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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71화 (171/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71화

박영진은 초조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차도 인적도 드문 시골길 한가운데, 방향도 제대로 못 잡고 있는 박영진의 모습에 카메라맨과 막내 피디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내가 낙오라니! 낙오라니!!”

출발도 못 하고 있는 박영진이 안쓰러웠던지, 아니면 원래 계획이었던 건지, 잠시 후 막내 피디는 촬영지가 있는 곳의 방향을 알려주었다.

박영진이 그 방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차도, 사람도 없는 길. 막막함에 박영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걸려?”

“걸어서 2시간쯤이요.”

“……제발 누가 좀 지나갔으면…….”

박영진이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그렇게 얼마나 걷고 있었을까, 박영진의 기도가 통했는지, 뒤쪽에서 차 소리가 들렸다.

반색하는 박영진과는 달리, 막내 피디는 아쉬워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차다! 얻어타도 되지?”

“예에.”

“너 너무 실망하는 거 아니야?!”

박영진과 두 사람이 길가에 서서 차를 기다렸다.

제발 빈자리가 있어라, 빌던 박영진은 생각보다 커다란 차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시골길에서는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관광버스. 게다가 한 대가 아닌 것 같았다. 관광버스와 그 뒤를 잇는 차들.

의아함에 세 사람이 눈을 끔벅이고 있을 때, 가장 앞에 있던 관광버스 운전자석의 창문이 내려갔다.

“여기서 뭐하…… 어? 박영진 씨 아닙니까?”

“네. 안녕하세요. 지금 워킹맨 촬영 중인데, 차 좀 얻어 탈 수 있을까요?”

“잠시만요.”

기사가 차를 세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향했다.

막내 피디가 박영진에게 속삭였다.

“단체여행 같은 걸까요?”

“그러게.”

그사이 카메라맨은 카메라로 관광버스 뒤에 있는 차들을 찍었다. 버스와 작은 버스 두 대, 그리고 슬쩍 보기만 해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새까만 차가 한 대.

“영진이 형. 저 차 비싼 차 아니에요?”

“응?”

카메라맨의 부름에 박영진이 뒤쪽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낯이 익은 차였다. 어디서 봤더라…… 박영진이 생각에 빠지려던 찰나, 운전기사가 말했다.

“괜찮답니다.”

“와! 감사합니다! 그럼 어디 타면 되죠?”

관광버스냐, 뒤의 작은 버스냐, 마지막 차냐.

박영진의 질문에 운전기사가 웃었다.

“맨 뒤차에 타시면 됩니다.”

“네! 정말 감사합니다!”

박영진이 희희낙락 맨 끝으로 향했다. 막내 피디와 카메라맨도 어깨를 으쓱하며 걸어갔다.

“사전답사 때는 차가 한 대도 안 다녔는데 말이죠.”

“내가 운이 좋다니까!”

“그러게요. 피디님한테 전화해야겠어요.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것 같다고요.”

막내 피디가 휴대폰을 꺼낼 때, 끝에 서 있던 차 문 앞에 도착했다. 박영진은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차 진짜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딱 봐도 한국에 몇 대 없을 것 같은 차를요?”

“그러니까 말이야. 사진이 아니라 실물로 본 적이 있는데…… 어디서……!”

말을 잇던 박영진은 이 차를 어디서 봤는지 떠올렸다.

이거! 설마!

귀신이라도 본 듯, 경악한 표정의 박영진을 찍던 카메라맨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덜컥, 차 문이 열리는 것 같자 차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새까만 차 문이 스르륵 열렸다.

빛나는 햇살을 받으며, 안에서 사람이 나왔다. 화들짝 놀란 카메라맨 때문에, 카메라가 흔들렸다. 낯익은 얼굴을 보고 박영진이 소리쳤다.

“그래! 서준이 차!”

“아하하. 안녕하세요!”

서준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피디와 통화하던 막내 피디가 소란스러운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네. 피디님.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그리고 거기서, 여기서 볼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배우의 얼굴을 보았다.

막내 피디가 멍한 표정으로 박영진과 인사를 나누는 서준을 보는 사이, 휴대폰 건너 피디가 막내 피디를 불렀다.

-그래서 도착할 것 같다고? 못할 것 같다고?

“……피디님”

-어?

“우리 대박 났어요.”

-뭐? 왜?

“영진이 형이 차를 얻어탔는데,”

-그럼 일찍 오겠네. 스케줄 수정해야겠…….

“차 주인이 이서준이에요.”

-?? 뭐?

“이서준이요. 배우 이서준!”

몇 초간 숨을 멈추고 막내 피디의 말을 머릿속에 입력한 [워킹맨!] 피디가 비명과도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서준과 박영진의 동행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서로의 목적지가 다른 탓에 갈림길에서 헤어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막내 피디의 전화를 받고 급하게 갈림길까지 마중 나온 [워킹맨!] 제작진들이 서준과 박영진을 촬영했다.

“삼촌! 안녕히 가세요!”

“서준이도 촬영 잘해! 영화 꼭 볼게! 홍보도 열심히 할게!”

“네! 피디님도 카메라 감독님도 조심해서 가세요!”

환한 얼굴로 열심히 손을 흔드는 막내 피디에게 메인 피디가 속삭였다.

“막내, 잘 찍었어?”

“네! 허락도 받았습니다. 매니저님이 방송해도 된다고 했어요!”

“이 복덩이! 잘했어!”

이번 회차 시청률은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다들 흐뭇한 얼굴로, 출발하는 역의 촬영팀에게 손을 흔들었다.

* * *

뜻밖의 만남이 지나가고, 목적지인 매죽루에 도착한 촬영팀은 얼른 촬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준과 배우들도 옷을 갈아입고 분장을 마쳤다.

“레디, 액션!”

매죽루에 선 단종의 뒷모습이 쓸쓸했다. 오늘도 어제처럼 애써 울적한 마음을 달래며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데, 김 내관과 강돌이 허둥지둥 달려왔다. 강돌이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엉엉 울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도망갑시다. 전하! 꽁꽁 숨어서 금강산이든 백두산이든 도망갑시다!”

“전하라고 부르면 안 된다니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도망가자구요!”

“예. 전하! 강돌의 말이 맞사옵니다. 얼른 떠나야 합니다. 강돌이 여기 길은 잘 알고 있으니, 어서!”

두 사람의 말에 단종은 직감했다.

“숙부가…… 전하께서 명하셨나?”

“그 호랑 말코 같은 놈이……!”

단종의 말에 강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호랑 말코 같은 놈이 자애로운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차지했다. 게다가 충신들을 죽이고 단종을 귀양보내기까지 했다. 그 역적놈만 생각하면 열이 뻗치는 것 같았다.

김 내관의 안색은 조금 전보다 더 하얗게 질렸다.

“……전하. 얼른 여기서 떠나셔야 합니다!”

그렇군.

말을 돌리는 김 내관에게서 정확한 대답을 들은 단종이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가온 끝 앞에 많은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단종이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결국, 이렇게 끝나는구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영월에 오면서 항상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좋았을까, 저렇게 하면 좋았을까.

자신을 두고 먼저 떠난 아바마마도, 어마마마도 원망했다. 수양 숙부에게 중임을 맡긴 할바마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예감하던 끝이 왔다. 유배 온 날 밤부터 단종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매번 최악의 날을 떠올리며 몸을 뒤척이고는 했다.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 날이 정말로 와버렸다.

상념에 빠진 단종의 귀로 강돌과 김 내관의 외침이 들려왔다.

“어서 도망가자니까요!”

강돌과 김 내관은 당장에라도 단종을 둘러업고 도망갈 기세였다. 그런 두 사람의 마음을 절절히 느낀 단종이 웃었다. 으스러질 것만 같은 웃음이었다.

단종도 도망가고 싶었다. 겨우 17세. 아직 살날이 많았다. 하지만 단종의 발을 붙잡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단종의 어깨를 짓누르던 의무였다.

많은 일을 겪으며 단종은 세조가 어떤 일을 벌일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관리의 허술함을 물어 영월의 관리를 문책하고, 공범이 없나, 도움을 준 이가 없나 영월의 마을들을 뒤집어엎을 터였다.

“내가 도망가면, 전하는 온 천하를 이 잡듯 뒤집을 걸세.”

“전하…….”

단종의 시선에 저 멀리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강돌의 마을이었다. 꺄르르 웃는 아이들과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저곳에서 살고 있었다.

“이곳도 무사하진 못할 거야.”

자신이 살린 사람들이었다. 단종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임금이었던 사람으로서, 백성을 지켜야지.”

강돌과 김 내관이 엉엉 울며 백성을 생각하는 임금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컷, 오케이! 잠시 쉬었다가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우정한 감독의 말에 김 내관 역의 김호영과 강돌 역의 박천일이 눈물을 닦아냈다.

천천히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두 사람과는 달리, 그들의 자애로운 왕이었던 서준은 으샤으샤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서준아. 뭐 마실래?”

“음. 레몬차요.”

스트레칭을 끝낸 서준이 의자에 앉자 안다호가 물었다. 안다호는 레몬차가 든 보온병을 열고, 컵에 조르르 따랐다. 따뜻한 레몬차를 한 입 머금은 서준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서준의 주위가 오늘따라 한산했다. 오후 촬영을 보기 위해 온 이지석과 박운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준과 함께 있었던 지난 촬영과는 달리 오늘은 조금 거리를 두었다.

안다호가 대본을 건네자, 서준이 조용히 읽어내려갔다.

그런 서준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스태프들도 배우들도 조금 떨어져서 서준을 바라보았다. 물론, 대놓고 보지는 못하고 힐긋힐긋 보는 수준이었다.

“어떤 연기를 할지 기대되지 않나?”

“네. 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얼마나 잘할지 기대됩니다.”

박운열과 이지석의 말에, 근처에 있던 단역 배우들이 속닥거렸다.

“잘하려나? 대사도 한 줄 뿐이고 전부 표정 연기인데…….”

“잘하겠지. 그거 궁금해서 저 배우들도 온 거잖아.”

“난 이서준이랑 말이나 한번 나눠봤으면 좋겠다.”

병졸1역을 맡은 단역 배우의 말에 병졸2역의 배우가 말했다.

“전 연기요. 할리우드 영화까지 찍은 배우는 어떻게 연기하는지 눈앞에서 꼭 보고 싶어요.”

엑스트라부터 천천히 성장해 유명한 배우가 되고 싶은 단역 배우들이 병졸2역을 맡은 젊은 단역 배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니까. 제대로 봐둬야지.”

“엑스트라 하면서 다른 배우들 연기도 많이 봤는데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요.”

단역 배우들이 서준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평소라면 예민한 청력 때문에 단역 배우들의 대화를 들으며 쑥스러워했을 서준이었지만, 지금만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머릿속, 대본에 집중한 서준은 머릿속으로 펼칠 연기를 떠올리고 있었다.

잠시 후, 촬영이 시작되었다.

“레디, 액션!”

단종의 영월 거처, 관풍헌의 마당에 단종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모습에 김 내관과 여기 있으면 안 되는 강돌이 나무 뒤에 숨어 울음을 터뜨렸다.

“노산군이 금성대군과 불온한 일을 꾸미려…….”

사약을 들고 나타난 관리가 무어라무어라 말했지만, 단종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단종은 멍하니 사약을 바라보았다. 새까만 사약이, 마치, 환상 속 차가운 물 같았다.

말을 마친 관리가 두어 걸음 뒷걸음질 쳤다.

관리도 궁궐에 떠도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들 입을 다물고 있지만 알고 있었다. 숙부가 조카를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차지한 이야기.

정당한 임금이었던 단종에게 사약을 전해주다니, 잘못된 일을 하는 듯했다. 임금이 하늘인 시대에 천벌을 받을 거라며 숙덕거리던 사람들의 말이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관풍헌에 무거운 침묵이 가라앉았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새소리마저 사라진 침묵 속. 서준의 얼굴 근육이 천천히 움직였다.

새까만 사약이 천천히 단종의 발끝부터 올라오기 시작했다. 질척한 늪에 잠긴 듯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차가워지는 발끝을 느끼며 단종은 두려움을 느꼈다.

궁을 떠난 날부터 예상하고 각오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에 지나지 않았다. 직접 눈으로 보는 죽음은, 속이 울렁거릴 만큼 두려웠다.

어째서 내가 죽어야 하지?

단종의 눈에, 두려움과 함께 의문의 빛이 서렸다.

어째서 할바마마는 숙부에게 중임을 맡겼나. 왕의 가장 큰 적이 될 종친에게 관직을 주는 일은 예부터 금지되어 있지 않았나.

어째서 아바마마는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나.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살아계셔서 나를 이끌어주시지 않으셨나.

단종이 입술을 깨물었다. 억울함과 분통함이 가득 담긴 눈동자가 일렁거렸다.

어째서 나는 도망가지 못했나. 김 내관과 도망갔더라면 살 수 있었을 텐데. 나도 좀 더 살고 싶었어.

왕의 의무가 뭐라고. 백성이 뭐라고. 여기저기 화를 내고 싶었다. 내가 왜 백성을 돌봐야 하지.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단종이 눈을 꾸욱 감았다.

백성 같은 거 무시하고 도망갔으며 좋았을 텐데!

아니.

잔뜩 힘이 들어가 있던 단종의 얼굴이 천천히 풀어졌다.

아니다. 거짓말이었다.

단종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이 나라를 사랑했다. 할바마마와 아바마마처럼 멋진 왕이 되고 싶었다. 큰 힘이 있었다면 많은 일을 했겠지만, 정난 때도, 지금도 단종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숨밖에 걸지 못했다.

수양대군의 반역을 막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애꿎은 백성들이 다치지 않게 도망가지 않았다.

단종은,

정말로 임금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단종은 부드럽게 웃으며 하늘을 보았다.

“……이만하면 잘하지 않았나요?”

그 말에 김 내관과 강돌이 저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단종은 천천히 사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컷, 오케이!”

사약 그릇에 서준의 손이 닿기도 전에 우정한 감독이 컷을 외쳤다.

그 소리에 허공에서 손을 멈춘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조감독이 달려 나와 매가 사냥감을 낚아채는 듯이 사약을 낚아채 달아났다.

‘어, 이게 무슨 일이지?’

텅 빈 반상을 바라보던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사약 마시는 거까지 아니에요?”

“아니, 안 마셔도 돼. 대본상으로는 그랬는데, 직접 보니까 여기서 멈추는 게 좋을 것 같다.”

관람객들이 영화에 너무 몰입해도 좋지 않았다. 하물며 그게 죽음이라면 더욱 그랬다.

우정한 감독은 적정선을 알았다. 그 말에 서준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저거 아까 먹어보니까 맛있던데…….’

색이야 새까매서 먹기 좀 그랬지만, 콜라도 초콜릿도 비슷한 색이 아닌가. 서준이 나중에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동안,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눈물을 찔끔 닦아내고 있었다.

“사약 먹었으면 대성통곡했을 거예요.”

“조감독님. 나이스!”

“저 어린 애가 사약이라니…….”

“실제로는 하인이 목 졸라 죽였다던데…….”

“네!?”

스태프의 말에 다들 놀라 스태프를 바라보았다.

“단종의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가 많아요. 사약설도 있고, 자살설도 있고, 타살설도 있고.”

“진짜 불쌍하네요.”

박운열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이지석도 크흥, 코를 먹었다.

“늙으면 눈물이 많아진다니까.”

“다들 울고 있는데요. 뭘. 서준이 연기 때문이죠,”

“그래. 표정만으로도 화를 내고, 억울하고, 의문을 갖는 걸 다 알 수 있었지. 역시 대단한 배우야.”

“그렇죠?”

자신이 칭찬을 받은 듯 이지석이 씨익 웃었다. 두 배우의 대화에 서준이 참가했다.

서준의 손에는 보온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 스태프에게 가짜 사약 레시피를 물어봤다가, 코가 빨간 다호 형에게 레몬차 보온병을 통째로 받게 되었다.

‘뭐, 레몬차도 맛있지만.’

“선생님. 레몬차 드실래요?”

“그럼. 좋지.”

“나는?”

“조금만 기다려봐.”

레몬차가 든 컵을 건네준 서준이 두 배우의 옆에 앉아 레몬차를 홀짝홀짝 마셨다. 박운열이 웃으며 말했다.

“다음이 마지막 촬영인가?”

“네. 추가 촬영이 없으면 마지막이에요.”

“그럼 둘 다 마지막까지 힘내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단종의 유배지, 영월에서의 촬영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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