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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슈퍼스타-158화 (158/1,055)

0살부터 슈퍼스타 158화

휴대폰을 보던 우정한 감독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정한 감독의 앞에 앉아 있던 촬영 감독의 입으로 들어가려던 숟가락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뭐, 뭐야?”

“……다음 작품 정해졌어.”

촬영 감독이 눈을 끔벅였다.

‘그거랑 갑자기 일어난 게 무슨 상관이지? 그래도 3년 만에 작품에 들어간다니, 다행이네.’

촬영 감독이 오늘 우정한 감독을 만나러 온 것도 다음 작품 때문이었다.

다른 감독보다는, 오랜 시간 함께 작업했던 우정한 감독과 촬영하는 게 그로서는 여러모로 마음이 편했다.

‘게다가…….’

우정한 감독과 작업하면 거의 망하지 않기 때문에, 촬영 내내 덮쳐오는 흥행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낼 수 있었다.

만면에 미소를 지은 촬영 감독이 말했다.

“그래? 사극 찍을 거지?”

“어.”

“보자……. 우리가 안 찍은 시대가 언제더라.”

허공에 떠 있던 숟가락을 입에 집어넣은 촬영 감독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지금까지 했던 작품들을 떠올렸다.

‘세조, 영조, 세종도 찍었고, 선조도 찍었고. 음……. 태조 이성계를 찍을까? 정몽주에 이방원까지 나오면 아주 흥미진진할 것 같은데…….’

생각에 빠져 있던 촬영 감독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근데 계속 서서 뭐 해?”

밥 먹다가 벌떡 일어난 우정한 감독이 여전히 그 자세 그대로 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 미안.”

자리에 앉아서도 휴대폰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우정한 감독의 모습에 촬영 감독은 잠시 쳐다보다가 식사를 계속했다.

우정한 감독은 저런 놈이었다. 뭐 한 가지에 빠지면 다른 건 뒷전이다.

촬영 감독이 익숙하게 식사하는 사이, 우정한 감독은 메시지를 보내온 곳에 연락하고 있었다.

* * *

학교를 마치고 원래라면 엄마와 함께 새집으로 향해야 했지만, 다호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정한 감독의 만나고 싶다는 연락에 서준도 흔쾌히 승낙했다.

학교 앞으로 마중 나온 다호 형과 함께 서준은 코코아엔터로 향했다.

평소와는 달리 회의실로 향하는 안다호의 발걸음에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형, 연습실에 안 가요?”

“거기 지금 공사 중이야.”

“공사요? 뭐 부서졌어요?”

집에 있는 연습실에서 신나게 연기 연습을 하는 사이 코코아엔터 연습실에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서준의 놀란 목소리에 안다호가 웃었다.

“아니야. 부서진 게 아니고, 회사 연습실에도 집 연습실처럼 카메라를 설치하려고. 사장님한테 서준이 연습실 사진을 보여줬더니, 질 수 없다면서 바로 공사 시작했어.”

“아하.”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집이랑 똑같이 공사해요?”

“그래. 그래도 회사 연습실이 넓어서 좀 더 움직임이 필요한 캐릭터일 때는 회사가 편할 거야.”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사하는 김에 다른 연습실도 공사할 예정이야. 데뷔할 애들도 연습생들도, 엄청 기대하고 있어.”

“누나들 언제 데뷔해요? 알려주면 친구들한테 홍보할게요!”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코코아엔터의 세 번째 그룹이자 첫 여자 아이돌 그룹 ‘레드크라운’의 아이들이 들었다면 엄청 좋아할 터였다.

서준과 안다호는 잡담을 나누며 회의실에 도착했다.

의자에 앉은 서준은 안다호가 프린트해 준 ‘단종’을 읽어 내려갔다.

그렇게 대본에 푹 빠져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서준아, 감독님 오셨어.”

“네!”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우정한 감독을 맞았다.

“안녕하세요, 우정한 감독님. 이서준입니다.”

“반갑구나, 서준아. 실기 영상 잘 봤어.”

“헤헤.”

우정한 감독의 칭찬에 서준이 웃었다.

우정한 감독이 자리에 앉자 서준과 안다호도 자리에 앉았다.

“출연 결정해 줘서 고맙구나.”

“대본이 재미있어요. 연기해 보고 싶을 정도로요.”

직접 대본을 써 내려 간 우정한 감독에게 그보다 멋진 칭찬은 없었다.

우정한 감독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들었다니, 정말 기쁜걸.”

“저도 섭외 제의해 주셔서 기뻤어요.”

“서준이가 아니면 이 영화는 안 만들려고 했어. 내가 더 고맙지.”

“네?”

우정한 감독의 말에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그 모습에 우정한 감독이 멈칫했다.

조용히 감독과 배우의 대화를 바라보던 안다호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조용해진 회의실.

어쩔 줄 몰라 하는 우정한 감독의 모습에 서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제가 너무 기뻐서 실수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제가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서준은 우정한 감독과 안다호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가 아니었으면 안 만들었을 거라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서준의 물음에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단종’의 제작사와 배급사가 텅 비어 있었잖아.”

“네.”

그때 다호 형은 날짜가 촉박해서 구하지 못했다고 했다.

‘설마 그게 아니었나?’

“대본이 들어왔을 때, 2팀에서는 서준이가 단종 역을 하지 않으면 우정한 감독님이 영화 자체를 제작 안 할 생각인 것 같다고 추측하고 있었어.”

“어째서요?”

“우정한 감독님은 개봉하는 영화마다 손익분기점은 확실하게 넘어서 투자금을 확실히 지켜주시거든. 작품이 흥행하면 돈을 벌 수도 있고 마이너스가 없는 투자처라서, 투자자들에게 인기 있는 감독님이야.”

안다호의 말에 우정한 감독이 민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바로 앞에서 듣는 건 여전히 낯부끄러웠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지만 우정한 감독의 작품들이 재미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열흘이 짧은 시간이긴 한데, 우정한 감독님 정도 되면 제작사랑 투자자는 금방 구하거든. 그런데도 하나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건, 서준이의 캐스팅이 이 작품의 시작이라는 이야기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어.”

작품의 유무가 자신의 출연에 달렸다니.

상상 밖의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아예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았다.

서준이 고개를 끄덕이자, 대본을 보냈던 당사자 우정한 감독이 입을 열었다.

“네가 한다면 제작사도 배급사도 구할 생각이지만, 안 한다면 그냥 작품을 묻어둘 생각이었단다.”

“이거 재미있는데…… 제가 안 해도 다른 배우를 구해서 하면 되지 않아요?”

‘오버 더 레인보우’도 서준이 출연하지 않았다면 다른 아역 배우를 구해서 촬영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되면 제작비가 반으로 줄어들어서 어떤 영화가 될지 지금은 짐작도 안 간다고, 수상 파티 때 에밀리 조감독이 말했다.

서준의 말에 우정한 감독이 쓴웃음을 지었다.

“10년을 기다렸지만 내 마음에 드는 단종이 없었거든.”

10년.

서준이 눈을 깜빡였다. 그건 영화 ‘세조’가 나왔을 때였다.

우정한 감독은 옛 기억을 떠올리듯 말을 이었다.

“‘세조’의 원래 대본이 바로 이 ‘단종’이란다. 이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어울리는 아역 배우가 없었지. 눈에 차지 않아서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단다. 아예 포기하기에는 미련이 남아서, ‘단종’의 대사를 ‘세조’ 안에 넣었어.”

“그게?”

처음 듣는 서준도, 이런 뒷이야기까지는 몰랐던 안다호도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정한 감독이 웃었다.

“그래, 네가 실기 영상에서 보여줬던 그 대사란다.”

“……그렇구나.”

“그걸 보고 네가 단종 역을 해줬으면 하고 생각했지. 서준이가 안 한다면 10년을 묵혀 있었던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을 예정이었고.”

우정한 감독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뭐, 그건 그거고.’

서준이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그 진한 눈빛에, 안다호는 가벼운 한숨을 내뱉고 입을 열었다.

“서준이의 출연으로 영화가 제작된다, 안 된다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야.”

“네?”

“지금까지 들어왔던 작품 중 일부가 그랬거든. 이 영화는 이서준이 출연해야만 제작된다, 이 드라마는 이서준을 보고 만든 이야기다, 하고.”

안다호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런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이걸 너에게 전할까 말까 2팀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 회의 끝에 그런 사연들이 작품 선택에 방해된다는 결론이 나왔지. 그래서 숨겼던 거야.”

“으음.”

누군가의 사연 때문에 출연을 결정할 서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의 외적인 영향도 없이 서준이 작품을 선택하길 바라는 안다호와 2팀으로서는 이런 사연을 숨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터였다.

“너한테 부담이 될까 봐 감독님한테는 촬영 끝날 때까지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예정이었는데, 이렇게 돼버렸네.”

안다호가 볼을 긁적였다.

“촬영이 끝나면 말할 생각이었어. 아무래도 인터뷰를 하면 나올 수밖에 없고, 홍보하기에도 좋은 이야기니까 말이야.”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꼭 알아야 했던 이야기도 아니고.’

10년을 기다린 배우라는 이야기와는 상관없이, 서준은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해 연기할 생각이었다.

“이해했어요. 고마워요, 다호 형.”

“나야말로. 이해해 줘서 고마워.”

서준의 말에 안다호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숨기면서도 많이 걱정했다. 사실을 숨겼다고 화를 낼까, 아니면 이해해 줄까.

그런 걱정에도 안다호가 입을 다문 이유는, 서준이 어떤 개입도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을 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회의실의 분위기가 풀리자, 서준과 안다호의 눈치를 보던 우정한 감독이 입을 열었다.

“영화 제작을 맡을 제작사를 정해야 하는데, 같이하고 싶은 곳이 있니?”

“제가 정해야 하나요?”

서준의 말에 우정한 감독이 웃었다.

“편한 곳이 있나 해서. 내가 정했다가 서준이랑 안 맞는 곳이면 큰일이니까.”

“전 괜찮아요. 한국에서 영화 찍은 건 ‘악령’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서 딱히 아는 제작사도 없구요.”

“그래? 그럼 내가 괜찮은 곳으로 골라도 되겠니?”

“네!”

서준의 말에 우정한 감독은 자신이 가장 편하게 촬영했던 작품을 떠올렸다.

* * *

영화제작사 ‘다홍’의 기획팀장이 도착한 메시지에 반색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일정을 살폈다.

“뭐 하세요? 팀장님?”

“우정한 감독님, 차기작 하신단다.”

우정한 감독이라는 소리에 기획팀 모두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정한 감독이라면 다른 감독에 비해 일하기도 편했고 투자도 손쉽게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사극이겠죠?”

“아, 요즘 사극이면 그거 아니에요? 단종이요.”

“이서준이요?”

“단종 이야기야 이미 세조에서 했잖아.”

기획팀장의 말에 팀원이 답했다.

“그럼 그거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서준이 단종 찍으면 우리랑 비슷한 시기에 나올 텐데, 아무래도 밀릴 것 같아요.”

“하긴,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이서준 배우 영화를 보러 가겠죠.”

“저도요.”

팀원들의 말에 기획팀장이 팔짱을 꼈다.

“지금 찍어 놓고 대충 타이밍 봐서 개봉하면 돼. 개봉이 1년 정도 늦어지는 건 꽤 있는 일이잖아. 이서준 영화 개봉한다고 하면 알아서 다들 몸 사리겠지. 그때 같이 사리면 돼.”

“그건 그래요.”

타깃층이 완전히 다른 애니메이션이나 어린이 영화, 또는 아예 다른 장르라면 몰라도 같은 장르라면.

이서준의 영화와 같은 시기에 개봉할 용기를 가지고 있는 영화는 없었다.

“우정한 감독님, 주연 배우는 정하셨대요?”

“그동안 같이 찍었던 배우가 몇이고 감독님 이름도 있는데, 주연 배우야 걱정할 것 없겠죠.”

“잠깐만.”

-감독님, 주연 생각 중이신 배우 있습니까?

금방 도착할 것 같았던 우정한 감독의 메시지는 좀 시간이 걸렸다.

기획팀 직원들이 이번엔 어떤 시대를 찍을까 내기하던 도중, 답장이 도착했다.

바톡-

울리는 메시지에 휴대폰을 봤던 기획팀장이 숨을 멈추었다.

“고려도 괜찮지 않아요?”

“고려는 너무 멀잖아. 사도세자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떨까?”

“그것도 괜찮죠. 팀장님, 답장 왔어요?”

떠들어대던 팀원들이 움직이지 않는 기획팀장을 불렀다.

“으…….”

“으?”

“으아아악!”

기획팀장의 비명에 놀란 팀원들이 몰려들었다. 문이 활짝 열린 기획팀 사무실에서 들려온 비명에 다른 팀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비명의 원인이 휴대폰에 있다는 걸 알아챈 기획팀 팀원 하나가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으아아아!”

바나나톡 메시지 하나에, 영화 제작사 ‘다홍’이 뒤집혔다.

-주연 배우는 이서준 배우입니다. 시기는 단종.

-단종의 이야기를 찍어보려고 합니다.

-이서준 배우 캐스팅했습니다.

-(이서준과 우정한이 함께 있는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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