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76화
“이야. 올해는 왜 이렇게 바쁜 것 같죠?”
“그래도 각오했으니까, 괜찮…….”
따르릉-
“……지 않네요.”
코코아엔터 2팀 사무실이 다시 한번 서준의 섭외 연락으로 시끌벅적해졌다.
사무실에 있는 전화기는 전부 울리고 있었고 메일함도 터질 것 같았다. 직원들의 휴대폰으로도 여기저기서 문자가 도착하고 있었다.
“오프닝 스코어가 100만이잖아요. 흥행이 예상되긴 했지만, 결과가 눈에 보이니까 난리가 난 거죠.”
“미국에서도 성적이 좋다면서요?”
직원의 물음에 안다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킹즈 에이전시 말에 따르면 연일 매진에, 예상보다 한국인 이외의 사람들도 많이 본다더군요.”
“아무래도 내의원 덕분이겠죠?”
“그렇겠죠.”
미국 못지않게 한국도 떠들썩했다. SBC는 서준이 깜짝 출연했던 워킹맨!을 열심히 재방송하고 있었고, 다른 방송국은 노산군일기를 파헤치고 있었다.
역逆의 제작 소식에, 내의원 때와 같은 붐이 또 생길 거라고 예상했던 역사학자들은 이미 몇 달 전부터 단종과 세조에 관해 연구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새로 알게 된 이야기도 많이 흘러나왔다.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역사’가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었다.
지금만큼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을 때도 없으리라. 게다가 이 방송들은 한국에만 머물지 않을 터였다.
내의원으로 떠들썩했던 ‘한의학’을 떠올린 역사학자들의 의지가 불타올랐다.
모두의 예상처럼, 영화 역逆을 보고 난 사람들이 단종과 세조에 대해 궁금해했기 때문에 시청률은 꽤 잘 나왔다.
“플러스 영상은 언제 업로드된다고 해요?”
플러스에서 제작 예정이었던 ‘역+ 플러스’. 가볍게는 사극에서 사용하는 단어들부터 무겁게는 그 시대 문화와 법체계까지. 역+ 플러스는 여러 편으로 제작될 계획이었다.
“미국 흥행이 예상 이상이라서 곧 업로드한다고 들었습니다.”
안다호의 말에 2팀 직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 알고 보기도 좋았는데, 역 플러스도 비슷하겠죠?”
“그렇겠죠. 아, 팀장님 이것도 체크한 거에요.”
“네, 감사합니다.”
안다호가 직원에게서 대본을 받아 들었다. 촬영은 끝났고, 다시 이서준의 차기작을 찾아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 * *
[역逆 오프닝 스코어 100만!]
[내의원과 전혀 다르다! 영화 역逆에서의 두 배우!]
[이지석과 이서준의 빛나는 연기!]
[모두 휴지를 들고 영화관으로! 쉐도우맨1의 눈물 챌린지가 떠오른다!]
[역사 속 진실은 이랬을지도!]
[노산군일기. 어디까지 진실인가?]
[개봉 첫날부터 쏟아지는 눈물의 후기!]
[이건 사극인가, 공포영화인가! 소름 끼치는 마지막 장면.]
[역逆 알고 보기 사이트! 방문자 수 급상승!]
-100만 명 중 1인입니다.
=어쩌면 2인일 수도 있음 하루에 2회 봐서 ㅎㅎ
-내의원에 나왔던 이서준과 이지석은 역逆의 두 배우랑 그냥 동명이인 아님?
=22 동감ㅋ 아니면 사실은 두 배우가 사이가 나쁘다거나(물론 농담입니다)
=걱정할 필요가 1도 없었다. 그냥 단종이고 수양이었음.
-다들 휴지 들고 갔지?
=ㅇㅇ 단종 이야기면 안 챙기는 한국인이 이상하짘ㅋ
=나도 열심히 울고 왔다.
-눈물 챌린지라 오랜만에 듣네.
=이번에는 눈물이 그냥 나왔음ㅜㅠ
-이거 보고 노산군일기 보니까, 느낌 완전 다르더라. 세조 엄청 대단하게 적혀 있고 단종 보고 노산군 거리니까 화남ㅋ
-마지막 장면. 장난 아님.
-이지석 연기도 대단한데, 침소는 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한 느낌이 났음
[미국 동시 개봉!]
[역逆 상영 영화관. 연일 매진!!]
[한국인뿐만이 아니었다. 잘 모르는 외국인까지 관람행렬!]
[일단 보고, 알아보고 다시 한번 관람! 외국인들이 낯선 사극영화를 보는 방법!]
[단종의 일기, 노산군일기,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유네스코 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알아보자.]
[플러스+ ‘역+ 플러스’ 업로드!]
-진짜 매진?
=ㅇㅇ 엘에이 사는데 첫날부터 매진임ㅎ 사람들 별로 안 볼 줄 알고 예매 안 했다가 그날 마지막 타임에 봄ㅎ
=내 친구들도 2번 봤음. 역 알고 보기. 잘 만들었더라.
-조선왕조실록이 이렇게 알려지다니ㅎㅎ 상상도 못 했다.
-내의원이야 딱히 정치, 반란 같은 게 없어서 그냥 일상물…… 이라기엔 너무 슬펐지만. 하여튼, 편하게 봤는데……. 여기선 다 죽어 나가고 난리니까. 원 역사는 어땠나 궁금해하는 외국인들이 꽤 있음.
-내의원 할 때 태종 조선왕조실록 풀이해 줬던 방송ㅎ 영어 자막 떴닿ㅎ
=ㅋㅋ태종ㅋㅋ플러스 수입해야겠는데?
-이서준은 국위 선양을 이렇게 하넼ㅋㅋ 여기서 조선왕조실록이 나올 줄 몰랐다ㅎ
=22 외국인이 조선왕조실록에 관심을 가질 줄이야. 역사 공부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일반인이라서 더 멋진 것 같다
-오. 역 플러스라. 한번 볼까?
* * *
“나 요새 엄청 욕 듣고 있어. 허의관이 본체 아니었냐고. 허대감 핏줄이라서 결국 배신한 거냐고. 부모님도 연기를 너무 잘해서 짜증 난다고 하시더라.”
이지석의 말에 김종호, 박도훈이 웃음을 터뜨렸다.
치지직.
맛있는 소갈비가 불판 위에 올라갔다. 역逆이 개봉하고 벌써 2주가 지났다. 내의원의 네 배우가 한자리에 모였다.
“뭐, 끝은 위로지만 말이야.”
세조의 만행으로, 그 배역을 너무나도 잘 연기한 이지석은, 사람들에게서 칭찬이 섞인 욕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다들 욕을 하다가도 마지막 장면에서 천벌을 받는 듯한 장면을 떠올리고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저도요.”
“응?”
서준이 말했다.
“저도 친구들한테 적당히 용서하라고 들었어요.”
“으하하하하!”
결국, 김종호는 커다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개인실에 쩌렁쩌렁 웃음소리가 울렸다. 박도훈도 하하 웃으며 서준의 앞에 노릇노릇 굽힌 소갈비를 놓아주었다.
“여기저기 난리네. 역시 서준이가 대단하긴 해.”
“미국 상영관도 늘었다면서요?”
박도훈의 말에 이지석과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다른 나라도 개봉한다더라.”
“프랑스에 있는 친구도 영화관에서 보게 됐다고 엄청 좋아했어요.”
“프랑스에 친구도 있어?”
“네. 옛날에 핼러윈 축제 때 만난 친구예요.”
“아……기억난다. 늑대인간?”
“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플러스+의 업로드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다며, 얼른 보고 오겠다던 찰리의 메시지가 떠올랐다.
박도훈은 감탄했다. 외국인들에게는 꽤 높은 장벽일 사극이 한국을 넘어 미국과 전 세계에 상영되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극 중에 이 정도로 유명해진 게 있었나요?”
“있잖아. 드라마.”
박도훈의 물음에 김종호가 대답했다. 그 말에 그 드라마에 출연했던 세 배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김종호가 흐뭇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내의원으로 길을 닦아놨는데, 이 정도도 못 하면 안 되지.”
“맞아요. 더 흥행해야죠.”
서준의 씩씩한 대답에 다시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렸다.
* * *
화면 가득, 이제는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보였다.
“안녕하세요. 영화객입니다.”
-영하!(대충 영화객 하이라는 뜻)
-하영!(대충 하이 영화객이라는 뜻)
“오늘은 영화 역에 대해 리뷰하겠습니다.”
-저 이번에 6회 차 뛰고 왔어요!
-ㅊㅎㅊㅎ 난 3회 차 뛰었음ㅎ 감정 소모가 너무 심함. 근데 재미있어ㅠ
-난 내일 보면 두 자릿수임!
“저도 다섯 번 넘게 봤습니다. 자, 그럼. 먼저 예고편입니다.”
영화객이 마우스를 클릭하자, 화면에 역逆의 예고편이 흘러나왔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천세, 천천세 소리가 울렸다.
“예고편부터 좋았습니다. 위에는 단종, 아래는 세조였다가, 화면이 바뀌면 위는 세조, 아래는 단종으로 변하는. 제목과 아주 잘 어울리는 예고편이었습니다. 포스터도 있었죠? 저는 두 버전 다 챙겨왔습니다.”
-나도ㅎ
-배급사에서도 넉넉하게 준비한 듯ㅎ
-다른 버전도 좋았음. 단독 사진.
“그것도 좋았죠. 두 왕의 자세부터 달라서 더 인상 깊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챙겨왔습니다.”
-알뜰살뜰한 영화객 님ㅎ
-나도 다 챙겨왔음ㅎ
“역의 시작은, 두 그림자부터 시작합니다.”
-설마 그 그림자가 그럴 줄이야.
-처음에는 단종이랑 김종서인 줄.
화면에 뜬 것은 영화객이 직접 그린 두 그림자였다. 저작권 때문에 가끔 그림으로 표현하는 영화객의 그림 실력을 보던 여동생이 웃으며 말하곤 했다.
-진짜 못 그리네요.
영화객이 쓴웃음을 지었다.
“제 동생이랑 똑같은 말을 하시네요. 뭐, 다들 보셨으니까 대충 넘어갑시다.”
-ㅇㅇ
-4번 봐서 알아서 상상할 거임.
“저도 처음에는 김종서일 줄 알았습니다. 수양대군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약간 의심만 하는 정도였죠. 그 이후로 광화문의 문이 닫히고, 문종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화면에 즉위식 사진이 떴다. 예고편의 일부분이었다.
“솔직히 단종의 즉위식 때도, 포스가 좀 약하기는 했습니다. 그때는 이래서 수양대군에게 왕의 자리를 뺏겼나 싶었거든요.”
-ㅇㅇ 나도 그랬음
-열심히 하는 모습이 안타깝고 장하긴 했지만…… 왕보다는 아직 왕자라는 느낌?
-22
“근데, 아니었습니다. 물론, 모든 신하가 고개를 숙이는 권력이 왕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었습니다. 그게 강돌과의 만남이었습니다. 불쌍한 백성을 돌보는 그 마음가짐이야말로, 왕에게 필요한 것이죠. 여기서 훈민정음을 봐서 좋았습니다.”
-세종대왕 후의 역사라는 게 잘 드러난 것 같음.
-ㅇㅇ 답장도 좋더라
“네. 강돌의 답장에 저도 뿌듯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이후 각성한…… 각성이라고 해도 되겠죠?”
-ㅋㅋ각성ㅋㅋ
“네. 각성한 단종을 마주친 수양대군의 반응이 무시무시했습니다. 아마, 단종을 마주친 수양대군은 알았을 겁니다. 단종이 가까운 시일에 정말 힘 있는 임금이 될 거라는 걸 말이죠.”
-진심 무서웠음.
-이지석이 그런 얼굴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찍소리도 못함ㅎ 영화관도 조용해짐ㅎ
“네. 그랬죠. 그리고 수양대군은 한발 빨리 움직였습니다. 이서준 배우의 실기 영상과 비슷했던 장면, 계유정난의 밤입니다.”
-ㅠ 이걸 보고 싶었지만, 보고 싶지 않았던 느낌
-비슷하긴 했는데, 더 쫄렸어요.
-진짜 칼로 베는 줄.
-근데 왜 단종이 수양대군을 화나게 한 거예요?
영화객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가 난 수양대군이 단종을 죽이면, 그건 반역입니다. 수양대군의 명분이 ‘김종서와 안평대군의 반역’인데, 여기서 단종이 죽는다면, 거짓 명분이 되죠. 아마 전국의 양반들이 반발할 것이 분명할 겁니다.”
-명분이 중요하지.
“게다가 김종서는 죽였지만, 아직 안평대군이 남아 있거든요. 전국에서 반발하는 세력에다가 안평대군에게 정당한 명분이 주어진다면, 수양대군은 끝입니다. 단종은 수양대군이 왕이 될 바에야, 차라리 안평대군이 왕이 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거죠.”
-단종 참 똑똑해ㅠ 진짜 목숨 걸고 반역 막으려고 했구나ㅠ
-수양대군이 잘 참았네.
“수양대군은 세종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서 계속 첫째 아들인 문종과 비교당했을 겁니다. 게다가 형은 왕이 되었죠. 형이 왕이 되는데, 수양대군 자신은 아버지나 형이 아니었으면 평범한 종친처럼 관직에도 나서지 못하고 한량으로 살다가 죽어야 했을 겁니다. 그렇게 억울함과 열등감이 차곡차곡 쌓여갔을 겁니다.”
-그러다 문종이 죽어버렸음.
“네. 어린 조카만 없으면 왕위 계승권자는 수양대군 자신과 안평대군 정도였을 겁니다. 강력한 왕권을 가진 문종과 달리, 단종은 한없이 연약했죠.”
불쌍한 단종을 떠올리던 영화객이 말했다.
“이 장면에서 전 이 대사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어떤 대사요?
“수양대군이 이홍위라고 외치는 대사요.”
-? 이름?
-겨우 이름이요?
“이홍위라는 세 글자에는 여러분들의 생각보다 커다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
-나도 그 생각했음!
-?? 뭔데?
영화객이 웃었다.
“여러분. 혹시 피휘라고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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