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70화
[제목: 이서준이 우리 학교라니!]
여울 예중 음악과 3학년임.
예중 가고 싶어서, 시설도 좋고 지원을 잘해주는 여울 예중에 지원했는데…… 아무래도 중학교가 의무교육이다 보니, 학비를 받을 수가 없어서 예중은 별로 없음(예고 학비 비쌈ㅠ)
그래서 경쟁이 치열한데, 경쟁자가 전국에 내로라하는 또래ㅎㅎ(콩쿠르 1등 2등도 지원했더라ㅋ) 내 성적은 말하지 않겠음.
솔직히, 이서준의 진학은 연기과 이야기라서 별생각 없었음. 어딘가 가겠구나. 생각했는데…….
재작년 10월.
대개봉! 오버 더 레인보우!
벤자민 모튼 교수님, 제이슨 무어에 스트라디바리우스라니! 내가 이거 10번은 본 것 같다!
벤자민 모튼 교수님의 곡이라서 놀라고, 바이올린 연주가 좋아서 놀라고, 스트라디바리우스라서 또 놀라고, 그러다가, 진짜, 그게 이서준이 연주한 거라고 해서 기절할 뻔했음. (나보다 잘함)
그래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서준은 바이올린 전공으로 바꿔도 잘할 것 같음ㅎ
여튼, 오늘 입학식했는데…… 1학년 학부모들 전부 온 것 같더라. (엄마 아빠가 재학생 학부모는 못 가느냐고 물어봄. 두 분 다 이서준 팬인데 당연히 못감ㅎ)
강당에서 1학년들 중에서 찾아보려고 했는데, 안 보였음. 그래서 친구랑 이상하다, 이야기하고 있는데,
무대 위에서 등! 장!
신입생 대표였음ㅎㅎ.
우리 학교 교복 입고 나오는데…… 난 우리 학교 교복이 그렇게 때깔이 고급진지 몰랐다. 이서준만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놓은 교복 산 줄.(참고로 울 학교 공동구매임)
그렇게 멋지게 등장해서, 뚜벅뚜벅 걸어 나와서 교장 선생님께 꾸벅 인사하고(진짜 하나하나가 고급지더라ㅎ) 입학선서문 펼치는데, 어디 국제기구 연설 보는 줄.
사방 밝았는데, 이서준한테만 스포트라이트 켜진 줄 알았다. 혼자 반짝반짝.
목소리는 얼마나 좋은지, ‘선서’ 한마디 했는데……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음ㅎ 입학선서문이 짧아서 아쉬웠던 건 처음이었다ㅎ
그렇게 입학식이 끝났음.
결론은,
우리 학교에 이서준 있다!!
-?? 신입생 대표 선서로 입학식이 끝났다고?
=ㄱㅆ : 뒤에 더 있었지만…… 다 까먹음. 오늘 내 기억은 이서준 선서밖에 없어.
=ㅋㅋ 이해 감ㅋ
-여울 예중 교복 예쁘지 않음? 소재도 좋다던데?
=ㄱㅆ : ㅇㅇ 좋은데, 이서준 교복이 더 좋아 보였다는 거지. 교복이 아니라 명품 정장인 줄.
-나 미술과인데…… 이서준 그리고 있다ㅋ 드라마나 영화도 대단하긴 한데, 본인도 충격적임. 잘생겼음. 뭔가 분위기가 다름ㅋ 진짜 혼자서 반짝반짝했음ㅋ
=ㄱㅆ : 한 장만.
=한 장만…….
=ㅎㅈㅁ…….
[제목: 이서준이랑 같은 반인 친구한테서 들은 이야기]
이서준이랑 같은 반인 친구한테서 들었는데, 이서준 진짜 대단한 것 같음.
여울 예중 실기 영상이 36개인데(이서준 거 빼고) 그걸 다 보고 왔다고 함.
2분짜리 영상이라서 그거 보는 게 어떤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ㅋㅋ 문제는 그 내용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는 거. 적어도 그 반 19명은 다 맞혔다고ㅎ
+어떤 드라마, 무슨 무슨 역 했다는 것까지 맞췄다고 함.
-와. 저렇게 해야 성공하는구나.
-방학이 아무리 길어도 나는 한두 개 보고 말 텐데ㅎ
=22 다 보기도 힘듦. 근데 기억까지 하고 있다니, 대단!
-확실히 초등학교랑은 다르네. 이런 이야기도 나오고.
=하긴, 안 나오는 게 이상했지. 다른 아역 배우는 몰라도 이서준급이면 행동 하나하나 다 알려질 듯.
-학교에선 뭐 안 하나?
=조치를 해도 금방 퍼질걸.
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입학식 후기에 안다호는 기사들을 살폈다.
[배우 이서준, 여울 예중 입학!]
[이서준, 여울 예중 신입생 대표로 서다!]
[교복 입은 이서준, 이제 중학생!]
[사진으로 알아보는 여울 예중 입학식!]
어제 입학식을 했는데, 오늘까지도 기사가 떠 있었다. 댓글도 많았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해외 팬들도 서준의 입학을 축하해 주었다.
“2팀 일이 늘어나겠네.”
지금도 서준의 목격담을 전부 확인하고, 루머는 없나, 살피고, 전혀 상관없는 기사에 정정 요청을 하고 있을 터였다.
‘큰일은 없겠지만.’
초등학교 6년 동안에도 별 탈 없이 지냈던 서준이었다. 안다호는 사람이 더 많았던 초등학교에서도 잘 지냈으니 중학교는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건 다 할 계획이었다.
휴대폰을 내려놓은 안다호가 서준에게 말했다.
“학교에서도 주의하겠다고 했지만, 완벽하게 막기는 힘들 거야. 그래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별 반응은 없겠지만.”
“그렇죠?”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첫 만남이라서 선기를 내보였던 거고, 평상시에는 아무런 마나도 내보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초등학교 때처럼 다른 아이들도 서준을 연예인이 아니라, 친구로 여길 터였다.
‘그래도 6년 동안 지내면서 익숙해진 친구들처럼 금방 익숙해지진 않겠지만 말이야. 음. 학교 건물에 능력을 새길까?’
서준은 생각에 잠겼다.
최상급의 능력이 아니라서 완벽하게 사람들의 입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평범한 서준과 능력이 합쳐진다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고, 인터넷에 올리고 싶은 욕구를 대부분 막을 수 있을 터였다.
‘학교 건물이 얼마나 크더라.’
시설이 잘되어 있다 보니 여울 예중은 학교도 컸다. 전부 커버하기는 힘드니, 1학년이 자주 가는 장소에만 능력을 새겨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마나 공급도 되고.’
서준은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 그런 능력이 있나, 기억을 더듬었다. 적당한 능력이라도 (제작)이라는 타이틀이 붙지 않는 이상, 벽에 새길 수는 없었다.
‘새로 열린 도서관에서 찾아야 할 것 같은데…….’
알맞은 능력을 찾는 데 얼마나 걸릴지, 생각만 해도 아득해졌다.
‘검색…… 검색이 필요해.’
왜 대마도사였고, 대천사였고 대악마였던,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던 전생들은 검색 기능을 만들지 않았을까. 서준은 슬픈 얼굴로 기억도 안 나는 전생들을 원망했다.
“서준아! 옷 갈아입자!”
“네!”
스태프의 부름에 서준은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래의 일은 미래의 서준에게 맡기고 지금의 서준은 촬영을 즐길 생각이었다.
신이 나서 자리를 뜨는 서준을 바라보던 안다호는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준이도 사춘기가 오려나?’
요즘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도 많다지만,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서준은 아직 사춘기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안다호는 의자에 앉아 화장 중인 서준을 바라보다 휴대폰에 ‘사춘기’를 검색했다.
질풍노도의 시기, 신체적 변화, 정서적 변화, 인지적 변화, 자아 중심성 등. 대충 알 것 같은 용어들이 튀어나왔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건…… 정서이려나?’
짜증, 반항, 친구, 다툼, 성장.
‘서준이가 짜증을 내고, 반항하고, 다툰다라…….’
해맑은 서준만 봐왔던 안다호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서준이 부모님과 의논해서 대처방법은 생각해 둬야 할 것 같았다.
이미 수많은 전생을 겪으며 세상 한두 개는 파괴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던 서준은, 안다호의 걱정도 알지 못한 채, 룰루랄라 대본을 읽고 있었다.
* * *
날이 풀리자 몰아두었던 야외촬영들이 이어졌다. 오늘은 단종의 즉위식과 세조의 즉위식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두 즉위식 모두 근정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같은 날 촬영하기로 한 것이었다.
먼저 촬영할 장면은 단종의 즉위식이었다.
“레디, 액션!”
즉위식의 시작은 문종의 시신이 안치된 빈전 밖에서 거행되었다. 최복(상복)을 입은 관리들과 종친들, 그리고 그동안 입고 있었던 상복을 벗고 면복(임금의 대례복)을 입은 이홍위가 문종의 시신에 절을 올렸다.
향을 올린 판통례가,
“부복(俯伏), 흥(興), 평신(平身).”
이라고 말하면 이홍위는 그 말에 따라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허리를 폈다. 수양대군과 같은 종친과 김종서 같은 관리들도 그렇게 절을 올렸다.
장례와 같은 식이 끝나고 정말로 즉위식을 하기 위해, 이홍위와 종친, 문무백관은 근정전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치, 내의원 때의 세종의 즉위식처럼 문무백관들과 종친들이 근정전의 마당에 열을 맞추어 서 있었다.
“어좌에 오르시지요.”
판통례가 부복하며 말했다.
이홍위는 어두운 얼굴로 그 옛날 할바마마와 아바마마가 올랐던 어좌를 바라보았다. 편전과는 다른 압박감에 뒷걸음질 치고 싶었지만, 꾸욱 참아냈다.
뒤에서 느껴지는 문무백관의 시선을 견디며, 이홍위는 계단을 올랐다. 이제 진짜 왕이 되는 것이었다.
‘할바마마, 아바마마, 어마마마. 저를 도와주세요.’
간절히 기도를 올리며, 이홍위가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에 기도를, 한 걸음에 두려움을 담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홍위의 움직임에 따라, 머리에 쓴 면류관의 구슬들이 차르르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끝까지 올라간 이홍위는 후우, 숨을 내쉬고, 몸을 돌려 근정전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쿵.
눈에 보이는 문무백관들의 압박감에, 이홍위의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숨이 턱 박히는 것 같았다.
굳은 다리를 애써 움직여, 어좌에 앉은 이홍위는 허리를 곧게 펴고 떨리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이홍위는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는 어리다고 움츠러들면 안 되는 자리였다. 이홍위는 할바마마와 아바마마의 위엄을 떠올리며 표정을 바로 잡았다.
[(선)몰락한 조인족 왕의 날개가 발동됩니다.]
서준은 선기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아직은 아니었다. 지금의 이홍위는 그저 세종과 문종의 모습을 따라 하는 이홍위일 뿐이었다.
[[(선)몰락한 조인족 왕의 날개-중급]의 등급이 일시적으로 낮아집니다.]
[(선)몰락한 조인족 왕의 날개(하급)이 발동됩니다.]
중급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가능해진 ‘일시적 등급 조정’이었다.
지금까지는 능력을 발동할 때 필요한 마나보다 적을 때는 발동이 되지 않았는데, 중급의 도서관 문을 연 다음부터는 마나의 양에 따라 능력의 등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상승은 안 되지만…… 이거라도 어디야.’
참새의 날개 같은 조그마한 날개가 서준의 등에서 솟아나, 팔랑팔랑 움직였다. 날개를 따라 산들바람 같은 왕의 기세가 흘러나와 서준을 감쌌다.
어좌에 앉은 이홍위에게서 희미한 왕의 기세가 흘러나왔다. 그 기세가 바람을 타고 근정전으로 퍼져 나갔다.
가장 먼저 그 가느다란 위엄을 느낀, 통찬 역의 배우가 외쳤다.
“산호!”
종친과 문무백관이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두 손을 마주 잡고 이마에 대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일제히 외쳤다.
“천세!”
근정전이 떠나가라 들리는 큰소리에, 촬영장 내에 있던 배우들은 물론이고, 스태프들과 감독들이 몸을 떨었다.
다시, 자신의 역할에 한껏 몰입한 통찬이 외쳤다.
“산호!!”
속마음이야 어떻든, 어좌에 오른 임금에게 예를 갖춘 수양대군과 김종서가 외쳤다.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문무백관들이 크게, 아주 크게 외쳤다.
“천천세!!”
우렁찬 소리가 세트장을 울렸다.
“컷, 오케이!”
촬영해야 하는 사람이 많아서 NG 한두 번은 날 줄 알았는데, 한 번에 끝나버렸다. 아직 클로즈업샷과 바스트샷이 남았지만, 이것도 금세 끝날 것 같았다. 촬영 시간을 가늠하던 우정한 감독이 조감독에게 물었다.
“의상팀에 세조 대례복 준비하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어쩐지, 오늘도 조기퇴근 할 것 같아, 조감독이 신나게 의상팀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 *
“레디, 액션!”
대례복을 입은 수양대군이 여(가마)에서 내려 성큼성큼 어좌가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떨리는 마음에 천천히 움직였던 이홍위와는 달리, 두려움 한 점도 없이 시원시원한 걸음이었다.
수양대군의 걸음에는 앞으로 조선을 이끌어 나가겠다는 의지와 결국 이 자리를 차지했다는 만족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홍위의 즉위식과 상반된 수양대군의 분위기에 모두 숨을 죽였다. 서준은 멋진 연기를 보여주는 이지석에게 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수양대군이 어좌에 앉자, 통찬이 외쳤다.
“산호!”
종친과 문무백관이 왼손을 오른손 위에 놓고 두 손을 마주 잡고 이마에 대었다. 그리고 3년 전, 어린 임금의 즉위식 때처럼 외쳤다.
“천세!”
다시, 통찬이 외쳤다.
“산호!!”
피바람이 불었고, 어린 상왕은 아직 궐에 있었다.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이 자리에 모인 관리들은 짐작하고 있었다.
정난(靖難)이라고 말하는 반역의 공신들이 하늘을 보며 웃었다.
반역으로 임금을 잃은 충신들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천천세!!”
커다란 외침 사이로,
결국, 하늘을 거스른 남자가 보였다.
세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