전날, 전교생들과 초대 손님들을 불러 여울홀에서 공연을 보여주었다. 음악과는 음악회를, 미술과는 미술품 전시를, 연기과는 연극 무대를 올리곤 했다.
물론, 졸업 공연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구독자가 제법 많은 너튜브 채널 [여울 예중]에 올라가는 걸 생각하면, 졸업 공연을 하는 쪽이 미래를 위해서도 좋았다.
‘졸업 공연 보고 캐스팅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고.’
예고에 진학할 때, 자기소개서에 적기도 좋을 터였다.
입안을 맴도는 달콤한 사과 맛을 느끼며, 서준도 공고를 하나하나 읽었다. 서준도 3학년이 되면 하게 될지도 모르는 졸업 공연이었다. 어떤 공연이 있나.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데, 친구들의 대화가 들렸다.
“게다가 요새는 우리 학교 주목도가 최고잖아. 한국, 해외 할 것 없이 말이야.”
“서준이 덕분이지. 영화를 본 사람들이 서준이 실기 영상도 보고, 그거 보고 다른 실기 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있더라. 영어 댓글이 달리는 아이들도 있대.”
“내 영상에도 영어 댓글이 달렸어.”
“정말? 대단하다!”
재한의 말에 아이들이 반색했다. 서준과 아이들의 박수 소리에 재한은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래서 다른 때보다 졸업 공연 수가 늘었대.”
“그렇구나.”
주희의 이야기를 들으며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술과 3학년 선배들도 졸업 작품 준비하면서 연기과 애들을 모델로 많이 쓴다더라고.”
“아무래도 표현력이 있으니까.”
미술과 공고도 게시판에 붙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입학식 때, 모델을 해달라고 했지.’
그 이후 별말이 없는 거 보면, 그냥 지나가는 소리였나 싶었다. 영화 촬영 때문에 언제 권유할까 고민하는 미술과 3학년들이 들었다면 대성통곡할, 생각을 태평하게 하는 서준이었다.
“연기과 선배들도 다른 과 학생들, 많이 모집하는구나.”
“미술과는 무대 배경 꾸미거나 소품 만들 때 도움이 돼서 모집하고, 음악과는 연극에 쓸 만한 연주를 구할 수 있으니까.”
“되게 전문적인 것 같다.”
“우리도 할 수 있으려나?”
재한의 말에 주희가 대답했다. 반장으로서 이리저리 불러다니다 보니 듣는 이야기가 많았다.
“1학년들도 보조로 들어갈 수 있는데 2학기부터 가능하대. 그래서 선생님들도 아직 안 가르쳐 주는 거래. 보통은 1학년부터 어떻게 하는지 봐두었다가 2학년 때 짧게 공연 준비하고 3학년 때 제대로 졸업 공연 준비한다더라고. 보통 6개월 정도 준비하는데, 1년 넘게 준비하는 선배들도 있대.”
“그렇구나.”
“근데 2학년하고 3학년은 시험도 있으니까, 급하게 준비하려면 힘들대. 그래서 여름방학부터 준비하고 2학기 중간중간 연습하는 거라더라. 2학기 중간중간 보조할 1학년을 모집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지금 모집하는 사람은 2, 3학년뿐이구나.”
주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게시판에 붙은 공고를 하나하나 읽었다. 한 명만이 무대에 서는 일인극부터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이인극, 그리고 여러 명이 나와 연기를 펼치는 연극까지. 여러 가지 연극이 참여자를 모으고 있었다. 물론 대상은 2학년과 3학년뿐이었다.
“어떤 공고인지 봐뒀다가 2학기 때 들어갈 만한 공고 찾아놔야겠다.”
“내가 찍어서 나중에 보내줄게.”
“아, 고마워.”
공고를 메모하려던 재한을 말린 주경이 휴대폰을 들었다.
몇몇 학교는 학생들의 휴대폰을 거둬가고는 했다. 하지만 자신의 연기를 녹화하거나, 벼락같이 떠오른 악상을 녹음하고, 멋진 장면을 촬영하는 등 휴대폰 활용도가 높은 여울 예중은 때에 맞지 않은 휴대폰 사용만 아니라면 딱히 휴대폰을 제한하지 않았다.
“재한아. 종이 좀 잡아줘.”
“알았어.”
재한은 카메라에 잘 찍히게 종이를 잡고 주경은 휴대폰을 들었다. 찰칵찰칵, 촬영음이 들리는 사이 서준과 주희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데 학교 홈페이지에 올리면 편할 텐데, 게시판에 붙이는 걸까?”
서준의 물음에 주희가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는걸?”
“오디션 공고를 찾는 것도 배우의 일이라서 그래.”
낯선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 서준과 아이들의 고개가, 목소리가 들린 뒤쪽으로 향했다.
아이들의 뒤에, 선배로 보이는 여학생이 서 있었다.
게시판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병아리 같은 1학년들의 질문에 답해주려고 했던 여학생은 아이들을 얼굴을 보다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이서준이 있었다.
‘세상에!’
오. 이서준. 이서준이다!
애써 떨리는 속마음을 숨기고, 어른스럽게 입을 열었다. 여울 예중 연기과 3학년다운 연기였다.
“안녕?”
“안, 녕하세요?”
아이들은 처음 보는 선배의 얼굴에 어색하게 인사했다.
“잠시만 비켜줄래?”
“아, 네.”
재한과 주경이 슬금슬금 옆으로 비켜났다. 선배로 보이는 여학생이 게시판에 붙어 있던 종이 한 장을 떼어냈다.
?
아이들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어리둥절한 후배들의 표정에 여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이건 마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벌써요?!”
“그래. 대부분은 이번 주부터 모집하기 시작했는데, 우리 팀은 저번 주부터 모집했거든. 그리고 지금 막 모집 기간이 끝났어.”
선배가 보여준 공고의 모집 기간은 선배의 말대로 오늘 점심시간 전까지였다. 아이들이 눈이 깜빡거렸다.
“진짜네?”
깜짝 놀란 듯한 후배들의 모습에 여학생이 풀어지려는 표정을 애써 막았다.
자꾸만 슈퍼스타 이서준에게로 향하는 제 눈을 막을 수가 없었다. 가끔 지나가면서 보기는 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야기도 나누고 있었다.
‘애들한테 자랑해야지!’
여학생은 얼른 반으로 달려가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들썩이는 속마음을 숨기고,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오디션 공고를 자주 살피는 것도 배우의 일이야. 넋 놓고 있다가는 좋은 배역, 좋은 작품 다 놓쳐버릴걸? 게다가 우리 학교는 졸업 공연 말고도, 외부 작품 중에 나이가 맞는 오디션 공고를 찾아서 게시판에 붙여. 놓치는 경우도 있으니까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해.”
서준이 감탄했다. 2팀과 비슷한 역할을 학교에서 하는 모양이었다. 매니저나 소속사가 따로 없는 아이들에게는 인터넷을 뒤지는 것보다 학교 게시판에 있는 오디션 공고를 보는 게 더 편할 터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아이들도 감탄했다.
“그렇구나!”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 게시판을 보는 게 좋을 거야. 물론, 특별한 경우를 빼곤 1학년은 2학기부터 외부활동이 가능하지만 말이야. 선생님들도 그때 더 자세히 알려주실 거야.”
“네.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3학년 선배는 날아갈 듯 자신의 반으로 향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선배의 뒷모습을 보던 주경이 입을 열었다.
“좋은 선배님이다. 그지?”
“그러게.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줘야겠다.”
반장 주희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의 움찔거리던 표정을 알아챈 서준이었지만, 모른 척하며 주경의 말에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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