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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73화 (173/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73화

6월이 다가올수록 한국은 시끌시끌했다.

-근데 이서준이 한국 작품에서 주연인 거 처음 아니야?

=내의원은?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허의관이 주연이었음.

-역은 단종 세조 투탑이긴 한데, 단종이 중심이니까 주연임.

-헐. 진짜 첫 주연이야?

-ㅋㅋ 되게 웃기네.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 받았는데, 한국에선 이제 첫 주연이얔ㅋ

-첫 주연이라니! 서준이 팬으로서 N차 뛰어야겠다!

=N차라니 2N차는 뛰어야지!

=갑자기 수학?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놓칠 연예부 기자들이 아니었다.

[배우 이서준, 한국 영화 첫 주연!]

[첫 주연 영화, 흥행은?]

[내일, 역逆 언론 시사회!]

[미국 LA 개봉 확정! 미국, 한국 동시 개봉!]

[다음 주, 역逆 사전 예매 시작!]

-오스카상까지 받은 배우에게 이런 말 하긴 좀 이상하지만, 첫 주연 영화 축하해!

=22 ㅋㅋ진심 생각도 못 했다. 첫 주연ㅋㅋ 축하함ㅋ

=진짜 평범하게 가지 않는구나ㅎ 남들이랑 다른 길을 개척ㅎ

-언론 시사회 기자님…… 들뜬 게 여기까지 느껴진다ㅋ

=부럽…… 개봉 전에 먼저 보다니…….

-오. 동시 개봉!

=ㄱㅅㄱㅅ 올해 교환학생 왔는데 한국 가야 할까 고민했닿

=LA임?

=ㄴㄴ 차 타고 가야 하는데 단체로 갈 예정. 비행기보다 나음ㅋㅋ

-사전예매! 좋은 자리! 사전예매!

=22 첫날 보고 싶다. 스포일러 ㄴㄴ

=역사책 봐라ㅎㅎ

역逆의 언론시사회가 열렸다.

이런 자리에 익숙한 우정한 감독과 주연 배우, 이서준과 이지석, 박운열은 느긋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홀로 어색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김호영이 보였다.

올해 6월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감독과 배우들에게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여기저기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서준은 익숙하게 웃으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영화 상영 전, 우정한 감독이 마이크를 잡았다.

“처음 단종의 삶에 의문을 가진 건 노산군일기 때문이었습니다.”

서준도 [노산군일기]를 알고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일기는 연산군일기, 광해군일기 두 개뿐이었다고 알고 있었지만, 단종실록도 엄연히 따지면 [노산군일기]였다가 단종의 이름을 찾게 되면서 [단종실록]이 된 것이었다.

“노산군일기는 일기이기 때문에 보안이 철저히 요구되던 실록과 달리, 수정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세조의 반역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조를 미화하고 과장한 것과 세조의 적을 비방한 것이 신경이 쓰였습니다.”

우정한 감독이 말을 이었다.

“어느 작품 속에서도 단종은 유약한 성격으로 언제나 세조의 들러리로 살아야 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정말로 단종의 성격이 그랬을까요?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지만, 상황을 이겨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 세조의 거짓말에 가려져 있던 단종의 노력을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기자들과 관계자들이 우정한 감독의 말에 푹 빠져들었다.

“이 영화는 어쩌면 모두 허구일 수도 있고, 어쩌면 모두 진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옛날의 진실을 영원히 모를 겁니다. 그저, 숨겨진 진실 속에 이런 단종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봐주길 바랍니다.”

짝짝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우정한 감독, “노력하는 단종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노산군일기? 단종실록?]

[왜곡된 단종실록,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이지석, “허의관 이미지를 벗으려고 노력했다”]

[이서준, “지석이 형이랑 같이 연습했다.”]

[박운열, “둘 다 멋진 배우”]

[이런 단종은 어떤 단종? 개봉할 역逆이 궁금하다!]

[내일, 드디어 역逆 개봉!]

* * *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영화관을 보던 이미연이 말했다.

“예고편 본 게 엊그제 같은데……벌써 개봉이라니…….”

“? 어제도 봤잖아? 오늘도 보고.”

박성아의 말에 이미연이 웃었다.

“넌 농담도 몰라?”

“쓸데없는 소리 말고 티켓이나 뽑으러 가자.”

“그래.”

이미연이 티켓을, 박성아가 포스터를 맡았다. 포스터를 본 박성아가 얼른 두 장씩 뽑았다. 미리 충분한 양을 준비해 뒀는지, 포스터들이 줄어들자마자, 직원들이 다시 채워 넣었다.

포스터는 2개 버전으로 2개씩 총 4개가 있었는데, 하나는 예고편처럼 위, 아래가 나누어진 모습이었다.

[단종/세조], [세조/단종]로 나누어진 포스터는 곤룡포를 입은 두 배우의 상반신이 찍혀 있었다.

나머지 하나는 어좌에 앉은 [단종]과 [세조]의 사진이었다. 단정히 앉아 있는 단종과 나른하게 앉아 있는 세조가 대비되어 있어 더 멋진 것 같았다.

포스터를 전부 챙겨온 박성아에게 이미연이 박수를 보냈다. 잠시, 포스터를 구경하며 기다리고 있으려니, 영화관 직원이 외쳤다.

“제1관, 제1관, 역의 상영이 곧 시작됩니다! 관람하실 분들은 어서 입장해 주세요!”

포스터를 구김 없이 둘둘 말아, 소중히 챙긴 이미연과 박성아는 제1관으로 향하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였다.

* * *

어두운 밤.

눈송이가 바람에 흩날렸다.

광화문을 비추던 화면이 천천히 열리는 광화문의 안으로 향했다.

경비를 서는 금군들을 비추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관리들을 비추었다. 이리저리 이동하며 궁궐 안을 보여주던 화면에 궁궐 한 채가 보였다.

겉보기에는 어떤 궁인지 알 수가 없어, 이미연은 눈을 깜빡였다. 때마침 자막이 깔렸다.

[강녕전(왕의 침소)]

‘왕이면, 단종인가?’

이서준이 등장할까, 관객들이 더욱 집중했다.

화면은 강녕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만 비추고 있었다. 사방은 어두웠지만 궁 안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다.

강녕전 안의 켜진 촛불이 흔들거렸다. 촛불의 빛 때문에 창호지에 그림자가 생겨났다.

앉아 있는 듯한 그림자와 그 앞에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 앉아 있는 그림자는 웅크리고 있는 그림자보다 작아 보였다.

‘단종이랑, 누구지?’

누군지 알지도 못한 채, 카메라는 다시 영상을 뒤로 돌리듯 궁궐 내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광화문 앞에 도착했다.

쿵!

활짝 열렸던 광화문이 굳게 닫혔다.

* * *

슬픈 배경음악과 함께, 광화문이 열렸다. 활짝 열린 광화문 안은 아까와는 달리 밝았다. 해가 비치는 궁궐, 사람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거나, 바닥에 부복해 있었다.

“상위복!”

목소리가 들렸다.

“상위복!”

커다란 외침 사이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바마마!”

이홍위는 숨을 거둔 아버지의 앞에 웅크려 울음을 터뜨렸다. 엉엉 우는 이홍위의 모습에 세종의 후궁, 혜빈 양씨도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왕이 될 이홍위는 여염집 아이처럼 슬픔에 오래 잠겨 있을 수는 없었다. 슬픔에 잠긴 이홍위를 일으켜 세운 건 자신의 등에 짊어진 무거운 의무였다.

문종이 정한 김종서 등의 고명대신들이 이홍위를 보필했다.

문종의 장례를 준비하며, 이홍위는 자신의 즉위식을 준비했다.

근정전.

이홍위가 세종과 문종이 올랐던 자리에 앉았다. 문무백관이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천세!”

면류관을 쓴 이홍위가 떨리는 손을 꽉 쥐며 앞을 바라보았다.

“천천세!”

천천세를 외치고 있는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얼굴이 비쳤다.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이홍위가 가장 먼저 한 것은, 고명대신의 의견을 들어, 대군과 대신들의 분경을 금지하는 일이었다. 그 소식이 수양대군에게 전해졌다.

“분경을 금한다고?”

그 으르렁거림에 관객들은 등받이에 등을 바짝 기댔다.

“우리 대군들에게 분경하는 것을 금하는 건, 우리를 의심하는 것이오. 전하께서 즉위하시고 가장 가까운 종실을 의심하시니, 이건 전하의 의지가 아닐 터. 혹, 전하께서 고립되어 도움이 필요하신 것이 아닌가.”

고명대신들이 임금과 친족을 이간질하는 것이 아닌가. 수양대군의 말에 황보인과 대신들이 화들짝 놀랐다.

그런 대신들을 보며 수양대군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우리 대군들이 이 위태로운 상황을, 마음과 힘을 다하여 여러 대신과 더불어 헤쳐나가려고 하는데, 어찌 도리어 시기하고 의심하는 것이오. 우의정.”

결국, 분경 금지명이 풀렸다. 수양대군의 집에 다시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했고, 그건 어두운 앞날의 시작이었다.

이홍위가 왕위에 오르고 하루하루 시간이 흘러갔다.

김종서가 내민 인사 관련 두루마리에 관객들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인재에 관해서는 이홍위보다야 잘 알겠지만, 저렇게 일방적으로 추천인을 들이미는 것이 그렇게 좋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홍위는 열심히 했다. 상참에 참여해서 대신들의 의견을 듣고, 경연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밤에도 상소문을 읽고, 공부하고, 노력했다.

‘장하긴 하지만…….’

이미연과 박성아가 미묘한 표정으로 이홍위를 바라보았다. 관객들의 눈에 이홍위는 아직 어리게만 보였다. 어쩌면 저래서 수양대군에게 밀려난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였다.

“그건 뭔가, 김 내관?”

이홍위의 눈에 들어온 건, 김 내관이 아까부터 꼼지락거리며 들고 있던 무언가였다. 이홍위의 말에 고민하던 김 내관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누런빛의 천이었다. 김 내관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내관 하나가 가지고 온 서찰이옵니다.”

“서찰?”

“예. 전하.”

이홍위는 천 조각을 펼쳤다. 누런 천 쪼가리에는 숯으로 적은 듯한 검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제발 저희 마을 좀 살려주십시오.]

삐뚤빼뚤하게 적힌 훈민정음에, 이홍위가 침음성을 삼켰다.

“어찌 된 일인가?”

“……마을에 역병이 들었다 하옵니다. 관리들은 벌써 도망가고, 제대로 상소문도 올리지 않아 다른 관리들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옵니다. 홀로 마을 밖으로 나온 이가 어제 한성에 도착해…….”

“도착해?”

“궁 앞에서 얼쩡거리다…… 잡혔다 하옵니다. 사연을 듣고 안타까웠던 병졸이 그의 서찰을 내관에게 전달했고, 그 서찰을 제가 받게 된 것이옵니다.”

이홍위는 서찰을 내려보며 말했다.

“그자는 지금 어디 있는가?”

“금방 풀려났지만, 궁 주위를 떠돈다 하옵니다.”

“그자와 만나고 싶다.”

이홍위의 명에, 만남이 이루어졌다.

설마, 임금을 만날 줄은 몰랐던 남자는, 누군가 나오자마자 부복했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떨림이 심했다.

이홍위는 부복한 남자를 살폈다. 낡은 옷이 이곳저곳 찢어져 있었고, 보이는 피부에 생채기가 가득했다. 한시라도 빨리 마을을 구하기 위해서 급하게 도성까지 오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을 터였다.

“그대의 마을에 역병이 돈다고?”

“예에. 전하. 제발 저희 마을 좀 살려주십시오.”

가까이서 본 ‘백성’은 대신들과 달랐다. 굳은 표정과 세 치 혀로 머리를 어지럽게 만드는 대신들과는 달리, 순박하고 연약해 보였다.

하지만 마냥 연약하지는 않았다.

이 남자는 자신의 마을을 구하기 위해,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왔다. 궁이 무서운 걸 알면서도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고자 기웃거렸다. 임금인 자신의 앞에서도 두려워하면서도 마을을 살려달라 빌었다.

이홍위는 말로만 들었던, 임금의 의무를 직접 마주 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보는, 나의, 조선의 백성이었다. 이 사람이 할바마마와 아바마마가 지키려고 했던, 그리고 내가 지켜야 하는 조선의 백성이었다.

이홍위가,

[(선)몰락한 조인족 왕의 날개가 발동됩니다.]

아니, 단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금방 의관과 약재를 보내주마. 네가 온 덕분에 모두 구할 기회가 생겼어. 잘 왔다. 참으로 잘 왔어.”

인자한 임금의 목소리에, 마주 잡는 따뜻한 임금의 손에, 남자가 울음을 터뜨렸다. 마을을 구하기 위해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구해주겠노라 말한 것은 이분이 처음이었다. 이제 살았다. 살았어. 안심한 남자는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렸다.

꺽꺽 우는 남자를 단종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김 내관과 호위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문무백관과 종친들이 고개를 조아렸던, 그 대단한 즉위식에서도 알지 못했던 ‘왕의 마음’을 깨닫게 된, 어린 후계자가 진정으로 왕이 된 날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김 내관이 전해준 남자, 강돌의 감사 편지를 읽으며 단종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삐뚤빼뚤한 훈민정음이, 할바마마가 만드신 글자가 더 깊게 다가왔다. 마치, 할바마마가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 같았다.

그리움과 뿌듯함에 단종의 얼굴에 빛이 맴돌았다.

상영관 내에 따뜻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누구보다 자애로운 임금 같은 단종의 모습에 관객들의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조금 전까지 불안하게만 보였던 어린 세자는 어느새 새까맣게 잊어버렸다. 백성을 만나 진정으로 왕의 모습을 갖추게 된 단종의 모습에 다들 감격했다.

이미연이 눈을 반짝였다. 백성을 사랑하는 성군에게서 나오는 아우라가 이런 느낌일까. 어린 왕인데도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에 절로 마음이 뻐근해졌다.

‘진짜 왕이잖아. 누가 봐도 왕인데? 저분이 왕을 하지 않으면 누가 왕을 해?’

“전하.”

수양대군이 나타났다.

……!

저도 모르게 욕을 뱉을 뻔한 이미연이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으니, 수양대군이 나올 때마다 혈압이 오르는 것 같았다. 다른 관객들도 마찬가지인지, 희미한 욕설도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숙부.”

단종이 수양대군을 반겼다.

김종서가 신하 중에서 단종이 의지할 만한 사람이라면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은 종친 중에서 단종이 의지할 만한 사람이었다.

부드럽게 웃는 단종의 모습에 수양대군의 눈썹이 가볍게 떨렸다. 눈치 빠른 수양대군은 단종의 변화를 기민하게 알아차렸다.

단종과 대화를 나누며 하하 호호 웃던 수양대군이 궁을 빠져나왔다. 궁 밖을 향해 걸어가는 수양대군의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웠다.

관객들의 숨소리도 그 걸음에 따라 잦아들었다. 상영관 내에 적막이 흘렀다. 공포영화도 아닌데, 발끝에서부터 긴장감이 흘렀다.

수양대군을 뒷모습만 비추던 카메라가 천천히 앞으로 향했다.

“헉!”

관객들이 화들짝 놀라,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수양대군의 얼굴이 야차같이 일그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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