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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72화 (17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72화

역逆의 마지막 촬영은 강녕전에서 진행되었다.

“서준이는 화면에 안 찍힐 테지만 같이 연기할 겁니다. 없는 걸 있는 척 연기하는 것보다 진짜 있는 게 더 실감이 날 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이지석이 우정한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는 연기할 때, 이질적인 분위기를 내줬으면 해. 악령 찍었던 거 기억나?”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우정한 감독은 볼을 긁적였다. 6살 때 악령을 찍었고 벌써 7년이 지났다.

기억할 리가 없나? 그런 우정한 감독의 걱정과는 달리 서준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기억나요!”

서준의 말에 감탄한 우정한 감독이 말을 이었다.

“그때 연기처럼 기이한 분위기를 내줬으면 좋겠어.”

“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본을 읽고 적당한 능력을 골라왔다.

“그럼 촬영 시작합시다!”

[(악)몰락한 조인족 왕의 날개 깃털-최하급]

바람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라의 몰락을 함께한 마지막 왕의 기세가 나타납니다.

어떻게 한 점의 두려움도, 원망도 없었을까. 끝까지 성에 남았던 조인족의 왕도 많이 망설였고, 고민했다.

그 조인족의 왕이 품고 있던 원망의 찌꺼기가 능력으로 남았다. 찌꺼기인 탓에 최하급이었지만 충분했다.

곤룡포를 입은 서준은 침소 보료에 앉았다.

“레디,”

우정한 감독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준이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래도 악의 능력을 다룰 때는 조심해야 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썼던 선의 능력보다 집중하는 편이었다.

이제,

[(악)몰락한 조인족 왕의 날개 깃털이 발동됩니다.]

영원히 세조에게 달라붙어 있을 단종을 연기할 차례였다.

“액션!”

그와 동시에 감히, 하늘을 거스른 역적의 침소에 천벌과도 같은 불길한 기운이 번지기 시작했다.

* * *

“저거 또 나오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던 박성원이 벌써 몇 번이나 본 [워킹맨!] 예고편에 한숨을 쉬었다.

[낙오된 박영진! 그가 만난 구원자는!?]

“그래. 구원자가 누군지만 보자. 별거 아니기만 해봐라.”

쏟아지는 SBC의 홍보에 질린 것은 박성원만이 아니었다. 인터넷에도 많은 글이 올라왔다.

-별거 아니면 게시판 테러한다. 진지하다.

=22이제 광고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우겠다. 적당히 해라.

-어느 정도 되면 테러 안 함?

=이서준급?

=?? 그냥 테러하고 싶다고 해. 이렇게 ‘우연히’ 만났다고 말해도 진짜 우연히 만났겠냐. 그냥 다 짜고 치는 거지.

=22 이서준급이면 그냥 나와도 모자람.

그리고 [워킹맨!] 방송 날이 되었다.

시골길에서 허둥지둥하고 있는 박영진의 앞에, 커다란 관광버스가 나타났다. 적어도 자가용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던 시청자들은 어이가 없어 말을 잃었다.

-?? 관광버스?? 관. 광. 버. 스으?

-그냥 지금 테러하러 가야겠다

=22 나도 간다

하지만 버스 뒤에 차가 더 있었다. 맨 뒤에 차는 화면으로 봐도 때깔이 달라 보였다.

-???

빛나는 햇살을 받으며,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정말 놀란 듯 화면이 흔들렸다. 나타나는 얼굴을 보고 박영진이 소리쳤다. 시청자들이 진심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서준!?!

-진짜 이서준!?

-이서준이 나왔다고? 어디?!

-이래서 광고를 그렇게…….

[워킹맨!]에서 이서준의 출연은 짧았지만, 박영진은 열심히 홍보했다. 멤버들에게 시도 때도 없이 자랑하고, 게임 중에도 외쳤다.

“역 봐라! 역!”

“……꼭 욕 같이 들리는데.”

“으하하하. 너 서준이랑 같은 차 타봤어? 난 타봤지!”

“으으.”

진심으로 부러워서, 화가 난 최소희와 정훈이 박영진만을 노렸다. 박영진은 낄낄거리며 도망 다녔다. 서준과 한 약속처럼 열심히 홍보했다.

“역 봐라! 역!”

[낙오된 박영진이 만난 스타는 과연?!]

[여기서 네가 왜 나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슈퍼스타!]

[영월! 단종의 유배지에서 촬영!]

[역 봐라! 역! 박영진이 외친 이유!]

-진짜 거기서 왜 서준이가…….

-관광버스 보고 단체여행인가 했는데. 누가 나와도 별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버스 뒤에 공간이 있을 줄이야ㅎ

-이서준이 나왔어ㅋㅋ 이서준잌ㅋㅋ 이서준잌ㅋㅋ

-박영진 운도 좋지. 어떻게 만나도 이서준을…… 나도 만나고 싶다!

-역 봐라! 역!

[워킹맨!]이 방송되고 여울 예중도 떠들썩했다. 지나가면서 다들 진짜 우연히 만난 거냐고 물었다. 주위에 방송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은 만큼, 우연일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긴, 나 같아도 안 믿을 것 같긴 해.’

‘우연히 만나’는 기획이 코코아엔터에도 종종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친구들의 물음에 서준이 어깨를 으쓱했다.

“촬영 가는 중에 만났어. 나도 얼마나 놀랐는데.”

“이렇게 만날 수도 있네. 신기하다.”

떠들썩했던 3월이 지나고, 아이들은 서준을 평범하게 대하게 되었다.

서준이 열심히 생의 도서관을 뒤져서 찾은, 학교 벽에 새긴 능력의 영향도 있지만, 아무래도 일주일에 5일은 만나는 사이가 돼서 그런지,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도 박영진 보고 싶다.”

주경의 말에 서준이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날 더 보고 싶다고 하던데?”

“넌 너무 익숙해졌어. 벌써 5월인걸. 3월, 4월, 5월. 3개월이나 알고 지내서 가끔은 할리우드 스타라는 것도 까먹을 때도 있어.”

주경의 말에 주희와 재한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서준이 연기를 볼 때면, 역시 할리우드 스타! 하면서 매번 놀라지만 말이야.”

“그러게. 나도 이제 좀 안 놀라고 싶은데, 몸이 먼저 반응해 버려. 가끔은 보면서 공부하고 싶은데 감상을 해버린다니까.”

“동의. 나도 그래.”

“난 서준이 연기 계속 보면 눈이 너무 높아질 것 같아.”

재한의 말에 아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서준도 웃었다. 다호 형이 항상 하던 이야기였다.

다호 형은 자신의 눈은 이미 높아져 객관성을 잃었다고 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자신도 모르게 배우들의 연기를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 감상이 취미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라고 했지.’

미안할 이유가 없는데, 괜히 미안해지는 서준이었다.

“오늘은 음악과랑 합동 수업하네.”

“미술과 합동 수업도 재미있는데.”

여울 예중은 음악과, 연기과, 미술과. 모든 과가 합동 수업을 진행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서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를 배우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미술과와 합동 수업을 할 때면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조각을 하기도 한다. 음악과 학생들과 미술과 학생들도 연기를 배웠다.

“오늘 오버 더 레인보우 연주할 거라며?”

피아노를 재미있게 배우고 있는 주희의 말에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응. 바이올린도 가지고 왔어.”

“이서준이 연주하는 오버 더 레인보우를 듣게 되다니, 여기 지원하길 정말 잘한 것 같아.”

아이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1학년 1반, 음악 합동 수업.

1학년 2반뿐만이 아니라 2학년, 3학년, 각 학과 선생님들까지.

여기저기서 들어온 부탁에 결국, 입학식을 했던 여울홀에서 ‘오버 더 레인보우’를 연주하게 된 서준이었다.

‘오랜만에 연주해 보네,’

영화 촬영을 하느라, 바이올린과 관련된 능력을 모두 빼버린 연주였지만, 몸에 익은 바이올린 실력은 어디 가지 않았다.

서준의 화려하고 생생한 연주에,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브라보를 외쳤다.

* * *

역逆의 편집이 끝나고 배우들과 관계자들을 초대한 내부시사회가 열렸다. 서준의 옆자리에 앉은 우정한 감독이 말했다.

“미국에서도 개봉할 예정이야.”

“미국요?”

서준과 안다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우정한 감독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한인들이 많이 사는 곳의 영화관에만 걸릴 예정이긴 하지만 말이야.”

“그렇구나. 많이 보러 올까요?”

“많이 보러 오지 않더라도, 미국과 동시개봉이라는 의미가 있으니까. 솔직히 한 번쯤은 보러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그렇구나. 동시개봉이라면 나라 이모랑 리첼, 에반도 빨리 볼 수 있겠네.’

플러스+의 업로드가 너무 느리다며 한국에 갈까, 고민했던 지인들이 떠올랐다. 나라 이모랑 에반은 잘 보겠지만,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리첼에게 사극은 어려운 영화였다.

“미국 배급사는 정해졌습니까?”

“플러스 쪽에서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마린사를 소개해 줄까, 생각했던 서준과 안다호가 우정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자로 플러스+도 있었다.

“감독님. 예고편은 언제 나와요?”

“어제 편집 끝났어. 아마 내일 자정에 올라갈 거야.”

내부시사회가 성공적으로 끝나고, 영화제작사 단홍에서 보도자료를 뿌렸다.

[6월, 역逆 대개봉!]

[미국에서 동시개봉? 협의 중!]

[단종과 세조의 이야기, 역 개봉!]

[이서준과 이지석의 또 다른 사극! 내의원 팬들이 다시 한번 모였다!]

[오늘 밤 자정! 역 예고편 너튜브, 플러스+ 업로드 예정!]

[오디션부터 시작된 기다림! 역이 개봉한다!]

[과연, 실기 영상의 장면이 나올 것인가?!]

[내일부터 TV광고 시작!]

-오오오. 너튜브? 플러스? 뭐로 볼까?

-11월부터 벌써 5월! 7개월 기다렸다!

-그래도 중간중간 떡밥이 나와서 너무 좋았음ㅎ

=ㅇㅇ 11월은 실기 영상, 1월은 밥차 사진, 2월은 뜻밖의 인연ㅎ 3월은 이서준 입학식, 5월은 예고편!

-촬영 사진 너무 좋았어. 곤룡포 입은 서준이를 보다니!

=22패딩을 입고 있어서 묘하게 현대적이긴 했지만ㅋ

-실기 영상 나올 것 같음?

=나오진 않더라도 분위기는 비슷할 듯

-시간이 너무 느리다.

=이제 겨우 9시.

=10시다!

=11시!

=12시!!

박성원은 자정이 되자마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너튜브 채널[역逆]을 새로고침했다.

“떴다!”

가장 위에 뜬 [제목 : 역逆 예고편]이라고 적힌 영상을 얼른 클릭했다.

박성원과 같은 사람들이 많은지 조회 수가 순식간에 올라갔지만 이미 예고편에 빠진 박성원은 신경 쓰지 않았다.

화면 가득, 회색빛 돌이 보였다.

돌길이었다. 카메라가 천천히 돌길을 비추며 앞으로 나아갔다. 왜 바닥만 보여주지? 고개를 갸웃하고 있을 때, 박성원은 이 돌길과 비슷한 곳을 떠올렸다.

이서준이 사극을 찍는다는 소리에,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단종과 관계된 여행 상품이 만들어지거나, 캐릭터가 만들어지고, 소설책과 조선왕조실록을 현대어로 풀이한 역사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경복궁 관계자들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왕의 즉위식 행사를 열고는 했다. 어떨 때는 어린 왕이, 어떨 때는 수염이 난 왕이 어좌에 올랐다. 누가 봐도 단종과 세조였다.

박성원도 가장 인기가 많은 역사책인 ‘단종의 일생’을 읽고 광화문과 경복궁 등 궁궐을 구경하고 즉위식 행사를 관람했다.

“여기 근정전 앞이잖아?”

커다란 돌들이 바닥에 깔린 곳. 그리고 사극이라면 익숙한 곳이었다. 내의원에서 세종의 즉위식이 열렸던 곳. 근정전이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위쪽, 아래쪽. 두 개의 화면으로 나뉘었다. 두 개의 돌길을 걷는 두 사람의 발이 비쳤다. 같은 신발을 신었지만 크기가 달랐다.

위쪽은 발은 작았고, 아래쪽의 발은 컸다.

주춤거리는 듯 걸음을 옮겼다.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둥!

큰 북소리와 함께, 역의 OST인 듯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두 개의 화면이, 발부터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불안한 듯 손을 꼼지락댔다.

꽉 쥔 주먹에서 힘이 느껴졌다.

두 사람의 하관이 비추었다.

긴장감에 입술이 굳어 있었다.

만족감에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두 사람의 면류관이 흔들거렸다.

긴장한 눈으로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여유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다.

잔뜩 다가왔던 카메라가 멀어졌다. 근정전을 모두 비출 정도로 멀어진 화면으로 두 임금이 어좌에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두 왕을 비추던 화면이 뒤를 돌아 근정전 마당을 가득 채운 신하들을 비추었다.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천세!!”

“천천세!!”

그 외침과 함께, 화면이 뒤집혔다.

면류관의 구슬 사이로 두 임금의 얼굴이 보였다.

거칠 것 없이 자신만만한 눈빛.

두려움 속 작게 피어오른 의지.

두 임금의 빛나는 눈동자를 비추던 화면이 새까맣게 변했다. 그 위로 새하얀 잉크를 품은 붓이 거친 글자를 써 내려갔다.

[역逆]

[6월 대개봉!]

넋을 놓고 예고편을 보던 박성원이 감탄했다.

발걸음부터 손의 움직임과 눈빛까지. 위와 아래가 확실하게 비교되어 더욱더 단종과 세조의 차이점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은 분명히 위가 세조였지?”

‘거스를 역’이라는 글자 그대로, 예고편까지 반역의 느낌이 듬뿍 담겨 있었다.

“한 번 더 볼까?”

박성원은 다시 보기를 클릭했다. 예고편을 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예고편부터 역이라는 느낌이 나네.

-신하들 나오기 전까지는 위가 단종이고 아래가 세조였는데 신하 나오고 난 다음에는 위가 세조고 아래가 단종이야.

-천세 외칠 때 소름. 세조는 천세에 어울리게 오래갔고, 단종은 일찍 죽었잖아.

-예고편 무슨 일이야…… 연출 대단.

-근데 걱정했던 것보다 내의원 느낌은 없는데?

=22 내의원이 뭐냐. 그냥 단종하고 세조인데ㅎ

-빨리 6월 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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