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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62화 (162/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62화

역의 세트장.

조금 후 있을 첫 촬영을 위해 스태프들은 조명, 카메라, 소품 등을 옮기고 있었다.

우정한 감독은 정해진 촬영 대본대로 진행해 나가기 때문에 함께 일하기는 편하지만 그건 자신의 할 일을 제대로 끝냈을 때였다.

특히, 첫날에는 다른 날보다 꼼꼼히 살펴보는 습관이 있다는 걸 잘 아는 스태프들은 기합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그럼에도 세트장 내에는 미묘한 들썩거림이 있었다. 짐을 옮기던 스태프들의 입이 간질간질했다.

“이서준이랑 촬영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그러게요. 우 감독님이랑 일하면서 다른 배우들도 만나봤는데, 이렇게 기대되는 것도 처음인 것 같아요. 저 할리우드 배우랑 촬영하는 거 처음이에요!”

“나도 처음이거든? 여기 처음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 근데…… 사인받을 수 있을까?”

“촬영 일정이 꽤 있으니까,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의원 스태프들한테는 해줬다는데…….”

“서준이 귀찮게 하면 안 된다?”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던 두 스태프는 끼어드는 굵직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촬영감독이었다.

촬영 감독의 진한 눈빛에 스태프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넵. 당연하죠!”

“입 다물고 있겠습니다!”

두 스태프와 촬영 감독을 슬쩍슬쩍 보고 있던 다른 스태프들은, 세트장 내를 천천히 돌아보는 촬영 감독의 시선에, 애써 찔리는 마음을 추스르고 자신의 할 일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조감독이 촬영감독에게 향했다. 촬영감독이 입을 열었다.

“겉모습이 어려 보여서 그렇지, 이서준 배우는 프로야. 멀찍이 거리를 두는 것도 좋지는 않지만, 아래로 보고 쉽게 대하는 건 더 안 좋아. 너도 스태프들 관리 잘하고.”

“네. 걱정 마세요.”

조감독이 웃었다.

“이서준 배우 연기를 보면 다들 어린애라는 생각은 다 없어질 거예요.”

촬영감독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잠시 후, 이서준 배우가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서준의 밝은 인사에 촬영장이 훈훈해졌다. 스태프들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환하게 웃고 있는 서준을 바라보았다.

“진짜 이서준이다.”

“잘생기긴 했는데, 생각보다는 평범한데?”

“그러게요.”

촬영을 위해, 슈퍼스타 아우라를 OFF 중인 서준은 촬영 감독과 조감독에게 인사하고 다른 스태프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려요!”

스태프들도 웃으면서 인사했다. 세트장을 한 바퀴 돈 서준은 먼저 도착해서 대본을 샅샅이 훑고 있던 김호영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저희 같이 촬영하는 장면이 많잖아요.”

왕과 내관은 같이 있는 장면이 많았다. 거의 ‘항상’이라고 해도 좋았다.

서준의 말에 김호영이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 이도 말 편하게 해.”

“네. 호영 삼촌…….”

서준이 웃었다. 김호영도 조금 풀어진 얼굴로 웃었다. 얼마 후, 박운열과 함께 우정한 감독이 도착했다.

김호영은 기나긴 공백기를 뛰어넘어 이렇게 멋진 배우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다는 점에 감격하고 있었다. 벅찬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늘 촬영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서준도 얼른 인사했다.

“잘 부탁드려요!”

“나야말로. 잘 해보자꾸나.”

오늘 촬영을 함께할 세 배우가 모두 도착하자, 다시 세트장이 바빠졌다. 우정한 감독은 세트장과 카메라들을 체크하며 촬영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준이 환하게 웃었다. 연습실도 좋지만 역시, 활기찬 촬영장이 가장 좋았다. 눈이 반짝거리는 서준을 보던 박운열은 시선을 돌리다 서준과 비슷한 표정으로 촬영장을 바라보는 김호영의 모습을 보았다.

연기를 사랑하는 두 후배 배우의 모습에 박운열이 미소를 지었다. 이번 영화는 아주 멋진 작품이 될 것 같았다.

“분장실은 이쪽입니다!”

미술팀 스태프의 말에 배우들은 분장실로 향했다.

분장실에서 가장 빨리 나온 배우는 서준이었다. 서준은 익선관을 쓰고, 붉은 곤룡포를 입고 있었다.

어린 왕이었기에 수염을 붙일 필요도 없어 간단한 화장만 하고 나온 것이었다.

옷을 탁탁 턴 서준이 안다호에게 물었다.

“어때요, 형? 어울려요?”

“정말 잘 어울리는데?”

안다호가 웃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서준이 에헤헤 웃었다. 안다호가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서준이 고개를 갸웃하자, 안다호가 말했다.

“나중에 팬카페에 올리려고.”

“올려도 돼요?”

“우 감독님한테 보여주고 올리면 된대.”

“그럼, 잠시만요.”

팬들이 보는 사진이라니, 좀 더 멋있게 찍고 싶었다.

서준이 후우 한숨을 쉬었다.

[(선)몰락한 조인족 왕의 날개-중급이 발동됩니다.]

[(선)몰락한 조인족 왕의 날개-중급]

바람의 힘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라의 몰락을 함께한 마지막 왕의 기세가 나타납니다.

하늘을 지배하는 조인족의 왕.

그러나 다른 종족에게 패배해 몰락해 버렸다. 모든 왕족이 도망가고 끝까지 왕궁에 남아 있던 사생아가 왕위를 이어받았다.

능력은 부족했지만, 마음만큼은 어느 왕족보다 위대한 왕이었던 사생아는 끝까지 백성과 왕궁을 지켰다.

그리고.

여기.

왕이 나타나셨다.

온 백성을 위하는 왕이었다.

하늘의 왕이었다.

바깥의 차가운 바람을 막기 위해, 꽉 닫힌 세트장에 바람이 불었다. 살랑살랑 움직이던 바람이 한곳으로 흘러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처럼 왕의 아우라와 섞인 바람이 서준을 둘러쌌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서준은 반짝이는 왕의 날개로 뒤덮였다.

서준이 분장실에서 나올 때부터 바라보던 스태프들은 그 분위기 변화에 눈을 크게 떴다.

할 일을 모두 끝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놓쳤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촬영감독과 조감독과 이야기를 나누던 우정한 감독도 느껴지는 압박에 뒤를 돌아보았다. 촬영감독과 조감독은 이미 넋을 놓고 서준을 보고 있었다.

우정한 감독의 눈이 커졌다.

이지석과 연기했을 때와는 달랐다. 실기 영상과도 달랐다. 아직 나이가 어려, 숙부의 압박을 받으며 움츠렸던 왕이 아니었다.

온전한,

유일무이한 왕이었다.

모두가 놀라는 사이, 서준이 연습하는 동안 익숙해진 안다호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커다란 세트장에 울리는 소리는 카메라 셔터음뿐이었다.

찰칵.

셔터음이 끝나고 서준이 연기를 멈추자, 쳐다보던 사람들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스태프들이 숨을 후욱 들이마셨다.

서준이 세트장으로 들어올 때, 생각보다 평범하다고 말했던 조명 스태프가 자신의 입을 쳤다. 저게 평범하다고? 평범, 다 죽었겠다!

“그런 말이 있잖아.”

“무슨 말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냐고.”

미술팀 스태프가 미술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따로 있는 게 아닐까?”

미술 감독의 말에 그 목소리가 닿는 곳의 스태프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지만, 서준의 연기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 깊었다.

* * *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들썩이던 촬영장의 분위기는 우렁찬 조감독의 외침에 차분해졌다.

폭신폭신한 보료에 앉은 서준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서준의 앞에 앉은 박운열도, 문 근처에 서 있던 김호영도 집중했다.

“레디, 액션!”

이홍위는 불과 얼마 전 아버지를 잃었다. 울고 있던 이홍위를 일깨운 것은 할바마마와 아바마마가 지키려고 했던, 자랑스러운 왕의 자리였다.

아바마마의 충신, 김종서가 슬픔을 참아내며 의젓하게 앉은 이홍위의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전하. 이제부터 전하께서 이 나라의 하늘이십니다. 소신이 열심히 보필하겠사오니, 부디 힘을 내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좌의정.”

훌쩍 눈물을 훔친 이홍위가 애써 웃으며 입을 열었다.

“과인이 아직 어려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좌의정께서 많이 알려주셔야 합니다.”

“예. 전하.”

할바마마를 모시던 신하라서 그런 것인지 할아버지처럼 느껴지는 김종서의 모습에 이홍위는 무겁던 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런 김종서와 이홍위의 모습을 김내관이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컷. 오케이!”

오케이 소리가 나자마자, 서준의 분위기가 변했다. 그 선명한 변화에 박운열이 허허 웃었다.

작품만으로도 나이와는 상관없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보는 이서준의 연기는 더 대단했다.

서준의 연기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우정한 감독이, 내관복을 입고 있는 김호영을 바라보았다. 독립 영화에서의 연기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공백기의 사회생활과 경험이 연기력에 많이 영향을 준 모양이었다.

이제라도 꽃 피우게 됐으니, 좋은 일이었다.

‘앞으로도 많이 활동하겠어.’

좋은 배우가 나타났다. 우정한 감독이 크게 외쳤다.

“그럼 클로즈업 샷 촬영가겠습니다.”

우정한 감독의 말에 카메라들이 세트장 위로 올라갔다.

세트장 위에서 다시 한번, 같은 연기가 펼쳐졌다.

* * *

“레디, 액션!”

늦은 밤.

촛불이 흔들흔들 움직였다.

이홍위는 졸린 눈을 비비며 촛불에 의지하며 오늘 올라온 상소를 읽어 내려갔다. 안절부절못하던 김내관이 입을 열었다.

“전하. 이제 침소에 드시지요.”

“조금만. 조금만 더 보고.”

문제를 이해하고 올바른 답을 내린다.

왕의 할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 열둘의 이홍위로서는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 전부였다. 상소를 보며 끙끙대던 이홍위가 뻑뻑해진 눈을 비볐다.

애가 탄 김내관이 다시 한번 말했다.

“전하. 지금 침소에 드셔야 내일 제시간에 일어나실 수 있사옵니다.”

“으응. 알겠네.”

이홍위도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홍위의 말에 김내관의 얼굴이 밝아졌다.

흔들거리는 촛불 빛과 함께 노력하는 어린 왕과 왕을 보필한 충신의 모습이 흔들거렸다.

“컷! 오케이”

NG도 없이 두 신의 촬영이 끝났다.

시간을 확인한 우정한 감독이 조감독에게 무어라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조감독이 외쳤다.

“지금부터 점심 식사하겠습니다! 이서준 배우 팬카페에서 보내준 밥차입니다. 모두 맛있게 드시고 촬영 힘냅시다!”

“잘 먹을게요!”

스태프들 사이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이 헤헤 웃으며 꾸벅 인사를 했다.

쭈욱 늘어나는 피자에 입맛 돋우는 새싹 파스타, 아싹한 겉절이에 든든한 된장찌개, 고슬고슬한 쌀밥. 달콤한 새우칠리와 탕수육에 맛있는 빛깔의 동파육까지.

양식, 한식, 중식의 밥차가 나란히 섰다.

밥을 받아온 스태프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당기는 대로 원하는 대로 이것저것 퍼와서 테이블에 늘어놓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다들 재빨리 요리를 입안에 넣었다.

스태프들의 표정이 순간 풀어졌다. 후각과 더불어 미각까지 자극하는 맛있는 음식. 도저히 촬영 중에 먹는 점심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진짜 맛있어! 이거 호텔 거 맞지?”

“응. 맛있다고 유명한데. 한 번쯤 가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먹게 될 줄이야!”

“서준이는 팬들이 보낸 밥차도 뭔가 다르구나.”

“인원수만 따져도 어마무시하니까.”

해외 팬카페도 있지만 역시 서준의 주 활동지인 한국의 팬카페가 가장 유명했다.

이번 역의 촬영 소식에 [새싹부터]가 팔을 걷어붙였다.

-드라마 때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이번엔 꼭 해요!

-회원 수가 많아서 돈이 적어도 꽤 좋은 음식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해외 팬카페에서도 보내준다고 하니, 여러 번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핫팩이나 보온용품도 보내면 좋을 것 같아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만, 서준이 안전하고 든든하고 편하게 촬영을 끝냈으면 하고 바라는 팬에게선 잡음은 나오지 않았다.

[공지: 영화 촬영장 밥차 후원.]

서준이의 영화 촬영장에 밥차를 후원할 계획입니다.

목요일 8시 모금 계좌를 열 예정으로, 목표 금액이 채워지면 후원 계좌는 자동으로 폐쇄됩니다.

더 많은 팬의 마음을 모으기 위해 일 인당 최대 만원까지 후원 가능합니다.

감사합니다.

-……왠지 작년 팬미팅 티켓팅이 생각나는 건 나만 그런가요?

-돈을 주겠다는데도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이번에도 피시방에 가야 하나.

-서준이는 선물을 안받으니ㅠ 이렇게라도 보내주고 싶다ㅠㅠ

-해외팬들 화력까지 합치면 촬영 내내 보낼 수 있을 텐데ㅠ 밥차도 자주 보내면 보내지 말라고 할까 봐 걱정이네요.

=그건 운영진에서 잘 하겠죠ㅠ

이야기는 들었지만 멋진 세 대의 밥차에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여기저기 쓰여있는 팬들의 메시지도 마음에 쏙 들었다.

하나하나 눈에 새길 듯 읽던 서준의 볼이 빨갛게 상기됐다. 너무 좋았다.

“서준아. 인증 사진 찍자.”

“네!”

안다호의 말에 곤룡포를 입은 서준이 밥차 앞에 섰다. 신중한 표정으로 반찬을 고르는 서준의 모습을 안다호가 촬영했다.

다 고른 음식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서준은 팬카페에 사진과 함께 감사 글을 올렸다.

[이서준입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맛있게 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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