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69화
주경과 이야기를 나눈 서준이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서준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아이들은 어깨를 움츠렸다. 아무래도 지금은 같은 반이라는 인식보다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더 강한 것 같았다.
특히, 여울 예중 연기과 1학년들은, 연기를 배우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서준에 대한 동경은 더욱 강했다.
스무 살도 안 된 한국인 배우가,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고,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하고 아카데미 상까지 받을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이서준’이라는 배우가 나타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점점 더 조용해지는 교실의 분위기에 서준은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뭐, 내가 먼저 인사하면 되지.’
서준은 옆에 앉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 난 이서준이야.”
서준이 자신에게 인사를 할 줄은 몰랐던지, 아이는 잠시 놀란 얼굴로 서준을 바라보다가 얼른 대답했다.
“아, 안녕. 난 강재한이야. 만나서 정말 반가워!”
“나도. 실기 영상 잘 봤어. 연기 잘하더라.”
“어? 그거 봤어?”
“응. 창작이었지? 되게 인상 깊었어.”
서준은 너튜브에 업로드된 강재한의 실기 영상을 떠올렸다. 조금 떨기도 했는데, 연기를 시작하면 연기에 푹 빠진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물론, 부족한 점이 보이기도 했지만, 나이를 생각하면 제법 잘했다.
‘그러니까, 합격했겠지만.’
서준의 말에 강재한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니, 그걸 어떻게 알지?’
너튜브에 올리기는 했지만, 서준의 실기 영상의 조회수와 비교해 보면 마치 태양과 반딧불이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그 조회 수 중 하나가 이서준이었다고?’
강재한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그대로 멈추었다.
헐. 헐.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던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튀어나왔다. 양주희와 장난치듯 티격태격하던 주경이 얼른 서준에게 다가왔다.
“서준아. 내 것도 봤어?”
“응. 제일 먼저 봤어.”
서준의 말에 주경의 뒤에 서 있던 양주희가 말했다.
“안녕. 난 양주희야.”
“안녕. 이서준이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네가 나온 작품은 다 봤어. 정말 잘하더라.”
주희의 말에 주경과 재한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고마워.”
“근데…… 강재한? 이라고 했지?”
‘안녕.’ 주희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재한도 살며시 손을 흔들었다.
“주경이야 아는 사이니까 봤을 테지만, 재한이 영상을 본 이유가 있어? 특별히 다른 애들보다 잘해서 본 거야?”
기자들이 들었다면 단박에 [할리우드 스타 이서준이 선택한 아역 배우!]라는 기사가 뜰 게 분명한 말이었다.
주희의 말에 아이들의 시선이 서준과 재한에게로 쏠렸다. 재한은 다시 숨 쉬는 걸 잊어버렸다.
“아.”
“아?”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주희와 아이들의 모습에 서준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볼을 긁적였다.
“그, 다 봤는데…….”
“뭘 다 봤다는…….”
주희가 눈을 크게 떴다.
“실기 영상을 다 봤다고?”
주희의 말에 아이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의 격한 반응에 서준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대답했다.
“응. 다 봤어. 서른여섯 개.”
휴대폰을 들고 있던 아이가 얼른 너튜브 [여울 예중] 채널에 들어갔다.
40명의 입학생 중 실기 영상을 공개한 37개. 그중 하나가 이서준, 본인 것이라고 하면 36개 전부를 본 게 정말이었다.
“……36개야.”
아이의 말에 소리 없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주경이 눈을 반짝였다. 주경도 몇 개 보기는 했지만 전부 볼 생각은 못 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주희가 다른 아이들이 하고 싶은 질문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내 것도 봤어?”
“응. 돌고 돌아, 우리 학교. 이유나 역 대사였지?”
“……세상에.”
주희가 놀란 표정으로 서준을 바라보았다.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저 스치듯 본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다른 아이들의 눈이 빛났다. 누군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내 것도 봤어?”
“응. 내일도 여기서 만나자, 박수혁 역이었지?”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입을 쩌억 벌린 아이의 표정에서 서준의 말이 정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또 다른 아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내 건?”
“진짜 잘 봤어. 봄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내 것도?”
“연극 보물찾기였지? 영상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대본 찾아봤어. 영상 있으면 어디 있는지 알려줄래?”
세상에.
서준은 반 아이들의 실기 영상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물음에 열심히 대답하는 서준을 보던 주희가 주경의 옆구리를 찔렀다.
“저 정도는 해야, 할리우드 스타가 되는 거야?”
“아니. 할리우드 스타도 저 정도는 아닐걸?”
“진짜 대단하구나. 이서준.”
반짝거리는 연예인 아우라에, 잘생긴 외모에, 이런 상상 이상의 대단함이라니. 진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아이의 실기 영상을 확인한 서준이 허허 웃었다. 공개하지 않은 세 사람은 2반인 모양이었다.
“이런 말 하면 이상하긴 한데…… 어째서 다 본 거야?”
강재한의 말에 서준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쩌면 같은 작품에 출연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다들 어떻게 연기하는지 궁금했어.”
“그럼, 다른 배우들하고도 연기할 때, 예전 작품을 찾아보기도 해?”
주희의 질문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될 수 있으면 찾아보려고 노력해. 작품이 많은 배우는 다 찾아보기는 힘드니까, 가장 최근 작품 몇 개만 볼 때도 있지만 말이야. 실기 영상은 2분 이내로 짧았고 방학 기간이었으니까, 다 볼 수 있었어.”
“그렇구나.”
“할리우드 배우 작품도 봐?”
할리우드 이야기에 아이들이 귀를 기울였다. 허황된 꿈일지도 모르지만, 할리우드에 진출하고 싶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여기, 그 허황된 꿈을 일찌감치 이룬 배우가 있었다.
“응. 폴이랑 캐서린 작품도 봤어.”
“와…….”
“할리우드 촬영은 어때? 한국이랑 많이 달라?”
“아무래도 제작비 차이가 있으니까, 스케일은 할리우드가 더 큰 것 같아. 세트장도 어마어마하게 크고.”
“그렇구나.”
아이들은 서준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서준은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을 보며,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재미있게 몇몇 이야기를 풀어냈다.
“나트라 우주선이라. 나도 보고 싶다.”
“할리우드 배우들이랑 파티라니…….”
동경은 그대로였지만, 그래도 서준을 대하는 게 편해진 듯한 아이들의 모습에 서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교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 2학년이나 3학년 학생인 것 같았다. 학생이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기…… 이, 서준 학생, 있어요?”
“네.”
서준이 손을 들자, 학생이 화들짝 놀랐다가, 말을 이었다.
“좀 있다가 입학식 할 건데, 이서준 학생이 신입생 대표라서요. 지금 가야 해요.”
“네. 알겠습니다.”
“서준아. 잘해!”
주경의 말에, 아이들도 한마디씩 응원했다. 서준이 손을 흔들고, 선배의 뒤를 따라 강당으로 향했다.
* * *
“이서준 학생 데리고 왔습니다.”
등 뒤에서 아우라를 풀풀 풍기는 서준을 홀로 데리고 온 2학년생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부담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방송 기계를 만지고, 조명을 조절하고, 대본을 살피던 방송부 학생들이 일제히 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반짝이는 서준의 모습에 넋을 놓았다. 서준이 허허 웃었다. 오늘로 벌써 2번째 보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이서준입니다.”
서준의 후광이 눈부신 듯, 가늘게 눈을 뜨고 있던 학생들이 서준의 인사에 정신을 차렸다. 방송부 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준을 반겼다.
“어, 어. 안녕.”
연기과 3학년인 부장의 떨리는 목소리는 어쩔 수 없었다.
세상에. 진짜 이서준이야! 이서준! 연기과 학생들이 입을 틀어막고 서준을 바라보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같은 학교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인사 한마디 뱉고는 다시 넋을 놓은 연기과 학생들의 모습에 그나마 미술과, 음악과 학생들은 점점 정신을 차리고…….
“나 바이올린 전공인데!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어땠어?!”
아니었다.
그 멋진 연주 실력을 알고 있는 음악과 학생들도 멍하니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벤자민 모튼 교수님과 바이올리니스트 제이슨 무어와 알고 지내다니! 게다가 바이올린 연주도 엄청 잘해!
연기과, 음악과 학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금방이라도 질문을 쏟아낼 것 같은 모습에, 서준의 영향력이 닿지 않은 미술과 3학년 부부장이 미술과 학생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미술과 학생들이 옆에 있던 타과 학생들의 입을 막았다.
그제야 좀 진정이 된 분위기에, 부부장이 부드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난 방송부 부부장, 이지현이야. 미술과 3학년이고. 애들이 널 엄청 보고 싶어 했어. 데리러 가겠다고 싸울 뻔했다니까. 근데 직접 보니까 이해가 돼. 뭔가 일반인이랑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 나중에 그림 모델 해주지 않을래? 소묘는 우리 학교에서 내가 제일 잘해.”
미술과 부부장, 이지현이 자연스럽게 사심을 드러냈다.
“부부장까지!”
“야! 이지현! 내가 먼저야! 서준아. 오버 더 레인보우 합주 한 번만 해주라!”
“우, 우리랑 같이 연극 하지 않을래?”
엉망진창인 분위기에 서준은 하하 웃고 말았다. 수선스러운 분위기에 당황하긴 했지만, 합주도, 그림 모델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연극이야 고민할 거리도 아니었다. 작품만 좋다면야, 연극이든 영화든 이미 승낙할 준비가 된 서준이었다.
“자자. 적당히 하고. 입학식 준비해야지.”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선생님으로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아, 쌤. 너무 빨리 온 거 아니에요.”
“벌써 시간 다 됐어. 부장은 빨리 방송하고.”
“네에.”
선생님의 말에 아쉬운 표정의 학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장이 서준에게 입학선서문을 전해주었다.
“여기 선서문. 나중에 순서가 되면, 교장 선생님께 인사하고 관객석 보면서 읽으면 돼. 마이크도 있으니까 자리 찾는 건 쉬울 거야.”
“네. 알겠습니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부장이 아쉬운 얼굴로 서준을 한 번 바라보고 자신의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여울 예술중학교 11회 입학식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각 반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과 함께 여울홀로 모여 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잔뜩 긴장하던 얼굴은 어디로 던져버린 건지, 마이크 앞에 자리를 잡은 부장의 뚜렷한 목소리가 전 교실에 울려 퍼졌다. 발성, 톤, 대본을 읽은 속도까지 어디 하나 나무랄 데가 없었다.
‘역시 3학년이네. 나도 잘해야겠다.’
2학년이 안내해 준 자리에 앉은 서준이 입학선서문을 읽어 내려갔다.
* * *
[지금부터 여울 예술중학교, 11회 입학식을 시작하겠습니다.]
관객석에 앉은 신입생들과 2, 3학년 학생들, 학부모들이 박수를 쳤다.
무대와 관객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여울 예중의 다목적홀은 ‘여울홀’이라는 이름이 있었지만,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편하게 강당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이 여울홀에서 학생들의 연극이 상연되고 음악회도 열리고는 했다.
여울 예술중학교 교장 선생님의 개식사를 시작으로 이사장 등 내빈 소개, 국민의례, 입학 허가 선언이 이어졌다.
[다음 순서는 신입생 대표의 선서가 있겠습니다.]
신입생 대표가 누군지 아는 선생님들과 연기과 1학년 1반이 술렁였다. 다른 사람들의 의아함도 잠시, 무대 옆에서 나타난 신입생의 모습에, 여기저기서 감탄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서준이다!”
“이서준이 신입생 대표였어!”
자세히 보기 위해 엉덩이를 들썩이는 사람 중 유난히 바쁜 두 사람이 있었다. 1학년들 사이에서 서준을 찾던 서은혜와 이민준이었다.
“어쩐지, 아무리 찾아봐도 없더라니!”
“여보. 카메라. 카메라!”
“여기 있어. 잘 찍어야 해.”
“서준이 찍은 것만 해도 십 년이 넘어. 맡겨둬!”
서은혜가 눈을 반짝이며 카메라 렌즈로 서준을 찍었다.
교장 선생님에게 꾸벅 인사한 서준은 뒤를 돌아 관객석을 마주 보고 섰다. 서준이 손에 들고 있던 입학선서문을 펼쳤다. 서준의 몸에서 선기가 흘러나와, 반짝반짝한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그림 같아, 미술과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손이 근질근질했다.
“선서.”
서준의 차분한 목소리가 강당을 울렸다.
이서준의 등장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학생들과 학부모, 선생님들이 하나둘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 하나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서준의 모습에 연기과 학생들이 감탄했다.
“저희 신입생 120명은 교칙을 성실히 준수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숨을 죽인 사람들의 귀에 콕콕 박히는 목소리였다. 전달력이었다. 어떤 영화의 명대사를 들은 것 같았다. 좀 더 길었으면 좋겠지만, 선서문은 짧았다.
“신입생 대표, 이서준.”
찰나 같은 선서를 마친 서준이 꾸벅 인사를 하자, 박수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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