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60화
이서준의 차기작, 단종의 오디션은 많은 관심을 불러왔다.
[단종(가제) 오디션! 여기저기 접수 인증 중!]
[아이돌, 김솔 단종 오디션 도전!]
[배우 김종호, “맞는 배역이 없어서 아쉽다.”]
[아쉬움 가득한 배우들 “촬영만 없었다면 도전해 봤을 텐데!”]
-오. 단종 오디션 하네?
=이름은 없어서 어떤 역할인지는 모르겠던데, 대사는 있는 역할이더라.
=중요한 역할은 연기파 배우들이 하겠지. 골라 집을 수도 있을걸?
=22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역일듯
-아, 아이돌…… 아이돌 넣지 말자.
=22 티켓파워는 서준이로 충분하다.
=333 내가 N차 뛸게…… 아이돌은 제발!
-김종호까지 들어가면 그냥 내의원2 아님?
=이지석이 수양대군인데?
=아직도 믿기지가 않음ㅋㅋ 혼돈과 파괴의 내의원2……ㅋ
-지금 촬영 중인 배우들은 아쉬워하더라.
-이러다가 한국 배우들은 다 몰리는 거 아님?
-배역 이미지에 맞게 나이 제한도 있으니까, 서류로 먼저 걸러낼걸.
-그 서류도 엄청 많아서 고르기 힘들듯ㅎ
영화제작사 단홍의 회의실.
휴대폰으로 기사와 댓글을 보고 있던 우정한 감독은 머리를 긁적였다. 생각보다 오디션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우리 오디션 한다는 거, 배우들에게만 알리지 않았어?”
아예 초짜를 데려와 찍을 생각은 없었다. 연극이나 독립영화에서 두 작품 이상을 찍거나, 드라마나 상업 영화에서 대사 있는 배역을 맡은 적 있는 배우만이 오디션에 지원할 수 있었다.
우정한 감독의 말에 조감독이 대답했다.
“배우 소속사에 알리고 극단에 알렸으니까, 하나둘 입 여는 사람들이 있었겠죠.”
“솔직히 경쟁자가 늘 거라고 생각해서, 다들 입 다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야. 설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를 정도로 퍼질 줄은 몰랐어.”
우정한 감독의 말에, 오디션 공고를 신나게 뿌렸던 기획팀장이 지레 놀라, 얼른 입을 열었다.
“저희 쪽에서는 반기고 있습니다. 따로 홍보하지 않아도 벌써 들썩거려서 말이죠.”
“그래도 홍보는 확실히 해주세요.”
우정한 감독의 말에 기획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디션 서류 심사를 돕기 위해 온 스태프들과 단홍의 직원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흥행이 보장된 단종팀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오늘 봐야 하는 신청서들이 준비되기 전, 기획팀장은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우정한 감독에게 알려주었다.
“장소 섭외도 잘 되고 있습니다. 평소라면 조금 어려운 곳도 쉽게 허락받았습니다. 지자체들도 개봉 후 관광객들을 모을 생각에 잘 협조해 주고 있고요. 백호 체험관 때문에 예상은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백호…… 아, 한 걸음 말이죠?”
조감독의 말에 기획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온답니다. 외국인들도 많이 오고요. 체험관 근처도 많이 활성화됐답니다. 그래서 다들 촬영을 환영하는 분위기입니다.”
“촬영 때는 편하겠네요.”
우정한 감독이 웃었다.
“촬영 일정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오디션을 보고 캐스팅이 완료되는 대로, 실내 촬영을 할 생각입니다. 그다음에 날씨가 풀리면 야외 촬영을 할 겁니다.”
기획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겨울이 작년보다 따뜻하다고 하지만 겨울은 겨울이니까요.”
“액션신도 승마신도 몸이 굳었을 때는 위험하니까요.”
우정한 감독과 기획팀장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단홍의 직원들이 하나둘 종이 더미를 들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무거운 종이 더미가 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앞에 놓였다.
“우리나라에 배우들이 이렇게 많았어요?”
눈앞에 쌓인 서류를 질린 눈으로 바라보던 조감독이 입을 열었다. 스태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를 뒤적거리던 우정한 감독이 웃었다.
“자격 요건이 좀 널널하긴 했지. 현역 배우부터 공백기가 있는 배우들까지. 아마 몇 년 딴 일 하다가 도전하는 배우들도 있을 거야.”
“어떻게 이걸 다 골라내죠?”
“이제부터 해야지.”
직원들이 경력 사항을 확인하고, 자격이 되지 않는 서류를 걸러냈다. 그다음, 우정한 감독은 사진만 확인하며 휙휙 서류를 분류했다. 그것만으로도 꽤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이틀에 걸쳐, 모든 배역의 서류 심사가 끝났다.
영화제작사 단홍은 신청서에 적힌 휴대폰으로 서류 합격 소식을, 메일로 ‘단종’의 대사를 일부분 수정한 지정 대사를 메일로 보냈다.
* * *
단종의 오디션 날.
오늘은 단종을 보필할 내관 역을 뽑는 날이었다.
영화제작사 단홍의 1층과 2층에서 오디션을 진행하기로 했다. 회의실 한쪽, 심사석에 앉은 조감독이 천천히 서류들을 살펴보았다.
“생각보다 경력 있는 배우들이 많아서 신기하네요. 오. 김우진. 김우진 배우도 신청했었네요?”
“김우진이 오디션 볼 급은 아닐 텐데. 대단하네. 우리 영화.”
촬영감독의 말에 그 옆에 앉아 있던 미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우진 배우가 미국 진출에 관심이 많다더라고요.”
배우들 소식에 빠삭한 캐스팅 디렉터의 말에, 조감독이 눈을 깜박였다.
“미국 진출요?”
“미국 드라마 오디션도 보고 있답니다.”
우정한 감독과 조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생각인 배우들이 많겠죠. 한국 작품에 출연하면서 해외에까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기회니까요.”
“그래서 오디션인데도 지원하는군요.”
“저한테 연락도 많이 왔습니다. 심사는 누가 보나, 배역의 중요한 점이 뭐냐, 우 감독님이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느냐.”
실실 웃던 캐스팅 디렉터는 자신의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새까만 화면을 보니, 아예 전원이 꺼져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예 꺼 놨습니다.”
그런 사람이 여기 한둘이 아닐 터였다. 기자들에게서도 지인들에게서도 많은 연락이 오고 있었다.
“내 아들도 이서준 사인받아오라고 하더라.”
“내 딸도.”
촬영감독의 아들은 쉐도우맨의 팬이었고 우정한 감독의 딸은 그레이 바이니의 팬이었다. 오늘은 사인을 받았나, 내일은 받아올 건가. 눈을 반짝이는 가족들의 모습에 부담감만 점점 쌓여갔다.
“그래서. 우 감독. 이서준 배우는 언제 와? 계속 사인 안 받아가면 난리 날 것 같은데.”
“그…….”
띠리링-
우정한 감독의 전화가 울렸다. 입을 열었던 우정한 감독이 휴대폰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우정한 감독이 회의실을 나간 사이, 미술감독이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한참 의상과 세트장을 보고 있어야 하는 자신인데 어째서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이 많은 지원자 중에서 알맞은 배우를 골라야 했다. 연기는 기본이고,
“둥글둥글하고 착하고 순박해 보이는 이미지라.”
“이서준 배우와의 투 샷도 잘 생각해야죠.”
미술감독의 중얼거림에 캐스팅 디렉터가 한마디 보탰다. 캐스팅 디렉터야 원래 하는 일이 이런 일이라, 별걱정이 없어 보였다.
“근데 이서준 배우가 없으니 투 샷을 보기도 좀 힘들겠네요.”
“어…… 실물 사이즈의 패널 같은 걸 만들어올까요?”
미술감독의 말에 촬영감독, 조감독, 캐스팅 디렉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만들 수 있습니까?”
“여기에도 프린트가 있으니 이서준 배우의 사진을 조각조각 프린트를 해서 붙이면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럼 그 패널을 옆에 두고 확인하면 괜찮지 않을까. 고개를 끄덕이려던 세 사람을 막은 건, 회의실로 들어오던 우정한 감독이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정한 감독이 말했다.
“본인이 왔거든요.”
우정한 감독의 뒤로 환하게 웃는 서준의 얼굴이 네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 서준아.”
예상 밖의 등장에 잠시 당황하던 것도 잠시, 네 사람이 서준을 반겼다.
“주말이라서 왔어요. 평일이면 아직 학교 수업시간이거든요.”
“12월인데 아직 겨울방학이 아니야?”
“겨울방학은 1월인데 그때 졸업식도 해요.”
“아, 이제 중학교 가지? 여울 예중 합격 축하해.”
“감사합니다.”
우정한 감독의 바로 옆자리에 앉은 서준이 재잘재잘 입을 열었다. 안다호는 흐뭇하게 웃으며 서준의 앞이 따듯한 유자차를 놓아주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따듯한 커피를 전해주었다.
우정한 감독이 서준에게 말했다.
“김내관이 어떤 이미지인지 알겠지?”
“네.”
‘단종’의 대본을 몇 번이고 읽었던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골라주면 돼. 아니면, 저 배우랑 연기하면 잘 맞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이 들면 선택해도 되고.”
“네. 알겠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단홍의 직원이 시작 시간이 가까워짐을 알렸다.
“시간 다 됐나 보네요. 그럼 오디션 시작합시다.”
지원자들이 잔뜩 모여 있는 1층의 1차 대기실에서 10명을 불렀다. 2층의 2차 대기실에서 회의실 안쪽에 있는 사람들을 알려주었다.
긴장감 가득한 2차 대기실. 직원의 말에 대사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던 배우들이 멍한 얼굴이 되었다.
“우정한 감독님과 조감독님, 촬영감독님, 캐스팅 디렉터님, 미술감독님, 그리고 이서준 배우가 안에 계십니다.”
이서준이 여기 있다고?
상상도 못 한 인물의 등장에 제일 먼저 오디션을 봐야 하는 1번 배우가 숨을 멈췄다.
* * *
스무 명의 연기를 보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미술감독 외의 감독들 표정은 어두웠다. 찌푸려진 미간을 매만지던 우정한 감독이 입을 열었다.
“마음에 들면 서준이랑 같이 서 있는 모습을 보려고 했는데…… 그 정도의 배우도 안 나오네요.”
익숙하게 배우들의 연기를 평가하고 있던 캐스팅 디렉터도 고개를 끄덕였다. 캐스팅 디렉터의 앞에 놓인 신청서에는 빨간색 엑스 표시가 가득했다.
“그러게요. 다른 작품에서도 괜찮게 봤던 배우도 있었는데…… 기대 이하랄까. 좀 더 인상 깊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드네요.”
“김우진 배우도 잘하긴 잘하는데, 아쉽달까?”
감독들의 이야기에 서준은 눈만 깜빡였다.
‘어쩌지.’
스무 명의 배우들이 같은 대사로 가지각색의 해석과 연기를 하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것만 보고 있었다. 평가는커녕, 서준의 앞에 놓인 신청서에는 배우의 연기에 대한 해석만이 가득했다. 손끝, 발끝부터 표정 변화까지 자세히 적어놓았다.
‘누구랑 해도 다 괜찮을 것 같은데…….’
이 배우는 몸짓이 다정해 보여서 좋을 것 같고, 이 배우는 표정이 상냥해 보여서 좋을 것 같았다. 끄응. 서준이 가장 연기하고 싶은 배우를 고르는 사이, 감독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미술감독은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볼만 긁적이고 있었다. 연기에 대해선 네 사람보다 모르지만, 미술감독은 그동안 우정한 감독과 함께 일하면서 그의 연기 기준에 대해 제법 알고 있었다. 3년이라는 공백기가 있었지만, 그 기준은 변하지 않았을 텐데.
“전 김우진 배우, 괜찮은 것 같은데요. 우 감독님의 기준이 조금 엄격해진 것 같습니다.”
“제 기준이요?”
우정한 감독이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내 기준? 엄격?
미술감독의 말을 곱씹던 감독들은 무언가를 깨달은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서준에게로 향했다. 시선이 닿는 느낌에 서류를 보며 가장 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 한 명을 고르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준의 까만 눈동자와 눈이 마주친 우정한 감독이 이마를 짚었다.
우정한 감독은 저 반짝이는 눈동자가 사납게 불타던 때를 알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캐스팅 디렉터와 촬영감독, 조감독은 숨을 들이켰다.
“그 오디션…….”
“그게 원인이었네.”
이지석의 수양대군 오디션.
서준과 이지석의 열연은 그 연기를 보던 모두가 할 말을 잃게 하였다. 허의관? 성녕대군? 내의원의 케미는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직 단종과 수양대군만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오디션 이후, 이지석을 수양대군으로 캐스팅하는 데 더 이상의 반대는 없었다. 내의원2라며, 영화에 몰입하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이 가득한 네티즌들의 반응을 볼 때면 개봉 후 네티즌들의 놀랄 모습이 저절로 떠올라 웃음만 나왔다.
그 오디션이 정말로 인상 깊었던 모양이었다. 두 배우의 연기에 걸맞은 배우를 찾으려고 하다니. 이서준하고 이지석이랑 같은 레벨의 배우. 그런 배우가 아직 무명일 리가 없었다.
마른세수하던 우정한 감독이 입을 열었다.
“……그럼 기준을 좀 내릴까요.”
“……일단 앞 차례의 배우 중 나았던 배우들은 보류하죠. 뒤쪽에 배우들 중 우리의 마음에 쏙 들 만한 배우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니까요.”
“네. 그럽시다.”
감독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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