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57화
학교가 끝나고 서준은 안다호와 함께 코코아엔터로 향했다.
“집에 가져갈까 생각했는데, 잘됐네. 저번 주에 들어온 대본 보고 가면 되겠다.”
“네!”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준과 안다호는 항상 그렇듯, 3층에 있는 서준의 연습실로 향했다. 안다호의 카드로 문을 열자, 한쪽 벽이 전부 거울로 되어 있는 서준의 연습실이 보였다.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상자 들고 올게.”
“네.”
안다호가 2팀 사무실로 향하고, 서준은 연습실 한편에 마련된 휴식 공간에 가서 앉았다.
“주스. 주스.”
서준은 안다호의 주스와 자신의 주스까지 준비하고 의자에 앉았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려니, 곧 안다호가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안다호는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고 상자 안에 든 종이의 반절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종이들에 서준의 눈이 반짝였다.
적은 날도 있고 많은 날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서준에게 들어오는 작품은 5개. 물론 2팀에서 거른 작품들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딱 봐도 5개는 훌쩍 넘어 보였다.
“평소보다 많네요?”
“저번 주에 많이 들어왔거든. 그래도 오늘만 이 정도 양이야. 내일부턴 다시 평소랑 똑같아.”
왜 갑자기 많아졌지? 고개를 갸웃한 서준이 제일 위에 있는 시놉시스를 집어 들자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서준이가 찍은 실기 영상 때문에 그쪽 소재의 작품이 많이 들어왔거든. 여기 있는 것도 전부 그런 것들이야.”
“아하.”
실기 영상의 영향력은 서준도 잘 알고 있었다. 가끔 들여다보는 서준의 팬카페 ‘새싹부터’에서도 연일 화제였기 때문이었다.
“다들 실행력이 좋네요.”
그렇다고 영상이 뜬지 2주도 채 안 돼서 이런 시놉시스가 나올 줄은 몰랐다. 안다호도 웃었다.
“잡기만 하면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 큰 제작사도, 작은 제작사도 전부 있는 힘껏 도전하는 느낌이야. 개인적으로 시놉시스를 보내온 감독이나, 작가도 있었고.”
영화 제작의 기둥인 제작사가 없다고?
“그럼 영화로 만들기 어려운 거 아니에요?”
서준이 눈을 끔벅였다.
“서준이만 있으면 다 되지.”
서준의 걱정에 안다호가 웃었다.
감독 구함.
제작사 구함.
배급사 구함.
투자자 구함.
배우 구함.
대본 하나만 들고 있는 평범한 작가에게는 분명 넘기 힘든 산들이겠지만.
[이서준 캐스팅 완료.]
이 한 문장은 마치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밀려드는 지원에 자기 입맛에 맞는 곳을 선택하게 되는 상황이 되겠지.’
“서준이는 걱정 말고 하고 싶은 작품만 고르면 돼.”
“네. 그럴게요.”
안다호에게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 시놉시스를 읽어 내려갔다.
단종의 소재로 한 작품인 만큼 내용의 거의 비슷비슷했다. 몇몇 작품에서는 10년 전 영화 세조와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평소보다…….”
시놉시스의 질이 좀 떨어지는 것 같다면 착각일까. 서준의 미간이 조금 찌푸려졌다. 서준이 삼킨 뒷말을 알아차린 안다호가 입을 열었다.
“실기 영상이 공개된 이후에 온 작품들이라서, 짧게는 하루, 길게는 열흘이 걸렸을 거야. 나름 오랜 시간 궁리해서 보내는 평소의 시놉시스와는 다르긴 하지. 2팀에서 열심히 골랐는데도 그 정도야.”
“흐음.”
못마땅한 서준의 얼굴에 안다호가 웃었다.
“그중에 2팀에서 추천하는 작품이 있어.”
“추천요?”
그 말에 시놉시스를 보던 서준이 눈을 깜빡이며 안다호를 바라보았다.
2팀의 추천. 지금까지 그런 적은 없었다.
“응. 서준이가 단종 역에 관심이 있으면 이게 가장 나을 것 같다고 만장일치로 추천했어. 물론 서준이도 대본 보면 알겠지만 말이야.”
“뭔데요?”
“상자 맨 밑에 있어. 잠시만, 꺼내줄게.”
안다호가 얼른 상자 맨 밑에 깔린 종이뭉치를 꺼냈다. 안다호가 건네주는 대본을 보고 서준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지금까지 봤던 몇 장의 얇은 시놉시스가 아닌 제대로 된 대본이었다.
“이건…… 대본이네요?”
“열흘 안에 준비하기는 힘든 일이지. 그것만으로도 그게 이번 화제 때문에 급하게 만들어진 다른 시놉시스와는 다르게, 예전부터 준비되어 있던 작품이란 걸 알 수 있어.”
안다호의 말에 서준도 동의했다.
서준은 시선을 내려 대본의 제일 앞장을 바라보았다.
[가제 : 단종]
[감독 : 우정한]
“우정한 감독님?”
서준은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실기 시험 때 연기했던 영화 ‘세조’의 감독이자, 이삿짐을 정리하다 읽었던 김종호가 출연했던 영화, ‘장용영’의 감독이었다.
역사 영화의 장인, 우정한 감독.
감독 아래에 적힌 제작사와 배급사 칸은 비어 있었다. 주연배우들도, 조연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서준이 고개를 갸웃했다. 우정한 감독은 많은 배우와 촬영한 적이 있는 감독이었다.
우정한 감독이 부른다면 출연할 배우가 많을 게 분명한데, 대본에는 오직,
[단종 : 이서준]
이라는 것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
“우정한 감독님 작품인데, 제작사랑 배급사는 아직 안 정해졌네요. 배우도 그렇구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음.”
안다호가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 입을 열었다.
“시간이 너무 급해서 그런 게 아닐까?”
“음. 그러려나.”
“걱정하지 마. 서준이가 출연하고 우정한 감독님이 감독한다고 하면 금세 구할 수 있을걸.”
안다호의 말에 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개봉하는 작품마다 손익분기점은 확실히 넘어 투자자들의 믿음을 한 몸에 받는 우정한 감독과, 출연하는 작품마다 어마어마한 화제성과 수익을 남기는 슈퍼스타 이서준.
조심성 많은 투자자라도 듣자마자 돈을 내놓을 조합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서준이다음 장을 펼쳐 대본을 읽어 나갔다.
* * *
코코아엔터에서 놀고 있는데 엄마한테서 연락이 왔다. 짐을 다 옮겼다는 전화에 서준은 안다호와 함께 새집으로 향했다.
코코아엔터에서 새집으로 가는 길은 옛날 집으로 가는 길과 정반대 방향이었다.
창문으로 보이는 낯선 배경에 새삼 새집으로 이사 갔다는 게 실감이 되었다. 서준도 그랬고, 안다호도 그랬다.
“이젠 이쪽 길에 익숙해져야 하겠네.”
“그러게요. 이쪽 길은 처음인 것 같아요.”
낯선 길을 따라 차는 새집으로 향했다.
이미 차 번호를 등록했는지, 별 탈 없이 서준의 차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낯선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을 눌렀다. 새집은 옛집보다 높은 층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자 곧 딩동 하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왔어. 서준아?”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엄마 아빠가 서준을 맞았다. 서준이 활짝 웃었다.
“다녀왔습니다! 엄마, 짐 다 옮겼어?”
“응. 청소하고 짐 풀면 돼.”
“다호 씨도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이거 2팀에서 준비한 이사 선물입니다.”
“아, 고마워요. 다들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이민준의 말에 안다호가 들고 있던 상자를 건넸다.
“그럼 들어가 볼까?”
“응!”
서은혜가 새집의 문을 열었다.
벽지도, 바닥도 반짝반짝한 새집이 서준을 반겼다. 새집은 옛날 집보다 넓어서 조금 어색한 기분이었지만 금세 익숙해질 터였다.
서은혜가 방문 앞에 섰다. 두 개의 방문이 있었는데, 한쪽 문에는 [서준이 방]이라는 문패가, 한쪽 문에는 [서준이 연습실]이라는 문패가 붙어 있었다.
“이쪽은 서준이방. 서준이 짐 갖다놨으니까 정리하면 돼.”
“응. 엄마, 내 방 예쁘다.”
“그렇지?”
집중력에 좋다는 하늘색과 넓어 보이는 하얀색이 적절하게 배치된 서준의 방은 한눈에 봐도 깔끔해 보였다. 서준의 말에 내내 고민했던 서은혜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새 침대도 성인이 돼서도 쓸 수 있을 만큼 커졌고 책상도 그랬다. 방이 넓어져서 책꽂이도 하나 늘었다.
반짝반짝한 새 방을 둘러보던 서준의 눈에 갈색의 상자 더미가 보였다. 서준이 직접 싼 짐이었다. 어휴. 서준이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저건 다 언제 정리하지?’
대충 눈짐작으로 인형을 놓을 곳을 살피던 서준을 이민준이 불렀다.
“서준아, 이쪽은 서준이 연습실.”
서준의 방 바로 옆 방이 연습실이었다. 이민준의 말에 서준의 눈이 다시 반짝반짝 빛났다. 연습실!
“들어가도 돼?”
연신 갸웃거리는 서준의 모습에 부부와 안다호가 웃었다.
“그럼.”
이민준이 연습실 문을 열어주었다. 서준의 볼이 빨갛게 상기됐다.
연습실은 코코아엔터 연습실과 비슷했다.
한쪽 벽 전체가 거울로 되어 있어 연기를 할 때 손동작 발동작을 확인하기 쉬웠고 바닥도 미끄러지지 않는 소재였다.
쾌적하게 연습할 수 있도록 에어컨도 있었고 작은 냉장고와 간식 서랍, 의자와 테이블도 있었다.
“멋지다.”
무엇보다 서준의 시선이 떨어지지 않는 곳은 사방에 설치된 카메라였다. 옮길 수 있는 3대의 카메라와 정면과 양옆, 뒤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있었다. 찍은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 모니터도 세 대나 있었다.
“엄청 멋있어!”
“서준아. 이것 봐.”
서은혜가 웃으며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아들을 불렀다. 서준의 눈이 연기를 할 때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이건 뭐야?”
“리모컨. 카메라 위치를 조종하는 거야.”
서은혜가 버튼을 누르자 거울 앞에 있던 카메라가 옆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휘둥그레 눈을 뜬 서준이 고개를 들어, 카메라가 설치된 천장을 보니 일직선으로 레일이 놓여 있었다. 천장에 설치된 레일을 따라 카메라가 움직이고 있었다.
“세상에!”
서준이 입을 쩌억 벌렸다. 가족의 뒤에서 연습실을 구경하던 안다호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높이도 조절할 수 있어.”
서은혜가 리모콘의 다른 버튼을 누르자, 움직이던 카메라가 멈추고 천천히 천장 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띡- 버튼을 누르자 올라갔던 카메라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모니터 보면서 렌즈 방향도 조절할 수 있고.”
서은혜의 조종에 따라 카메라 렌즈가 이리저리 방향을 틀었다. 모니터에 비친 영상도 이리저리 바뀌었다.
지이잉- 돌아가는 문명의 이기에 서준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가슴이 쿵쿵 뛰고, 몸이 붕 뜨는 것 같았다.
“세상에에!!”
서준의 벌겋게 상기된 얼굴에 서은혜와 이민준이 활짝 웃었다.
여러 대의 카메라를 사는 게 좋다던 라이언 감독님과 지미집 카메라처럼 천장에 붙어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배우들의 의견을 듣길 잘한 것 같았다. 그들도 이런 결과물이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겠지만 말이다.
안다호도 놀란 얼굴로 서준의 연습실을 둘러보았다.
‘댄스 연습실에 설치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화려한 카메라의 움직임은 아무래도 배우보다는 아이돌 쪽이 더 강했다. 이리저리 바꾸는 카메라에 정수리를 찍는 이상한 카메라 움직임.
일명, 발카(발로 찍은 것 같은 카메라).
이렇게 사방에서 찍히면서 연습하면 그런 음악방송 화면 속에서도 더 좋은 화면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던 안다호는, 흐뭇한 얼굴로 아들을 바라보던 이민준에게 카메라 설치 업체를 물었다.
연습실 이쪽저쪽을 뱅뱅 돌아다니던 서준은 지금 당장 이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싶었다.
‘연기하는 내 뒷모습이라니…… 세상에. 세상에에!’
때마침 대본도 있었다. 서준이 눈을 번쩍이고, 새 장난감을 본 아이처럼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있을 때, 엄마 아빠가 찬물을 들이부었다.
“그럼 구경은 이정도로 하고, 짐 정리부터 할까?”
“……응!”
눈물을 삼킨 서준이 대답했다. 아쉽지만 짐부터 정리해야 했다. 실망한 얼굴을 금방 지운 서준은 떠나는 안다호에게 인사하고, 얼른 방으로 향했다.
‘빨리 정리하고 연습해야지!’
서준은 재빨리 자신의 짐을 정리했다. 대본을 열심히 책장에 꽂아 넣고, 인형도 빠르게 정돈했다.
부부가 그 빠른 모습에 웃으며 팔을 걷어붙였다. 서은혜는 서준의 옷을 옷장에 넣고, 이민준은 DVD와 대본, 책을 정리했다.
“그렇게 연습하고 싶어?”
“응! 도와줘서 고마워. 엄마, 아빠.”
서준의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진심으로 선물을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에 부부가 더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엄마아빠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빨리 짐을 정리한 서준은 얼른 연습실로 향했다. 연습실 문을 연 서준에게 이민준이 말했다.
“저녁 먹어야 하니까, 30분만 해.”
“네!”
급하게 대답하는 서준의 목소리에 부부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게 이쪽인가…….”
모니터를 보며 카메라 위치를 조종했다. 천장에 달린 4대의 카메라가 서준의 생각대로 움직였다. 카메라를 조종하는 느낌이 꼭 감독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4대의 카메라 렌즈가 서준을 향하고, 서준이 후우-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서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서준은 오늘 봤던 대본을 떠올렸다.
“숙부.”
나지막한 목소리가 서준의 연습실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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