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살부터 슈퍼스타 154화
여울 예술중학교는 침묵했다.
어차피 실기 시험 날 많은 학생과 학부모의 입으로 전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괜히 먼저 입을 열어 이서준이나 이서준의 부모, 코코아엔터가 혹시라도 입학을 취소할까 봐,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그렇게 마지막 예술중학교의 접수 기간이 끝나도 사람들은 이서준이 어느 학교에 지원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이서준 어디 학교임?
=아직 안 떴음
-알아서 뭐 하게?
-맞아. 초등학교처럼 숨겨주자.
-ㅋㅋ 너도 알고 나도 아는데 이름은 밝히지 않는 그곳
-그래도 예중이면 말에 공연 올리지 않음? 그거 보고 싶다.
=그것도 학교 관계자만 볼 수 있을걸.
=ㅇㅇ 영상 너튜브에 올리거나
=무슨 학교인지 알아야 찾아보지 ㅠ
관계자 이외에는 아무도 서준의 중학교를 모른 채, 시간이 흘러, 10월 25일 여울 예중의 실기 날이 되었다.
여울 예중의 실기 심사는 학년별로 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맡았다.
“정말 이서준이 오나요?”
3학년 담당 선생님의 질문에 1학년 담당 선생님, 정시운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마지막 날 접수했다고 하더라고요. 연기 순서도 뒤일 것 같습니다.”
“이서준이 우리 학교에 오다니. 우리가 가르쳐 줄 게 있을까요?”
2학년 담당 선생님이 고민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다른 선생님들도 하는 고민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해야겠죠.”
정시운의 말에 두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면접실의 문이 열리고 실기시험을 도와줄 교직원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부터 실기 시작하겠습니다.”
“네. 1번부터 들여보내 주세요”
그렇게 여울 예중 실기고사가 시작되었다.
몇 번째쯤 갔을까, 계속 같은 자세로 심사를 보던 선생님들이 지친 얼굴로 잠시 정해진 쉬는 시간을 가졌다. 물을 마시고 굳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생각보다 성녕대군 연기가 많네요.”
“성녕대군의 인기가 많다는 거겠죠.”
정시운이 볼을 긁적거렸다.
“잘하면 모르겠는데 완벽한 성녕대군이 있다 보니까 괜히 묻히는 것 같은 느낌만 들지 않습니까?”
“네. 저도 이서준 연기만 떠올랐습니다.”
“연기 학원에서 전략을 잘못 짠 모양이네요.”
선생님들은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며 다시 심사를 이어나갔다.
그렇게 심사가 이어지는 동안 대기실에 조그마한 소란이 일어났다. 한 수험생의 등장에 같은 연기 학원을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 속닥거렸다.
“걔 맞지? 한 걸음?”
“김주경이었던 것 같은데…….”
“쟤가 여기 지원한 거면 이서준도 여기 오는 거 아니야?”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묻고 싶었지만 다들 눈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김주경의 옆에 앉아 있던 아이가 김주경의 어깨를 살살 두드렸다. 대본을 읽고 있던 김주경이 고개를 들어 옆에 앉은 아이를 보았다.
“안녕. 너 김주경 맞지? 한 걸음에 나왔던…….”
“응. 맞아.”
“……저기. 네가 여기 있는 거면, 이서준도 여기 와?”
두 아이의 대화에 한 교실에 모여 있던 아이들과 학부모의 귀가 쫑긋 섰다. 김주경은 입을 열었다.
“아니. 나도 어디 지원했는지 몰라.”
“……그렇구나.”
김주경의 말에 아이는 미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왜 몰라? 같이 촬영했으면서?”
“그러게.”
“같이 촬영해도 안 친할 수도 있지. 촬영만 하고 헤어지니까. 게다가 오래 찍는 영화나 드라마도 아니고 짧은 촬영이었잖아.”
“그건 그래. 그럼 이서준이 어디 지원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네.”
“난 같은 학교였음 좋겠어. 쟤도 이서준 때문에 유명해졌잖아. 같은 학교 같은 반이면 더 좋을 것 같아.”
“난 별로. 이서준이 오면 한 자리는 이미 채워진 거잖아. 게다가 3년 내내 이서준하고 비교돼야 하고.”
아이들이 속닥거렸다. 김주경은 그런 속닥거림을 한쪽 귀로 흘려보내며 대본을 읽어 내려갔다.
서준이와는 간간이 메시지를 나누었지만, 말했던 대로 지망하는 학교는 물어보지 않았다. 예전부터 여울 예중에 가고 싶었는데, 서준이 다른 학교에 간다고 하면 흔들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김주경이 한숨을 쉬었다.
‘역시 물어보는 게 좋았으려나? 실력을 쌓는 데, 선생님의 가르침이 좋을지, 서준이랑 같이 연기하는 게 더 좋을지, 잘 모르겠단 말이지.’
잠시 생각하던 김주경은 금세 고개를 젓고 대본에 집중했다. 일단, 실기가 먼저였다.
* * *
“안녕하세요. 김주경입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제일 먼저 들어온 수험생을 본 선생님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지만 그 이외의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시험은 공정해야 했고, 모두 카메라로 녹화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자기소개하고 자유 연기 볼게요.”
“네!”
김주경은 차분히 자기소개를 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에 선생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주경의 자유 연기도 시원시원했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한 김주경이 밖으로 나가고, 선생님들이 짧게 대화를 나누었다.
“잘하네요. 확실히 현직 아역 배우라서 그런가, 몰입이 남다릅니다.”
“6학년이 이 정도로 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에요.”
“이서준과 함께했던 배우가 이 정도인데 이서준은 얼마나 잘할까요?”
그 말에 답하기도 전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역 배우의 붐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지원자가 많았기 때문에 심사는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실기실을 나온 김주경이 환한 얼굴로 엄마에게로 향했다. 열심히 기도하고 있던 김주경의 엄마가 환한 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렇게 이틀로 나뉜 여울 예중의 실기 첫날이 지나가고,
둘째 날이 밝았다.
어제 온종일 아이들의 연기를 보고, 점수를 매기느라 지쳤던 심사위원 선생님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교장 선생님도 오고 싶어 하셨는데 말이죠.”
“오시면 안 되죠. 형평성에 어긋나니까요.”
“이사장님도 오고 싶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당연하죠. 우리 서준인데요.”
정시운의 말에 두 선생님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도 모르게 팬심을 드러낸 정시운이 민망한 듯 웃었다.
“그럼, 오늘 심사도 시작해 볼까요.”
오전 한 타임, 오후 두 타임으로 나뉘어 수험생들의 휴대폰으로 실기 시간이 전해졌다.
서준은 마지막 날 원서를 제출해서 마지막 타임의 초반쯤에 실기를 치르게 되었다. 서준과 서은혜는 3시쯤 여울 예중에 도착했다.
“안 늦었지?”
“응.”
수험생들의 대기실은 교실에 여러 개의 의자를 놓는 것으로 만들어졌고 면접을 볼 면접실도 바로 옆 옆 교실이었다.
서준이 교실로 들어가자, 먼저와 기다리고 있던 수험생들은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가 눈만 깜빡였다. 학부모들도 얼음이 된 듯 움직이지도 못했다.
“어…….”
“이서준!”
이서준이 이 학교였구나!
다들 이서준과 같은 학교라는 사실에 기뻐해야 할지 한 자리가 줄어들어 슬퍼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침묵 속에 서준과 서은혜는 수험표에 쓰여 있는 숫자가 붙은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넋 놓고 보고 있던 아이들은 서준이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읽기 시작하자, 화들짝 놀라 자신의 대본을 보기 시작했다.
이서준은 이서준이고 일단 합격해야 했다.
아이들이 흩어질 것 같은 집중력을 애써 짜내는 사이, 같은 대기실에 있던 학부모들의 손가락이 휴대폰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친구, 가족, 직장 동료, 연기 학원 선생님 등에게로 전해진 소식은 곧 인터넷에 올라갔고 주시하고 있던 기자들이 금세 기사를 올렸다.
[배우 이서준, 여울 예중 응시!]
[여울 예중 개교 10년 차, 음악 미술 연기를 아우르는 예술중학교!]
[ATR그룹의 예술중학교. 은하수 센터와 같은 그룹!]
[여울 예중에 대해 알아보자!]
-와…… 여기서 은하수 센터?
-어린이 연극 봄 한 데 맞지?
=ㅇㅇ 옛날부터 배우 키우는 데 관심 많았음
-배우랄까, 예술가랄까. 장학생도 많음.
-이서준이 여기 가네. 초등학교랑은 좀 멀지 않음?
-돈도 많겠다 새집 샀겠지.
=ㅇㅇ 어려서 자취는 힘들 테니까.
-여울 예중 기숙사 있지 않음?
=ㅇㅇ 있는데 그거 집안 형편 다 따지는 거라서 이서준은 못함. 장학금도 많고 지원도 많이 해줘서 가정형편 어려운, 재능있는 애들은 여울 예중 가려고 함.
코코아엔터 2팀이 인터넷 기사들을 주시하는 사이, 서준의 차례가 가까워졌다.
“274번 수험생.”
“네.”
수험표의 숫자를 확인한 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기실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했다. 누구보다 멋진 아우라를 뽐내며 서준은 면접실로 향했다.
“드디어!”
“이렇게 시간이 안 가는 것도 처음입니다.”
다음 수험생의 원서를 확인한 선생님들은 숨도 쉬지 않고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원서가 접수됐을 때부터 기다렸던, 이서준의 차례였다.
서준이 면접실로 들어왔다. 교실 중앙에 선 서준이 심사위원 자리에 앉은 선생님들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274번, 이서준입니다.”
팬이다. 연기 잘 봤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 바란다. 등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꾸욱 참은 정시운이 입을 열었다.
“자기소개하고 자유 연기 부탁할게요.”
“네!”
서준의 자기소개는 연기를 참 좋아하고 연기를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는 게 느껴졌다. 이야기하는 경력사항은 말로만 들어도 박수가 나올 것 같았다. 특히 골든글로브상과 아카데미상이 그랬다.
지금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한때 유명한 배우를 꿈꿨던 선생님들의 눈이 꿈속에서 헤매는 듯 반짝였다.
“그럼 자유 연기 시작하겠습니다.”
서준의 자유 연기는 묵직한 침묵으로 시작되었다. 가만히 서 있던 서준은 천천히 바닥에 앉았다.
숨소리까지 줄어들게 하는 조그마한 움직임에 선생님들의 숨이 천천히 멈추었다.
허리를 굳게 펴고 앉은 서준의 몸이 천천히 움찔거렸다.
무릎 위에서 꼼지락거리는 손가락, 두려운 듯한 눈썹의 움직임. 경직된 표정.
그때, 무언가 큰 소리를 들은 듯, 앉아 있던 서준의 몸이 크게 요동쳤다.
허리를 굳게 펴고 두 손에 힘을 꽉 주었다. 떨리는 속마음을 감춘 채 서준이 입을 열었다.
“내가…….”
앞만 바라보고 있던 서준이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있는 심사위원들이 아니라, 더 먼 곳, 이를 드러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짐승 같은 사내에게 서준이 말했다.
“내가 이 나라의 왕입니다. 숙부.”
그 말에 번개처럼 세 사람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끝내 숙부의 손에 죽어버린 아이.
“숙부.”
그 한마디에 면접실이 편전으로 변했다. 깔끔한 옷을 입고 있던 서준은 어느새 곤룡포를, 그리고 서준의 시선 끝에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가진 사내가 서 있을 것만 같았다.
면접실이 조용해졌다.
쿵-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문을 열었던, 훗날 세조가 될 수양대군이 입을 꾸욱 다물었다.
어쩌면 단종의 얼굴에서 문종과 세종의 얼굴을 본 것이리라. 숨죽여 지냈던 지난날을 떠올린 것이리라.
그 날들이 지나서, 이제야 기지개를 켤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나운 눈빛을 단종은 피하지 않았다.
서준의 단단한 눈빛에 넋 놓고 있던 세 명은 저도 모르게 서준이 바라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누군가 있는 것 같았다. 어마어마한 살기를 내뿜는 짐승 같은 사내가, 보이지 않는 시퍼런 칼을 서준에게로 들이미는 것 같았다.
그 기세에도 물러서지 않는 단종이 입을 열었다.
“내가 하늘이 내려준 왕이고, 숙부는 결국 반역도에 지나지 않습니다.”
수양대군이 외쳤다.
무어라 무어라 말하고 있지만, 단종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 봤자, 15살도 되지 않은 아직 어린아이였다. 왕의 위엄을 보이라고 해도, 이런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단종이 입술을 깨물었다.
궁궐과 나라는 모두 숙부의 손에 들어갔으니까.
자신을 지지해 주던 신하들이 죽어 나갔으니까.
“숙부.”
그런데도 단종의 눈동자만은 빛났다.
“모든 옳음은 저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숙부가 이 자리에 올라도 그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백성들도 후손들도 모두 알게 될 겁니다.”
그 날카로운 진실이 일개 반역도인 수양대군을 꿰뚫었다.
“하늘이 숙부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어린 용의 우렁찬 외침에 수양대군 또한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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