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슈퍼스타-165화 (165/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65화

“지수야!”

-아빠!

“전…… 전화를 왜 이렇게 많이 했어? 무슨 일 있어?”

-어, 여기 병원인데…….

“병원?”

김호영의 외침에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디, 어디 병원? 다쳤어?”

-아니, 안 다쳤어. 그냥 검사만 한대.

“왜…… 왜 검사를 해?”

-놀러 간 데 불났거든. 근데 금방 대피해서 다친 데는 없어.

불.

몇 년 전 아내를 잃게 하였던 그 망할 것이 다시 나타났다. 다리에 힘이 풀린 김호영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서준과 우정한 감독이 김호영에게로 달려갔다.

-다친 사람도 없어. 다 대피했어. 있잖아. 비상벨이 울리니까, 아빠랑 같이 본 한 걸음이 딱 생각나는 거 있지?

떨리는 김호영의 손가락이 휴대폰 액정을 스쳤다. 스피커모드로 전환된 휴대폰 속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들렷다.

한 걸음?

선기로 김호영을 진정시키던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처음에는 놀라서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그게 생각나니까, 바로 대피할 수 있었어. 손수건에 물을 적셔서 입이랑 코도 막고 비상구로 대피했어.

“정말 다친 데는 없어?”

거의 울먹이듯 말하는 김호영의 목소리에 전화 건너 아이는 더 활기차게 말하는 것 같았다.

-응. 완전 괜찮아!

“다른 친구들은?”

-다들 괜찮아. 부모님들 만나서 긴장이 풀렸는지 울고 있긴 해.

“아, 아빠도 갈까?”

그렇게 말한 김호영이 화들짝 놀라 우정한 감독과 서준을 바라보았다.

촬영이란 게 한둘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일정을 맞춰 해나가야 했기 때문에, 이미 정해진 일정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게 이서준이나 이지석 같은 유명한 배우도 아니고 자신 같은 신인 배우라면 더더욱 그랬다.

‘오후 촬영도 있고…….’

촬영장과 병원이 멀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다녀오기도 쉽지 않았다. 이서준과 이지석, 그리고 스태프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당장 달려가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김호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김호영의 마음을 알아차린 서준이 우정한 감독에게 눈짓하면서 입을 열었다.

“감독님. 오후 촬영 바뀌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서준의 완벽한 연기에, 우정한 감독이 ‘그랬었나?’ 하고 생각하다가, 서준의 생각을 눈치채고는 얼른 말을 맞추었다.

“아이고. 내가 말하는 걸 깜빡했습니다. 호영 씨. 오후 촬영 장면이 바뀌었어요.”

서준이 완벽한 연기를 펼치면 뭐하나, 우정한 감독이 다 말아먹는데. 서준이 짠한 눈으로 우정한 감독을 바라보았다.

‘우 감독님은 연기하면 안 되겠다.’

어색한 연기를 펼치는 우정한 감독의 모습에, 스태프들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알 것 같았다.

감독이나 상황에 의해 촬영 일정이 바뀌는 건 꽤 있는 일이었다. 영화촬영의 총책임자인 우정한 감독과 주연배우 이서준이 그렇다고 하니, 스태프들도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뭐, 이런 일도 있는 거지.”

“이번 영화 촬영이 순조로워서 의아하긴 했어.”

NG가 거의 없는 이서준이다 보니, 예상했던 촬영 시간보다 일찍 끝날 때가 많았다. 오늘 오후 촬영이 미뤄져도 금방 메꿀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김호영이 안돼 보이기도 했다. 스태프들에게도 가족에게 일이 생겼을 때, 일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서준이 김호영의 손을 잡았다. 떨리던 김호영의 손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저랑 지석이 형만 있으면 찍을 수 있는 장면이에요. 원래 장면은 다른 날 찍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얼른 가 보세요. 삼촌.”

“아…….”

“다음 촬영 날에는, 촬영 일찍 끝나서 오늘 분량 채울 수 있게 NG 내지 않고 열심히 해요. 우리.”

서준의 환한 미소에, 김호영은 목이 따가워지는 것 같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안다호가 김호영의 짐을 챙겨왔고, 우정한 감독은 택시를 불렀다.

자리에서 일어난 김호영은 촬영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깊이 허리를 숙였다. 서준과 우정한 감독의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김호영도 알고 있었지만, 병원에 있을 딸을 생각하면 그 호의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다들, 정말 감사합니다.”

서준과 우정한 감독이 얼른 가라고 손짓했다.

택시에 오른 김호영이 눈물을 쏟을 것 같은 눈을 꾸욱 누르며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수야. 아빠가 지금 갈게.”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보던 서준이 흐뭇한 얼굴로 촬영장으로 돌아갔다. 좋은 일을 하긴 했지만, 제 마음대로 촬영 일정을 바꾼 것은 사과해야 했다.

“죄송합니다.”

서준이 우정한 감독에게 사과하자, 우정한 감독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나도 호영 씨 보내려고 했어.”

오히려 김호영을 바로 보내주지 못해서 미안했다.

‘내 마음대로 보내주기엔, 아무래도 서준이랑 지석 씨 스케줄이 꼬일 테니까.’

잠시 생각하던 우정한 감독이 말했다.

“뭐, 이렇게 된 김에 진짜로 일정을 바꿀까?”

“그래도 돼요?”

그 말에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단종이랑 수양대군이 김내관 없이 여기서 만나는 장면이 있어. 짧은 신이라서 금방 끝날 테지만 아예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네. 좋아요.”

정말로 촬영 일정이 바뀌어버렸다.

예상 밖의 일로 점심시간이 잠깐 지체됐지만, 스태프들은 점심을 먹기 위해 밥차로 향했다. 밥차에서 점심을 받아온 스태프가 입을 열었다.

“근데 화재 사고면 뉴스 나오는 거 아니야?”

“호영 씨 딸은 괜찮다고 하던데…….”

한 손에는 젓가락을 들고 한쪽 손에는 휴대폰을 든 스태프가 인터넷뉴스를 살펴보았다. 기사들로 도배되어 있었기 때문에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오늘 오전 10시경, OO동 5층 건물 화재. 2층에서 불나서 사람들이 1층으로 못 내려왔대.”

“헐. 그럼 어떻게 피했대?”

“옥상으로 대피했대. 경상자 1명 빼고는 다 무사하고.”

“다행이네.”

여러 기사를 살펴보던 스태프의 손이 멈추었다. 눈을 깜박였다.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아니, 이거…… 이게 왜 여기서 나오지?”

스태프가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수많은 목숨을 구한, 한 걸음!]

기사를 읽던 스태프들이 입을 쩌억 벌렸다.

* * *

“어디 안 다쳤대?”

서준의 이야기를 듣던 이지석이 물었다. 이지석은 생각보다 빨리 촬영장에 나타났다.

그래서 서준과 함께 점심을 먹게 되었다. 세상에. 호영 씨의 딸이 화재 사고에 휘말리다니.

걱정 가득한 이지석의 눈빛에 서준이 얼른 대답했다.

“통화상으로는 괜찮은 것 같았어요.”

“호영 씨도 엄청 놀랐겠다.”

“네. 운전도 못 할 것 같다면서 우 감독님이 택시 불렀어요.”

이지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이 위험했다는데 제정신일 부모는 거의 없었다.

“그럴 때 운전하면 더 큰일 나지.”

“그래서 촬영 장면이 바뀌었는데, 괜찮아요?”

“괜찮아. 지금 하는 것도 이것뿐이라 스케줄도 널널하고.”

그때, 같은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고 있던 안다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코코아엔터 2팀의 메시지였다.

>뉴스! 뉴스! KBC!

“누구예요?”

“2팀인데. 뉴스 보라는데?”

안다호가 휴대폰에 KBC 뉴스를 띄었다. 서준과 이지석, 윤성오가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OO동 화재 사고!]라는 뉴스 타이틀과 함께, 환자복을 입은 여자가 보였다. 카메라가 낯선 모양인지 자꾸만 시선을 피하며 볼을 긁적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대피하셨다고요?]

“네.”

[이유가 있나요?]

“코인노래방 방은 CCTV가 설치되어 있어서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데 화장실에는 CCTV가 없거든요. 혹시라도 화장실에 손님이 있을까 봐 찾으러 갔었어요.”

[침착하게 대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요?]

“아마, 한 걸음 덕분일 거예요.”

한 걸음.

서준과 이지석이 눈을 깜박였다.

“한 걸음이면, 서준이가 찍은 그건가?”

“……여기서요?”

여자를 인터뷰하던 기자가 당황한 듯 말했다.

[한걸음이요?]

“네. 제가 이서준 배우 팬이거든요.

그 이서준 배우가 실시간으로 본인을 인터뷰를 보고 있는지 모르는 여자가 환하게 웃었다.

“이서준 배우가 나온 영상은 전부 여러 번 보는데 한 걸음도 여러 번 봤어요. 그 기억이 떠올라서 침착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인터뷰는 119에 신고했다는 아이였다.

[어떻게 침착하게 대피할 수 있었나요?]

“어…… 학교에서 화재 훈련을 할 때 한 걸음을 보여줬어요. 한 번밖에 못 봤는데, 비상벨이 울리니까 갑자기 떠올랐어요. 이서준을 따라 하니까, 잘 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이외의 몇몇 사람들도 한 걸음이 침착함을 얻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줬다고 했다.

다른 스태프들도 뉴스를 보는지, 촬영장이 조용해졌다. 우정한 감독도, 촬영감독도 휴대폰에 빠져 있었다. 그때였다. 텔레비전 화면에 아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호영 삼촌이다.”

“어? 그러네?”

막 기자가 인터뷰하려는 병원복을 입은 여자아이 뒤로 다급한 김호영의 얼굴이 보였다. 그 얼굴을 알아본 스태프들도 한두 마디 입을 열었다.

“지수야!”

“아빠!”

딸의 목소리에 얼른 다가오려던 김호영이 카메라와 기자의 모습에 잠시 주춤했다가, 놀라 달려왔다.

“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뉴스 인터뷰! 우리가 잘 대피해서 어떻게 대피한 건지 물어보는 거래.”

“네. 중상자 하나 없이, 다들 잘 대피하셔서요. 어떻게 대피했는지 많은 시청자분에게 알려줬으면 해서 인터뷰를 하는 중입니다.”

기자의 말에 당황하던 김호영은 김지수가 잡아주는 손에 후우 한숨을 쉬고 뒤로 물러났다. 눈으로 딸의 모습을 살피던 김호영의 얼굴에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괜찮은가 보다.”

“그러게요.”

서준과 이지석, 스태프들이 김호영의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기자가 김지수에게 물었다.

[침착하게 대피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나요?]

“한 걸음 덕분이에요.”

텔레비전 화면 속 여자아이, 김지수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한 걸음이요?]

“이서준 배우가 나왔던 영상이요. 비상벨이 울리니까 머릿속에 번쩍 떠올랐어요. 동영상에서 아이들이 한 대로 입을 가리고 출입구를 찾았어요.”

기자는 별생각 없이 물었다.

남겨진 사람이 없나 살피기 위해, 제일 마지막으로 대피한 여자는 이서준의 팬, 119에 신고했던 아이는 학교 훈련 때문에 영상을 봤다고 했다. 이 아이도 아마 그런 이유일 터였다.

기자는 그게 어마어마한 특종이었다는 걸,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 한마디로 보너스를 받는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어떻게 한 걸음을 시청하게 됐나요?]

“아빠가 이서준 배우랑 같은 영화에 출연하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계속 이서준 배우가 나온 영화랑 드라마를 찾아서 같이 보고 있어요. 한 걸음도 그때 봤어요!”

지수의 말에, 뉴스를 보고 있던 사람들도, 병원에 있던 사람들도, 기자도, 카메라맨도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지금, 잘못 들었나? 누구랑 어디에 나온다고?

그런 의심도 옆 침대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사그라들었다.

“맞아요! 지수 아빠가 이서준이랑 같은 영화에 나와요!”

“같이 찍은 사진도 있어요!”

옆 침대에 있던 지수의 친구들이 재잘재잘 떠들었다. 기자의 머리가 천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 그러니까 지수양 아버지가 이서준 배우랑 영화 촬영 중이라구요? 그러니까, 역逆이요?]

“네! 오늘도 촬영하는 날이었어요.”

자랑스럽게 말하는 지수의 모습에 카메라맨이 저도 모르게 카메라 렌즈를 옆으로 돌렸다. 당황한 김호영의 얼굴이 비쳤다.

“세상에.”

상황을 파악한 서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공익 영상이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능력도 연기보다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인 능력을 썼다.

그런데 그 영향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느낄 줄은 몰랐다. 서준의 능력이, 서준의 연기가, 호영 삼촌의 딸을 구한 것이었다.

‘아니, 구한 건 아닌가……’

영상이 없었어도 무사히 대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럴 가능성을 생각하면서도 서준의 입꼬리는 실룩 실룩거렸다. 정말 기뻤다.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기쁜 일이었는데, 아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 기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서준이 뿌듯해하는 사이, 우정한 감독의 휴대폰이 울렸다. 촬영 감독의 휴대폰이 울렸다. 촬영장 안에 있는 사람들의 전화가 울려대기 시작했다.

[제작사 단홍, 홍보팀장]

멍한 얼굴의 우정한 감독이 전화를 받았다.

-우 감독님! 지금 뉴스에 나오는 사람, 김내관 역의 김호영 배우 맞죠!?

“예에.”

-진짜 김호영 배우 딸입니까?!

“예에.”

-김호영 배우 딸이, 이서준 배우 영상을 보고 대피할 수 있었다고요?!

“……그런 것 같습니다.”

-대박!

[OO동 화재사고, 모두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었던 이유! 한 걸음!]

[소방청 공익 영상! 제대로 일냈다!]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아르바이트생! 네티즌들의 칭찬이 쏟아져!]

[세상에 이런 인연이?! 배우 이서준과 배우 김호영의 인연!]

[배우 김호영, “공익 영상을 만든 소방청도, 잊지 못할 연기를 해준 이서준 배우도 모두 감사하다.”]

-우리 집에서도 연기가 보이길래, 몇 명은 크게 다칠 줄 알았는데 아니라서 너무 좋음.

=다들 무사해서 내가 더 기쁘네.

-공익 영상. 진짜 효과가 있긴 하구나.

=22 나도 쓸모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효과가 있었어.

-알바생. 너무 멋지다ㅠ 나 같으면 못 갔을 텐데.

=옥상 열쇠 찾은 사람도 저분이라고 함ㅠㅠ

=옥상 열쇠 복사해놓은 사장님도 멋짐ㅠㅠ

-이서준이랑 김호영이랑 같은 영화에 나오는데 김호영 딸이 이서준 영상보고 무사한 거임? 영화가 따로 없네ㅎ

=MBS 서프라이즈 소재 아님?ㅋㅋ

=OO동에서 일어난 화재! 화재현장에 있었던 김호영의 딸!

=다행히, 김호영의 딸은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1년 전. 한 공익 영상이 방송되었다.

=알고 보니 그 공익 영상의 주인공이 바로 김호영이 출연하고 있던 영화의 주인공!

=배우 이서준이었던 것이다!

=ㅋㅋ단합력ㅋㅋ

-근데 다 한 걸음 떠올렸다는 게 신기함.

=그러게. 이서준 연기가 그 정도로 인상 깊은가 봄.

-이 정도면 살면서 꼭 봐야 하는 필수 영상 아닌가?

=그런듯ㅋㅋ 한 번 더 봐야겠다.

=나도. 외울 정도로 봐야지.

폭발적인 사람들의 반응에 다시 한번, 공익 영상 ‘한 걸음’이 각 방송국에서 방송되었다.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